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陛下不次拔擢
하야 置在
하니 其於報效
에 自宜如何
오
而自居職以來
로 已逾半歲
에 凡事關大體
어든 必須衆議之協同
오 其餘日逐進呈
은 皆是有司之常務
어니와 至於
하얀 蔑爾無聞
이라
上辜聖恩하고 下愧淸議하니 人雖未責이나 臣豈自安이리오
所以日夜思惟하야 願竭愚慮하니 苟有可採어든 冀裨萬一이라
陛下自臨御已來로 擢用諍臣하고 開廣言路하야 雖言者時有中否라도 而聖慈每賜優容이러니
一旦臺諫聯翩하야 被逐四出하니 命下之日에 中外驚疑라
但見唐介范師道
는 皆久在言職
이라 其人立朝
에 各有本末
하야 補益甚多
하니
豈於此時에 頓然改節하야 故爲欺罔하야 上昧聖聰이리오
臣竊以謂自古人臣之進諫於其君者가 有難有易하야 各因其時而已니
若剛暴猜忌之君이 不欲自聞其過而樂聞臣下之過하야 人主好察多疑於上하고 大臣側足畏罪於下하면 於此之時에 諫人主者難하고 而言大臣者易하며
若寬仁恭儉之主
가 動遵禮法
하야 自聞其失
이면 則
하고 聞臣下之過
하면 則務爲優容
하야 以保全之
하되 而爲大臣者
는 外秉國權
하고 內有左右之助
면 言事者未及見聽
에 而怨仇已結於其身
이라
自古人主之聽言也가 亦有難有易하니 在知其術而已라
夫忠邪竝進於前하고 而公論與私言交入于耳하니 此所以聽之難也요
凡言拙而直하야 逆耳違意하야 初聞若可惡者는 此忠臣之言也요 言婉而順하야 希旨合意하야 初聞若可喜者는 邪臣之言也라
至於言事之官이 各擧其職하야 或當朝正色하야 顯言于廷하고 或連章列署하야 共論其事하얀 言一出則萬口爭傳하고 衆目共視하니 雖欲爲私나 其勢不可라
若非其言職이요 又不敢顯言하야 或密奏乞留中하고 或面言乞出自聖斷하야 不欲人知言有主名者는 蓋其言涉傾邪하야 懼遭彈劾이라
伏惟陛下는 仁聖寬慈하야 躬履勤儉하며 樂聞諫諍하야 容納直言하고
其於大臣에 尤所優禮라 常欲保全終始하고 思與臣下愛惜名節하야 尤愼重於進退라
故臣謂方今言事者規切人主則易하고 欲言大臣則難이라하노니 臣自立朝로 耳目所記라
하고 하고 하고 其後
에 하고 前年
하고 今又唐介等五人言陳旭得罪
하니 自范仲淹貶饒州後
로 至今凡二十年間
에 居臺諫者多矣
로되 未聞有規諫人主而得罪者
라
昨所罷黜臺諫五人에 惟呂誨入臺未久하고 其他四人은 出處本末이 迹狀甚明하야 可以歷數也라
唐介前因言文彦博하야 遠竄廣西煙瘴之地라가 賴陛下仁恕哀憐하야 移置湖南하야 得存性命하고 范師道趙抃은 竝因言忤劉沆하야 罷臺職守外郡하야 連延數年然後復하고 今三人者又以言樞臣罷黜이라
然則介不以前蹈必死之地爲懼하고 師道與抃不以中滯進用數年爲戒하야 遇事必言하고 得罪不悔하니
至如王陶者하얀 本出孤寒이러니 只因韓絳薦擧하야 始得臺官하되
夫牽顧私恩은 人之常情爾니 斷恩以義는 非知義之士不能也라
此四人者出處本末之迹이 如此하니 可以知其爲人也라
就使言雖不中이라도 亦其情必無他어늘 議者或謂言事之臣이 好相朋黨하야 動搖大臣하야 以作威勢라하니 臣竊以謂不然이라하노라
介與師道는 不與絳爲黨이요 乃與諸臺諫共論絳爲非라
然則非相朋黨이요 非欲動搖大臣이 可明矣니 臣固謂未可以此疑言事之臣也라
況介等은 比者雖爲謫官이나 幸蒙陛下寬恩하야 各得爲郡하야 未至失所하니
其可惜者는 斥逐諫臣이 非朝廷美事요 阻塞言路가 不爲國家之利어늘 而介等盡忠守節하되 未蒙憐察也라
欲望聖慈는 特賜召還介等하야 置之朝廷하야 以勸守節敢言之士하면 則天下幸甚이라
03. 대간臺諫 당개唐介 등을 어서 복직시킬 것을 논하는 차자箚子
신은 재주와 식견이 용렬하여 뭇사람들 속에 녹록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폐하께서 절차를 뛰어넘어 특별히 발탁하여 추부樞府에 두신 은혜를 입었으니, 보답에 있어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직책을 맡은 이래로 이미 반년이 넘는 동안, 무릇 일이 대체에 관계되는 것이면 반드시 뭇사람들의 논의를 모으고 기타 날마다 글을 올리는 것들은 모두 유사有司가 늘 하는 일이지만, 국사國事를 의논하고 군왕을 개도開導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전혀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성은聖恩을 저버리고 아래로는 청의淸議에 부끄러우니, 남들은 비록 책망하지 않지만 신이야 어찌 스스로 편안하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밤낮으로 생각하며 오직 어리석은 생각을 다해 의견을 올리길 원하니, 채택할 만한 점이 있으면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신이 근자에 보건대 간관諫官 당개唐介와 대관臺官 범사도范師道 등이 진욱陳旭의 일을 말했다가 죄를 얻어서, 한 사람은 작은 고을로 좌천되고 한 사람은 먼 지방으로 찬축竄逐되었습니다.
