治平四年夏五月
에 余將赴亳
하야 假道于汝陰
하야 因得閱書于子履之室
이러니 而
爛然
하야 輝映日月
일새
爲之正冠肅容
하고 再拜而後
에 敢仰視
하니 蓋
皇帝之御飛白也
라
曩者
에 天子宴從臣於
하야 而賜以飛白
이어늘 余幸得與賜焉
이로라
少不悅於時人하야 流離竄斥이 十有餘年이로대 而得不老死江湖之上者는
蓋以遭時淸明하야 天子嚮學하야 樂育天下之材하야 而不遺一介之賤하야 使得與群賢竝遊於儒學之館하고
而天下無事하야 歲時豐登하고 民物安樂이라 天子優游淸閑하되 不邇聲色하야 方與群臣從容於翰墨之娛라
而余於斯時에 竊獲此賜하니 非惟一介之臣之榮遇요 亦朝廷一時之盛事也니
余曰
이니 雖田夫野老之無知
라도 猶能悲歌思慕於壟畝之間
이어든
而況儒臣學士得望淸光蒙恩寵
하야 登
而上玉堂者乎
아하고
今賜書之藏于子室也
하니 吾知將有
가 言榮光起而燭天者
는 必賜書之所在也
라
01. 인종仁宗이 비백체飛白體로 쓴 어서御書에 대한 기문記文
이 글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써내려간 곳에 도리어 일편의 웅혼雄渾하고 충담沖澹한 정신이 있다.
치평治平 4년 여름 5월에 내가 박주亳州로 부임할 때에 여음汝陰으로 길을 잡아 인하여 자리子履(육경陸經)의 집에서 글씨를 보게 되었는데, 필적이 찬란하여 광채가 해와 달을 비출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의관을 정제하고 용모를 엄숙하게 하여 두 번 절하고 난 뒤에 감히 우러러보니, 인종황제仁宗皇帝가 비백체飛白體로 쓴 어서御書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는 보문각寶文閣에서 보관하던 것인데, 어찌하여 그대의 집에 있는가?”라고 하니, 자리子履가 말하였다.
“옛날에 천자께서 장서각藏書閣에서 시종신들과 연회를 할 때에 비백체飛白體로 쓴 어서御書를 하사하셨는데, 내가 다행히 하사받는 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어릴 적에 당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리저리 떠돌고 폄척당한 지 10여 년이 되었는데, 강이나 호수 가에서 늙어 죽지 않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개 청명한 시대를 만나 천자께서 학문을 숭상하여 천하의 인재를 기꺼이 양성하여 한 명의 미천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아 그들로 하여금 현자들과 함께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학관에서 종유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천하가 무사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과 사물이 안락하였기 때문에, 천자께서 여유롭고 한가하되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바야흐로 군신과 글씨 쓰는 즐거움을 조용히 누리셨다.
그런데 내가 이런 때에 글씨를 하사받았으니, 일개 신하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또한 조정의 한때의 훌륭한 일이었다.
내가 말하기를 “인종仁宗의 덕택이 만물에 두루 적셔진 지가 40여 년이니, 비록 무지한 농부와 촌야의 노인일지라도 오히려 밭이랑에서 슬피 노래를 부르며 사모할 줄을 아는데,
하물며 인종의 용안을 바라보고 은총을 입어 금문金門에 오르고 옥당玉堂에 오른 유신儒臣과 학사學士들에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이 함께 줄줄 눈물을 흘리며 글을 쓴다.
대저 옥이 돌 속에 들어 있고 구슬이 연못에 감춰져 있을 때 그 빛은 늘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산이 빛나 흰 무지개가 뜨며 물이 변하여 오색이 비치는 곳은 진귀한 보물이 보관된 곳이다.
지금 하사해준 글씨를 그대의 집에 보관하고 있으니, 장차 천기天氣를 살피는 자가 “찬란한 빛이 일어나 하늘을 비춘다.”라고 말하는 곳은 반드시 하사해준 글씨를 보관해둔 곳임을 나는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