然平生亦嘗坎軻하고 數年以來에 方履亨塗任要劇하니 其去大用尺寸間爾라
某自
爲學
으로 初未有一人知者
러니 及首登門
하야 便被憐獎
하야 開端誘道
를 勤勤不已
하야 至其粗若有成而後止
하니
雖其後遊於諸公而獲齒多士하야도 雖有知者나 皆莫之先也라
然亦自念不欲效世俗子
가 一遭人之顧已
면 不以至公相期
라도 反趨走門下
하야 하고 甚者
는 獻讒諛而備使令
하야 以卑昵自親
하야 名曰報德
하니 非惟自私
요 直亦待所知以不厚
라
是故懼此하야 惟欲少勵名節하야 庶不泯然無聞하야 用以不負所知爾니 某之愚誠이 所守如此나
自前歲得罪夷陵으로 奔走萬里에 身日益窮하고 迹日益疎하야 不及再聞語言之音이러니 而遂爲幽明之隔하니
世俗之態
는 旣不欲爲
요 愚誠所守
도 又未克果
하니 惟有
하고 臨柩一奠
이어늘
이면 某歲盡春初
에 當過京師
리니 尙可一拜見
하야 以盡區區
리라
身賤力微하야 於此之時에 當有可致어늘 而無毫髮之助하니
근자에 건덕현령乾德縣令을 그만두고 남양南陽에 와 머물고 있으면서 비로소 사사인謝舍人을 만나고 내한內翰 어른이 별세하셨음을 알았으니, 부음을 들임에 놀랍고 슬픈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생에 평탄치 못한 길을 걸어오시다가 몇 해 이래에야 비로소 환로宦路가 열려 요직要職을 맡으셨으니, 재상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부귀는 힘으로 얻을 수 없고,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함에 많고 적음의 제한이 있는 것입니까.
무릇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은 또 무엇을 헤아려 절제하는 것입니까.
지나간 일은 이미 따져 물을 수 없으니, 그저 애통하고 슬퍼할 따름입니다.
모某는 속발束髮하여 공부한 이래로 애초에 한 사람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는데, 맨 처음 어른의 문하에 올라 곧 사랑과 칭찬을 입어, 학문의 단서를 열고 학문의 길로 이끌어주시기를 부지런히 힘써 마지않으셔서 조금이라도 성취가 보이는 듯한 뒤에야 그치셨습니다.
비록 그 후에 다른 분들과 사귀어 선비들 축에 낄 수 있어서, 비록 저를 알아주는 사람은 있었으나, 아무도 어른보다 앞설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세상의 속된 사람들이 한 번 남이 자기를 돌아봐줌을 만나면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더라도 도리어 그 문하에 달려가서 비굴한 웃음을 보이며, 심하면 아첨하는 말을 바치고 하인 노릇을 하면서 자신을 낮춤으로써 친근하게 굴면서 스스로 이를 은혜에 보답한다고 하니, 자신을 위한 사심일 뿐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을 알아준 이를 후하지 못한 방법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런 점을 두려워하여 오직 조금이나마 명예名譽와 절조節操에 힘써 이름없는 존재가 되지 않음으로써 저를 알아준 분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자 했으니, 저의 어리석은 충정에 지켜 실천해온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서공胥公(胥偃)이라도 반드시 저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 아시지는 못하셨을 것입니다.
지난해 득죄得罪하여 이릉夷陵으로 좌천되면서부터 만 리 먼 길을 가서 몸은 날로 더욱 궁해지고 발길은 날로 더욱 멀어져서 미쳐 다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했는데, 마침내 이렇게 유명幽冥을 달리하시고 말았습니다.
세속 사람들의 작태는 제가 이미 할 수 없었고 어리석은 충정에 지켜온 것도 실천하지 못하였으니, 오직 분상奔喪하여 대문을 바라보며 길게 곡하고 관 앞에서 한 번 술잔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하지 못하니, 이 한스러움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갓 장수長壽를 누리지 못하고 크게 쓰이지 못하신 것을 애석해하여 마침내 남일 뿐인 행인들과 같이 탄식할 뿐입니다.
광릉廣陵으로 반장返葬하고서 마침내 경사京師에 살 작정임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대개 불편할 것이라 하지만 평소의 유언이 이와 같았다고 하니, 필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봄물이 변수汴水로 내려올 때를 기다리신다면, 저는 올해가 다 가고 내년 초봄에 경사를 지날 터이니 혹 한 번 찾아뵙고 구구한 회포를 다 풀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은 미천하고 힘은 미약하여 이러한 때에 응당 보답을 드려야 할 터인데 터럭만한 도움도 못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