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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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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不用意處 却有一片渾雄하고 沖澹精神이라
治平四年夏五月 余將赴亳하야 假道于汝陰하야 因得閱書于子履之室이러니爛然하야 輝映日月일새
爲之正冠肅容하고 再拜而後 敢仰視하니皇帝之御飛白也
曰 此 之所藏也어늘 胡爲於子之室乎 子履曰
曩者 天子宴從臣於하야 而賜以飛白이어늘 余幸得與賜焉이로라
予窮於世 久矣
少不悅於時人하야 流離竄斥 十有餘年이로대 而得不老死江湖之上者
蓋以遭時淸明하야 天子嚮學하야 樂育天下之材하야 而不遺一介之賤하야 使得與群賢竝遊於儒學之館하고
而天下無事하야 歲時豐登하고 民物安樂이라 天子優游淸閑하되 不邇聲色하야 方與群臣從容於翰墨之娛
而余於斯時 竊獲此賜하니 非惟一介之臣之榮遇 亦朝廷一時之盛事也
子其爲我志之하라
余曰 이니 雖田夫野老之無知라도 猶能悲歌思慕於壟畝之間이어든
而況儒臣學士得望淸光蒙恩寵하야而上玉堂者乎아하고
於是 相與泫然流涕而書之하노라
故山輝而白虹하며 水變而五色者 至寶之所在也
今賜書之藏于子室也하니 吾知將有 言榮光起而燭天者 必賜書之所在也


01. 인종仁宗비백체飛白體로 쓴 어서御書에 대한 기문記文
이 글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써내려간 곳에 도리어 일편의 웅혼雄渾하고 충담沖澹한 정신이 있다.
치평治平 4년 여름 5월에 내가 박주亳州로 부임할 때에 여음汝陰으로 길을 잡아 인하여 자리子履(육경陸經)의 집에서 글씨를 보게 되었는데, 필적이 찬란하여 광채가 해와 달을 비출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의관을 정제하고 용모를 엄숙하게 하여 두 번 절하고 난 뒤에 감히 우러러보니, 인종황제仁宗皇帝비백체飛白體로 쓴 어서御書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는 보문각寶文閣에서 보관하던 것인데, 어찌하여 그대의 집에 있는가?”라고 하니, 자리子履가 말하였다.
“옛날에 천자께서 장서각藏書閣에서 시종신들과 연회를 할 때에 비백체飛白體로 쓴 어서御書를 하사하셨는데, 내가 다행히 하사받는 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에 곤궁하게 산 지 오래되었다.
어릴 적에 당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리저리 떠돌고 폄척당한 지 10여 년이 되었는데, 강이나 호수 가에서 늙어 죽지 않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개 청명한 시대를 만나 천자께서 학문을 숭상하여 천하의 인재를 기꺼이 양성하여 한 명의 미천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아 그들로 하여금 현자들과 함께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학관에서 종유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천하가 무사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과 사물이 안락하였기 때문에, 천자께서 여유롭고 한가하되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바야흐로 군신과 글씨 쓰는 즐거움을 조용히 누리셨다.
그런데 내가 이런 때에 글씨를 하사받았으니, 일개 신하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또한 조정의 한때의 훌륭한 일이었다.
그대가 나를 위해 기록해달라.”
내가 말하기를 “인종仁宗의 덕택이 만물에 두루 적셔진 지가 40여 년이니, 비록 무지한 농부와 촌야의 노인일지라도 오히려 밭이랑에서 슬피 노래를 부르며 사모할 줄을 아는데,
하물며 인종의 용안을 바라보고 은총을 입어 금문金門에 오르고 옥당玉堂에 오른 유신儒臣학사學士들에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이 함께 줄줄 눈물을 흘리며 글을 쓴다.
대저 옥이 돌 속에 들어 있고 구슬이 연못에 감춰져 있을 때 그 빛은 늘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산이 빛나 흰 무지개가 뜨며 물이 변하여 오색이 비치는 곳은 진귀한 보물이 보관된 곳이다.
지금 하사해준 글씨를 그대의 집에 보관하고 있으니, 장차 천기天氣를 살피는 자가 “찬란한 빛이 일어나 하늘을 비춘다.”라고 말하는 곳은 반드시 하사해준 글씨를 보관해둔 곳임을 나는 알겠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治平 4년(1067, 宗英 21)에 지은 것이다. 이해에 歐陽脩가 蔣之奇의 모함으로 參知政事에서 파직되어 亳州를 다스리게 되었다. 부임해 가는 길에 穎州에 들러 穎州知州인 陸經을 방문하였는데, 陸經이 仁宗의 御書를 보여주며 記文을 청하였으므로 이 글을 지었다. 飛白은 書法의 일종으로, 後漢 때 蔡邕이 일찍이 鴻都門에 白堊을 칠하는 匠人의 빗자루를 보고 마침내 이 서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역주2 雲章 : 임금의 글이나 글씨를 뜻한다. 《詩經》 〈大雅 棫樸〉에 “큰 저 운한이여 하늘에 문장이 되었도다.[倬彼雲漢 爲章于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3 仁宗 : 이름은 趙禎(1022~1063)이고 眞宗의 아들이다.
역주4 寶文閣 : 宋나라의 궁전 이름이다. 慶曆 초에 天章閣 북쪽에 있던 壽昌閣을 고쳐 寶文閣을 만들었다. 英宗이 즉위하자 寶文閣에 仁宗의 遺書를 보관하고 龍圖閣의 예를 따라 學士, 直學士, 待制 등을 두었다.
역주5 群玉 : 群玉山을 가리키는데, 西王母가 살았다는 전설상의 仙山으로 후에는 제왕의 藏書閣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역주6 仁宗之德澤……四十餘年 : 宋 仁宗이 建興 元年(1022)에 즉위하였는데, 이때에 나이가 막 13세였기 때문에 劉太后가 代理聽政을 하였다. 明道 2년(1033)에 劉太后가 죽자 비로소 仁宗이 親政을 하였다. 建興 元年부터 嘉祐 8년(1067)까지가 40여 년이 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7 金門 : 漢나라 때 궁궐에 있던 金馬門의 준말로 金閨로도 약칭하였다. 임금과 가까운 곳을 말한다. 《文選 江淹 別賦》
역주8 夫玉韞石而珠藏淵 其光氣常見於外也 : 《荀子》 〈勸學〉에 “옥이 산에 있으면 초목에도 윤기가 흐르고, 진주가 나오는 연못은 물가가 마르는 법이 없다.[玉在山而木草潤 淵生珠而崖不枯]”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9 望氣者 : 고대에 天象과 雲氣를 보고 사람의 일을 예측하고 길흉을 미리 말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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