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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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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歐公憂讒之言이라
臣伏蒙聖恩 授臣依前右正言知制誥知滁州軍州事하야 已於今月二十二日赴任訖者
謗讒始作 大喧群口而可驚이러니 誣罔終明 幸賴聖君之在上이라
하고 爲邦仍竊於安閒하니 祗荷恩榮 知感感涕로소이다
伏念臣生而孤苦하고 少則賤貧이라
同母之親 惟存一妹러니 喪厥夫而無託하야 擕孤女以來歸하니 張氏此時 生纔七歲
臣媿無蓍龜前知之識하야 不能逆料其長大所爲
在人情 難棄於路隅일새 緣臣妹하야 遂養於私室이라
方今公私嫁娶 皆行姑舅婚姻이온 況晟於臣宗 已隔再從이요 而張非己出이라 因謂無嫌이라하야
乃未 遽令出適이라
然其旣嫁五六年後 相去數千里間이라 不幸其人自爲醜穢라도 臣之耳目不能接하고 思慮不能知어늘
而言者及臣 誠爲非意
以至究窮於資産하얀 固已 若以攻臣之人惡臣之甚으로 苟罹纖過인댄 奚逭이리오 蓋荷聖明之主張하야
得免羅織之寃枉이라
然臣自蒙睿獎하야 嘗列諫垣으로 論議多及於貴權하야 指目不勝於怨怒하니 若臣身不黜이면 則攻者不休 苟令讒巧之愈多인댄 是速傾危於不保
必欲爲臣明辯인댄 莫若付於獄官이요 必欲措臣少安인댄 莫若置之閒處하야 使其脫風波而遠去하고 避陷穽之危機
雖臣善自爲謀 所欲不過如此
斯蓋皇帝陛下 推天地之賜하고 廓日月之明하야 知臣幸逢主聖而敢危言하고 憫臣不顧身微而當衆怨하야 始終愛惜하고 委曲保全이니 臣雖木石之心頑이나 實知君父之恩厚
敢不虔遵明訓하고 上體寬仁하야 永堅不轉之心하고 更勵匪躬之節이리오


02. 지저주知滁州에 제수되어 사은謝恩하여 올리는
구양공歐陽公이 참소를 근심하여 한 말이다.
신이 삼가 성은聖恩을 받으니, 신에게 예전대로 우정언右正言 지제고知制誥 지저주군주사知滁州軍州事에 제수하여 이달 22일에 부임을 마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방이 처음 일어났을 때에 뭇사람들이 크게 떠들어 놀랐는데, 터무니없는 무함誣陷이 마침내 밝혀진 것은 다행히 성군聖君께서 위에 계신 덕분이었습니다.
관직은 외람되게 청요淸要 근신近臣을 맡았고 고을은 평안한 곳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삼가 은영恩榮을 받으매 오직 감격해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태어나 부친父親을 잃고 고생하였고 어려서는 빈천했습니다.
친형제자매라고는 누이 한 사람이 있을 뿐인데 남편을 잃고 의지할 데 없어 딸을 데리고 신에게 왔으니, 그 장씨 딸은 이때 겨우 일곱 살이었습니다.
신은 부끄럽게도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豫知力이 없어 그 아이가 장성하여 무슨 일을 할지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정상 길가에 버리기 어렵기에 신의 누이 때문에 마침내 집에서 길렀습니다.
지금 공사公私간에 시집가고 장가들 때 모두 고모나 외삼촌의 자식끼리 혼인할 수 있는데, 하물며 구양성歐陽晟은 신의 종족에 있어 이미 재종再從의 거리가 있고 장씨張氏 딸은 신의 소생이 아니므로 혐의될 게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직 머리에 비녀를 지르기도 전에 시집을 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집간 지 5, 6년 뒤요 서로 거리가 수천 리나 떨어진 터라 불행히도 그 사람이 추악한 음행淫行을 하였지만, 신의 이목耳目으로 접하지 못하였고 생각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말하는 자가 신을 언급하였으니, 참으로 뜻밖입니다.
장씨 집안 재산을 갈취했다고까지 한 데 이르러서는 진실로 이미 취모멱자吹毛覓疵한 것이니, 만약 신을 공격하는 사람의 신을 몹시 미워하는 마음으로 터럭만 한 잘못에 얽어 넣는다면, 가혹한 형법을 적용하는 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성명聖明께서 주장해주신 덕분에 억울하게 죄를 받는 것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이 폐하의 장려를 받아 간원諫院에 들어간 뒤로 비판하는 말이 권귀權貴에게 많이 미쳐, 신을 지목하여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을 이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만약 신을 축출하지 않으면 공격하는 자들이 그치지 않을 것이고 간교한 참소가 더욱 많아지게 하면 국가를 보존하지 못해 위태롭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신을 위해 억울한 정상을 밝혀주고자 하신다면 옥관獄官에게 맡겨두는 것이 가장 좋고, 조금 편안한 곳에 신을 두고자 하신다면 한직閒職에 신을 두어서 풍파를 벗어나 멀리 떠나가고 위태한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신이 아무리 자신을 위해 계책을 잘 세울지라도 바라는 바는 이와 같은 데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황제 폐하께서 천지天地와 같이 큰 은덕을 미루시고 일월日月과 같이 밝은 지혜를 넓히셔서 신이 성주聖主를 만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 감히 직언直言을 했음을 아시고, 신이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뭇사람들의 원망을 받았음을 불쌍히 여기시어 시종 신을 아끼고 곡진曲盡히 신을 지켜주셨으니, 신이 아무리 목석木石처럼 둔한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실로 군부君父의 은혜가 두터움을 압니다.
감히 밝은 가르침을 경건히 따르고 위로 너그러운 인덕仁德체인體認하여, 바뀌지 않는 마음을 길이 굳게 다지고 몸을 아끼지 않는 충절을 더욱 면려하지 않겠습니까.


역주
역주1 滁州謝上表 : 景祐 2년(1035)에 歐陽脩의 妹夫 張龜正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을 여읜 구양수의 누이가 일곱 살인 딸 하나를 데리고 구양수에게 와서 의탁하였다. 그 딸은 바로 장귀정의 전처 소생이었다. 張氏 딸이 장성한 뒤 구양수가 그녀를 자기의 먼 친족 조카뻘 되는 사람인 歐陽晟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그 張氏가 후일 남편인 구양성의 男從인 陳諫과 사통하였다. 그러자 구양수의 政敵들이 이 일을 구실로 삼아 대대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리하여 權知開封府事 楊日嚴이 사건 처리를 맡은 사람을 시켜서 장씨의 供招 중에 구양수를 끌어넣어서 구양수가 장씨와 애매한 관계를 가졌고 장씨의 재산을 속여서 차지했다고 誣陷하였다. 구양수가 이 일 때문에 滁州로 좌천되었으니, 이때가 慶曆 5년(1045)이었다. 이 글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역주2 列職尙叨於淸近 : 右正言 知制誥의 직위를 가리킨다.
역주3 及笄 : 옛날에 여자는 15세가 되면 머리카락을 묶고 비녀를 지르며 시집을 갈 수 있게 하였다.
역주4 吹析於毫毛 : 터럭을 불어서 분석한다는 말로 吹毛求疵, 또는 吹毛覓疵와 같은 말이다. 《韓非子》 〈大體〉에 “옛날에 大體를 잘 아는 사람은……터럭을 불어서 작은 흠을 찾지 않고 때를 씻어서 알기 어려운 것을 살피지 않는다.[古之全大體者……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라고 하였다.
역주5 深文 : 법조문이나 형벌을 가혹하게 적용한다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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