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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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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歐陽公極好爲文이라가 晩年見得如此
吾輩生平好著文章以自娛하니 當爲深省이니라
草木鳥獸之爲物 衆人之爲人 其爲生雖異 而爲死則同하야 一歸於腐壞澌盡泯滅而已
而衆人之中 有聖賢者 固亦生且死於其間이로되 而獨異於草木鳥獸衆人者 雖死而不朽하고 逾遠而彌存也
修於身者 無所不獲이요 施於事者 有得有不得焉이요 其見於言者 則又有能有不能也니라
施於事矣 不見於言이라도 可也 自詩書史記所傳으로 其人豈必皆能言之士哉
하고 而後世更百千歲 亦未有能及之者하니 其不朽而存者 固不待施於事 況於言乎
予讀班固藝文志 하고 見其所列하니 自三代秦漢以來 著書之士 多者至百餘篇이요 少者猶三四十篇이니
其人 不可勝數로되 而散亡磨滅하야 百不一二存焉이라
予竊悲其人文章麗矣 言語工矣 無異草木榮華之飄風 鳥獸好音之過耳也
方其用心與力之勞 亦何異衆人之汲汲營營이리오
而忽焉以死者 雖有遲有速이나 而卒與三者 同歸於泯滅하니 夫言之不可恃也 蓋如此
今之學者 莫不慕古聖賢之不朽하되 而勤一世以盡心於文字間者하니 皆可悲也니라
東陽徐生 少從予學爲文章하야 稍稍見稱於人이러니 旣去而與群士試於禮部하야 得高第하니 由是知名이라
其文辭日進 如水涌而山出하니
予欲摧其盛氣而勉其思也 故於其歸 告以是言이라
然予固亦喜爲文辭者 亦因以自警焉하노라


05. 남쪽으로 돌아가는 서무당徐無黨을 보내는 서문
구양공歐陽公이 문장 짓는 것을 몹시 좋아하다가 만년에 깨달은 것이 이와 같았다.
우리들은 평생 문장을 지으면서 스스로 즐기기를 좋아하니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초목草木조수鳥獸 등의 동식물과 중인衆人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삶의 양상은 비록 다르지만 죽는다는 점은 같아서 한결같이 부패하여 다 없어지며 사라지는 데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나 중인衆人 가운데 성현聖賢이라는 분들이 본래 또한 중인衆人 사이에서 살고 죽지만 초목草木조수鳥獸중인衆人과 홀로 다른 점은 비록 몸은 죽더라도 자취는 불후不朽하고 오래될수록 더욱 보존된다는 것이다.
성현聖賢이 되는 까닭은 몸을 닦아 을 세우며 일을 시행하여 을 세우며 훌륭한 말을 드러내어 후세에 남겨주기 때문이니, 이 세 가지가 불후不朽하여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는 이유이다.
몸을 닦아 을 세우는 자는 얻지 못하는 것이 없고, 일을 시행하여 을 세우는 자는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으며, 훌륭한 말을 드러내어 후세에 남겨주는 자는 말을 잘하는 경우도 있고 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을 시행하여 을 세우면 훌륭한 말을 드러내어 후세에 남겨주지 않더라도 괜찮으니, 《시경詩經》‧《서경書經》과 사기史記에 전해지는 이들을 살펴보건대, 그 사람들이 어찌 반드시 모두 말을 잘하는 선비였겠는가.
몸을 닦아 을 세우면 일을 시행하여 을 세우지 않고 훌륭한 말을 드러내어 후세에 남겨주지 않더라도 역시 괜찮으니, 공자孔子제자弟子 가운데 정사政事에 능한 이가 있고 언어言語에 능한 이가 있었지만 안회顔回와 같은 이는 누추한 골목에 있으면서 팔을 굽혀 베고 굶주려 누워 있을 뿐이었으며, 사람들과 무리 지어 있을 때에는 마치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렇지만 그 당시부터 여러 제자가 모두 그를 추존推尊하여 감히 바라보며 다가갈 수 없다고 여겼고 후세에 수천 년을 지나도록 또한 아직껏 그의 경지에 다가갈 수 있는 이가 없으니, 그 불후不朽하여 오래도록 보존됨이 진실로 일을 시행하여 을 세우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데 하물며 훌륭한 말을 드러내어 후세에 남겨줄 것이 있겠는가.
