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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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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興逸이라
卽其署東偏之室하야 治爲燕私之居하고 而名曰畫舫齋라하니
이요 以戶相通하니 凡入予室者 如入乎舟中이요 則欄檻其兩旁하야 以爲坐立之倚하니 凡偃休於吾齋者 又如偃休乎舟中이요
山石崷崒 佳花美木之植列於兩簷之外 又似汎乎中流하고 而左山右林之相映 皆可愛者
故因以舟名焉이라
이라하니 蓋舟之爲物 所以濟險難이요 而非安居之用也
今予治齋於署하야 以爲燕安호되 而反以舟名之하니 豈不戾哉
其羈窮不幸而卒遭風波之恐하야 往往呌號神明以脫須臾之命者數矣
當其恐時하야 顧視前後 凡舟之人 非爲商賈 則必仕宦이라 因竊自歎하야 以謂非冒利與不得已者 孰肯至是哉
賴天之惠하야 全活其生하야 今得하고 列官于朝하야 以來是州하야 飽廩食而安署居하니 追思曩時山川所歷舟檝之危컨댄 蛟鼉之出沒 波濤之洶欻 宜其寢驚而夢愕이어늘 而乃忘其險阻하고 猶以舟名其齋하니 豈眞樂於舟居者邪
然予聞古之人 有逃世遠去江湖之上하야 終身而不肯反者하니 其必有所樂也
苟非冒利於險하고 有罪而不得已인댄 使順風恬波 傲然枕席之上하야 一日而千里 則舟之行 豈不樂哉
顧予誠有所未暇로되 而舫者 宴嬉之舟也 姑以名予齋하니 奚曰不宜리오
予友善大書하야 頗怪偉
將乞其大字하야 以題於楹호되 懼其疑予之所以名齋者
故具以云하고 又因以하노라


05. 화방재畫舫齋에 대한 기문記文
흥취가 빼어나다.
내가 활주滑州에 온 지 석 달째에 관청 동쪽 가에 있는 을 손질하여 일이 없을 때 한가로이 거처하며 휴식하는 장소로 만들고 화방재畫舫齋라 이름하였다.
의 넓이는 1에 깊이는 7이고 문으로 서로 통하게 하였으니, 무릇 내 에 들어오는 자는 마치 배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같고, 그 온실溫室의 아랫목에는 위에 구멍을 내서 창을 만들어 밝게 하였으며, 그 허실虛室의 트여서 통하는 곳에는 양옆에 난간을 세워 앉거나 설 때 기댈 수 있게 만들었으니, 무릇 내 에서 휴식하는 자는 또 배 안에서 휴식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산의 바위가 우뚝한데 양쪽 처마 바깥으로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 늘어서 있는 것이 또 흡사 중류中流에 떠가는 것과 같고, 좌측의 산과 우측의 숲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 모두 좋아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들로 배로 명명한 것이다.
주역周易》의 이 험난한 지경을 당함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내를 건넌다고 말하였으니, 대개 배라는 물건은 험난함을 건널 때 사용하는 것이요, 편안히 거처할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관서에서 를 손질하여 한가롭고 편안할 때 거처하는 곳으로 삼되 도리어 배로 이름하였으니 어찌 어그러진 것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나는 또 일찍이 죄로 폄적貶謫되어 강호江湖 사이에 내달려 변하汴河에서부터 회수淮水를 건너 장강長江에 배를 띄워 파협巴峽에 이르렀고 길을 옮겨서 한수漢水면수沔水로 들어갔으니, 헤아려보건대 그 수로水路가 거의 만여 리였다.
곤궁하고 불행하여 마침내 풍파風波가 이는 수로를 타고 가는 두려움을 만나 왕왕 신명神明을 부르짖어 잠깐의 목숨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여러 차례였다.
