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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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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亦是大體所係
臣竊見前年等出外之時 京師先有無名子詩一首 傳於中外라가 尋而庠罷政事러니
近又風聞外有小人 欲中傷三司使하야 復作無名子詩一篇하고 略聞其一兩句
臣自聞此詩 日夕疑駭하니 深思事理 不可不言이로소이다
伏以陛下視聽聰明하야 外邊事 無小大 無不知者하니 竊恐此詩流傳漸廣 須達聖聰이라
臣忝爲陛下하니 不欲小人浮謗之言 上惑天聽이라
合先論列하야 以杜姦讒이온
況自兵興累年으로 繼以災旱하야 民財困竭하고 國帑空虛
天下安危 繫於財用虛實하니 三司之職 其任非輕이라
近自罷去之後 朝廷以積年蠹弊貧虛窘乏之三司 付與堯臣하야 仰其辦事하니 乃是陛下委信責成之日이요 堯臣多方展效之時
臣備見從前任人 率多顧惜祿位하야 寧可敗事於國이언정 不肯當怨於身이러니
如堯臣者 領職以來 未及一月 自副使以下不才者 悉請換易하니 足見其不避嫌怨하고 不徇人情하야 竭力救時하야 以身當事
今若下容讒間하고 上不主張하면 則不惟材智之臣 無由展效 亦恐忠義之士 自玆解體
臣思 雖不知其姓名이나
竊慮在朝之臣有名位與堯臣相類者 嫉其任用하야 故欲中傷하야 只知爭進於一時하고 不思沮國之大計
伏自陛下罷去呂夷簡夏竦之後 進用韓琦范仲淹以來 天下欣然하야 皆賀聖德하고 君子旣蒙進用 小人自恐道消
故共喧然하야 務騰讒口하야 欲惑君聽하고 欲沮好人하니 不早絶之 恐終敗事
況今三司蠹弊已深하고 四方匱乏已極하니 堯臣必須大有更張이라야 方能集事어늘 未容展效하고 已被謗言이라
臣近日已聞浮議紛然하야 云堯臣更易官吏 專權侵政이라하고
今又造此詩語하야 搖惑群情하니
若不止之 則今後陛下無以使人하고 忠臣無由事主
自古所患이니 若一啓其漸이면 則扇惑群小하고 動搖大臣하야 貽患朝廷 何所不至리오
伏望特降詔書하야 戒勵臣下하야 敢有造作言語하야 誣搆陰私者어든 一切禁之하고 及有轉相傳誦하얀 則必推究其所來하야 重行朝典이니
所貴 禁止讒巧하고 保全善人이라
謹具狀奏聞하고 伏候勅旨하노이다


02. 무명자無名子근신近臣중상中傷하고 훼방하는 것을 금지하기를 청하는
역시 국가의 대체에 관계된 것이다.
신은 삼가 보건대 지난해 송상宋庠 등이 외직으로 나갔을 때 그보다 앞서 경사京師무명자無名子의 시 한 수가 중외에 두루 퍼지다가 얼마 뒤 송상이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근자에 또 풍문으로 듣건대 도성 밖에서 삼사사三司使 왕요신王堯臣을 중상하려는 어떤 소인이 있어 다시 무명자의 시 한 편을 지었다고 하였는데, 그 시의 한두 구를 대략 들었습니다.
신이 이 시를 듣고부터 밤낮으로 의아하고 놀랐으니 사리를 깊이 생각해봄에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보고 들으심이 총명하시어 외변外邊의 일을 크거나 작거나 할 것 없이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으니, 이 시가 점차 널리 퍼짐에 틀림없이 폐하의 귀에까지 들릴 것이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신은 외람되이 폐하의 이목을 대신하는 관원이 되었으니, 근거 없이 비방하는 소인의 말이 위로 성상의 귀를 현혹하지 못하게 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마땅히 먼저 이 사실을 논술하여 간사한 참소를 막고자 합니다.
더구나 병란이 일어난 뒤로 여러 해 동안 가뭄까지 이어져 백성들의 재물은 고갈되고 국가의 창고는 텅텅 비었습니다.
국가의 안위는 재용財用허실虛實에 달렸으니, 삼사三司의 직위는 그 책임이 가볍지 않습니다.
근자에 요중손姚仲孫삼사사三司使를 그만두고 떠난 뒤로 조정이 여러 해 동안에 걸친 침식侵蝕의 폐해로 빈곤하고 궁핍한 삼사를 왕요신王堯臣에게 맡겨서 일을 해결하기를 바랐으니, 이는 바로 폐하께서 신임하여 임무를 완수하게 한 날이고 왕요신이 다방면으로 힘을 내어 성은에 보답하려 한 때입니다.
