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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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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子路曰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桓公殺公子糾어늘 召忽死之호되 管仲不死하니 曰 未仁乎ᄂ저
환공桓公공자公子 를 죽이자, 소홀召忽은 그를 위해 죽었으나, 관중管仲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管仲은〉 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注]孔曰 齊襄公立하야 無常하니 鮑叔牙曰 君使民慢하니 亂將作矣라하고 奉公子小白出奔莒하다
공왈孔曰 : 양공襄公즉위卽位하여 〈정령政令이〉 무상無常하니, 포숙아鮑叔牙가 말하기를 “임금이 백성들을 방종放縱하게 만드니, 장차 반란叛亂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고서, 공자公子 소백小白을 모시고 나라로 도망갔다.
襄公從弟公孫無知殺襄公하니 管夷吾‧召忽奉公子糾出奔魯하다
양공襄公종제從弟 공손무지公孫無知양공襄公을 죽이자, 관이오管夷吾소홀召忽공자公子 를 모시고 나라로 도망해 왔다.
齊人殺無知하다
제인齊人공손무지公孫無知를 죽였다.
魯伐齊하야 納子糾로되 小白自莒先入하니 是爲桓公이라
나라가 나라를 토벌하여 공자公子 를 들여보내고자 하였으나, 소백小白나라로부터 먼저 들어가서 〈나라 임금이 되었으니〉 이가 환공桓公이다.
乃殺子糾하니 召忽死之하다
나라가 나라의 강압强壓에 의해〉 도리어[乃] 공자公子 를 죽이니 소홀召忽이 그를 위해 죽었다.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桓公 九合諸侯호되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이리오
환공桓公이 아홉 번 제후諸侯회합會合하되 병거兵車(武力)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만 하겠는가?
如其仁이리오
누가 그의 만 하겠는가?”
[注]孔曰 誰如管仲之仁이리오
공왈孔曰 : 누가 관중管仲만 하겠는가?
[疏]‘子路’至‘其仁’
의 [子路]에서 [其仁]까지
○正義曰 : 此章論齊大夫管仲之行也.
정의왈正義曰 : 이 나라 대부大夫 관중管仲덕행德行을 논한 것이다.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 未仁乎’者,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 未仁乎]
召忽‧管仲皆事子糾. 及桓公殺公子糾, 召忽致死, 而管仲獨不死, 復臣桓公,
소홀召忽관중管仲은 모두 자규子糾를 섬긴 신하인데, 환공桓公공자公子 를 죽임에 미쳐 소홀召忽은 목숨을 바쳤으나 관중管仲은 홀로 죽지 않고 다시 환공桓公의 신하가 되었다.
故子路言管仲未得爲仁乎.
그러므로 자로子路관중管仲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者, 孔子聞子路言管仲未仁, 故爲說其行仁之事,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공자孔子께서 “관중管仲하지 않다.”라고 한 자로子路의 말을 들으셨기 때문에 자로를 위해 관중管仲을 행한 일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言齊桓公九會諸侯, 不以兵車, 謂也.
환공桓公이 아홉 번 제후諸侯를 회합하되 병거兵車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은 의상衣裳회합會合을 이른다.
存亡繼絶, 諸夏安, 皆管仲之力也.
‘망해가는 나라를 보존시키고 끊어지는 를 이어주어 제하諸夏를 안정시킨 것이 모두 관중管仲의 힘이다.
足得爲仁, 餘更有誰如其管仲之仁.
이 되기에 충분하니 이밖에 다시 누가 관중管仲만 한 이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再言之者,所以拒子路, 美管仲之深也.
두 번 말씀하신 것은 자로子路의 말을 부정하고 관중管仲을 깊이 찬미하기 위함이다.
言九合者, 史記云 “兵車之會三, 乘車之會六”
아홉 번 회합했다고 말한 것은, 《사기史記》에 “병거兵車회합會合이 세 번, 승거乘車회합會合이 여섯 번이다.”라고 하였다.
穀梁傳云 “衣裳之會十有一”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의상衣裳회합會合이 열한 번이다.”라고 하였는데,
范甯注云 “十三年會北杏, 十四年會鄄, 十五年又會鄄, 十六年會幽,二十七年又會幽,
범녕范甯에 “장공莊公 13년에 북행北杏에서 회합會合하고, 14년에 에서 회합會合하고, 15년에 또 에서 회합會合하고, 16년에 에서 회합하고, 27년에 또 에서 회합하고,
僖元年會檉, 二年會貫, 三年會陽穀, 五年會首戴, 七年會甯母, 九年會葵丘”
희공僖公 원년元年에서 회합하고, 2년에 에서 회합會合하고, 3년에 양곡陽穀에서 회합會合하고, 5년에 수대首戴에서 회합會合하고, 7년에 영모甯母에서 회합會合하고, 9년에 규구葵丘에서 회합會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凡十一會, 不取北杏及陽穀, 爲九也.
