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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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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多慷慨嗚咽之旨하니 覽之如聞
蓋祕演與曼卿遊하니 而歐陽公於曼卿識祕演하고 雖愛祕演이나 又狎之
以此篇中命意最曠而逸하야 得司馬子長之神髓矣
하야 因得盡交當世之賢豪
而智謀雄偉非常之士 無所用其能者 往往伏而不出하니 山林屠販 必有老死而世莫見者하야
欲從而求之하되 不可得이러니
其後得吾亡友石曼卿하니 曼卿爲人 廓然有大志하야 時人不能用其材하고 曼卿亦不屈以求合이라
無所放其意 則往往從布衣野老하야 酣嬉淋漓하야 顚倒而不厭하니 予疑所謂伏而不見者 庶幾狎而得之
故嘗喜從曼卿遊하야 欲因以陰求天下奇士러라
浮屠祕演者 與曼卿交最久하고 亦能遺外世俗하야 以氣節相高하야 二人懽然無所間이라
曼卿隱於酒하고 祕演隱於浮屠하니 皆奇男子也
然喜爲歌詩以自娛하니 當其極飮大醉歌笑呼以適天下之樂하얀 何其壯也
一時賢士 皆願從其遊하고 予亦時至其室이러니 十年之間 祕演北渡河하고 東之濟鄆이로되 無所合하야 困而歸하니 曼卿已死하고 祕演亦老病이라
嗟夫 二人者 予乃見其盛衰하니 則余亦將老矣리라
夫曼卿詩辭淸絶하고 尤稱祕演之作하야 以爲雅健有詩人之意러라
祕演狀貌雄傑하고 其胸中浩然하되 旣習于佛하야 無所用하고
獨其詩可行于世로되 而懶不自惜이러니 已老 胠其槖하야 尙得三四百篇하니 皆可喜者러라
曼卿死 祕演漠然無所向이러니 聞東南多山水하야 其巓崖崛峍하며 江濤洶涌 甚可壯也하고 遂欲往遊焉하니 足以知其老而志在也
於其將行 爲敍其詩하야 因道其盛時하야 以悲其衰하노라


12. 승려 비연祕演시집詩集에 대한 서문
강개慷慨하고 오인嗚咽하는 뜻이 많으니 이 서문을 봄에 격축擊筑을 듣는 것과 같다.
대개 비연祕演만경曼卿과 교유하였으니 구양공歐陽公만경曼卿을 통해 비연祕演을 알았고, 비록 비연祕演을 아꼈지만 또 거리낌 없이 대했다.
이 편 중에 우의寓意는 가장 분명하고 뛰어나 사마자장司馬子長(사마천司馬遷)의 신수神髓를 얻었다.
나는 어릴 때에 진사進士가 되어 경사京師에 와 살았기 때문에 당세의 현자‧호걸들과 모두 교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 국가가 사해四海를 통일시켜 전쟁을 종식시키고 천하를 보양保養하여 무사한 지 40년이라
지모가 있고 걸출하여 비상한 선비로 자기 재능을 펴지 못한 자가 왕왕 묻혀 세상에 나오지 못하니, 산림과 저자에 필시 늙어 죽을 때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라고 생각하고서
그러한 사람을 찾으려 하였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후에 나의 망우亡友 석만경石曼卿을 만났으니 만경曼卿의 사람됨이 확연히 큰 뜻을 지니고 있어, 당시 사람이 그의 재주를 능히 쓰지 못하였고 만경曼卿도 자신의 뜻을 굽혀 영합하려 하지 않았다.
마음을 풀 곳이 없으면 가끔씩 포의布衣야로野老들과 함께 종유하여 마음 가는 대로 술을 마시고 질탕하게 놀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싫어하지 않았으니, 나는 이른바 세상에 묻혀 드러나지 않은 사람을 친압하여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일찍이 만경曼卿과 기쁘게 사귀면서 이를 통해 천하의 빼어난 선비를 가만히 찾고자 하였다.
승려인 비연祕演만경曼卿과 교유한 지 가장 오래되었고, 또한 능히 세속을 초탈하여 지기志氣절조節操를 서로 숭상하여 두 사람이 흔연하게 틈이 없었다.
만경曼卿은 술에 의지하여 지내고 비연祕演은 불교에 의지하여 지내니 모두 기이한 남자이다.
그러나 즐겁게 가시歌詩를 지으며 스스로 즐기니 술을 많이 마셔 크게 취하여 노래하고 읊조리며 웃고 소리쳐 천하의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어쩌면 그리도 장쾌한가.
한때의 현사賢士가 모두 그들과 종유하기를 원하고 나 또한 때때로 거처를 방문하였는데, 10년 사이에 비연祕演이 북쪽으로 하수河水를 건넜고, 동쪽으로 제주濟州운주鄆州에 갔지만 뜻이 맞는 곳이 없어 지친 몸으로 돌아오니, 만경曼卿은 이미 죽고 비연祕演 또한 늙고 병들었다.
아, 두 사람은 내가 성쇠를 보았으니 나 역시 장차 늙을 것이다.
만경曼卿시사詩辭청절淸絶하고 비연祕演의 작품을 더욱 칭찬하여 고아하고 굳건하여 옛날 시인의 뜻이 있다고 하였다.
비연祕演은 모습이 웅걸하고 흉중이 더없이 넓었지만 이미 불교를 배운 터라 세상에 쓰일 데가 없었다.
다만 그의 시는 세상에 읽힐 만하였지만 천성이 게을러 스스로 아깝게 여기지 않았는데, 늙은 뒤에 시를 보관하던 주머니를 열어 오히려 3, 4백 편을 얻었으니 모두 좋아할 만한 것들이었다.
만경曼卿이 죽음에 비연祕演은 쓸쓸히 갈 곳이 없었는데, 동남쪽에 산수山水가 많아서 산들은 험준하고 강물은 넘실대는 것이 매우 장엄하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 가서 노닐고자 하였으니, 늙었지만 뜻은 그대로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가 떠나려 할 때에 그의 시에 서문을 써주면서, 그의 한창 시절을 이야기하여 그의 쇠약함을 슬퍼하노라.


역주
역주1 : 이 글은 慶曆 2년(1042)에 지은 것이다. 祕演은 宋나라 詩僧으로 蘇舜欽, 尹洙, 歐陽脩 등과 교유하였다.
역주2 擊筑 : 筑을 연주함을 이른다. 筑은 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의 일종인데, 戰國時代에 刺客 荊軻가 燕나라에 가서 筑을 잘 연주하는 高漸離와 서로 매우 친하게 지내면서 날마다 시장에서 술을 마시고 거나해지면, 高漸離는 筑을 연주하고 荊軻는 悲憤慷慨하게 노래를 불렀던 데서 온 말로, 悲憤慷慨한 노래를 뜻한다.
역주3 予少以進士遊京師 : 歐陽脩가 天聖 8년(1030)에 禮部試(進士試)에 참가하였는데, 이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역주4 國家臣一四海……以無事者 : 이때에 宋나라가 北漢을 평정하고 西夏를 복종시켰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5 (唫)[吟] : 저본에는 ‘唫’으로 되어 있으나, 본집에 의거하여 ‘吟’으로 바로잡았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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