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聞人臣之能盡忠者는 不敢避難言之事하고 人主之善馭下者는 常欲聞難言之言이라하니
然後下無隱情
하고 上無壅聽
하야 不作
하고 禍亂不生
이라
自古固有伏藏之禍와 未發之機어든 天下之人이 皆未知로되 而有一人能獨言之하고 人主又能聽而用之하면 則銷患於未萌하야 轉禍而爲福者有矣어니와
若夫天下之人共知로되 而獨人主之不知者는 此莫大之患也라
今臣之所言者는 乃天下之人皆知로되 而惟陛下未知也라
今士大夫가 無貴賤히 相與語于親戚朋友하고 下至庶民하야 無愚智히 相與語于閭巷道路어늘 而獨不以告陛下也라
臣竊見樞密使狄靑
은 出自行伍
하야 號爲武勇
하야 自
로 已著名聲
하고 及
하야 又薄立勞效
라
今三四年間에 雖未見其顯過나 然而不幸有得軍情之名하니
推其所因
컨댄 蓋由軍士本是小人
이라 에 樂其同類
하고 見其進用
에 自言我輩之內
에 出得此人
이라하야 旣以爲榮
하야 遂相悅慕
하고
加又靑之事藝가 實過於人하고 比其輩流에 又粗有見識이라
國家從前難得將帥하야 經略招討에 常用文臣이라 或不知軍情하고 或不閑訓練이러니
自靑爲將領으로 旣能自以勇力服人하고 又知訓練之方하야 頗以恩信撫士라
但今之士卒이 不慣見如此等事라 便謂須是我同類中人이라야 乃能知我軍情하야 而以恩信撫我라하나니 靑之恩信이 亦豈能徧及於人이리오
但小人易爲扇誘
하니 所謂一犬吠形
에 百犬吠聲
이라 遂皆翕然
하야 喜共稱說
하니라
且武臣掌機密而得軍情은 不唯於國家不便이라 亦於其身에도 未必不爲害니
臣謂靑不得已而爲人所喜요 亦將不得已而爲人所禍者矣니 爲靑計者인댄 宜自退避事權하야 以止浮議어늘
近日以來로 訛言益甚하야 或言其身應圖讖이라하고 或言其宅有火光하야 道路傳說以爲常談矣로되
故臣敢昧死而言人之所難言者하노니 惟願陛下早聞而省察之耳라
如臣愚見은 則靑一常才라 未有顯過로되 但爲浮議所喧하야 勢不能容爾요
若如外人衆論은 則謂靑之用心有不可知者라하니 此臣之所不能決也라
但武臣掌機密而爲軍士所喜는 自於事體不便하니 不計靑之用心如何也라
伏望聖慈는 深思遠慮하야 戒前世禍亂之迹하야 制於未萌하되 密訪大臣하야 早決宸斷하야 罷靑機務하야 與一外藩하야
以此觀靑去就之際心迹如何하고 徐察流言하면 可以臨事制變이라
若靑之忠孝出處如一하야 事權旣去에 流議漸消하면 則其誠節可明하야 可以永保終始라
夫言未萌之患者는 常難於必信이어니와 若俟患之已萌이면 則又言無及矣라
臣官爲學士하고 職號論思라 聞外議喧沸而事繫安危일새 臣言狂計愚하야 不敢自黙이로소이다
남들이 말하기 어려워하는 바를 말하고 남들이 보지 못한 바를 보았다.
단지 송宋나라가 오대五代의 뒤를 이었기 때문이니, 구양공歐陽公이 그런 까닭에 지나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적공狄公을 두둔하였으니 적공도 달갑게 여길 것이다.
신은 듣건대 “신하로서 능히 충성을 다하는 이는 감히 말하기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임금으로서 신하를 잘 부리는 이는 늘 말하기 어려운 말을 듣고자 한다.” 하였으니,
그런 뒤에야 아래에는 숨기는 실정이 없고 위에는 이목이 막힘이 없어서, 간사한 짓을 하는 자가 일어나지 않고 화란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실로 숨어 있는 화禍와 나타나지 않는 재앙이 있으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알지 못하는데 어떤 한 사람이 홀로 말하고, 임금이 또 듣고 그 말을 따르면 채 싹트기 전에 환난을 없애 화를 바꾸어 복을 만드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하 사람들은 다 아는데 임금만 홀로 알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는 막대한 환난입니다.
지금 신이 말하는 것은 바로 천하 사람들은 모두 아는데 폐하만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대부들이 신분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이 없이 친척, 붕우들과 서로 말하고, 아래로 서민에 이르러서도 어리석은 이, 지혜로운 이 할 것 없이 마을과 도로에서 서로 말하고 있는데, 오직 폐하께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일이 숨어 있어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말하는 이가 지적해서 진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은 삼가 보건대 추밀사樞密使 적청狄靑은 병졸兵卒 출신으로 무용武勇이 있다고 이름나, 섬우陝右에서 전투가 있은 뒤로 이미 명성이 드러났고 광서廣西에서 적을 사로잡음에 미쳐서 또 조금 공로를 세웠습니다.
