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史公
가 爲絶佳
나 而歐公職方論
이 似勝
하니 須千百
이라야 始得之
라
嗚呼라 自三代以上으로 莫不分土而治也러니 後世鑒古矯失하야 始郡縣天下나
而自秦漢以來로 爲國孰與三代長短이리오 及其亡也하얀 未始不分하고 至或無地以自存焉이라
蓋得其要則雖萬國而治요 失其所守則雖一天下라도 不能以容이니 豈非一本於道德哉아
나 而其勢未分
이러니 旣其衰也
엔 置軍節度
하야 號爲方鎭
하니 鎭之大者
는 連州十餘
요 小者
도 猶兼三四
라
故其兵驕則逐帥하고 帥彊則叛上하야 土地爲其世有하고 干戈起而相侵하니 天下之勢가 自玆而分이라
然唐自中世로 多故矣라 其興衰救難을 常倚鎭兵扶持하고 而侵凌亂亡도 亦終以此하니 豈其利害之理然歟아
自僖昭以來로 日益割裂이러니 梁初에 天下別爲十一하야 南有吳浙荊湖閩漢하고 西有岐蜀하고 北有燕晉하고 而朱氏所有七十八州以爲梁이러라
初起幷代
하야 取幽滄
하야 有州三十五
하고 其後又取梁魏博等十有六州
하야 合五十一州
하야 以滅梁
이라
稱臣
에 又得其州七
하고 하야 惟得秦鳳階成四州
하고 而營平二州
는 陷于契丹
하고 其增置之州一
이라 合一百二十三州
하야 以爲唐
하다
하야 獻十有六州于契丹而得蜀金州
하고 又增置之州一
이니 合一百九州
하야 以爲晉
하다
之初
에 하고 隱帝時
에 增置之州一
이니 合一百六州
하야 以爲漢
하다
에 十州入于
하고 取秦鳳階成瀛莫及淮南十四州
하고 又增置之州五而廢者三
이니 合一百一十八州
하야 以爲周
하다
其餘外屬者
는 彊弱相幷
하야 不常其得失
이라 至于周末
하야 하고 而在者七國
이라
自江以下二十一州爲南唐
이며 自劍以南及山南西道四十六州爲蜀
이며 自湖南北十州爲楚
며 自浙東西十
州爲吳越
이며 自
南北四十七州爲南漢
이며
自太原以北十州爲東漢
이며 而荊歸陝三州爲南平
이니 合中國所有
하야 二百六十八州
요 而
不在焉
이라
五代亂世
에 文字不完
하야 而時有廢省
하고 又或陷于夷狄
이로되 不可考究其詳
하니 其可見者
는 라
태사공太史公의 제왕표諸王表의 서문序文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우나 구양공歐陽公의 〈직방고론職方考論〉이 더 나은 듯하니, 천백千百개의 척안隻眼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지을 수 있다.
오호라! 삼대三代 이상으로는 제후에게 땅을 분봉分封하여 나라를 다스리지 않음이 없었는데, 후세에는 옛일을 거울삼아 잘못을 시정하느라 비로소 천하에 군현제郡縣制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래로 어느 국가가 삼대三代 시절과 장단長短을 따져볼 수 있겠는가. 나라가 망할 때에는 분열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혹 자신의 몸을 둘 땅조차 없기까지 하였다.
대개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를 얻으면 비록 만국萬國이라도 잘 다스려질 것이고 지켜야 할 원칙을 잃으면 비록 천하를 통일하더라도 용납될 곳이 없으리니, 어찌 일체 도덕道德에 근본을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唐나라가 흥성할 때는 비록 천하를 10도道로 호칭하였으나 그 형세는 분열되지 않았는데 쇠약해지고 나서는 절도사를 두어서 방진方鎭이라 불렀으니, 방진 중에서 큰 것은 10여 개 주州를 연이었고 작은 것도 서너 개는 아울렀다.
그러므로 그 병사들이 통제를 벗어나면 장수를 쫓아냈고, 장수의 세력이 강성하면 조정을 배반하여 토지가 대대로 그의 소유가 되고 군사를 일으켜 서로 침범하니, 천하의 형세가 이로부터 분열되었다.
