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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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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識見韻折 總屬이라
自孔子歿而周衰 接乎戰國하고 秦遂焚書하니 六經 於是中絶이라가
하니 其散亂磨滅하야 旣失其傳이라
然後諸儒因得措其異說於其間하니 怪妄之尤甚者
余嘗哀夫學者 知守經以篤信하고 而不知僞說之亂經也
屢爲說以黜之 而學者溺其久習之傳하야 反駭然非予以一人之見으로 決千歲不可考之是非하야 欲奪衆人之所하야 徒自守而世莫之從也로라
余以謂自孔子沒 至今二千歲之間 有一歐陽脩者爲是說矣 又二千歲 焉知無一人焉與脩同其說也
又二千歲 將復有一人焉이라
然則同者至于三하면 則後之人 不待千歲而有也리니 同予說者旣衆이면 則衆人之所溺者 可勝而奪也리라
夫六經 非一世之書
其將與天地 無終極而存也 以無終極으로 視數千歲 於其間頃刻爾
是則余之有待於後者遠矣 非汲汲有求於今世也로다
衡山廖倚 與余遊三十年이라
已而出其兄偁之遺文百餘篇號朱陵編者하니
其論하야 以爲 聖人之法爾 非有龜書出洛之事也라하니
余乃知不待千歲而有與余同於今世者矣로다
始余之待于後世也 冀有因余言而同者爾러니
若偁者 未嘗聞余言하니 蓋其意有所合焉이라
然則擧今之世 固有不相求而同者矣리니 亦何待於數千歲乎
廖氏家衡山하야 世以能詩知名於湖南하고
而偁尤好古하고 能文章하며 其德行聞于鄕里하야 一時賢士皆與之遊러니 以其不達而早死 故不顯于世
嗚呼 知所待者 必有時而獲이요 知所蓄者 必有時而施 苟有志焉이면 不必有求而後合이라
余嘉與偁不相求而兩得也
於是乎書하노라


06. 요씨廖氏문집文集에 대한 서문
식견識見운절韻折이 모두 장심匠心에 속한다.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고 나라가 쇠퇴한 뒤로 전국시대로 이어졌고 나라가 마침내 분서焚書를 하였으니, 육경六經의 전함이 여기에서 중도에 끊어졌다.
그러다가 나라가 흥기하고 오래 지난 뒤에 육경六經이 나왔으니, 산란하고 마멸되어 이미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였다.
그런 뒤에 학자들이 이로 인해 육경六經이설異說들을 섞어 넣었으니, 하도河圖낙서洛書 같은 것이 괴망한 것 가운데 더욱 심한 것들이다.
나는 일찍이 저 학자들이 경전經傳의 뜻을 지켜 독실히 믿을 줄만 알고 위설僞說경전經傳을 어지럽힌다는 점을 모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누차 글을 지어 지척하였지만 학자들은 오랫동안 익혀왔던 것에 미혹되어, 도리어 깜짝 놀라며 한 사람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천고에 고증할 수 없었던 시비를 결단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를 빼앗고자 한갓 자신의 것을 지킬 뿐 세상에서 의견을 따라주는 사람이 없다고 나를 비난하였다.
나는 생각건대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로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한 명의 구양수歐陽脩가 이런 말을 하였으니, 또 2천 년 뒤에 나와 같은 말을 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또 2천 년 뒤에 장차 다시 한 사람이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세 명이 되면 후세의 사람은 천 년을 기다리지 않고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게 될 것이니,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이미 많아지면 사람들의 미혹된 바를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대저 육경六經은 한 시대의 책이 아니다.
장차 천지와 더불어 무궁하게 보존될 책이니 무궁하다는 측면에서 수천 년을 보면 잠깐 사이일 뿐이다.
따라서 내가 먼 훗날까지 나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고, 급급하게 금세今世에 그런 사람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형산인衡山人요의廖倚는 나와 종유한 지 30년이 되었다.
이윽고 《주릉편朱陵編》이라고 부르는 그의 형 요칭廖偁유문遺文 100여 편을 꺼내놓았는데,
그 책에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대해 논하여 ‘구주九疇는 성인의 법일 뿐이니, 등에 글씨가 새겨진 신귀神龜낙수洛水에서 나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나는 그제야 천 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금세今世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내가 후세를 기다린 것은 나의 말로 인하여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요칭廖偁 같은 사람은 일찍이 나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뜻이 부합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상에 서로 구하지 않아도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니 또한 어찌 수천 년을 기다리겠는가.
요씨廖氏형산衡山에 거주하며 대대로 를 잘 짓는 것으로 호남湖南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리고 요칭廖偁은 더욱 옛 것을 좋아하고 문장을 잘 지었으며 덕행德行향리鄕里에 알려져 당시의 어진 선비들이 모두 그와 종유하였는데, 현달하지 못하고 일찍 죽었기 때문에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때가 되면 얻고, 온축할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때가 되면 시행되니, 만일 뜻이 있다면 반드시 그런 사람을 찾은 뒤에 만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요칭廖偁과 서로 구하지 않았지만 두 마음이 합치됨을 기뻐한다.
이에 서문을 쓰노라.


역주
역주1 : 이 글은 宋 仁宗 天祐 6년(1061)에 지은 것이다. 이 서문에는 후대의 유자들이 六經에 붙인 괴상한 설을 비평하고, 《書經》의 ‘洪範九疇’에 대한 廖氏의 해석을 긍정하였고, 작자가 괴상한 설을 제거하려는 확실한 신념을 드러내었다. 廖氏는 廖偁(?~?)을 가리킨다. 衡山人으로 宋 眞宗 天禧(1017~1021) 연간에 進士가 되었는데, 옛 것을 좋아하고 문장을 잘 지었다.
역주2 匠心 : 문학과 예술에 있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생각을 이른다.
역주3 漢興蓋久而後出 : 漢나라 초기에는 秦나라의 폐단을 개혁하여 서적을 수집하고 獻書하는 길을 크게 열어주기만 하였는데, 孝帝와 武帝 때에 이르러서야 서적을 보관할 계책을 마련하고 寫書의 관원을 두어 아래로 諸子百家의 서적 및 傳說에 관련된 서적들도 모두 祕府에 보관하게 하였다.
역주4 河圖洛書 : 河圖는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伏羲氏 때 黃河에서 나온 龍馬의 등에 새겨진 그림으로, 1에서 10까지의 수가 반점의 형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伏羲氏가 이를 보고 《周易》의 八卦를 그렸다고 한다. 洛書는 夏나라 禹임금 때 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1에서 9까지의 수가 역시 반점의 형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禹임금이 이를 보고 《書經》의 洪範九疇를 지었다고 한다.
역주5 : 一本에는 ‘好’자로 되어 있다.
역주6 洪範 : 《書經》의 篇名으로 箕子가 천지의 大法을 베풀어 周 武王에게 준 것이다.
역주7 九疇 :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법칙으로 본래 禹임금이 制定한 것인데, 箕子가 武王의 질문을 받고서 연역하여 답한 것이다. 그 항목이 아홉으로 첫째 五行, 둘째 五事, 셋째 八政, 넷째 五紀, 다섯째 皇極, 여섯째 三德, 일곱째 稽疑, 여덟째 庶徵, 아홉째 五福이다. 《書經 洪範》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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