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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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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通達之識이니 而其文當與漢谷永諫不受伊莫演之降及揚雄諫不受單于朝書 參看이라
臣伏見契丹劉三嘏 挈其愛妾兒女等七口하야 하야 見在하야 聽候朝旨
竊慮朝廷只依常式하야 投來人等 依例約回不納이라
國家大患 無如契丹하니 自四五十年來 智士謀臣 晝思夜筭하야 未能爲朝廷出一奇策하야 坐而制之러니 今天與吾時하야 使其上下乖離하야 而親貴臣忽來歸我하니 此乃陛下威德所加 祖宗社稷之福이라
竊慮憂國之臣 過有思慮하야 納之別恐引惹라하니 臣請略陳納之却之二端利害하리니
伏望聖慈裁擇其可하소서
由是 河西之人 皆怒朝廷不納하고 而痛山遇以忠而赤族이라
吾旣自絶西人歸化之路하고 堅其事賊之心이나
然本欲存信以懷元昊하되 而終至叛逆하여 幾困天下하니 是拒而不納 未足存信이요 而反與賊堅人心이니 此已驗之效也
其後朝廷悟其失計하야 歸罪이나 悔已難追矣
此事不遠하야 可爲鑑戒하니 伏望陛下思之하소서
此不可拒而可納一也
三嘏是契丹貴臣이니兼宣徽하니 可謂至親且貴矣
一旦君臣離心하야 走而歸我하니 是彼國中大醜之事
必須掩諱하야 不欲人聞이니 必不敢明言求之於我
此其可納二也
況彼來投 又無追者相繼하야 旣絶縱跡하고 別無明驗하니 雖欲索之於我 難以爲辭
此其可納三也
三嘏旣彼之貴臣이니 彼國之事 無不與知
今旣南來하니 則彼之動靜虛實 我盡知之 可使契丹日夕懼我攻取之不暇어든 安敢求索於我하야 自起兵端이리오
若使契丹 疑三嘏果在中國이라도 則三四十年之間 卒無南向之患이니 此又納之大利
其可納四也
彼旣窮來歸我하니 若拒而遣之하야 使其受山遇之禍之間 四五十年來 心欲南向之人 盡絶其歸路하야 而堅其事狄之心하야 思爲三嘏報仇於中國하고 又終不能固契丹之信이리니
此爲誤計 其失尤多
且三嘏在中國이면 則契丹必盡疑幽燕之人이리니 是其半國離心하야 常恐向背
凡契丹南寇 常藉幽燕하니 使其盡疑幽燕之人이면 則可無南寇之患이라
此又可納大利五也
古語曰 天與不取 反受其咎라하니 此不可失之幾也
其劉三嘏 伏望速降密旨與富弼하야 令就近安存하고 하소서
惟乞決于睿斷하고 不惑群言하소서
取進止하소서


06. 유삼하劉三嘏의 일을 논한
통달한 식견이니, 그 글은 응당 이막연伊莫演의 투항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곡영漢谷永의 글 및 선우單于조서朝書를 받지 말라고 간한 양웅揚雄의 글과 함께 참조해 보아야 한다.
신은 삼가 보건대 거란契丹선휘사宣徽使 유삼하劉三嘏가 그 애첩과 자녀 등 일곱 식구를 데리고 남쪽으로 와 중국에 귀순하여 현재 광신군廣信軍에서 조정의 칙지勅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정이 단지 상식常式에 의거하여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사람을 규약에 따라 돌려보내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국가의 큰 우환이 거란만 한 게 없으니, 4, 50년 이래로 지모가 있는 선비와 모책을 세우는 신하들이 밤낮으로 생각해도 조정을 위해 하나의 탁월한 계책을 내놓아 앉아서 거란을 제어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하늘이 우리에게 시운時運을 주어서 저들의 상하를 괴리시켜 친척인 높은 신하가 홀연 우리에게 오게 하였으니, 이는 바로 폐하의 위엄과 덕이 가해진 덕택이요 우리 조종祖宗 사직의 복입니다.
나라를 근심하는 신하가 지나치게 사려하여 ‘받아들이면 달리 분란을 야기할까 걱정이 된다.’고 할까 염려되니, 신이 유삼하를 받아들이는 경우와 돌려보내는 경우, 두 가지의 이해利害를 대략 진달할까 합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헤아려 채택하소서.
왕년에 산우山遇원호元昊를 버리고 우리 조정에 귀순하였는데 변신邊臣이 국가의 신의를 보존하기 위해 거절하고 그를 서하西夏로 돌려보냈는데 원호가 산우에게 분풀이를 하여 그 일족을 죄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로부터 하서河西 사람들이 모두 우리 조정이 산우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분노하고 산우가 충성을 바치다가 일족이 몰살당한 것을 애통해하였습니다.
우리가 서하 사람이 귀화하는 길을 이미 스스로 끊고, 적을 섬기는 마음을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래는 신의를 보존하여 원호를 회유하려는 것이었는데 마침내 반역하여 거의 천하를 곤경에 빠뜨리는 데 이르고 말았으니, 이는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신의를 보존하지 못하고 도리어 적에게 넘겨주어 서하 사람들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였으니, 이는 이미 징험해 드러난 사실입니다.
그 후 조정이 잘못 생각했음을 후회하여 곽권郭勸에게 죄를 돌렸으나 후회해도 이미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는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라 감계鑑戒로 삼을 만하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생각하소서.
이것이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유삼하劉三嘏거란契丹의 신분이 높은 신하로 절월節鉞을 잡고 선휘사宣徽使를 겸임하였으니, 왕실의 지친至親이요 존귀한 신분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군신君臣의 마음이 이반離反되어 도망쳐서 우리에게 왔으니, 이는 저들 나라 안의 매우 추한 일입니다.