그러나 당나라는 중기中期부터 변고가 많았으므로 쇠잔한 국세國勢를 중흥中興하고 곤란한 상황을 구제하는 일을 항상 방진 병력의 도움에 의지하였고 침범 당해 능욕을 받고 난리 속에 멸망한 일 또한 마침내 이 때문이었으니, 어쩌면 그 이해利害의 이치가 그러한 것인가?
희종僖宗과 소종昭宗 이래로 날이 갈수록 나라가 더욱 분열되었는데, 양梁나라 초에 천하가 11개로 나뉘어 남쪽에는 오吳, 절浙, 형荊, 호湖, 민閩, 한漢이 있고 서쪽에는 기岐, 촉蜀이 있고 북쪽에는 연燕, 진晉이 있었으며, 주씨朱氏가 차지한 78주州가 양梁나라가 되었다.
장종莊宗은 처음 병주幷州와 대주代州에서 일어나 유주幽州와 창주滄州를 차지하여 35개 주州를 소유하였고, 그 후에 또 양梁나라의 위주魏州와 박주博州 등 16주州를 차지하여 도합 51주州를 소유하여 양나라를 멸망시켰다.
기왕岐王이 칭신稱臣하자 또 그 일곱 주州를 얻었고 동광同光 연간(923~926)에 촉蜀을 정복했다가 얼마 뒤 다시 잃고서 오직 진주秦州와 봉주鳳州와 계주階州와 성주成州의 4주州만을 얻었고 영주營州와 평주平州의 2주州는 거란契丹에 빼앗겼고, 증설增設한 주州는 하나였다. 그리하여 도합 123주州가 당唐나라(후당後唐)가 되었다.
석씨石氏가 경사京師에 들어와 즉위하여 거란契丹에 16주州를 바치고 촉蜀의 금주金州를 얻었으며, 또 증설增設한 주州가 하나이니, 도합 109주가 진晉나라가 되었다.
유씨劉氏의 초기에 진주秦州와 봉주鳳州와 계주階州와 성주成州가 다시 촉蜀에 들어가고, 은제隱帝 때 증설增設한 주州가 하나이니 도합 106주州가 한漢나라가 되었다.
곽씨郭氏가 한漢나라를 대신할 때 10주州가 유민劉旻에게 들어갔고, 세종世宗은 봉주鳳州와 계주階州와 성주成州와 영주瀛州와 막주莫州 및 회남淮南의 14주州를 취하고 또 증치增置한 주州가 다섯이고 없앤 주가 셋이니 도합 118주가 주周나라가 되었다.
송宋나라가 일어나서 이를 그대로 이어받으니, 이것이 중국中國의 대략이다.
그 나머지 중국 밖의 나라들은 강자가 약자를 병탄幷呑하여 그 득실이 일정하지 않았다. 주周나라 말기에 이르러 민閩이 먼저 망하고 남은 것은 일곱 나라였다.
양자강揚子江 이하 21주州가 남당南唐이고, 검각劍閣으로부터 남쪽 및 산남山南의 서도西道 46주州는 촉蜀이고, 동정호洞庭湖로부터 남북쪽 10주州는 초楚이고, 절강浙江으로부터 동서쪽 13주州는 오월吳越이고, 오령五嶺으로부터 남북쪽 47주州는 남한南漢이고,
태원太原으로부터 북쪽 10주州는 동한東漢이며, 형주荊州와 귀주歸州와 섬주陝州 3주州는 남평南平이니, 중국이 소유한 지역을 합하여 268주州이고 군軍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唐나라의 변경은 먼 지역에 있었으니 전대의 역사에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으나 기미주羈縻州와 기치寄治 등의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주州가 그 가운데 들어 있었다.
오대五代의 난세亂世에는 기록이 온전하지 못하여 때로 없어진 곳도 기재되어 있고 또 오랑캐에게 함락된 지방도 있었지만 상세한 실정을 상고하여 알 수 없으니, 알 수 있는 것은 도보圖譜와 같이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