그 두려운 때를 당하여 앞뒤를 돌아봄에 무릇 배에 탄 사람들은 장사꾼이 아니면 반드시 관원인지라, 스스로 탄식하여 이르기를 “이익을 탐하는 장사꾼과 부득이 가는 관원이 아니라면 누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려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하늘의 은혜 덕분에 생명을 보전하여 지금 묵은 빚을 털고 조정에서 벼슬하게 되어 이 활주滑州에 와서 녹봉을 배불리 받아먹으면서 편안하게 관청에서 거처하니, 지난날 산천을 다니면서 배에서 겪었던 위태로움을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교룡과 악어가 출몰하고 파도가 세차고 거칠게 일어났던 것이 잠자리에서도 나를 놀라게 하고 꿈에서도 나를 놀라게 해야 마땅하거늘, 이에 그 험조險阻함을 잊고 오히려 배로 를 이름하니, 어쩌면 배에서 거하는 것을 참으로 즐기는 것인가?
그러나 내가 듣건대 옛사람 중에 세상을 피하여 멀리 강호江湖로 떠나가 종신토록 돌아오려 하지 않은 자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반드시 즐기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 험난함 속에서 이익을 탐하고 죄가 있어 부득이하게 배를 타야 하는 경우가 아닐진댄, 순풍順風과 잔잔한 물결을 타고 침석枕席 위에서 태연자약하게 있으면서 하루에 천리를 간다면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돌아보건대 나는 진실로 한가하지 못한 점이 있지만, 이라는 것은 놀고 즐길 때 타는 배인지라 우선 이로써 나의 를 명명하니, 어찌 마땅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나의 벗 채군모蔡君謨대서大書를 잘 써서 글씨가 퍽 기이하고 웅위雄偉하였다.
장차 대자大字를 청하여 기둥에 적으려 하되, 내가 를 명명한 까닭을 의아해할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위의 사실을 갖추어 말하고, 또 이어서 글로 써서 벽에다가 걸어두노라.


역주
역주1 : 이 글은 慶曆 2년(1042)에 지은 것으로, 이해 5월에 조칙에 응해 上書하여 여러 폐단을 극력으로 진언하였다. 그리고 8월에 외직을 청하여 9월에 滑州通判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居安思危의 감정이 서술되어 있다.
역주2 予至滑之三月 : 滑州는 宋나라 때 京西北路에 속하며, 治所는 지금의 河南省 滑縣 동쪽에 있었다. 구양수는 慶曆 2년 10월에 활주에 도착하였다.
역주3 齋廣一室 其深七室 : 廣은 東西의 너비, 深은 南北의 길이를 가리킨다. 室은 칸의 개념이다.
역주4 其溫室之奧……其虛室之疏以達 : 溫室과 虛室은 문장에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을 토대로 볼 때, 溫室은 사방이 두터운 벽으로 꽉 짜여져 있어서 따뜻한 방으로 보이며, 虛室은 양쪽이 벽 없이 트여 있는 방으로 보인다.
역주5 周易之象……必曰涉川 : 예를 들면 《周易》 需卦에서 “需는 誠信이 있으면 광명하고 형통하며 貞하면 吉하여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需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라고 한 것이나, 未濟卦에서 “未濟에 가면 흉하나 大川을 건넘은 이롭다.[未濟征凶 利涉大川]”라고 한 것과 같이, 《주역》 여러 곳에서 험난한 곳에 처한 시기에 그것을 지나가는 것을 형상화하면서 내[川]를 건넌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역주6 矧予又嘗以罪謫……轉而以入于漢沔 : 歐陽脩는 景祐 3년(1036)에 峽州 夷陵令으로 폄적되어 수로를 타고 汴河, 淮水, 長江을 거쳐 폄적된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 12월에 光化軍 乾德令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장강을 타고 漢水를 거슬러 올라가 임지에 도착하였다. 沔水는 漢水의 상류를 따로 가리키는 말이다.
역주7 除去宿負 : 폄적되었던 죄를 다 치르고 조정으로 다시 복귀한 것을 가리킨다.
역주8 蔡君謨 : 蔡襄(1012~1067)이다. 宋나라 興化軍 仙遊 사람으로 字는 君謨, 諡號는 忠惠이다. 開封知府, 翰林學士, 三司使, 杭州知州 등을 역임하였다.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고, 서예에도 능해 蘇軾, 黃庭堅, 米芾과 함께 송나라의 4대가로 꼽혔다. 저서에 《蔡忠惠公集》 등이 있다.
역주9 置于壁 : 예전에는 이와 같은 기문을 돌에 새겨 벽에다가 끼워두곤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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