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伏見龍圖閣直學士司馬光
은 德性淳正
하고 學術通明
하야 自列
으로 久司諫諍
하야 讜言嘉話
가 著在
라
五六年間에 言者雖多나 而未有定議러니 最後光以諫官極論其事하야 敷陳激切하야 感動主聽하니 仁宗豁然開悟하야 遂決不疑라
曾未踰年에 仁宗奄棄萬國하고 先帝入承大統하니 蓋以人心先定이라 故得天下帖然이라
而其識慮深遠하고 性尤愼密이로되 光旣不自言이라 故人亦無知者라
臣以忝在政府하야 因得備聞其事하니 臣而不言이면 是謂蔽賢掩善이라
光今雖在侍從하야 日承眷待로되 而其忠國大節이 隱而未彰하니 臣旣詳知에 不敢不奏로소이다
사마공司馬公의 자랑하지 않음과 구양공歐陽公의 어진 이를 추천함은 둘 다 훌륭하다 할 만하다.
신은 삼가 보건대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사마광司馬光은 덕성이 순정淳正하고 학술이 통명通明하여 시종侍從의 자리에 오른 뒤로 오래도록 간쟁諫諍의 일을 맡아서 곧은 말과 아름다운 말들이 두 조정에 걸쳐 드러났습니다.
지화至和 연간(1054~1055)에 인종仁宗께서 복약服藥하신 뒤로 신하들이 황자皇子를 세울 것을 말하였습니다.
5, 6년 동안 말한 사람은 비록 많았으나 의논을 결정하지 못하였는데 최후에 사마광이 간관으로서 그 일을 극론하여 격렬하고 간절하게 진달하여 임금의 귀를 감동시키니, 인종仁宗께서 활연히 깨닫고 드디어 주저없이 결단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선제先帝께서 종번宗藩으로부터 뽑혀서 대궐에 들어가 황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를 넘기지 않아 인종께서 갑자기 승하하시고 선제께서 대통을 이어받으셨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먼저 안정되었기 때문에 천하가 조용히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성왕聖王으로 성왕聖王을 계승하여 마침내 폐하께 전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말한다면 사마광이 국가에 공로가 있는 것이 얕지 않으니, 사직社稷의 신하라 할 만합니다.
그 식견과 사려가 심원하고 성품은 더욱이 신중하고 신밀愼密한데, 사마광이 이미 스스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신이 외람되게 정부政府에 있던 터라 그 사실을 자세히 들을 수 있으니, 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이를 ‘어진 이를 엄폐하고 선善을 엄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말에 답하지 않음이 없으며, 덕에 갚지 않음이 없다.” 하였습니다.
사마광司馬光이 지금 비록 시종의 반열에 있으면서 날마다 성상 폐하를 모시지만 그 국가에 충성하는 대절大節은 숨겨져 드러나지 않고 있으니, 신이 이미 상세히 알기에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