右臣等伏見故起居舍人直龍圖閣
는 文學議論
이 爲當世所稱
이요 忠義剛正
이 有古人之節
이라
其後元昊僣叛에 用兵一方하니 當國家有西顧之憂하야 思得材謀之臣하야 以濟多事하야 而洙自初出師로 至於元昊納款히 始終常在兵間하야 比一時之人에 最爲宣力이어늘 而群邪醜正하야 誣搆百端에 卒陷罪辜하야 流竄以死라
嚮蒙陛下仁聖恩憐하야 哀其寃枉하야 特賜淸雪하야 俾復官資하니 足以感動群心하고 勸勵忠義라
洙止一男構하니 年方十餘歲에 惸然無依하니 實可嗟惻이라
伏望聖慈는 錄洙遺忠하고 憫洙不幸하야 特賜其子一官하야 庶霑寸祿하야 以免饑寒하면
臣等忝列侍從에 媿無獻納하니 苟有所見이면 不敢不言이로소이다
06. 윤구尹構에게 관직 한 자리를 줄 것을 청하는 장狀
바른 의논은 옛사람이 땔나무를 지고 가며 노래하던 손숙오孫叔敖의 자손을 녹용錄用한 것과 같다.
신 등은 삼가보건대 기거사인起居舍人 직용도각直龍圖閣 윤수尹洙는 문학과 의논이 당세에 일컬어졌고 충의 강직하여 고인古人의 절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조정에 발탁되어 관각館閣에 있으면서 권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써 중인衆人의 당黨을 배척하여 범중엄范仲淹의 일을 논하다가 마침내 이 때문에 좌천되어 조정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에 원호元昊가 참람되게 모반하여 한 방면에서 군사를 동원하게 되니, 국가가 서쪽 방면을 돌아보는 근심이 있어 재능과 지모가 있는 신하를 얻어 다사다난한 시국을 구제하려고 생각할 때를 당하여, 윤수가 처음 군사를 출동할 때부터 원호가 화친을 청할 때까지 시종 늘 군중軍中에 있으면서 그 당시 사람들에 비해 가장 많은 힘을 썼는데도, 간사한 자들이 정직한 군자를 시기하여 온갖 방법으로 모함하니 마침내 무고한 죄에 빠져 귀양을 가서 죽고 말았습니다.
예전에 인성仁聖하신 폐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그 억울한 정상을 불쌍히 여겨 특별히 죄를 씻어주고 다시 관자官資를 회복하게 해주시니,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충의를 권면할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윤수尹洙의 어린 아들이 모두 서경西京에 있는데 집안 형편이 몹시 가난하여 의식衣食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윤수는 단지 한 아들 구構만을 두었는데 나이 현재 10여 세에 외로워 의지할 데가 없으니, 실로 측은해 탄식할 만합니다.
삼가 보건대 장차 협향祫享의 대례大禮를 거행하려는 즈음에 근방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자손에게 음직蔭職을 내려달라고 주청할 수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윤수의 충성을 잊지 마시고 윤수의 불행을 불쌍히 여겨 특별히 그 아들에게 한 관직을 내려주어 조금의 녹봉을 받아 기한飢寒을 면하게 해주소서.
그렇게 하시면 천지와 같은 인애에 저승의 윤수와 이승의 그 아들이 모두 은덕을 입을 것입니다.
신 등은 외람되이 시종의 반열에 있으면서 아무런 충언忠言을 올린 게 없어 부끄러운 터라 진실로 소견이 있으면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장狀을 갖추어 아뢰고 엎드려 칙지勅旨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