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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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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元珍之爲智高所敗一節 歐公所最憐이라
故其論捄如此
觀王荊公誌銘 尤可涕
右臣竊見太常丞湖州監酒務丁寳臣 前任知端州日 因遭儂智高事停官하고 敍理이라
方智高攻劫嶺南하야 州縣例以素無備禦 官吏各至犇逃
兼聞當時獨寶臣 曾捉得智高探事人하야 便行斬決하고 及曾鬪敵하니
朝廷以其如此 故他人皆奪兩官하고 獨寶臣只奪一官하니 以此見其比衆人情理之輕이라
臣伏見寶臣 履行淸純하야 頗有官業이로되
惟海賊遽至 力屈致敗 出於不幸이라
今者伏遇祫享恩赦 欲望聖慈特與不候監當滿任하고 牽復官資하야 就移一親民差遣하소서
如後犯이면 臣甘當同罪하리이다
謹具奏聞하고 伏候勅旨하노이다


07. 정보신丁寶臣을 천거하는
정원진丁元珍농지고儂智高에게 패한 한 가지 일은 구양공歐陽公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글을 올려 그를 구제하려 했던 것이다.
왕형공王荊公(王安石)이 지은 묘지명을 보면 더욱 눈물을 흘릴 만하다.
신은 삼가 보건대 태상승太常丞 호주감주무湖州監酒務 정보신丁寶臣전임前任 지단주知端州로 있을 때 농지고儂智高의 일을 만남으로 해서 정직停職되고 감당監當의 사무를 관리하는 직책에 임명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농지고가 영남嶺南을 공격할 때 주현州縣은 으레 평소 대비가 없었기 때문에 관리들이 저마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아울러 듣건대 당시에 유독 정보신만이 농지고가 정탐하러 보낸 사람을 사로잡아서 곧바로 참수하였고 적군과 싸웠습니다.
조정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주현의 다른 관리들은 모두 두 자급을 강등시키고 정보신만은 단지 한 자급만 강등시켰던 것이니, 이로써 다른 사람에 비해 정상이 가벼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은 삼가 보건대 정보신丁寶臣은 평소 행실이 청렴하고 순수하여 자못 관리로서의 업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해적海賊이 갑자기 들이닥쳐 힘이 다해 패전한 것은 그의 불행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제 삼가 협향祫享은사恩賜를 만난 즈음에, 바라건대 성상께서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감당監當의 임기가 차기를 기다리지 말고 다시 본래의 관작을 회복시켜 한 지방관 자리로 옮겨 차견差遣하소서.
만약 이후에 수뢰죄受賂罪를 범하면 신이 기꺼이 같은 죄를 받을 것입니다.
삼가 갖추어 아뢰고 엎드려 칙지勅旨를 기다립니다.


역주
역주1 擧丁寶臣狀 : 이 글은 仁宗 嘉祐 4년(1095)에 지어졌다. 丁寶臣은 자가 元珍이고 晉陵 사람이다. 형 宗臣과 함께 문장이 뛰어나 二丁이라 불렸다. 景祐 연간(1034~ 1037)에 進士試에 합격하였고 벼슬이 秘書閣校理에 이르렀다. 英宗이 인물을 논할 때면 칭찬하였고 歐陽脩와 친하였다. 《宋史》에는 그의 傳이 없다.
역주2 監當 : 宋代에 차, 소금, 술 등의 세금을 거두고 철물을 주조하는 등의 일을 관리하는 지방관이다. 《宋史 職官志》
역주3 入己贓 : 뇌물을 받은 죄, 즉 受賂罪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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