모두 열한 번 회합하였는데, 북행北杏양곡陽穀회합會合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합九合이라 한 것이다.
[疏]○注 ‘孔曰’至‘死之’
의 [孔曰]에서 [死之]까지
○正義曰 : 云‘襄公立 無常’至‘出奔莒’
정의왈正義曰 : [襄公立 無常]에서 [出奔莒]까지.
皆莊八年左傳文也.
모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장공莊公 8년의 글이다.
杜注云 “政令無常.
두예杜預에 “정령政令무상無常한 것이다.
鮑叔牙, 小白.
포숙아鮑叔牙소백小白사부師傅이다.
小白, 僖公庶子”
소백小白 희공僖公서자庶子이다.”라고 하였다.
云‘襄公從弟公孫無知殺襄公’者, 春秋莊八年 “冬十有一月癸未, 齊無知弑其君諸兒” 是也.
[襄公從弟公孫無知殺襄公] 《춘추春秋장공莊公 8년에 “겨울 11월 계미일癸未日나라 무지無知가 그 임금 제아諸兒시해弑害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管夷吾召忽奉公子糾出奔魯’者, 亦莊八年左傳文.
[管夷吾召忽奉公子糾出奔魯] 이 또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장공莊公 8년의 글이다.
云‘齊人殺無知 魯伐齊 納子糾’者, 莊九年經文也.
[齊人殺無知 魯伐齊 納子糾] 《춘추春秋장공莊公 9년의 경문經文이다.
[小白自莒先入 是爲桓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장공莊公 9년의 전문傳文이다.
云‘殺子糾 召忽死之’者, 案莊九年傳云 “夏, 公伐齊, 納子糾, 桓公自莒先入.
[殺子糾 召忽死之] 고찰하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장공莊公 9년에 “여름에 장공莊公나라를 토벌하여 자규子糾나라의 임금으로 들여보내려 하였는데, 환공桓公나라에서 먼저 나라로 들어갔다.
秋, 師及齊師戰于乾時, 我師敗績.
가을에 나라 군대가 나라 군대와 건시乾時에서 전투하다가 나라 군대가 대패大敗하였다.
鮑叔帥師來言曰 ‘子糾, 親也, 請君討之. 管, 讎也, 請受而甘心焉’
포숙鮑叔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말하기를 ‘자규子糾친족親族〈이라 차마 직접 죽일 수 없으니〉 노군魯君께서 그를 죽이고, 관중管仲소홀召忽은 원수이니 우리가 인수引受해다가 통쾌하게 원수를 갚겠다.’라고 하였다.
及殺子糾于生竇. 召忽死之. 管仲請囚,
이에 〈나라가〉 생두生竇(생두)에서 자규子糾를 죽이니 소홀召忽자규子糾를 위해 죽고, 관중管仲포로捕虜가 되기를 청하였다.
鮑叔受之, 及堂阜而脫之.
포숙鮑叔관중管仲인수引受해 가다가 당부堂阜에 이르러 그의 결박結縛을 풀어주었다.
歸而以告曰 ‘管夷吾治於高傒, 使相可也.’ 公從之” 是也.
포숙이 돌아가서 환공桓公에게 고하기를 ‘관이오管夷吾치국治國의 재능이 고혜高傒보다 뛰어나니,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으소서.’라고 하니, 환공桓公이 그의 말을 따랐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역주
역주1 衣裳之會 : 兵車之會의 반대말로 나라 사이에 禮로써 友好를 다지는 會合을 이른다.
역주2 (義)[乂] : 저본에는 ‘義’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北監本과 毛本에는 ‘義’가 ‘乂’로 되어있으니, 살펴보건대 ‘乂’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乂’로 바로잡았다.
역주3 (傳)[傅] : 저본에는 ‘傳’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各本에 ‘傅’가 모두 ‘傳’으로 잘못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傅’로 바로잡았다.
역주4 云小白自莒先入……九年傳文也 : 春秋三傳에 여기에 인용된 문구 그대로는 보이지 않는다. 《春秋》 莊公 9년의 “夏 公伐齊納子糾 齊小白入于齊(여름에 莊公이 齊나라를 토벌하여 子糾를 齊나라의 임금으로 들여보내고자 하였는데, 齊 小白이 먼저 齊나라로 들어갔다.)”에 대해 《左氏傳》에 “夏 公伐齊納子糾 桓公自莒先入(여름에 莊公이 齊나라를 토벌하여 子糾를 齊나라의 임금으로 들여보내려 하였더니 桓公이 莒나라에서 먼저 齊나라로 들어갔다.)”라고 한 말을 가리킨 듯하다.
역주5 (仲)[召] : 저본에는 ‘仲’으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召’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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