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爲文本乎學道니 道勝者는 文不難而自至하니 最是確論이라
前辱示書及文三篇일새 發而讀之에 浩乎若千萬言之多라가 及少定而視焉에 纔數百言爾니
脩材不足用於時
하고 仕不足榮於世
하고 하고 氣力不足動人
하니 世之欲假譽以爲重
하며 借力而後進者
가 奚取於脩焉
이리오
先輩學精文雄하니 其施於時에 又非待假譽而爲重하며 借力而後進者也라
然而惠然見臨을 若有所責하니 得非急於謀道하야 不擇其人而問焉者歟아
나 而至者鮮焉
이니 非道之於人遠也
요 學者有所溺焉爾
라
世之學者往往溺之하야 一有工焉이면 則曰吾學足矣라하고
甚者는 至棄百事하야 不關于心하고 曰 吾文士也니 職於文而已라하니
然讀易者는 如無春秋하고 讀書者는 如無詩하니 何其用功少而至於至也아
聖人之文은 雖不可及이나 然大抵道勝者는 文不難而自至也라
하니 此足下所謂終日不出於
호되 不能縱橫高下皆如意者
니 道未足也
라
若道之充焉이면 雖行乎天地하고 入于淵泉이라도 無不之也라
足下之文은 浩乎霈然하니 可謂善矣요 而又志於爲道하되 猶自以爲未廣하니 若不止焉이면 孟荀可至而不難也라
因吾子之能不自止하야 又以勵脩之少進焉이면 幸甚이라
문장文章을 짓는 것은 본래 도道를 배우는 데 근본을 두므로, 도가 우세한 자는 문장이 어렵지 않게 절로 지극해진다는 것을 논하였으니, 매우 명확한 논리이다.
수脩는 머리를 조아려 선배先輩 오군吳君 족하께 말씀드립니다.
지난번 편지와 글 세 편을 보여주셨기에 펼쳐서 읽어봄에 드넓게 펼쳐진 것이 마치 천만千萬 자의 많은 분량 같았는데, 조금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 보니 겨우 수백 자였습니다.
이는 문사文辭가 풍부하고 의사意思가 웅혼雄渾하여 막을 수 없는 분방한 기세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장님처럼 허둥대는데 아무도 앞길을 인도해주는 이가 없다고 걱정하니, 이는 학문을 좋아하는 분의 겸손한 말입니다.
나는, 재주는 시대에 쓰이기에 부족하고 벼슬은 세상에 영예롭기에 부족하고 훼예毁譽는 경중輕重이 되기에 부족하고 기력氣力은 사람을 움직이기에 부족하니, 세상에서 남의 칭찬을 빌려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남의 힘을 빌린 뒤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찌 나를 택하겠습니까.
선배께서는 학문이 정심精深하고 문장이 웅혼雄渾하니, 세상에 그것을 발휘함에 있어서도, 남의 칭찬을 빌려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남의 힘을 빌린 뒤에 진출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치 나에게 요구할 것이 있는 듯이 나의 집에 왕림하셨으니, 도道를 도모하는 데 급하여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질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학문은 애초에 도道를 위한 것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도에 이르는 자는 드무니, 도가 사람에게 먼 것이 아니라 학자가 어딘가 함닉陷溺된 곳이 있는 것입니다.
대개 문장으로 말하자면 잘 지어 남들이 좋아할 만하게 되기는 어렵고 기뻐하여 스스로 만족하기는 쉬우니,
세상의 문장을 공부하는 자들이 왕왕 여기에 함닉되어 한번 자기의 문장이 잘 지어지면 “나의 공부가 충분하다.” 하고,
심한 경우에는 모든 일을 팽개쳐 마음에 두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문사文士이니, 문장을 짓는 일만 하면 된다.”라고 하니,
이것이 문장의 도에 이르는 사람이 드문 까닭입니다.
옛날에 공자孔子가 연로해서 노魯나라에 돌아왔으니, 육경六經을 저술한 것은 몇 해의 짧은 기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역周易》을 읽는 자에게는 마치 《춘추春秋》란 책은 없는 것 같고, 《서경書經》을 읽는 자에게는 《시경詩經》이란 책은 없는 것 같으니, 어쩌면 그리도 공력을 들인 것은 적으면서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성인의 문장은 비록 우리가 미칠 수 없으나, 대저 도가 우세한 자는 문장이 어렵지 않게 절로 지극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는 분주히 다니느라 저서著書할 겨를이 없었고, 순경荀卿 또한 만년에야 저작著作이 있었으며, 자운子雲‧중엄仲淹 같은 이들은 바야흐로 노력하는 단계에서 남의 말을 모방하였으니, 이는 도는 부족하면서 억지로 말한 자들입니다.
후세의 미혹한 자들은 한갓 전대前代의 문장만을 보고 이를 전하여 학자의 문장으로 삼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노력할수록 더욱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니, 이것이 족하가 말한 “종일토록 집 안을 벗어나지 않되 마음대로 종횡縱橫 고하高下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니, 아직 문장의 도가 부족함을 말한 것입니다.
만약 도가 충족하다면 비록 천지간을 다니고 깊은 물속에 들지라도 가지 못할 데가 없을 것입니다.
족하의 글은 호탕浩蕩하고 분방하니 좋다고 할 만하고, 게다가 도를 배우는 데 뜻을 두었으되 오히려 스스로 ‘아직 넓지 못하다.’고 하니, 만약 그치지 않고 정진한다면 맹자孟子나 순경荀卿의 경지에도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도를 배웠으되 아직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좋아하는 바를 달콤하게 여기고 자신이 그친 곳에 함닉陷溺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족하가 스스로 그치지 않고 정진함을 말미암아 나도 조금이나마 진보하도록 면려할 수 있게 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