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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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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論爲文本乎學道 道勝者 文不難而自至하니 最是確論이라
脩頓首白吳君足下하노라
前辱示書及文三篇일새 發而讀之 浩乎若千萬言之多라가 及少定而視焉 纔數百言爾
非夫辭豐意雄하야 然有不可禦之勢 何以至此리오
然猶自患倀莫有開之使前者하니 此好學之謙言也
脩材不足用於時하고 仕不足榮於世하고 하고 氣力不足動人하니 世之欲假譽以爲重하며 借力而後進者 奚取於脩焉이리오
先輩學精文雄하니 其施於時 又非待假譽而爲重하며 借力而後進者也
然而惠然見臨 若有所責하니 得非急於謀道하야 不擇其人而問焉者歟
而至者鮮焉이니 非道之於人遠也 學者有所溺焉爾
蓋文之爲言 難工而可喜하고 易悅而自足하니
世之學者往往溺之하야 一有工焉이면 則曰吾學足矣라하고
甚者 至棄百事하야 不關于心하고 曰 吾文士也 職於文而已라하니
此其所以至之鮮也
昔孔子老而歸魯하니 六經之作 數年之頃爾
然讀易者 如無春秋하고 讀書者 如無詩하니 何其用功少而至於至也
聖人之文 雖不可及이나 然大抵道勝者 文不難而自至也
後之惑者 徒見前世之文하고 傳以爲學者文而已
하니 此足下所謂終日不出於호되 不能縱橫高下皆如意者 道未足也
若道之充焉이면 雖行乎天地하고 入于淵泉이라도 無不之也
足下之文 浩乎霈然하니 可謂善矣 而又志於爲道하되 猶自以爲未廣하니 若不止焉이면 孟荀可至而不難也
學道而至者
然幸不甘於所悅而溺於所止
因吾子之能不自止하야 又以勵脩之少進焉이면 幸甚이라


11. 오충吳充 수재秀才에게 답한 편지
문장文章을 짓는 것은 본래 를 배우는 데 근본을 두므로, 도가 우세한 자는 문장이 어렵지 않게 절로 지극해진다는 것을 논하였으니, 매우 명확한 논리이다.
는 머리를 조아려 선배先輩 오군吳君 족하께 말씀드립니다.
지난번 편지와 글 세 편을 보여주셨기에 펼쳐서 읽어봄에 드넓게 펼쳐진 것이 마치 천만千萬 자의 많은 분량 같았는데, 조금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 보니 겨우 수백 자였습니다.
이는 문사文辭가 풍부하고 의사意思웅혼雄渾하여 막을 수 없는 분방한 기세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장님처럼 허둥대는데 아무도 앞길을 인도해주는 이가 없다고 걱정하니, 이는 학문을 좋아하는 분의 겸손한 말입니다.
나는, 재주는 시대에 쓰이기에 부족하고 벼슬은 세상에 영예롭기에 부족하고 훼예毁譽경중輕重이 되기에 부족하고 기력氣力은 사람을 움직이기에 부족하니, 세상에서 남의 칭찬을 빌려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남의 힘을 빌린 뒤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찌 나를 택하겠습니까.
선배께서는 학문이 정심精深하고 문장이 웅혼雄渾하니, 세상에 그것을 발휘함에 있어서도, 남의 칭찬을 빌려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남의 힘을 빌린 뒤에 진출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치 나에게 요구할 것이 있는 듯이 나의 집에 왕림하셨으니, 를 도모하는 데 급하여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질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학문은 애초에 를 위한 것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도에 이르는 자는 드무니, 도가 사람에게 먼 것이 아니라 학자가 어딘가 함닉陷溺된 곳이 있는 것입니다.
대개 문장으로 말하자면 잘 지어 남들이 좋아할 만하게 되기는 어렵고 기뻐하여 스스로 만족하기는 쉬우니,
세상의 문장을 공부하는 자들이 왕왕 여기에 함닉되어 한번 자기의 문장이 잘 지어지면 “나의 공부가 충분하다.” 하고,
심한 경우에는 모든 일을 팽개쳐 마음에 두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문사文士이니, 문장을 짓는 일만 하면 된다.”라고 하니,
이것이 문장의 도에 이르는 사람이 드문 까닭입니다.
