秀才所問
은 問擧子業之文
이어늘 而歐陽公不屑論之
하고 又恐悞樂秀才所以問擧業之意
라
前者
에 舟行往來
하야 屢辱見過
하고 又辱以所業一
으로 先之
하야 及門而贄
하고 田秀才西來
에 辱書
하고 其後予家奴自府還縣
에 比又辱書
하니
이라 人所共棄
어늘 而足下見禮如此
하니 何以當之
리오
當之라도 未暇答하니 宜遂絶이어늘 而再辱書하고 再而未答하니 宜絶이어늘 而又辱之하니 何其勤之甚也아
如脩者는 天下窮賤之人爾니 安能使足下之切切如是邪아
하고 學爲詩賦
하야 以備
하야 凡
하야 與士君子相識者多
라
故往往能道僕名字하고 而又以游從相愛之私로 或過稱其文字라
僕少孤貧
하야 貪
以養親
하야 不暇就師窮經
하야 以學聖人之遺業
하고 而涉獵書史
하야 姑隨世俗
하야 作所謂
者
하니 皆穿蠹經傳
하야 移此儷彼
하야 以爲浮薄
하야 惟恐不悅于時人
이요 非有卓然自立之言
을 如古人者然
이어늘
及得第已來로 自以前所爲不足以稱有司之擧而當長者之知하야 始大改其爲하야 庶幾有立이라
然言出而罪至하고 學成而身辱하야 爲彼則獲譽하고 爲此則受禍하니 此明效也라
러니 其後風俗大變
하야 今時之士大夫所爲
가 彬彬有兩漢之風矣
라
先輩往學之면 非徒足以順時取譽而已라 如其至之면 是直齊肩於兩漢之士也라
若僕者는 其前所爲가 旣不足學하고 其後所爲가 愼不可學이라
악수재樂秀才가 물은 것은 과거 공부하는 글을 물었거늘 구양공歐陽公은 이를 논하기를 탐탁찮게 여겼고, 또 한편으로는 악수재가 과거 공부를 물은 뜻을 그르칠까 염려하였다.
그래서 ‘순시順時’ 두 글자를 제기提起하여 말해주었다.
수脩는 머리를 조아려 수재秀才 족하께 말씀드립니다.
전자에 뱃길로 왕래하면서 누차 나의 집에 들러주셨고, 또 지으신 글 한 편編을 가지고 계사啓事에 앞서 나의 집에 직접 와서 예물로 주셨으며, 전수재田秀才가 서쪽에서 오는 편에 편지를 보내주셨고, 그 후에 나의 가노家奴가 부府에서 현縣으로 돌아오는 편에 근래 또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나는 죄가 있는 사람이라 사람들이 다들 멀리하거늘 족하는 예대禮待해주심이 이와 같으니,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감당한다 하더라도 겨를이 없어 미처 답장도 보내지 못했으니 마땅히 친교親交를 끊어야 할 터이거늘 다시 편지를 보내주셨고, 다시 또 답장을 보내지 못했으니 친교를 끊어야 할 터이거늘 또 편지를 보내주셨으니, 어쩌면 그리도 지성스럽습니까.
나 같은 자는 천하의 곤궁하고 미천한 사람이니, 어찌 족하로 하여금 나를 이토록 절절하게 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족하가 힘써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이렇게 한 것일 터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은 글을 보여달라고 하시니, 나에 대한 평판을 너무 좋게 들으신 듯합니다.
나는 젊어서 진사進士를 통하여 유사有司에게 뽑혔고, 시부詩賦를 짓는 것을 공부하여 정시程試에 대비하여 무릇 세 차례 응시한 끝에 급제하여, 사군자士君子들과 서로 면식이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왕왕 나의 성명을 말하고 또 서로 교유하여 좋아하는 마음으로 혹 나의 글을 지나치게 칭찬하였습니다.
따라서 족하로 하여금 나의 허명虛名을 듣고 내가 지은 글을 보고싶어 하게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나는 어려서 아버님을 잃고 집이 가난하여 녹사祿仕를 탐내어 어머님을 봉양하느라, 스승을 찾아가 경전을 깊이 공부하여 성인의 유업遺業을 배울 겨를이 없었고, 서사書史를 대충 섭렵하여 우선 세상 사람들을 따라 이른바 시문時文이란 것을 지었으니, 모두 경전經傳을 천착하여 여기의 것을 옮겨 저기에 대우對偶를 맞추어 부박浮薄한 문장을 지으면서 오직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염려할 뿐이었고, 고인古人들처럼 우뚝이 자립自立하는 글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유사有司가 잘못 채택하여 누차 과장科場에서 많은 선비들 앞에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제한 이래로 스스로 종전에 지은 글들은, 유사에게 뽑히고 장자長者의 인정을 받기에 부족하다고 여겨, 비로소 문장 짓는 것을 크게 바꾸어 거의 수립한 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나가면 죄가 따라 이르고 학문이 이루어지면 몸은 욕을 당하여, 저것을 해서는 명예名譽를 얻고 이것을 해서는 화환禍患을 받았으니, 이는 분명한 징험徵驗입니다.
대저 시문時文은 비록 부박浮薄하고 공교工巧하다고 하나 그 공부는 또한 쉽지 않습니다.
나는 천품이 좋지 못하여 억지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세상 사람들이 지은 것에 비하면 더욱 잘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녹사祿仕를 취하고 명예를 훔칠 수 있었던 것은 시속時俗을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선배께서 나이 젊고 지기志氣가 왕성하여 세상에서 영예榮譽를 취하고 싶어 하시니, 그렇다면 시속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천성天聖 연간에 천자께서 조서詔書를 내려 학자들에게 부화浮華한 글을 짓지 못하도록 신칙申飭하시니, 그 후로 풍속이 크게 변하여 지금 사대부들이 지은 글은 찬연燦然하게 양한兩漢의 문풍文風이 있습니다.
선배께서 가서 이를 배우시면 시속을 따라 영예를 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곧바로 양한兩漢의 선비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나 같은 자는, 예전에 지은 글은 이미 배울 만한 것이 못 되고, 그 후에 지은 것은 조심하여 배우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감히 지은 글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주역周易》 곤괘困卦에 이르기를 “말을 하면 믿지 않으리라.”라고 하였으니, 사람이 바야흐로 곤궁할 때에는 그 말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곤궁하다 할 만하니, 어찌 내 말을 족하가 믿어주시겠습니까.
편지를 이미 많이 보내주셨고 또 말씀이 간절하시기에 감히 답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양찰諒察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