右臣
은 伏見北虜
가 近於
에 添建城寨
하고 及拘囚定州
하고 侵過銀坊冶谷地界等事
라
竊聞朝廷至今未有分明嚴切指揮하야 令邊臣以理爭辨하니
竊料朝廷之意는 必謂爭之恐有引惹之虞니 此乃慮之過而計之失也라
今杜之於早而力爲拒絶이라도 猶恐不能이어든 若縱之不爭而誘其來侵이면 乃是引惹라
況
道路有三十餘處
가 皆可行兵
하니 其險要所扼
이 在於
等路
어늘
爲彼奪據而不爭
이면 則
等口
를 漸更來侵
하리니 豈能爭矣
리오
是則西山險要
가 盡爲彼奪
이니 一日使虜以大兵渡易水
하야 由
之西
而來
하야 以奇兵自
出西山諸口而下
면 則我
之患
을 不知何以禦之
오
且與人爲隣敵而自棄險要하야 任彼奪據而不爭하니 雖使我弱彼强이라도 尙須勉强이어든 何況勢鈞力敵하고 又違誓約하야 而彼曲我直乎아
臣謂朝廷所以然者는 蓋由未察虜中强弱之形하야 而不得其情僞之實也라
夫憂之與懼가 名近而意殊하니 憂者는 深思極慮而不敢暫忘이요 懼者는 臨事惶惑而莫知所措라
若能察其强弱之形하야 得其情僞之實이면 則今日之事는 誠不足懼요 而將來之患은 深有可憂어늘 奈何不憂其深可憂하고 而反懼其不足懼아
且
가 雖以戰射爲國
이나 而
自幼承其父祖
하야 與中國通和之後
에 未嘗躬戰陣遭勍敵
하고 謀臣舊將
이 又皆老死
하니 今其臣下如
者無三兩人
이라
寧才不及中人이로되 已是彼之傑者니 所以君臣計事가 動多不臧이라
하고 及議和垂就
하야 不能小忍
하야 以邀中國厚利
하야
近聞反此二法하야 欲悅漢人하되 漢人未能收其心하고 而虜人亦已怒矣요
이라 方且招輯敗亡
하고 修完器甲
하되 內恐國中之復叛
하고 外有西夏之爲虞
라 心自懷疑
하야 憂我乘虛而北襲
이라
故於界上에 勉强虛張하야 囚我巡兵하고 侵我地界하니 蓋其實弱而示彊者는 用兵之詭計라
故臣謂苟能察其彊弱하야 知其情僞면 則無不爭之理니 何必懼其不足懼哉리오
自國家困於西鄙用兵으로 常慮北戎이 合謀乘隙而動이라가 及見二虜相失而交攻하얀 議者皆云中國之福이라하니
夫幸其相攻이 爲我之福이면 則不幸使其解仇而復合이 豈不爲我禍乎아
臣謂北虜昨所以敗於元昊者는 亦其久不用兵이라가 驟戰而逢勍敵耳라
聞其自敗衄以來
로 君臣恐懼
하야 日夜謀議
하야 通招丁口
하고 募甲兵
하야 處處開敎閱之場
하고 家家括糧馬之數
라하니 以其天姿驍勁之俗
으로 加以日夜訓練之勤
이면 則其彊難敵矣
라
今虜國에 雖未有人이나 然大抵爲國者는 久無事則人難見하고 因用兵則將自出이니 使其交戰旣頻에 而謀臣猛將이 爭能竝出이면 則是夾山一敗가 警其四十年因循之弊하야 變驕心而爲憤志하고 化惰卒而爲勁兵하고 因屢戰而得驍將이니 此乃北虜之福이요 非中國之福也라
一二年間不能相幷則必復合이니 使北虜驅新勵之彊兵하야 無西人之後害而南向以窺河北이면 則又將來之患大者也라
臣雖不知朝廷顧河北爲如何나 但於本路之事에 以今年較去年이면 則亦可見이라
去年以前에 河北官吏를 無大小皆得擧材而擇能하야 急於用人如不及者는 惟恐一事之失計故也라
自今春已來
로 漸循舊弊
하야 凡幹敏之吏 熟於北方事者
를 하되 百不一從
하니 不惟使材臣能吏不勸以怠
요 亦足見朝廷不憂河北之事辦否也
라
至如廢緣邊久任之制
하야 而徙
하야 以
當冀州
하고 當
하고 當
하고 當邢州
하니 如此數人
은 於閑慢州軍
에도 尙憂敗政
이어든 況於邊要之任乎
아
臣愚以朝廷不以北事爲憂면 則又怯懼如此하니 旣曰懼矣면 則於用人之際에 又若忽而不憂하니 此臣之所未諭也라
臣聞虜人侵我
하야 雖立寨屋三十餘間
이나 然尙遲延
하야 未敢便貯兵甲
하고 更伺我意緊慢
이라하니 若不及早毁拆而少緩縱之
하야 使其以兵守之
하면 則尤難爭矣
라
至於湯則하얀 亦聞囚而未敢殺이라하니 此亦不可不爭이라
臣願陛下但以將來之患爲憂하야 不忘此事요 用人之際에 革去舊例而惟材是擇하되 勿聽小人之繆謀하고 勿於忠良而疑貳하야
至於目今小事하야도 未銷過自怯懼하니 夫事之利害를 激切而言이면 則議者以爲太過요 言不激切이면 則聽者或未動心이니 此自古以爲難也라
05. 거란이 영토를 침범한 것에 대해 논하는 장狀
