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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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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이라하고 又曰이라하니 正者 所以正天下之不正也 統者 所以合天下之不一也
由不正與不一然後 正統之論作이라
堯舜之相傳 三代之相代 或以至公하고 或以大義하야 皆得天下之正하야 合天下於一이라
是以 君子不論也 其帝王之理得而始終之分明故也
及後世之亂하야 僭僞興而盜竊作이라
由是 有居其正而不能合天下於一者하니 是也
有合天下於一而不得居其正者하니 前世謂秦爲 是也
由是 正統之論興焉이라
自漢而下 至于西晉하고 又推而下之하야 爲宋齊梁陳하고 自唐而上하야 至于後魏하고 又推而上之 則爲夷狄이니 其帝王之理舛而始終之際不明이라
由是 學者疑焉而是非又多不公이라
自周之亡으로 迄于 實千有二百一十六年之間 或理或亂하고 或取或傳하고 或分或合하야 其理不能一槪
大抵其可疑之際有三하니 周秦之際也 東晉後魏之際也 五代之際也
秦親得周而一天下하야 其迹無異禹湯이로되 而論者黜之하니 其可疑者一也
以東晉承西晉則無終하며 以隋承後魏則無始하니 其可疑者二也
五代之所以得國者雖異 然同歸於賊亂也어늘 而前世議者獨以梁爲僞하니 其可疑者三也
夫論者何
爲疑者設也
堯舜三代之始終 較然著乎萬世而不疑하니 固不待論而明也어니와 後世之有天下者 帝王之理或舛하고 而始終之際不明하니 則不可以不疑
故曰 由不正與不一然後 正統之論作也라하노라
然而論者衆矣 其是非予奪 所持者各異하야 使後世莫知夫所從者 何哉
蓋於其可疑之際 又挾自私之心而溺於非聖之學也
自西晉之滅 而南爲東晉宋齊梁陳이요 北爲後魏北齊後周隋
私東晉者 曰 隋得陳然後天下一이라하야 則推其統曰 晉宋齊梁陳隋라하고
私後魏者曰 統必有所受라하야 則推其統曰 唐受之隋하고 隋受之後周하고 後周受之後魏라하고
至其甚相戾也하얀 則爲南史者 詆北曰虜라하고 爲北史者 詆南曰夷라하니 此自私之偏說也
自古王者之興 必有盛德以受天命하야 或其功澤 被于生民하고 或累世積漸하야 而成王業하니 豈偏名於一德哉
至於湯武之起하얀 所以救弊拯民 蓋有不得已者로되
而曰 五行之運 有休王하야 一以彼衰하고 一以此勝이라하니
此曆官術家之事 而謂帝王之興 必乘五運者 繆妄之說也 不知其出於何人이라
蓋自孔子歿 周益衰亂하야 先王之道不明하야 而人人異學하야 肆其怪奇放蕩之說일새 後之學者 不能卓然奮力而誅絶之하고 反從而附益其說하야 以相結固
故自秦推하야 하니 由漢以來 有國者未始不由於此說이라
此所謂溺於非聖之學也
惟天下之至公大義라야 可以袪人之疑하야 而使人不得遂其私
夫心無所私하야 疑得其決이면 則是非之異論息而正統明하니 所謂非聖人之說者 可置而勿論也


01. 정통正統에 대한
에 이르기를 “군자君子는 ‘’을 준수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라고 한 것은 ‘’을 하나로 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겨서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라는 것은 천하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요, ‘’이라는 것은 천하의 통일되지 않은 것을 합치는 것이다.
바르지 못하고 통일되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은 연후에 정통의 논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요순堯舜이 서로 전위傳位할 때와 삼대三代가 서로 교체할 적에는 혹은 지공至公으로써 하고 혹은 대의大義로써 하여 모두 천하의 ‘’을 얻어서 천하를 하나로 합쳤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들이 논하지 않았던 것이니, 그 의 이치가 정당하고 의 구분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후세의 어지러운 시기에 이르러서는 참칭僭稱하는 일이 일어나고 자리를 훔치는 행위가 생겨났다.
