貴賤窮亨과 用舍進退와 得失成敗에 其有幸有不幸과 或當然而不然이로되 而皆不知其所以然者하니 則推之於天曰有命이라
蓋小人知在我라 故常無所不爲하며 君子知有命이라 故能無所屈하나니
凡士之有材而不用於世하고 有善而不知於人하야 至於老死困窮而不悔者는 皆推之有命而不求苟合者也라
其氣剛하며 其學古하며 其材敏하고 其爲文이 抑揚感激하며 勁正豪邁가 似其爲人이라
君生於
儒學文章之士得用之時
하니 宜其馳騁上下
하야 發揮其所畜
하야 振耀於當世
로되
而獨韜藏抑鬱하야 久伏而不顯者는 蓋其不苟屈以合世라
余謂君非徒知命而不苟屈이요 亦自負其所有者하야 謂雖抑於一時나 必將伸於後世而不可揜也라
君之旣歿
에 가 狀其行
하야 以告于史
하고 가 銘之石
하야 以藏諸幽
하고 而余又序其集
하야 以行於世
하니
然則君之不苟屈於一時而有待於後世者가 其不在吾三人者邪아
《논어論語》에 ‘군자는 명命을 안다’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명命은 과연 알 수 있는 것인가.
귀천貴賤과 궁형窮亨, 용사用舍와 진퇴進退, 득실得失과 성패成敗에 행운과 불행이 있고 혹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모두 그렇게 되는 이유를 알지 못하므로 하늘에 미루어 명命이 있다고들 한다.
대저 군자가 이른바 명命을 안다는 것은 이것을 아는 것일 뿐이다.
대개 소인은 모든 일이 나에게 달려 있는 줄 알기 때문에 늘 하지 않는 바가 없으며, 군자는 명命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능히 굴복하는 바가 없다.
무릇 재주가 있지만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고 선善이 있지만 남에게 알려지지 않아 늙어 죽을 때까지 곤궁하게 살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선비는 모두 명命이 있음을 미리 헤아려 구차하게 세상과 영합하기를 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중씨仲氏의 글을 읽어봄에 그 사람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기질은 강하고 학문은 예스러우며 재주는 민첩하고 지은 문장은 억양이 있고 격동적이며 굳세고 호매한 것이 그 사람의 인품과 같았다.
어릴 때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은 상서둔전원외랑尙書屯田員外郞에 올랐을 뿐이다.
군은 송宋나라가 개국 후 100년 되던 전성全盛했을 시기, 유학과 문장을 하는 선비가 등용될 시기에 태어났으니, 응당 마음껏 재능을 떨쳐 온축했던 바를 발휘하여 당세에 명성을 떨쳤어야 한다.
그러나 홀로 재능을 숨기고 답답하게 살면서 오랫동안 묻혀 드러내지 않은 것은 대개 구차하게 뜻을 굽혀 세상에 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으니 어찌 명命을 아는 군자가 아니겠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군은 한갓 명命을 알아 구차하게 뜻을 굽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가 가진 재능을 자부하여 비록 한때엔 답답하게 살았지만 반드시 장차 후세에 펼쳐져 가려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군이 세상을 떠난 뒤에 부춘富春의 손신로孫莘老가 행장行狀을 지어 사관史官에게 고하고, 임천臨川의 왕개보王介甫가 묘지명墓誌銘을 돌에 새겨 무덤에 묻었으며, 내가 또 문집에 서문을 지어 세상에 간행하였다.
그렇다면 군이 한때에 구차하게 뜻을 굽히지 않고서 후세를 기다린 것이 우리 세 사람에게 있지 않겠는가.
아, 내가 비록 늙고 병들어 문장은 잘하지 못하지만 어찌 힘써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