신은 북로北虜(거란)가 근자에 변경邊境에 성채城寨를 더 세운 것과 정주定州의 순변지휘사巡邊指揮使 탕칙湯則을 구금하고 변경邊境의 은방銀坊과 야곡冶谷 등지를 침범한 것 등의 일을 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삼가 듣건대 “조정이 지금까지도 분명하고 엄절嚴切한 지휘를 내려 변신邊臣으로 하여금 이치로써 쟁변爭辨하게 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적이 생각건대 조정의 뜻은 필시 쟁변했다가 분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까 염려했을 터인데, 이는 바로 지나친 염려요 잘못된 계책입니다.
대저 북로北虜는 탐욕스럽고 사나워 견융犬戎이라 불리며, 약한 자는 속이고 강한 자는 두려워하니 겁을 내는 태도를 보여서는 곤란합니다.
이제 일찌감치 막아서 힘써 거절하더라도 오히려 불가능할까 염려되는데 하물며 풀어놓아서 쟁변하지 않고 와서 침공하도록 유인하면 이는 바로 분란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서산西山의 도로에 30여 곳이 모두 군사를 용병할 만한 곳인데 그 지형이 험하여 요충이 되는 곳들이 군성軍城과 은방銀坊 등지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빼앗겨 점거되어 있는데도 쟁변하지 않는다면 북채北寨와 왕류王柳 등 어귀를 점차 다시금 침공해 올 터이니, 어떻게 쟁변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서산의 험한 요새가 모두 저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니, 어느 날 적이 대군을 거느리고 역수易水를 건너서 위로威虜의 서쪽 평탄한 땅을 경유해 와서 기습하는 군대(奇兵)를 가지고서 비호飛狐로부터 서산의 여러 어귀로 나와서 내려온다면 우리가 배와 등으로 적의 공격을 받는 우환을,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어떻게 막겠습니까.
이는 대개 병법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남과 이웃하는 적이 되어 있는 판국에 스스로 요충지를 버려 저들이 탈취하도록 내버려두고 쟁변하지 않으니, 비록 우리가 약하고 저들이 강하더라도 오히려 힘써 쟁취해야 하거늘, 하물며 형세는 균등하고 힘은 대등하며 게다가 맹약을 어겨서 저들은 그르고 우리는 바르다고 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신은 생각건대 조정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대개 적의 형세가 강한지 약한지를 살피지 못하여 저들의 하는 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은 또 보건대 조정이 늘 적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고 적을 근심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대저 근심과 두려움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뜻은 다르니, 근심이란 지극히 깊이 생각하여 감히 잠시도 잊지 못하는 것이고, 두려움이란 막상 일을 만나 두려워하고 마음이 흔들려 어찌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변방을 방어하는 일에 있어 그 조치가 기회를 잃는 경우가 많은 것은 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깊기 때문입니다.