따라서 필시 엄폐하여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자 할 터이니, 필시 우리에게 공공연히 유삼하를 돌려보내라고 감히 요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야 하는 둘째 이유입니다.
더구나 저 사람이 우리 쪽으로 넘어올 때에 뒤쫓는 자가 따라오지 않아 이미 그의 종적이 끊어졌고 따로 분명한 증거도 없으니, 비록 우리 쪽에 요구하고자 하더라도 이유를 댈 말을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야 하는 셋째 이유입니다.
유삼하劉三嘏는 이미 저들 중에 신분이 높은 신하이니, 저들 나라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게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미 남쪽으로 왔고 보면 저들의 동정과 허실을 우리들이 죄다 알 수 있을 것이니, 거란契丹으로 하여금 우리가 공격해 올까 밤낮으로 두려워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어찌 감히 우리에게 요구하여 스스로 전쟁의 단서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가사 거란은 유삼하가 과연 중국에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하다라도 3, 4년 사이에는 끝내 남쪽으로 침공해 올 우려가 없을 것이니, 이는 또 유삼하를 받아들이는 것의 크게 이로운 점입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야 하는 넷째 이유입니다.
저 사람이 이미 궁하여 우리 쪽으로 넘어왔으니, 만약 거절하여 돌려보내 산우山遇의 경우와 같은 화를 받게 한다면 유연幽燕 지역에 4, 50년 이래 남쪽 송나라로 귀화할 마음을 먹었던 사람들이 모두 귀화할 길이 끊겨서 오랑캐인 거란契丹을 섬기려는 마음만 견고하게 가지고서 유삼하를 위해 중국에 복수하리라 생각할 것이며, 게다가 그렇게 해도 거란과의 신의를 견고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그릇된 계책이니, 그 잘못이 더욱 큽니다.
게다가 유삼하가 중국에 있으면 거란이 필시 유연 지역의 사람들을 모두 의심할 것이니, 이는 나라 반쪽 사람의 마음이 이반離反하여 늘 배반할까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릇 거란이 남침南侵할 때 늘 유연 지역을 바탕으로 삼아 의지하였으니, 유연 지역 사람들을 모두 의심하게 된다면 남침할 우려가 없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또 받아들이는 것이 크게 이로운 다섯째 이유입니다.
옛말에 “하늘이 주는데도 받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 하였으니, 이는 잃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유삼하劉三嘏를, 삼가 바라옵건대 속히 밀지密旨를 내려 부필富弼에게 주어서 가까운 곳에 안전하게 머물러두었다가 나루를 경유해 대궐로 호송해 보내게 하소서.
바라옵건대 성상의 판단으로 결정하시고 뭇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마소서.
성상께서 결정하소서.


역주
역주1 論劉三嘏事狀 : 이 글은 仁宗 慶曆 4년(1044)에 지어진 것이다. 劉三嘏는 遼나라 사람으로 劉鎭行의 아들이다. 進士試에 급제하였고 駙馬都尉가 되었다. 〈一矢斃雙鹿賦〉를 지어 遼 聖宗에게 바치니 성종이 그 아름다운 문장을 가상히 여겼다. 부인인 공주와 사이가 좋지 못하여 남쪽으로 도망쳐서 송나라로 왔는데 송나라가 요나라로 돌려보내 피살되었다.
역주2 宣徽使 : 內官의 名簿 및 郊祀의 연회를 총괄하는 관직이다.
역주3 向化南歸 : 직역을 하면 “중국의 교화를 향하여 남쪽으로 송나라로 돌아온다.”는 말인데 중국으로 귀순한다는 뜻이다.
역주4 廣信軍 : 송나라 때는 河北 西路에 속했는데 太平興國 6년(981)에 易州 遂城縣을 威勇軍으로 바꾸었고, 景德 원년(1004)에 광신군으로 바꾸었다. 現 河北 徐水縣에 해당한다.
역주5 以爲 : 本集에는 ‘以謂’로 되어 있다.
역주6 往年山遇捨元昊而歸朝…盡誅其族 : 山遇는 元昊의 부하로 景祐 원년(1034)에 一族을 거느리고 송나라로 귀순하여 장차 원호가 반란을 일으킬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宋나라에서는 그를 서하로 돌려보냈고 산우 일족은 모두 살해되었다. 甘心은 죽여서 마음이 후련하게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春秋左氏傳》 莊公 9年에 “管仲과 召忽은 원수이니, 받아들여서 분풀이를 하고 싶다.[管召讎也 請受而甘心焉]” 하였는데 杜預의 注에 “감심은 마음이 후련하게 살육함을 말한다.[甘心 言快意戮殺之]” 하였다.
역주7 郭勸 : 자는 仲懷이고 鄆州 遂城 사람이다. 山遇가 송나라로 귀순했을 때 郭勸이 李渭와 의논하여 “德明 때부터 조공을 바친 지 40년 동안 귀화해 오는 사람을 머물러둔 적이 없다.” 하여 돌려보냈다.
역주8 節鉞 : 節은 符節이고 鉞은 斧鉞로 節度使나 장군이 되어 軍權을 장악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節은 手旗의 형상으로 만들고 鉞은 도끼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다. 부월은 軍令을 어긴 자에 대한 生殺權을 상징한다.
역주9 幽燕 : 幽州와 燕山으로 現 북경 일대를 가리킨다. 본래는 송나라의 땅이었는데 당시 거란의 영토에 속하였다.
역주10 津遣赴闕 : 조정으로 보내라는 뜻이다. ‘津遣’은 나루를 경유하여 보낸다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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