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日辱以詩賦雜文啓事爲贄일새 披讀三四에 不能輒休라
精學勵行
하야 嘗已選於里
하고 升於府
하야 而
矣
하니 誠可謂彼邦之秀者歟
인저
然士之居也
에 遊必有友
요 學必有師
니 其鄕必有先生長者
하고 府縣必有賢守長
리니
彼能爲足下稱才而述美者
가 宜不少矣
어늘 今乃越數百里
하야 犯風霜
大國
하야 望官府
하고 下首於閽謁者
하야 以通姓名
하고 趨走拜伏於人之階廡間
하니 何其勤勞乎
아
將顧視其鄕之狹陋不足自廣
하야 而謂夫
多賢士君子
하야 可以奮揚而光遠之邪
아
得非磨光濯色하야 計之熟하고 卜之吉而後에 勇決以來邪아
今市之門
이 旦而啓
에 商者趨焉
하고 賈者坐焉
이어든 持寶而欲價者之焉
하고 金而求寶者亦之焉
하고 間民無資攘臂以遊者亦之焉
이라
洛陽은 天下之大市也라 來而欲價者有矣하고 坐而爲之輕重者有矣어늘
予居其間하야 其官位學行이 無動人也요 是非可否를 不足取信也니 其亦無資而攘臂以遊者也라
今足下之來試其價에 旣就於可以輕重者矣어늘 而反以及予하니
夫以無資者로 當求價之責하니 雖知貪於所得이나 而不知有以爲價也라
旣不能塞所求하야 以報厚意일새 姑道此以爲謝하노라
03. 장수재張秀才 비棐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견해는 그다지 깊지 않으나, 팔뚝을 휘저으면서 노니는 사람에 자신을 가탁한 대목은 완곡婉曲하고 표일飄逸하다.
전일에 시부詩賦와 잡문雜文, 계사啓事를 집지執贄의 예물로 보내셨기에 펼쳐서 서너 차례 읽어보면서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족하足下는 하중河中에 살면서 향진사鄕進士가 되었습니다.
학문에 정진하고 행실에 면려勉勵하여 이미 향리에서 뽑히고 부府로 올려져 유사有司에 의해 시험을 치렀으니, 참으로 그 지방의 빼어난 인재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선비가 세상에 살면서 교유하는 데는 반드시 벗이 있고 학문하는 데는 반드시 스승이 있는 법이니, 그 고을에 필시 선생先生 장자長者가 있고 부현府縣에 필시 어진 수령과 좌리佐吏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곳에 족하를 위해 재주를 칭찬하고 훌륭한 점을 얘기해줄 사람이 의당 적지 않을 터이거늘, 지금 수백 리를 건너와서 큰 도회지에서 풍상風霜을 겪으며 관부官府를 우러러보고 문지기에게 머리를 굽혀가면서 성명姓名을 전달하고 남의 섬돌과 행랑 앞으로 달려와 절하고 엎드리니, 어쩌면 그리도 근로勤勞하십니까.
어쩌면 마음속으로 자신이 가진 재주를 자부하여 한번 발휘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거주하는 고을을 돌아봄에 땅이 좁고 비루하여 스스로 재능을 널리 펴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서, 큰 도시에는 어진 사군자士君子들이 많아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 널리 빛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까?
그렇다면 족하가 오신 것은 그 뜻이 어찌 얕으며 그 구하는 바가 어찌 작겠습니까?
학문學問과 문장文章을 갈고 닦아서 생각해본 것이 깊고 점쳐본 것이 길한 뒤에 용감히 결단하여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자의 문이 아침이 되어 열려 행상行商은 달려오고 좌상坐商은 앉아 있으면, 보물을 가지고 제값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가고, 금을 가지고 보물을 구하는 사람들도 찾아가고, 아무런 재물이 없어 팔뚝만 휘저으면서 노니는 사람들도 찾아갑니다.
낙양洛陽은 천하의 큰 도시라 와서 제값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앉아서 그 값어치를 매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관위官位와 학행學行이 남을 움직이게 할 수 없고, 시비是非와 가부可否를 말해도 남들이 믿어주지 않으니, 이는 또한 재물이 없어 팔뚝만 휘저으며 노니는 사람입니다.
지금 족하가 와서 그 값을 인정받으려 하면서 이미 값어치를 제대로 매길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갔을 터이거늘 도리어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대저 재물이 없는 자로서 값을 매겨달라는 요구를 받았으니, 비록 얻을 바가 탐나는 줄은 알지만 어떻게 값을 매겨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내주신 예물禮物을 받은 이래로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후의厚意에 보답하지 못하고 우선 이 편지로 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