옛날에 공자孔子가 연로해서 나라에 돌아왔으니, 육경六經을 저술한 것은 몇 해의 짧은 기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역周易》을 읽는 자에게는 마치 《춘추春秋》란 책은 없는 것 같고, 《서경書經》을 읽는 자에게는 《시경詩經》이란 책은 없는 것 같으니, 어쩌면 그리도 공력을 들인 것은 적으면서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성인의 문장은 비록 우리가 미칠 수 없으나, 대저 도가 우세한 자는 문장이 어렵지 않게 절로 지극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는 분주히 다니느라 저서著書할 겨를이 없었고, 순경荀卿 또한 만년에야 저작著作이 있었으며, 자운子雲중엄仲淹 같은 이들은 바야흐로 노력하는 단계에서 남의 말을 모방하였으니, 이는 도는 부족하면서 억지로 말한 자들입니다.
후세의 미혹한 자들은 한갓 전대前代의 문장만을 보고 이를 전하여 학자의 문장으로 삼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노력할수록 더욱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니, 이것이 족하가 말한 “종일토록 집 안을 벗어나지 않되 마음대로 종횡縱橫 고하高下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니, 아직 문장의 도가 부족함을 말한 것입니다.
만약 도가 충족하다면 비록 천지간을 다니고 깊은 물속에 들지라도 가지 못할 데가 없을 것입니다.
족하의 글은 호탕浩蕩하고 분방하니 좋다고 할 만하고, 게다가 도를 배우는 데 뜻을 두었으되 오히려 스스로 ‘아직 넓지 못하다.’고 하니, 만약 그치지 않고 정진한다면 맹자孟子순경荀卿의 경지에도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도를 배웠으되 아직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좋아하는 바를 달콤하게 여기고 자신이 그친 곳에 함닉陷溺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족하가 스스로 그치지 않고 정진함을 말미암아 나도 조금이나마 진보하도록 면려할 수 있게 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역주
역주1 答吳充秀才書 : 이 편지는 康定 원년(1040)에 쓴 것이다. 이해 6월에 歐陽脩는 武成軍節度使 判官으로 있다가 召命을 받고 京師로 돌아와 다시 館閣校勘이 되었다. 이때 吳充이 進士試를 보기 위해 경사에 와서 구양수를 찾아와 편지와 자신이 지은 글을 보여주면서 가르침을 청하였고, 구양수가 이 편지로 답한 것이다.
오충은 자가 沖卿이고 建州 浦城 사람이다. 젊은 나이로 진사시에 급제했고 벼슬이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역주2 先輩 : 唐나라 때 같은 시기에 進士試에 급제한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이었는데, 후대에는 文人이 상대방을 부르는 敬稱으로 쓰였다. 吳充은 歐陽脩보다 10여 세나 어리다.
역주3 : 패
역주4 倀 : 창
역주5 其毁譽不足輕重 : 歐陽脩 자신의 존재가 미미하여 누구를 헐뜯거나 칭찬하는 것이 그 사람의 위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말로 겸사이다. 吳充이 구양수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6 夫學者未始不爲道 : 韓愈의 〈送陳秀才彤序〉에 “대개 학문은 도를 위한 것이고, 문장은 이치를 위한 것이다.[蓋學所以爲道 文所以爲理]”라고 하였다.
역주7 孟子皇皇不暇著書 荀卿蓋亦晩而有作 : 孟子는 列國을 주유하느라 저술할 겨를이 없다가 만년에 은퇴하여 제자인 萬章 등과 함께 《孟子》 7편을 저술했다고 한다.
荀卿은 荀子의 성명이다. 그는 먼저 齊나라에서 벼슬했다가 뒤에 楚나라에 가니 春申君이 그를 蘭陵令으로 삼았다. 춘신군이 죽은 뒤에야 순자는 은퇴하여 蘭陵에 살면서 저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주8 若子雲仲淹 方勉焉以模言語 : 子雲은 漢나라 揚雄의 자이고, 仲淹은 隋나라 王通(584〜617)의 자이다. 양웅은 《周易》을 모방하여 《太玄經》을 저술하였고, 《論語》를 모방하여 《法言》을 저술하였다. 왕통은 私諡가 文中子이다. 그는 《春秋》를 모방하여 《元經》을 지었고, 《논어》를 모방하여 《中說》을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중설》만 남아 있다.
역주9 故愈勤而愈不至 : 本集에는 “故愈力愈勤而愈不至”로 되어 있다.
역주10 軒序 : 軒은 창문이고 序는 집의 동서쪽에 있는 담이다. 즉 방 안과 집 안을 뜻한다.
역주11 : 本集에는 ‘未’자로 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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