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事中에 帶感慨悲吊하야 以發議論하니 其機軸은 本史遷來라
自六經焚於秦而復出於漢으로 其師傳之道中絶하고 而簡編脫亂訛缺하야 學者莫得其本眞이라
其後에 傳注箋解義疏之流가 轉相講述하야 而聖道粗明이나
至於上古三
五帝以來世次國家興滅終始
와 僭竊僞亂
하얀 史官備矣
요
而傳記小說과 外曁方言地理職官氏族은 皆出於史官之流也라
自孔子在時로 方修明聖經하야 以絀繆異하고 而老子著書論道德이러니
接乎周衰하야 戰國游談放蕩之士로 田騈愼到列莊之徒가 各極其辯하고 而孟軻荀卿이 始專修孔氏하야 以折異端이라
然諸子之論은 各成一家하야 自前世로 皆存而不絶也러라
夫王迹熄而詩亡하고 離騷作而文辭之士興하니 歷代盛衰에 文章與時高下러라
而藏書之盛이 莫盛於開元하니 其著錄者五萬三千九百一十五卷이요 而唐之學者가 自爲之書가 又二萬八千四百六十九卷이니
然其精深閎博하야 各盡其術하고 而怪奇偉麗하야 往往震發於其間하니 此所以使好奇愛博者不能忘也라
然凋零磨滅이 亦不可勝數하니 豈其華文少實하야 不足以行遠歟아
今著于篇에 有其名而無其書者가 十蓋五六也니 可不惜哉아
04.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 대한 논論
내용을 전개하는 가운데 감개함과 비통함을 띠고 의론을 펴니, 그 기축機軸은 본래 사마천司馬遷에서 유래하였다.
진秦나라에서 육경六經이 불탔다가 한漢나라에서 다시 출현한 이래로 사전師傳의 도道가 중도에 끊어졌고, 간편簡編이 빠지거나 어질러지거나 잔결殘缺되어 학자들이 본래의 참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제유諸儒의 장구章句의 학문이 흥기하였다.
뒤에 전주傳注‧전해箋解‧의소義疏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서로서로 강술講述하여 성도聖道가 조금 밝아졌다.
그러나 그 설說의 성격이 실로 너무 번잡하였다.
상고시대 삼황三皇‧오제五帝 이래로 역대로 국가國家가 흥興하고 멸滅하며 끝나고 시작함과 찬탈하여 훔치고 속여 어지럽게 됨에 이르러서는 사관史官이 갖추어졌다.
그리고 전기傳記‧소설小說과 밖으로 방언方言‧지리地理‧직관職官‧씨족氏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관의 부류에서 나왔다.
공자孔子가 계실 때부터 성인의 경전을 닦아 밝혀 오류를 바로잡고, 노자老子가 책을 저술하여 도덕道德을 논했다.
그러다가 주周나라의 말기에 와서 전국戰國시대의 유세遊說하거나 방탕放蕩한 선비인 전병田騈‧신도愼到‧열자列子‧장자莊子와 같은 무리가 각각 극력 변설을 늘어놓았는데, 맹가孟軻와 순경荀卿이 비로소 공자의 학문을 오로지 공부하여 이단을 꺾었다.
그러나 제자諸子의 변론은 각각 일가一家를 이루어 이전 세대로부터 모두 남아서 멸절되지 않았다.
저 왕자의 자취가 끊어지자 《시詩》가 없어졌고, 〈이소離騷〉가 일어나자 문사文辭를 짓는 선비가 흥기하니, 역대歷代 성쇠盛衰에 문장文章이 시대와 더불어 부침하였다.
그러나 온갖 변화가 다 나와서 끝이 없음이 어찌 그리도 많은가.
한漢나라 이래로 사관史官이 문체文體의 이름을 편제篇第에 나열하여 육예六藝니 구종九種이니 《칠략七略》이니 등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당唐나라에 와서 비로소 사류四類로 만드니 ‘경經‧사史‧자子‧집集’이다.
장서藏書의 성대함이 개원開元에서 절정을 이루니, 저록著錄한 것이 53,915권이고, 당唐나라 학자가 스스로 지은 책이 또 28,469권이다.
육경六經의 도道는 간엄簡嚴하고 역직易直하여 천인天人이 갖추어졌다.
그러다가 그 나머지 지은 책들이 많아진지라 성인聖人에 질정해보니 혹 유리되기도 하고 혹 부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심精深하고 굉박閎博하여 각각 나름의 술법을 다하고, 괴기怪奇하고 위려偉麗하여 왕왕往往 그 사이에 떨쳐 진동하니, 이것이 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박학을 사랑하는 자들이 잊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영락하고 마멸된 것이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어쩌면 화려한 문채文采에 실질이 적어 멀리 전해지기에 부족해서 그런 것인가.
그럼에도 이언俚言과 속설俗說이 외람되이 남아 있는 것은 또한 불행 중 다행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지금 편명을 저록著錄함에 이름만 있고 책 자체는 없는 것이 열에 대여섯이니, 안타깝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