만약 적의 형세가 강한지 약한지를 살펴서 저들의 하는 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면, 지금의 일은 진실로 두려워할 게 못 되고 장래의 우환은 깊이 근심할 만하거늘, 어찌하여 깊이 근심할 만한 것은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할 게 못 되는 것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융로戎虜는 비록 전투와 활쏘기로 나라를 만들었으나 야율씨耶律氏(耶律宗眞)가 어릴 때부터 그 조부와 부친을 계승하여 중국과 화친을 통한 뒤로는 몸소 전쟁을 치르고 강한 적을 만난 적이 없고 모신謀臣과 옛 장수들도 모두 늙어서 죽었으니, 지금 그 신하는 관녕貫寧 같은 자가 두세 사람도 없습니다.
관녕의 재주는 중간 정도의 사람에도 못 미치는데도 이미 저들 중에서 걸출한 자이니, 그런 까닭에 군신君臣의 일을 계획하는 것이 번번이 좋지 못한 것입니다.
당초 거란契丹이 양적梁適을 만나고서 하서河西에 사신을 보내 중국과 화친을 맺게 하였고 화의가 거의 이루어질 때에 미처 조금 참지 못하고서 중국에 많은 이익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거란이 원호元昊와 협산夾山의 작은 부족을 놓고 다투다가 마침내 서로 교전하여 여러 차례 싸워 여러 차례 패하여 사람을 잃고 말을 잃어 국내는 피폐해지고 산전山前에서 주륙誅戮함에 중국 사람들이 원망하고 노하였습니다.
예전에 거란은 자기 나라 사람이 중국 사람을 죽인 자는 벌을 주고 중국 사람이 자기 나라 사람을 죽인 자는 죽였습니다.
그런데 근자에 듣건대 이 두 가지 법을 반대로 적용하여 중국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지만 중국 사람들의 마음은 수습하지 못하고 자기 나라 사람들은 이미 노하였다 합니다.
또 듣건대 올봄 이래 발해渤海의 부족들이 곳곳에서 거란을 배반하여 공격하다가 근자에야 조금 진정되었기에 거란이 바야흐로 패전해 도망친 군사들을 불러 모으고 무기를 수리하였지만, 안으로는 나라 안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킬까 걱정스럽고 밖으로는 서하西夏가 근심거리가 되어 마음속으로 스스로 의심을 품고서 우리가 허점을 틈타서 북쪽으로 습격할까 근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경 지역에 애써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려서 우리 순변지휘사巡邊指揮使 〈탕칙湯則을〉 구금하고 우리 국경을 침범하였으니, 대개 실상은 약하면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용병술用兵術의 속임수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진실로 적의 형세가 강한지 약한지를 살펴서 적의 하는 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안다면 적과 싸우지 않을 이치가 없으니, 무엇하러 굳이 두려할 게 못 되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국가가 서쪽 변방에서 용병用兵하느라 지친 뒤부터 늘 북융北戎(거란)이 서하西夏와 계책을 합하여 틈을 타고 움직일까 늘 염려하다가 두 오랑캐가 서로 사이가 나빠져 서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의논하는 이들이 모두 중국의 복이라 합니다.
대저 저들이 서로 공격하는 것이 중국의 복이라고 다행스럽게 여긴다면 불행히도 저들로 하여금 원한을 풀고 다시 화합하는 것이 어찌 우리의 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신은 생각건대 북로北虜가 근자에 원호元昊에게 패한 까닭은 역시 오랫동안 용병하지 않다가 갑자기 싸워 강한 적을 만났기 때문일 뿐입니다.
듣건대 저들이 참패한 이래 군신君臣이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대책을 의논하여 장정들을 모집하고 갑병甲兵들을 가려뽑아 모아서 곳곳마다 훈련하는 장소를 열고 집집마다 군량과 말의 수량을 긁어모으고 있다 하니, 천성적으로 날래고 굳센 백성인데다 날마다 부지런히 훈련시킨다면 그 강함은 대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저 오랑캐의 나라에 비록 인물이 있지 않다 하지만 대저 국가란 것은 오래 무사태평하면 인물을 보기 어렵고 용병하다 보면 장수가 절로 나오는 법이니, 가사 교전이 이미 잦음에 모신謀臣과 맹장猛將이 다투어 나올 수 있다면 이는 협산夾山에서의 한 번 패전이 40년 동안 그럭저럭 무사안일에 빠졌던 저 나라 사람들을 경각시켜 교만한 마음을 분노憤怒하는 뜻으로 변화시키고 나태한 병졸을 강한 병사로 변화시키고 여러 차례의 전투를 통하여 날랜 장수를 얻게 될 터이니, 이는 바로 북로北虜의 복이요 중국의 복이 아닙니다.
