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人讀此文하고 謂如遊幽泉邃石에 入一層에 纔見一層路라 不窮興이요 亦不窮讀하야 已令人神骨翛然長往矣라하니 此是文章中洞天也라
其西南諸峰이 林壑尤美하야 望之에 蔚然而深秀者는 瑯邪也요 山行六七里에 漸聞水聲潺潺而瀉出于兩峰之間者는 釀泉也요 峰回路轉에 有亭翼然臨于泉上者는 醉翁亭也라
太守與客來飮于此할새 飮少輒醉而年又最高라 故自號曰醉翁也라하니
醉翁之意는 不在酒하고 在乎山水之間也하니 山水之樂을 得之心而寓之酒也라
若夫日出而林霏開하며 雲歸而巖穴瞑하야 晦明變化者는 山間之朝暮也요 野芳發而幽香하며 佳木秀而繁陰하며 風霜高潔하며 水落而石出者는 山間之四時也라
至於負者歌于塗
하며 行者休于樹
하고 前者呼
하며 後者應
하고 傴僂提携
하야 往來而不絶者
는 滁人遊也
요 臨溪而漁
에 溪深而魚肥
하며 釀泉爲酒
에 하고 山肴野蔌
가 雜然而前陳者
는 太守宴也
요 宴酣之樂
이 非絲非竹
이라 射者中
하며 奕者勝
하야 觥籌交錯
하야 起坐而諠譁者
는 衆賓懽也
요 蒼顔白髮
이 頹然乎其間者
는 太守醉也
요 已而夕陽在山
에 人影散亂
은 太守歸而賓客從也
요 樹林陰翳
에 鳴聲上下
는 遊人去而禽鳥樂也
라
然而禽鳥知山林之樂而不知人之樂하고 人知從太守遊而樂而不知太守之樂其樂也라
醉能同其樂하고 醒能述以文者는 太守也니 太守謂誰오
옛사람이 이 글을 읽고 이르기를 “마치 그윽한 샘과 깊은 암석 사이에서 노닐 적에 한 층을 들어가야 비로소 한 층의 길이 보이는 것과 같은지라, 흥을 다할 수도 없고 또한 읽기를 다할 수도 없어 이미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과 뼛속이 시원하여 속세를 훌쩍 벗어나게 만든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문장 가운데 신선세계인 것이다.
그 서남쪽 여러 봉우리들이 숲과 골짝이 더욱 아름다워 바라봄에 울창하여 깊고 빼어난 것은 낭야瑯邪(야琊)산山이요, 산길을 6, 7리쯤 감에 점점 졸졸 흐르는 잔잔한 물소리가 들리다가 두 봉우리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양천釀泉이요, 봉우리를 돌고 길을 돌아감에 정자가 샘가에 나는 듯이 임해 있는 것은 취옹정醉翁亭이다.
태수가 객과 더불어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실 적에 술을 조금만 마시면 문득 취하였고 나이가 또 가장 많았으므로 스스로 취옹醉翁이라고 호號를 지었다.
취옹의 뜻은 술에 있지 않고 산수간山水間에 있으니 산수의 즐거움을 마음에 얻어 술에 붙인 것이다.
해가 뜸에 숲의 안개가 개이고 구름이 돌아감에 암혈巖穴이 어두워져 어둠과 밝음이 변화하는 것과 같은 것은 산속의 아침과 저녁 풍경이요, 들꽃이 핌에 그윽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고 아름다운 나무가 빼어남에 무성한 그늘이 지고 풍상風霜이 고결하고 수위가 낮아짐에 강바닥의 돌이 드러나는 것은 산속의 사계절이다.
아침에 가고 저녁에 돌아옴에 사계절의 풍경이 같지 않아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다.
짐을 진 자는 길에서 노래하고 길을 가는 자는 나무 그늘에서 쉬며, 앞서 가는 자는 부르고 뒤따라오는 자는 호응하며 늙은이는 허리를 구부리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아끌고서 오가며 끊이지 않는 것은 저주 사람들의 노닒이요, 시냇가에 임하여 고기를 잡음에 시내가 깊어 물고기가 살찌며 양천釀泉의 물로 술을 빚어 만듦에 샘물이 맑아 술이 향긋하며 산에서 채취한 안주와 들의 나물이 뒤섞여서 앞에 진설되는 것은 태수의 연회요, 연회가 무르익은 즐거움은 현악기도 아니고 관악기도 아닌지라 활을 쏘는 자는 과녁을 맞히며 바둑을 두는 자는 이겨서 술잔과 마신 술잔의 수를 세는 댓가지가 교착하면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떠들썩한 것은 뭇 빈객들이 즐기는 것이요, 노쇠한 안색과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 그 사이에 쓰러져 있는 것은 태수가 취한 것이요, 얼마 안 있어 석양이 산에 걸림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지러운 것은 태수가 돌아감에 빈객이 따르는 것이요, 나무 그늘이 어둑해짐에 새가 오르내리며 우는 것은 노닐던 사람이 떠남에 새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산림山林의 즐거움은 알지만 사람의 즐거움은 알지 못하며, 사람은 태수를 따라 노는 것은 알지만 태수가 그 즐거움을 즐거워함은 알지 못한다.
취하여서는 그 즐거움을 함께하고 술이 깨어서는 그것을 기술하여 문장을 짓는 자는 태수이니, 태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