내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와 나라의 사고서목四庫書目을 읽고 거기에 나열된 것을 보니 삼대三代에서부터 이후로 책을 저술한 사람이, 많은 이는 백여 편에 이르고 적은 이도 3, 4십 편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지만 흩어져 사라지고 닳아 없어져서 백에 한둘도 보존되지 못하였다.
나는 혼자 그 사람의 문장이 아름답고 언어가 공교롭지만 초목草木의 화사한 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조수鳥獸의 아름다운 소리가 귀를 스쳐지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서글퍼하였다.
한창 그가 심력心力을 쏟을 적의 노고가 또한 어찌 중인衆人들이 이익을 좇아 급급하고 분주한 경우와 다르겠는가.
문득 어느 사이에 죽는 것이 비록 느리고 빠른 차이가 있지만 결국에는 초목草木조수鳥獸중인衆人 세 가지와 함께 똑같이 사라지는 데로 귀결되니, 말에 의지할 수 없음이 대체로 이와 같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옛 성현의 불후不朽를 사모하면서도 한 세상 동안 부지런히 노력하여 문자文字 사이에 마음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이는 모두 슬퍼할 만하다.
동양東陽서생徐生이 어려서부터 나에게서 문장 짓는 것을 배워 차츰차츰 사람들에게 일컬어졌는데, 떠나간 뒤 그가 여러 선비와 함께 예부禮部에서 과거科擧를 보아 높은 순위로 급제하니 이 때문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의 문장이 날로 진전하여 마치 물이 솟아오르고 산이 솟아나온 듯하였다.
나는 그의 성한 기운을 꺾고 그가 자신을 돌아보기를 권면하고자 하므로 그가 돌아갈 때에 이런 말을 해준다.
그러나 나도 본디 문장을 짓기 좋아하는 자이니 또한 이를 통해 내 자신도 경계한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仁宗 至和 元年(1054)에 지은 것이다. 徐無黨은 婺州 東陽郡 永康縣 사람으로, 皇祐 연간에 進士가 되었다. 歐陽脩에게서 古文을 배워 그와 함께 《五代史記》를 註釋하였다. 澠池의 수령이 되었다가 郡敎授가 되어 卒하였다. 南歸는 도성 汴梁에서 남쪽 고향 永康으로 돌아간 일을 말한다.
역주2 修之於身……是三者所以能不朽而存也 : 修之於身은 立德을 가리키고, 施之於事는 立功을 가리키며, 見之於言은 立言을 가리킨다. 이상이 이른바 ‘三不朽’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24년에 春秋시대 魯나라 대부 叔孫豹가 晉나라에 갔을 적에 范宣子가 오래되어도 불후한 것을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가장 좋은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 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며, 그 다음은 말을 남기는 것이다. 비록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를 불후라고 한다.[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3 孔子弟子……有能言語者矣 : 孔子가 말하기를 “나에게 수업하여 통달한 자가 77명이 있으니 모두 뛰어난 선비들이다. 德行에는 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이 뛰어나고, 政事에는 冉有‧季路가 뛰어나고, 言語에는 宰我‧子貢이 뛰어나며, 文學에는 子游‧子夏가 뛰어나다.”라고 하였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역주4 若顔回者……其群居則默然終日如愚人 : 《論語》 〈雍也〉에 공자가 “어질구나 안회여, 한 대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먹으며 누추한 골목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한결같이 변치 않으니 어질구나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고, 〈述而〉에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않으면서 누리는 부귀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하였으며, 또 〈爲政〉에 공자가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말할 적에 질문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듯하였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라고 하였다.
역주5 然自當時……以爲不敢望而及 : 공자가 자공에게 “네가 안회와 비교해서 누가 더 나으냐?[女與回也孰愈]”라고 묻자, 자공이 “제가 어떻게 감히 안회를 바라보기나 하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라고 대답한 일을 가리킨다. 《論語 公冶長》
역주6 唐四庫書目 : 唐 玄宗이 長安과 洛陽 두 곳에 書庫를 건설하고 甲乙丙丁으로 순서를 매겨 經史子集 四庫를 구분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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