이것이 신이 말하는 ‘장래의 우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두 오랑캐는 형세상 오래 서로 공격할 사이는 아닙니다.
한두 해 사이에 어느 한쪽이 병합하지 못하면 필시 다시 화합할 것이니, 가사 북로北虜가 새로 훈련시킨 강병强兵을 몰고서 서하西夏 사람들이 뒤에서 공격할 우려 없이 남쪽을 향해 진격하여 하북로河北路를 노린다면 이는 또 장래의 큰 우환일 것입니다.
신은 비록 조정이 하북로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단지 본로本路(하북로)의 일에서 올해를 가지고서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이전에 하북로의 관리들을 크고 작은 직책에 관계없이 모두 재주 있는 이를 기용하고 능력 있는 이를 가려뽑아서 마치 서두르지 않으면 때를 놓치기라도 할 듯이 사람을 쓰는 데 급급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일이라도 계책이 잘못될까 걱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올봄 이래로 차견差遣이 점차 예전의 폐습을 따라서 재간才幹이 있고 민첩한 관리로 북방의 일에 익숙한 자를 신원보증을 서서 유임시켜 주기를 주청하여도 백 번에 한 번도 들어주지 않으니, 재주 있는 신하와 능력 있는 관리를 권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마도 조정이 하북로河北路의 일을 해결하느냐 여부를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변경邊境 일대에 임기를 오래 두는 제도를 폐지하여 유이손劉貽孫을 옮기고서 왕세문王世文으로 기주冀州를 맡게 하고, 이중길李中吉로 광신廣信을 맡게 하고, 왕중용王中庸으로 보주保州를 맡게 하고 유충순劉忠順으로 형주邢州를 맡게 하였으니, 이 몇 사람 같은 경우는 한가하고 중요하지 않은 주군州軍에서도 정사政事를 망칠까 걱정이 되는데 하물며 변방의 중요한 직임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조정이 북방의 일을 근심하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또 겁을 내고 두려워함이 이와 같고, 이미 두려워한다고 한다면 사람을 쓸 때 또 소홀히 여기고 근심하지 않는 듯하니, 이것이 신이 납득하지 못할 바입니다.
신은 듣건대 오랑캐 사람들이 우리 야곡冶谷을 침범하여 비록 군채軍寨의 집 30여 칸을 지었으나, 아직도 시일만 끌 뿐 감히 대뜸 병기와 갑옷을 비축해두지 않고서 다시금 우리가 긴장하는지 태만한지 엿보고 있다고 하니, 만약 일찌감치 그 집을 허물지 않고 조금이라도 느슨히 풀어놓아서 저들로 하여금 병력으로 지키게 한다면 더욱 다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조석 사이에 서둘러야 하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탕칙湯則으로 말하자면 역시 저들이 구금해두었을 뿐 감히 죽이지는 않았다고 하니, 이 문제 또한 쟁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원컨대 폐하께서 단지 장래의 우환을 근심하여 이 일을 잊지 말 것이며 사람을 쓸 때 예전의 관례를 혁파하고 오직 재능이 있는 사람을 가려뽑되 소인의 그릇된 계책을 듣지 말고 충량忠良한 신하에 대해 의심을 두지 마소서.
그렇게 하여 상하가 힘을 다한다면 거의 변방의 비어備禦를 점차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금의 작은 일에 이르러서도 지나치게 스스로 겁내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지 못하니, 일의 이해利害를 격렬하고 간절하게 말하면 의논하는 이들이 너무 지나치다고 할 것이고, 말이 격렬하고 간절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이 혹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예로부터 어렵다고 여기는 점입니다.
더구나 아직 조짐이 나타나지 않은 일은 비록 반드시 그렇다 하더라도 감히 다 믿어주길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말을 유념하여 받아들여 사람이 변변찮다고 해서 말을 무시하지 마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어리석은 견해를 다 아뢰어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