此篇은 看他以客形主處에 亦自遠識과 及多轉調니라
少遊京師三十餘年
하야 雖學于佛
이나 而通儒術
하야 喜爲辭章
하고 與吾亡友
으로 交最善
이라
曼卿은 遇人無所擇하고 必皆盡其忻懽이요 惟儼은 非賢士不交하야 有不可其意면 無貴賤히 一切閉拒絶去하야 不少顧하니
曼卿之兼愛와 惟儼之介가 所趨雖異나 而交合無所間이라
若賢不肖混이면 則賢者安肯顧我哉리오하니 以此로 一時賢士多從其遊라
士嘗遊其室者를 禮之惟恐不至하되 及去爲公卿貴人하얀 未始一往干之라
然嘗竊怪平生所交가 皆當世賢傑이로되 未見卓卓著功業如古人可記者라
因謂世所稱賢才
는 若不笞兵走萬里立功海外
면 則當佐天子號令賞罰於
이니 苟皆不用
이면 則絶寵辱
하며 遺世俗
하야 自高而不屈
이니
醉則以此誚其坐人하니 人亦復之以謂遺世自守는 古人之所易니
若奮身逢時
하야 欲必就功業
이면 此雖聖賢難之
니 라
今子老於浮圖하야 不見用於世하야 而幸不踐窮亨之塗어늘 乃以古事之已然而責今人之必然邪아
然惟儼雖傲乎退偃於一室이나 天下之務와 當世之利病은 與其言에 終日不厭하니 惜其將老也已로다
曼卿之死에 旣已表其墓하니 願爲我序其文하되 然及我之見也하라
嗟夫라 惟儼旣不用於世하야 其材莫見於時나 若考其筆墨馳騁文章贍逸之能하면 可以見其志矣리라
이 편은 객으로서 주인을 형용한 부분에 또한 별도로 원대한 식견과 많은 문장의 변화를 보아야 한다.
유엄惟儼은 성이 위魏씨이니 항주杭州 사람이다.
어릴 때에 타향인 경사京師에 와서 30여 년을 지내면서 비록 불교佛敎를 배웠지만 유술儒術에 통달하여 문장 짓기를 좋아하였고, 나의 망우亡友 만경曼卿과 교분이 가장 두터웠다.
만경曼卿은 사람을 만날 때에 가리는 바가 없고 반드시 모두 그들과 즐거움을 다하였으며, 유엄惟儼은 어진 선비가 아니면 사귀지 않아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귀천貴賤을 따지지 않고 일체 사귐을 거절하고 교분을 끊고 떠나 조금도 돌아보지 않았다.
만경曼卿의 사람을 두루 사랑함과 유엄惟儼의 굳은 지조는 추향하는 바는 비록 다르지만 서로 잘 맞아 조금의 틈도 없었다.
만경曼卿이 일찍이 “군자는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仁한 사람을 친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니, 유엄惟儼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나는 망령된 사람과 사귀지 않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선비와 사귈 수 있었다.
만약 현자와 불초한 이가 섞여 있다면 현자들이 어찌 나를 돌아보려 하였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한때의 현사들이 대부분 종유한 것이다.
상국사相國寺에 거처하며 문을 나서지 않은 지 15년이 되었다.
일찍이 승사僧舍에 온 선비를 예우禮遇하되 오직 극진히 예우禮遇하지 못할까 걱정하더니, 그 선비가 떠나 공경公卿과 귀인貴人이 됨에 미쳐서는 한번도 찾아가 만나주기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평생 사귄 사람은 모두 당세의 어질고 걸출한 사람이지만 고인처럼 기록할 만한 우뚝이 공을 드러낸 사람은 보지 못한 것을 나는 이상하게 여겼다.
인하여 “세상에서 일컫는 현재賢才는 만약 병사를 독려하여 만 리를 나아가 해외에서 공을 세우지 않으면 응당 명당明堂에서 천자를 도와 호령號令하고 상벌賞罰을 내려야 하니, 만일 이 두 경우에 모두 쓰이지 못한다면 영욕榮辱을 끊고 세속을 버리고서 자신을 높여 뜻을 굽히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현재賢才가 아니면〉 오히려 어찌 부귀를 탐하면서 무위無爲를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술에 취하면 이로써 좌중座中의 사람을 꾸짖으니, 사람이 또한 대답하여 이르기를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지키는 것은 옛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다.
만약 몸을 떨치고 일어나 좋은 시운時運을 만나 반드시 공업功業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는 비록 성현聖賢이라도 어렵게 여기니,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궁달窮達이 다른 이유이다.
지금 그대는 승려로 늙어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여 다행히 궁달窮達의 길을 밟지 않았는데, 이에 옛사람들도 오히려 어렵게 여긴 일을 가지고 지금 사람들에게 반드시 실천하기를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엄惟儼은 비록 일실一室에 초연超然하게 물러나 은거해 있지만 천하의 일과 당세의 이익이나 병폐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하면 종일토록 실증나지 않았으니 그가 장차 늙어감이 안타깝다.
만경曼卿이 세상을 떠나자 유엄惟儼은 또한 경사京師의 동쪽에 땅을 사서 여생을 보낼 작정을 하고,
이에 평생 지은 글 수백 편을 모아 나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만경曼卿이 죽었을 때에 이미 그대가 그의 묘표墓表를 썼으니, 나를 위하여 이 글에 서문을 써주되 내가 생전에 볼 수 있게 해달라.”라고 하였다.
아, 유엄惟儼이 이미 세상에 쓰이지 않아 그의 재주가 당시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만약 필묵筆墨이 거침없고 문장이 풍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재능을 살펴보면 그의 뜻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