冶女之文이 令人悅眼이요 而最得體處는 在安頓魏國公上하니 以史遷之烟波로 行宋人之格調로다
仕宦而至將相하고 富貴而歸故鄕은 此人情之所榮而今昔之所同也라
蓋士方窮時에 困阨閭里하얀 庸人孺子가 皆得易而侮之하나니
若
하고 라가 一旦
에 로 旗旄導前而騎卒擁後
어든 夾道之人
이 相與駢肩累迹
하야 瞻望咨嗟
하며
而所謂庸夫愚婦者가 奔走駭汗하고 羞愧俯伏하야 以自悔罪於車塵馬足之間하니
此一介之士가 得志於當時하야 而意氣之盛을 昔人比之衣錦之榮者也라
하니 自公少時
로 登顯仕
하야 海內之士
가 聞下風而望餘光者
가 蓋亦有年矣
라
所謂將相而富貴는 皆公所宜素有니 非如窮阨之人이 僥倖得志於一時하야 出於庸夫愚婦之不意하야 以驚駭而夸耀之也라
惟德被生民而功施社稷하야 勒之金石하며 播之聲詩하야 以耀後世而垂無窮이 此公之志요 而士亦以此望於公也니 豈止夸一時而榮一鄕哉아
乃作晝錦之堂于後圃하고 旣又刻詩于石하야 以遺相人하니 其言이 以快恩讐矜名譽로 爲可薄이라
故能出入將相하야 勤勞王家而夷險一節하고 至於臨大事決大議하얀 垂紳正笏하야 不動聲色하야 而措天下於泰山之安하니 可謂社稷之臣矣로다
其豐功盛烈所以
而被絃歌者
는 乃邦家之光
이요 非閭里之榮也
라
余雖不獲登公之堂이나 幸嘗竊誦公之詩하야 樂公之志有成而喜爲天下道也일새
晝錦題는 本一俗見이어늘 而歐陽公이 却於中尋出第一層議論發明하니 古之文章家地歩如此라
前一段은 依題說起하고 後乃歸之於正하니 此反題格也라
03. 상주相州의 주금당晝錦堂에 대한 기문記文
단장한 여인과 같은 글이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하고, 가장 골자骨子를 얻은 부분은 위국공魏國公(한기韓琦)을 안배한 곳에 있으니, 사마천司馬遷의 파란波瀾 같은 문장文章으로 송인宋人의 격조格調를 행하였다.
벼슬하여 장상將相에 이르고 부귀富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인정人情이 영광으로 여기는 바로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선비가 바야흐로 곤궁할 시기에 향리鄕里에서 곤액을 당할 때에는 평범한 백성과 어린아이조차 모두 경시하고 업신여긴다.
예를 들면 계자季子가 형수에게 예우禮遇받지 못하고 매신買臣이 아내에게 버림받았다가 하루아침에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고 기치旗幟가 앞에서 인도하고 기병騎兵이 뒤에서 호위하면 길에 늘어선 사람들이 서로 빼곡히 운집하여 우러러보며 찬탄한다.
그리고 이른바 평범한 백성과 우매한 아낙은 급히 도망하며 놀라 땀을 흘리고 부끄러워하며 부복하여 수레 먼지와 말발굽 사이에서 자신의 죄를 후회한다.
이는 일개의 선비가 당시에 뜻을 얻어 의기가 성대했던 것을 옛사람들이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영광에 비유한 것이다.
오직 대승상大丞相 위국공魏國公만은 그렇지 않았다.
대대로 훌륭한 덕이 있어 당시의 명경名卿이 되었으니, 공이 어린 시절부터 이미 고과高科에 뽑혀 높은 벼슬에 올라 해내海內의 선비들이 공의 소문을 듣고 종유하기를 바란 것이 대개 또한 오래되었다.
이른바 장상將相이면서 부귀富貴하다는 것은 모두 공이 의당 평소 소유했던 바이니, 곤궁했던 사람이 요행히 한때에 뜻을 얻어 평범한 백성과 우매한 아낙이 생각지도 못했던 지위에 올라 놀라게 하고 과시하던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고아高牙‧대독大纛이 공에게 영광이 되기에 부족하고, 환규桓圭‧곤면袞冕이 공에게 귀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오직 은덕恩德이 백성에게 베풀어지고 공적이 사직社稷에 베풀어져 금석金石에 새겨지고 악가樂歌에 전파되어 후세에 빛나 무궁히 전해지는 것이 바로 공의 뜻이고, 선비들 또한 이로써 공에게 바랄 것이니, 어찌 한때에 과시하고 한 고을에 영광이 되는 데에 그칠 뿐이겠는가.
공은 지화至和 연간에 일찍이 무강군절도사武康軍節度使로 와서 상주相州를 다스렸다.
이에 뒤쪽 채마밭에 주금당晝錦堂을 만들고, 또 돌에 시를 새긴 뒤에 상주相州 사람에게 남겨주니, 시의 내용은 은혜와 원수를 속 시원히 갚고 명예를 과시하는 것은 하찮게 여길 만하다는 것이었다.
대개 옛사람이 과시하던 바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경계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서 공이 부귀富貴를 어떻게 보았는지 알 수 있으니, 공의 뜻을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조정을 나가면 장將이 되고 조정에 들어오면 상相이 되어 왕실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여 평안할 때나 위험할 때에 한결같은 지조를 지켰고, 큰 일을 만나 중대한 의론을 결정할 때에 이르러서는 띠를 드리우고 홀을 바르게 잡고서 목소리와 안색이 변하지 않고도 천하를 태산처럼 안정시켰으니 사직社稷의 신하라 이를 만하다.
공의 성대한 공렬功烈이 이정彛鼎에 새겨지고 악곡樂曲으로 연주되는 것은 바로 국가의 광영光榮이지 향리의 광영光榮이 아니다.
나는 비록 공의 주금당晝錦堂에 올라보지 못했지만 다행히 일찍이 공의 시를 외고서 공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즐거워하고 천하를 위하여 말하기를 좋아한다.
주금당晝錦堂의 제시題詩는 본래 하나의 속된 견해인데, 구양공歐陽公이 도리어 시 속에서 가장 높은 의론을 꺼내어 그 뜻을 발명하였으니, 옛 문장가의 경지가 이와 같다.
“앞의 한 단락은 주금당晝錦堂 제시題詩의 내용에 의거하여 서두를 일으켰고, 뒤에는 곧 정돈整頓으로 돌아갔으니 이것이 반제격反題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