폐하께서 등극하신 이래 쟁신諍臣을 발탁하여 언로를 넓혀 비록 말하는 것이 때로는 맞고 때로는 맞지 않더라도 자애로우신 마음으로 너그러이 용납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대간이 연이어 사방으로 쫓겨나니, 명이 내린 날 중외中外가 놀라고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신이 비록 대간이 말한 바가 옳은지 그른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보건대 당개와 범사도는 모두 언관言官의 직책에 오래 있었던 터라, 그 사람들이 조정에 있을 때 저마다 출처出處의 본말이 있고 전후로 국사에 대해 진언進言하여 도움을 준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어찌 이때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어 일부러 기만하는 짓을 해서 위로 성총聖聰을 흐려놓았겠습니까.
사람의 정리로 보아 의당 이런 것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은 삼가 생각건대 예로부터 신하가 임금에게 간언을 올리는 것은 어려운 경우도 있고 쉬운 경우도 있어 저마다 그때에 따라야 할 뿐입니다.
만약 강포하고 시기심이 많은 임금이 자기 과오는 듣기 싫어하고 신하의 과오는 듣기 좋아하여, 임금은 위에서 살피기를 좋아하며 의심이 많고, 대신들은 아래에서 불안해 어쩔 줄 모르며 죄를 받을까 두려워한다면, 이러한 때에는 임금에게 간언하기는 어렵고 대신에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만약 너그럽고 어질며 공손하고 검소한 임금이 모든 일에 예법을 따라, 자기 과실을 들으면 막힘없이 간언을 따르고, 신하의 과오를 들으면 힘써 너그러이 용납하여 그 신하를 보전해주되, 대신 된 이가 밖으로는 국권을 잡고 안으로는 좌우의 돕는 사람들이 있다면, 언사한 자가 아직 임금의 허락을 받기도 전에 이미 그 자신에게 원한이 맺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는 임금에게 간언하기는 쉽고 대신에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간언을 들음에 어려운 경우가 있고 쉬운 경우가 있으니, 그 방법을 아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대저 충성스러운 말과 사특한 말이 동시에 앞에 올라오고 공정한 의논과 사사로운 의논이 번갈아 귀에 들어오니 이것이 듣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이때 만약 그 사람이 충성스러운지 사특한지를 알고 그 말이 공정한지 사사로운지를 안다면 듣기가 쉽습니다.
무릇 말이 서툴고 곧아서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거슬려 처음 들음에 미운 것은 충성스런 신하의 말이고, 말이 부드럽고 순하여 뜻에 영합하고 마음에 맞아서 처음 들음에 반가운 것은 사특한 신하의 말입니다.
언사言事하는 관원이 저마다 자기 직분을 수행하여 혹 조정에서 정색하여 외정에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서명한 소장을 올려 그 일을 함께 논하기도 하는 데 이르러, 말이 한번 나가면 만 사람의 입에 다투어 전해지고 뭇사람들의 눈이 함께 보게 되니, 비록 사사롭게 하고자 해도 형세상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밖에서 분명히 말하여 남이 알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모두 공정한 말입니다.
만약 언관의 직책에 있지 않고 또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여 혹 은밀히 상주上奏하여 유중留中하기를 청하기도 하고 혹 면대面對하여 말하여 성상의 결단을 청하여, 그 말을 주동한 사람이 누군지 남이 알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대개 그 말이 사특한 데로 기울어 있으므로 탄핵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몰래 주달奏達하면서 남이 알까 두려워하는 것은 모두 사심을 가진 말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이 방법을 가지고 신하의 마음을 알면 말을 듣기가 쉽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인자하고 관대하여 근검을 몸소 실천하며 간쟁을 듣기를 좋아하여 직언을 용납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신에 대해서는 더욱 넉넉히 예우하여 늘 시종始終 함께 복록을 누리고자 하시며, 신하들에게 명예와 절조를 아껴주고자 생각하여 신하들을 등용하고 퇴출함에 있어 더욱 신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지금 언사言事하는 이가 임금을 규간規諫하기는 쉽고, 대신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니, 이는 신이 조정에 선 뒤로 귀와 눈으로 기억하는 바입니다.