그로 말미암아 그 ‘’을 준수하여도 천하를 하나로 합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평왕平王 시대에 나라, 나라가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천하를 하나로 합쳤으나 그 ‘’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으니, 전세前世에 “나라는 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정통正統의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나라에서부터 내려와 서진西晉에 이르고, 또 미루어 내려오면 나라, 나라, 나라, 나라가 되고, 나라에서 올라가 후위後魏에 이르고, 또 미루어 올라가면 이적夷狄이 되니, 그 의 이치가 어긋나고, 의 경계가 분명하지 못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학자들이 그것을 의심하였고, 시비是非가 또 공정하지 못함이 많게 되었다.
나라가 망한 이후로 현덕顯德에 이르기까지 실로 1,216년 동안에 다스려지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하였으며, 탈취하기도 하고 전하기도 하였으며, 분리되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여, 그 이치를 한 가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대개 의심할 만한 경계는 세 가지가 있으니, 나라와 나라의 경계, 동진東晉후위後魏의 경계, 오대五代의 경계이다.
나라가 친히 나라를 차지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그 자취가 임금이나 임금과 다를 것이 없는데도 논자論者들은 그를 제외시키니, 그 의심할 만한 것의 첫 번째이다.
동진東晉서진西晉을 계승하였으면 이 없는 것이고, 후위後魏를 계승하였으면 가 없는 것이니, 그 의심할 만한 것의 두 번째이다.
오대五代가 나라를 차지한 방식이 비록 다르지만 똑같이 적란賊亂으로 귀결되는데도, 전세前世논자論者들이 유독 나라만을 위국僞國이라고 하였으니, 그 의심할 만한 것의 세 번째이다.
대개 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것을 위해 만든 것이다.
, , 삼대三代은 분명하게 만세萬世에 드러나 의심스럽지 않으니 본디 논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지만, 후세에 천하를 소유한 자들은 의 이치가 더러 어긋나고 의 경계가 분명하지 못하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바르지 못하고 통일되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은 연후에 정통正統의 논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논자論者들이 많고 그 시비是非여탈予奪에 있어서 견지하는 바가 각각 달라서 후세로 하여금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어째서인가?
대개 그 의심할 만한 경계에 또 자신의 사심私心을 개입시키고 성인聖人의 도를 비난하는 학문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서진西晉이 멸망한 뒤로 남쪽은 동진東晉, , , , 이 되고, 북쪽은 후위後魏, 북제北齊, 후주後周, 가 되었다.
동진東晉을 편드는 자는 “나라가 나라를 차지한 뒤에야 천하가 통일되었다.”라고 하면서 그 을 미루어 “, , , , , ”라고 하고,
후위後魏를 편드는 자는 “은 반드시 전해 받는 바가 있어야 한다.”라고 하여 그 을 미루어 “나라가 나라에서 전해 받았고, 나라가 후주後周에서 전해 받았고, 후주後周후위後魏에서 전해 받았다.”라고 하였다.
서로 심하게 대립하기에 이르면 남방南方을 위해 역사를 기술하는 자는 북방北方을 욕하여 ‘’라고 하고, 북방北方을 위해 역사를 기술하는 자는 남방南方을 욕하여 ‘’라고 하니, 이는 개인의 편중된 설일 뿐이다.
옛날부터 왕자王者가 흥할 때에는 반드시 성덕盛德을 갖추어 천명天命을 받았으므로 혹은 그 공택功澤생민生民들에게 입혀지기도 하고, 혹은 누대에 걸쳐 누적하여 왕업王業을 이루었으니, 어찌 하나의 덕을 가지고 편중하여 이름을 붙였겠는가?
가 일어나기에 이르러서는 폐단을 해소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대개 부득이한 면이 있었는데도,
오행五行의 운행에 하고 함이 있어서, 한 번은 저처럼 하고, 한 번은 이처럼 하였다.”라고 하니,
이는 역관曆官이나 술가術家의 일이요, 제왕帝王의 흥함이 반드시 오운五運을 탄다는 것은 무망繆妄한 설이니, 그것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대개 공자孔子가 죽은 뒤로부터 나라가 더욱 쇠란衰亂하여 선왕先王가 밝아지지 못하고, 사람마다 학문을 달리하여, 그 괴기怪奇하고 방탕放蕩한 설을 방자하게 설파했기 때문에, 훗날의 학자學者가 우뚝하게 힘을 쏟아 공격하여 단절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추종하면서 그 설에 덧보태어 서로 결탁하였다.