신은 종전에 사람을 임용했을 때 대체로 녹봉과 작위爵位를 아까워하여 차라리 국가에 일을 망칠지언정 일신에 원망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요신 같은 자는 직책을 맡은 이래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부사副使 이하 무능한 자들을 모두 바꾸어줄 것을 청하였으니, 혐의와 원망을 피하지 않고 인정을 따르지 않고서 힘을 다해 시국을 구제하면서 자기 몸으로 일을 떠맡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만약 아래로 참소와 이간을 용납하고 위로는 주장하지 않으신다면 재주와 지모가 있는 신하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충의로운 선비들이 이로부터 와해될까 두렵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시를 지은 사람은 비록 그 성명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생각건대 조정에 있는 신하 등에서 명위名位왕요신王堯臣과 비슷한 자가 왕요신이 임용된 것을 시기하여 일부러 중상하고자 하여 단지 한때 조정에 진출함을 다툴 줄만 알 뿐 국가의 큰 계책을 꺾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여이간呂夷簡하송夏竦을 파면한 뒤 한기韓琦범중엄范仲淹을 등용한 이래로 온 천하 사람들이 기뻐하여 모두 성덕聖德을 경하하였고, 군자가 이미 등용되자 소인은 자신들의 세력이 위축될까 스스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다 함께 시끄럽게 떠들며 힘써 참소하는 말을 올려 임금의 귀를 현혹하려 하고 좋은 사람을 방해하려 하고 있으니, 일찌감치 이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끝내 일을 망칠까 두렵습니다.
더구나 지금 삼사三司의 침식의 폐해가 이미 깊고 사방의 궁핍함이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니, 왕요신이 반드시 크게 개혁해야만 비로소 성공을 거둘 수 있을 터인데 그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용납되지 못하고 이미 비방하는 참소를 입었습니다.
신이 이미 근자에 듣건대 근거없는 말들이 어지럽게 일어나 “왕요신이 관리를 바꿀 때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정사政事를 침범했다.” 하였고,
지금 또 이 시어詩語를 날조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현혹시키니,
만약 이를 그치게 하지 않으면 지금 이후로 폐하께서는 사람을 부릴 수 없고 충신은 임금을 섬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끝없이 들어오는 소인의 참언은 예로부터 국가의 우환거리이니, 만약 그 조짐을 한 번이라도 열어주면 소인배들을 선동하고 대신을 요동시켜 조정에 우환을 끼침에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특별히 조서를 내려 신하들을 경계하고 면려하여 감히 근거없는 말을 조작하여 개인의 사적인 일을 터무니없이 날조하는 자가 있으면 일절 금지하고, 그러한 말을 옮겨서 퍼뜨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철저히 조사하여 중벌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교한 참언을 금지하고 선한 사람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삼가 주장奏狀을 갖추어 아뢰고 엎드려 칙지勅旨를 기다립니다.


역주
역주1 論禁止無名子傷毁近臣狀 : 이 글은 仁宗 慶曆 5년(1045)에 지어진 것이다.
역주2 : 옛날에 글을 쓸 때 우측으로부터 써 내려가므로 官爵과 姓氏 등을 맨 오른쪽에 쓰게 마련이다. 따라서 右는 써야 할 관작과 성씨 등을 대신하는 것이다.
역주3 宋庠 : 원래 이름은 郊이고 자는 公序이며 그 아우 宋祁와 함께 문학으로 이름나 二宋이라 일컬어졌다. 벼슬은 兵部尙書‧平章事‧樞密使에 이르렀고 鄭國公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文獻이다. 寶元 2년(1039)에서 慶曆 원년(1041)까지 參知政事로 있다가 이해 5월에 파직되어 知楊州로 나갔다.
역주4 王堯臣 : 자는 伯庸이고 進士試에 제1등으로 급제했으며 벼슬은 三司使‧樞密副使을 거쳐 戶部侍郞‧參知政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文忠이다. 《宋史》 〈王堯臣傳〉에 “추밀부사로 3년 동안 재임하면서 僥倖으로 벼슬을 얻는 것을 힘써 억제하였다. 이에 어떤 사람이 익명의 글을 경성에 두루 붙였으나 仁宗이 왕요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였다.
역주5 耳目之官 : 좌우에서 보필하는 신하를 뜻하는 말로, 舜임금이 “신하는 짐의 팔 다리요 귀와 눈이 되어야 한다.[臣作朕股肱耳目]” 한 데서 유래한다. 《書經 虞書 益稷》 歐陽脩가 당시 諫官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6 姚仲孫 : 자는 茂宗이다. 河北轉運使로 있으면서 성곽과 보루, 무기를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龍圖閣直學士 權三司使로 있다가 문서를 위조한 일 때문에 외직으로 쫓겨나 知蔡州가 되었다.
역주7 作詩之人 : 本集에는 ‘作詩者’로 되어 있다.
역주8 讒言罔極 : 《詩經》 〈小雅 靑蠅〉에 “참소하는 사람이 끝이 없어서 사방의 나라를 서로 어지럽힌다.[讒人罔極 交亂四國]”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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