경우景祐 중에 범중엄范仲淹이 재상 여이간呂夷簡에 대해 말했다가 좌천되어 지요주知饒州가 되었고, 황우皇祐 중에 당개唐介가 재상 문언박文彦博을 말했다가 춘주별가春州別駕로 좌천되었고, 지화至和 초에는 오중복吳中復‧여경초呂景初‧마준馬遵이 재상 양적梁適에 대해 말했다가 모두 파직되어 외직으로 나갔고, 그 뒤에 조변趙抃과 범사도范師道가 재상 유항劉沆에 대해 말했다가 역시 파직되어 외직으로 나갔고, 지난해에는 한강韓絳이 부필富弼에 대해 말했다가 지채주知蔡州로 좌천되었고, 지금 또 당개 등 다섯 사람이 진욱陳旭에 대해 말했다가 죄를 얻었으니, 범중엄이 요주饒州로 좌천된 이후로 지금까지 20년 사이에 대간의 자리를 맡은 자가 많았으나, 임금을 규간하다 죄를 얻은 자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신은 그러므로 “지금 임금을 규간하기는 쉽고, 대신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만약 이 사실을 미루어서 당개 등이 말한 바를 살펴보신다면 그들의 마음속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접때 파출한 대간 다섯 사람 중에 오직 여회呂誨가 어사대御史臺에 들어온 지 오래지 않고, 그 나머지 네 사람은 출처出處의 본말이 그 자취가 매우 분명하여 역력히 헤아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당개唐介는 앞서 문언박文彦博에 대해 말한 일로 말미암아 풍토가 나쁜 광서廣西 지방으로 멀리 찬축되었다가 폐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시어 호남湖南으로 배소를 옮겨주신 덕분에 성명을 보존할 수 있었고, 범사도范師道와 조변趙抃은 모두 언사言事로 말미암아 유항劉沆의 비위를 거슬러 대직臺職에서 파면되어 외직外職 고을 수령을 하여 몇 해나 끌다가 내직으로 돌아왔고, 지금 세 사람은 또 추밀원樞密院의 대신大臣에 대해 말하다가 파출되었습니다.
그렇고 보면 당개는 꼼짝없이 죽을 자리를 밟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범사도와 조변은 중간에 지체되어 몇 해 동안 승진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일을 만나면 반드시 말하고 죄를 얻어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이른바 진퇴에 한결같은 절개를 지켜 시종 변치 않는 선비입니다.
왕도王陶와 같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본래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는데, 단지 한강韓絳의 천거로 말미암아 비로소 대관臺官을 얻었습니다.
그렇건만 한강이 중승中丞이 됨에 미쳐서 왕도가 사사로운 은혜를 돌아보지 않고 그와 쟁의爭議를 벌여 한강이 마침내 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저 사사로운 은혜에 이끌리는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이니, 의리로써 은혜를 끊는 것은 의리를 아는 선비가 아니면 할 수 없을 일입니다.
이로써 말한다면 왕도는 공정함을 따르고 사사로움을 없앤 선비라 할 만합니다.
이 네 사람은 출처의 본말의 자취가 이와 같으니,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사 그들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은 다른 뜻이 없었을 터인데, 의논하는 이들은 혹 “언사言事하는 신하들이 서로 붕당을 지어 대신을 흔들어 위세를 떨어대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하니, 신은 삼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개唐介와 범사도范師道는 한강과 당黨을 같이하지 않을뿐더러 여러 대간들과 함께 한강의 죄를 다 같이 논의하여 잘못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즉 서로 붕당朋黨한 것도 아니고 대신大臣을 흔들고자 한 것도 아님이 분명하니, 신은 진실로 ‘이 일을 가지고 언사하는 신하를 의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당개 등이 근자에 비록 적관謫官이 되었으나 다행히 폐하의 관대한 은혜를 입어 저마다 고을의 수령이 되어 제 살 곳을 잃는 데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가석한 것은 간신諫臣을 축출한 것이 조정의 아름다운 일이 아니고 언로言路를 막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되지 않되, 당개 등은 충성을 다하고 절개를 지키고도 어여삐 살펴주시는 은혜를 입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특별히 당개 등을 소환하여 조정에 둠으로써 절개를 지키고 과감하게 직언하는 선비를 권면하시면 천하에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