그러므로 나라부터는 오승五勝을 미루어 스스로 수덕水德을 가지고 이름 붙이니, 나라 이래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처음에 이 에서 말미암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성인의 도를 비난하는 학문에 빠져 있다.”라는 것이다.
오로지 천하의 지공至公대의大義라야 남의 의혹을 없애어서 남들로 하여금 자기 사심私心대로 할 수 없게 할 수 있다.
대개 마음에 편드는 바가 없어서 의심나는 것이 해결되면 시비是非이론異論이 종식되고 정통正統이 분명해질 것이니, 이른바 ‘성인聖人의 설을 비난하는’ 자들은 놓아두고 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역주
역주1 正統論上 : 이 上篇과 下篇은 모두 康定 元年(1040)에 지어졌다. 이 글에서 저자는 천하를 통일하여 그 정당성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正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어느 왕조가 기존의 국가가 가졌던 정당성을 계승하였는가를 논하였다. 이 글은 이후 正統과 관련된 많은 논의를 촉발하였는데, 훗날 南宋의 朱子가 蜀나라를 정통으로 삼은 것과 달리, 저자는 魏나라를 정통으로 설정하였다. 원래는 7편이었으나, 晩年에 수정하여 3편으로 줄였다.
論은 文體의 일종으로 議論한 글이다. 주로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글이다.
역주2 君子大居正 : 春秋時代 宋 宣公이 자신의 아들 與夷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아우 穆公에게 물려주었는데, 훗날 목공이 다시 여이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자 목공의 아들 莊公 馮은 자신이 차지해야 할 임금 자않를 빼앗긴 것에 분격하여 여이를 쳐서 죽이고 말았다. 이 사실에 대해서 《春秋公羊傳》 隱公 3년 조에서는 “그래서 군자는 정상적인 법도를 준수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긴다. 宋나라의 화는 선공이 만들어낸 것이다.[故君子大居正 宋之禍宣公爲之也]”라고 하였다.
역주3 王者大一統 : 大는 대단하게 여긴다는 뜻이고, 一統은 천하의 제후들이 통일된 하나의 국가에 영속되는 것을 말한다. 《春秋》 隱公 元年에 “春王正月”이라고 하였고, 《春秋公羊傳》에서 그것을 풀이하면서 “왜 王正月이라고 하였는가. 周나라로 歸一되는 것을 대단하게 여겨서이다.[何言乎王正月 大一統也]”라고 하였다.
역주4 周平王之有吳徐 : 周 平王은 西周 幽王의 아들이자 東周의 첫 번째 임금이었던 平王을 가리키며, 吳徐는 중국 春秋時代 때 東周에 맞서 왕을 僭稱하던 吳나라와 徐나라를 말한다. 平王은 幽王이 失政을 하다 피살당하고 수도인 鎬京이 오랑캐의 침략을 받자 이를 피하여 洛陽으로 천도하였는데, 이때는 이미 국력이 쇠하여 吳나라나 徐나라가 王을 僭稱하여도 어찌할 수 없었다.
역주5 : 정통성을 지니지 못한 왕조 또는 정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역주6 顯德 : 五代 後周의 太祖, 世宗의 연호로서, 서기 954년에서 958년까지 5년 동안 사용되었다.
역주7 五勝 : 金, 水, 木, 火, 土, 즉 五行이 서로 이기는 관계를 이룬다는 것으로, 水는 火를 이기고, 火는 金을 이기고, 金은 木을 이기고, 木은 土를 이기고, 土는 水를 이긴다고 보았다.
역주8 以水德自名 : 周나라가 火德에 해당한다는 설이 민간에 전해졌는데, 秦始皇이 그를 억누르기 위해 火를 이길 수 있는 水를 내세워 秦나라는 水德의 상서로움을 얻었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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