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 어늘 而背晉以歸梁
하니 此三者
는 吾遺恨也
라
莊宗受而藏之于廟
하고 其後用兵
에 則遣從事
하야 以一
告廟
하야 請其矢
하야 盛以錦囊
하야 負而前驅
하고 及凱旋而納之
러라
方其
하고 하야 入于太廟
하야 還矢先王
하고 而告以成功
하야는 其意氣之盛
이 可謂壯哉
인저
書曰
이라하니 憂勞
는 可以興國
이요 逸豫
는 可以亡身
이 自然之理也
라
故方其盛也
하얀 擧天下之豪傑
하야도 莫能與之爭
이러니 及其衰也
하얀 하야 爲天下笑
하니
夫禍患은 常積于忽微하고 而智勇多困於所溺이니 豈獨伶人也哉아
11. 《오대사五代史》 〈영관전伶官傳〉에 대한 논論
장종莊宗의 웅심雄心 부분이 구양공歐陽公의 문장과 천고千古에 고하高下를 다툴 만하다.
성쇠盛衰의 이치는 비록 하늘의 명命이라 하지만 어찌 사람의 일이 아니겠는가.
후당後唐 장종莊宗이 천하를 얻은 까닭과 천하를 잃은 까닭을 궁구窮究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진왕晉王이 임종할 때 화살 세 개를 장종莊宗에게 주면서 이르기를 “양梁은 나의 원수이다.
연왕燕王은 내가 세운 자이고 거란契丹은 나와 맹약하여 형제가 된 나라이거늘 진晉을 배반하고 양梁의 편이 되었으니, 이 셋에 대해서는 내가 죽어도 한恨이 남는다.
너에게 화살 세 개를 주노니, 너는 네 아비의 뜻을 잊지 말라.”라고 하였다.
장종이 그 화살을 받아서 종묘宗廟에 보관해두었다가 그 후 군사를 출동시킬 때면 종사관從事官을 시켜 하나의 소뢰少牢로써 종묘에 고하고 그 화살을 가져가겠다고 청하여 그 화살을 비단 주머니에 담아서 짊어지고 앞에서 말을 달려갔다가 개선凱旋하면 종묘에 반납하였다.
연燕의 부자父子를 포승으로 묶고 양梁의 군신君臣의 머리를 상자에 담아 와서 종묘에 들어가 선왕先王께 화살을 돌려 드리고 성공을 고할 때를 당해서는, 그 의기의 성대함이 씩씩했다 이를 만하였다.
그러나 원수들이 이미 멸망하고 천하가 이미 평정됨에 미쳐서는 한 사내가 밤중에 소리치자 난리를 일으키는 자들이 사방에서 호응하였다.
이에 황급히 동쪽으로 도망쳐 나와서 적을 보기도 전에 사졸士卒들이 흩어지니, 임금과 신하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여 하늘에 맹서하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으니, 어쩌면 그리도 쇠약해졌는가!
아니면 그 성공과 패망의 자취를 궁구해보면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하는 것인가?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가득 참은 덜어냄을 부르고 겸손함은 보탬을 받는다.”라고 하였으니, 근심과 노고는 나라를 일으킬 수 있고, 안일安逸과 유락遊樂은 몸을 망칠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융성할 때에는 온 천하의 호걸도 그와 싸울 수 없었는데, 쇠약해졌을 때에는 수십 명의 영인伶人 따위가 그를 곤궁하게 하여 몸은 죽고 나라는 멸망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대저 화환禍患은 늘 지극히 미세한 일에서 쌓이고 지용智勇을 갖춘 호걸은 대개 자신이 탐닉하는 바에 의해 곤궁하게 되는 법이니, 어찌 유독 영인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