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代之君
은 皆武人
라 其所與
가 俱勇夫悍卒
이어늘 各裂土地封侯王
하니 何異豺狼之牧斯人也
리오
雖其附託遭遇가 出於一時之幸이나 然猶必皆橫身陣敵이니 非有百夫之勇이면 則必一日之勞어니와
至如進者하얀 徒以疾足善走로 而秉旄節하니 何其甚歟아
抑因緣僥倖이 未始不有하고 而尤多於亂世하야 旣其極也에 遂至於是歟아
天下之人
이 視其上易君代國
을 如更
無異
하니 蓋其輕如此
어든 況其下者乎
아
易
에 하고 君子小人
이 常相上下
하니 視在上者如進等
이면 則其在下
를 可知矣
라
予書進事는 所以哀斯人之亂而見當時賢人君子之在下者니 可勝道哉아
08. 《오대사五代史》 〈왕진전王進傳〉에 대한 논論
왕진王進이 빠른 발로 잘 달린다는 이유로 모절旄節을 잡았으니, 오대五代 때 관직을 남용하는 것이 극도에 이르렀다.
구양공歐陽公이 이 때문에 분개하고 슬퍼한 것이다.
내가 옛날 역사를 기술하다가 왕진王進의 일에 이르러 책을 덮고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오대五代의 임금들은 모두 무인武人이 굴기崛起한 터라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용감한 무부武夫요 사나운 병졸들인데 이들에게 각각 토지를 나눠주어 후왕侯王에 봉했으니, 이리와 늑대가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비록 주군主君에게 의탁하고 주군을 조우遭遇한 것은 한때의 요행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모두 전쟁터를 누비며 싸웠음은 틀림없으니, 남다른 용맹이 있지 않다면 반드시 하루의 노고라도 있었다.
그러나 왕진王進 같은 자로 말하자면, 한갓 빠른 발로 잘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모절旄節을 잡았으니, 어쩌면 그리도 심한가!
어쩌면 관직을 임용하는 것이 세상에 따라 그 경중輕重이 달라진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잘 다스려지면 군자가 관직에 있어서 관직이 무거워지고, 세상이 혼란하면 소인이 관직을 바꾸어 얻어서 관직이 가벼워지는 것인가?
아니면 인연과 요행이 애초에 있지 않은 적이 없는데, 혼란한 세상에 더욱 많아서 극도에 이르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는 것인가?
이 당시에는 국가가 오래간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고, 짧은 것은 3, 4년 내지 1, 2년이었다.
천하 사람들이, 그 윗사람이 임금을 바꾸고 국가를 차지하는 것을 마치 수장戍長을 바꾸는 것과 다름없이 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 가볍기가 이와 같았거늘, 하물며 그보다 낮은 지위야 말할 나위 있었겠는가.
왕진王進과 같은 자들은 어찌 말할 가치나 있겠는가.
《주역周易》에 비괘否卦와 태괘泰卦는 서로 소장消長하고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늘 서로 오르내리니, 윗자리에 있는 자가 왕진王進과 같은 자들임을 보면 그 아래에 있는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 만하다.
내가 왕진의 일을 쓰는 것은 백성들이 난세亂世를 겪은 것을 슬퍼하고 당시 현인 군자들로 아래에 있었던 이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니, 말을 할 수가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