처음 군사軍事 기밀機密을 맡고부터 승진하여 대신의 반열에 올랐으니, 당시에 언사言事하는 이가 이미 온당치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지금까지 3, 4년 동안 비록 드러난 과오는 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불행히도 군사들의 마음을 안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 원인을 미루어 본다면 군사들은 본래 소인들이라 적청의 얼굴에 경문黥文이 있기에 자기들과 같은 부류였음을 좋아하고, 그가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을 보면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나타났다.” 하면서 이미 영광으로 여겨 드디어 좋아하고 흠모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적청의 무예가 실로 남들보다 뛰어날 뿐 아니라 그 동류들에 비해 또 조금 식견이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군사들이 다 함께 그 재능에 심복心服하였습니다.
국가는 종전에 장수를 얻기 어려워 군무軍務를 보고 적을 토벌하는 일에 늘 문신文臣을 기용하니, 어떤 사람은 군정軍情을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훈련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적청이 장령將領이 되고부터는 이미 자신의 용력으로 남을 복종시키고 게다가 훈련하는 방법을 알아 제법 은혜와 신뢰로 사졸들을 위무慰撫하였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적청狄靑이 한 일 따위는 아직 옛날 명장들의 10분의 1, 2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사졸들이 이런 일을 익히 보지 못한 터라 대뜸 “모름지기 우리 동류 중의 사람이라야 우리 군사의 마음을 알아서 은혜와 신뢰로 우리를 위무할 수 있다.” 하는 것이니, 적청의 은혜와 신뢰가 어찌 사람들에게 두루 미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소인들이 선동되기 쉬웠을 뿐이니, 이른바 “한 마리 개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 백 마리 개가 소리를 듣고 짖는다.”는 격이라 드디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적청을 좋아하며 함께 칭찬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무신이 기밀을 맡고 군정을 아는 것은 국가에 불편할 뿐 아니라 그 자신에 있어서도 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고 보면 적청狄靑에 관한 유언비어가 생긴 것을 군사들이 좋아하는 것은 역시 부득이 형세가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
신은 생각건대 적청은 부득이 남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또한 장차 부득이 남에게 화를 당할 것이니, 적청을 위해 계책을 세운다면 의당 스스로 물러나 직권職權을 피하여 근거 없는 말들을 그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청은 본래 무인이라 진퇴의 도리를 알지 못합니다.
근일 이래 근거 없는 소문이 더욱 심하게 생겨나, 혹은 그 자신이 도참에 부응한다고도 하고 혹은 그 집에 화광火光이 있었다고도 하면서 도로에서 사람들이 늘상 하는 얘기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唐나라 때 주체朱泚는 본래 반역한 자가 아니고 창졸간에 군사들에게 떠밀려 그렇게 되었던 것일 뿐입니다.
대저 소인은 일을 이루지 못하고 우환거리가 되는 자가 많습니다.
주차는 비록 멸족의 화를 자초했으나 덕종德宗의 환난이 또한 어찌 작았겠습니까.
대저 소인이 큰 악에 빠지는 것이 반드시 모두 본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단지 작은 일이 점차 쌓여서 차질이 생기는 데 이르는데 당시의 임금이 미처 싹트기 전에 환난을 제압하지 못했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남들이 말하기 어려워한 바를 말하였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어서 듣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적청狄靑은 일개 평범한 인재이고 드러난 잘못은 아직 있지 않는데, 사람들의 근거 없는 말에 올라서 형세상 용납될 수 없었을 뿐입니다.
바깥 사람들의 중론 같은 경우에는 적청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만, 이는 신이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무신이 군사 기밀을 장악하고 군사들의 인기를 얻는 것은 본래 사체상 온당치 못하니, 적청의 마음이 어떤지는 따질 것이 아닙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멀리 생각하여 지난 세상의 화란의 자취를 경계하여 아직 싹트기 전에 화란을 제어하시되, 은밀히 대신에게 묻고 어서 성상께서 결단하여 적청의 기무를 파면하시고 하나의 번진藩鎭을 주소서.
그렇게 해두고서 적청이 거취去就할 때 마음과 행위가 어떠한지를 보고 유언비어를 천천히 살피시면 일을 만났을 때 임기응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부二府를 번갈아 근무하며 노고와 편안함을 균등히 나누어 외직과 내직을 출입하는 것은 벼슬아치의 상사常事입니다.
만약 적청의 충효와 출처出處가 한결같아서 직권이 떠남에 따라 유언비어가 점차 사라지면 그 충성과 절개가 명백하여 시종 자신을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아직 싹트지 않은 환난을 말하는 것은 꼭 믿어준다고 항상 보장하기 어렵지만, 만약 환란이 이미 싹트기를 기다리면 또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신은 벼슬은 학사學士이고 직책은 논사論思라 불리는 터라 외부의 의논이 들끓어 일이 국가의 안위에 관계될 정도임을 들었기에, 신은 말이 주제넘고 생각이 어리석어 감히 스스로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