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祐二年
에 龍圖閣直學士 尙書吏部郞中
이 出守于杭
할새 於其行也
에 天子寵之以詩
라
於是에 始作有美之堂하니 蓋取賜詩之首章而名之하야 以爲杭人之榮이라
故窮山水登臨之美者는 必之乎寬閑之野寂寞之鄕而後에 得焉하고 覽人物之盛麗하며 夸都邑之雄富者는 必據乎四達之衝舟車之會而後에 足焉이라
蓋彼放心於物外하고 而此娛意於繁華하야 二者各有適焉이라
今夫所謂羅浮天台衡岳廬阜와 洞庭之廣과 三峽之險은 號爲東南奇偉秀絶者어늘 乃皆在乎下州小邑僻陋之邦하니 此幽潜之士窮愁放逐之臣之所樂也요
若乃四方之所聚와 百貨之所交에 物盛人衆하야 爲一都會하고 而又能兼有山水之美하야 以資富貴之娛者는 惟金陵錢塘이라
러니 及聖宋受命
에 海內爲一
하얀 라 今其江山雖在
나 而頹垣廢址
에 荒烟野草
를 過而覽者
가 莫不爲之躊躇而悽愴
이라
今其民이 幸富完安樂하고 又其俗習工巧하야 邑屋華麗가 蓋十餘萬家요 環以湖山하야 左右映帶하고
而
의 風帆浪舶
이 出入於江濤浩渺烟雲杳靄之間
하니 可謂盛矣
라
而臨是邦者는 必皆朝廷公卿大臣若天子之侍從이요 又有四方遊士가 爲之賓客이라
然其於所取가 有得於此者는 必有遺於彼로되 獨所謂有美堂者는 山水登臨之美와 人物邑居之繁을 一寓目而盡得之라
蓋錢塘이 兼有天下之美하고 而斯堂者又盡得錢塘之美焉하니 宜乎公之甚愛而難忘也로다
梅公은 淸愼好學君子也라 視其所好에 可以知其人焉이로다
흉차가 맑고 넓어 시원스럽기가 고금에 으뜸이다.
가우嘉祐 2년에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상서이부낭중尙書吏部郞中 매공梅公이 외직으로 나가 항주杭州 수령이 되었는데, 그가 임지로 갈 때에 천자가 총애하여 시를 하사하였다.
이에 비로소 유미당有美堂을 지으니, 대개 하사받은 시 첫 장의 말을 가지고 명명하여 항주杭州 사람들의 영광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공公이 이 당을 몹시 아꼈기에 비록 항주杭州를 떠났지만 잊지 못하였다.
올해 금릉金陵에서 사람을 경사京師로 보내 나에게 기문記文을 써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가 예닐곱 번 청하면서도 지치지 않거늘, 내가 그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저 천하의 지극히 아름다운 것과 즐거운 것을 들어서 말해본다면 둘 다 아울러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산에 오르고 물에 임하는 아름다움을 궁구窮究하는 자는 반드시 한가한 들과 적막한 마을로 간 뒤에 얻고, 인물人物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고 도읍의 웅장하고 부유함을 과시하는 자는 반드시 사통팔달한 길과 배와 수레가 모이는 곳에 거주한 뒤에 만족한다.
대개 저들은 물외物外에 마음을 풀어놓고 이들은 번화繁華함에 마음을 즐거워하여 두 사람이 각각 뜻에 맞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둘 다 아울러 가지지는 못한다.
지금 저 이른바 나부산羅浮山, 천태산天台山, 형산衡山, 여산廬山과 드넓은 동정호洞庭湖와 험준한 삼협三峽은 동남쪽에서 기이하고 수려하다고 일컬어지건만 이에 모두 하주下州와 소읍小邑으로 궁벽하고 누추한 지방에 있으니, 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선비와 찬축竄逐되어 곤궁하게 사는 신하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사방이 모이는 곳과 온갖 재화가 교역되는 곳에 물산이 풍성하고 사람이 많아 하나의 도회지를 이루고, 게다가 산수山水의 아름다움까지 겸하여 부귀한 이들이 즐길 만한 곳이 되는 고을은 오직 금릉金陵과 전당錢塘뿐이다.
그러나 이 두 고을은 모두 난세에 적도들에게 빼앗겼는데, 우리 송宋이 천명天命을 받아 해내海內가 통일됨에 이르러서는 금릉金陵은 후주後主가 독을 먹고 주륙誅戮을 당하였는지라, 지금 강산江山은 비록 남아 있지만 무너진 담과 폐허가 된 땅에 연무와 들풀을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들이 서성이며 서글퍼하지 않는 이가 없다.
오직 전당錢塘만은 오대五代시대부터 중국을 존중하여 신하로 순종하는 직분을 다할 줄 알았는데, 망함에 이르러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명령을 청하여 굳이 간과干戈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 지금 그곳의 백성들이 다행히 부유하고 안락하며 또 습속이 공교工巧로워 화려한 고을의 가옥이 대개 10여만 가家나 되고, 고을이 호산湖山으로 둘러싸여 좌우에 경치가 아름답다.
그리고 민주閩州의 장사치와 해상무역을 하는 자들의 돛단배와 선박들이 넘실대는 강물결과 자욱한 연무煙霧 사이를 출입하니 성대하다 이를 만하다.
이 고을에 부임한 자들은 반드시 모두 조정의 공경대신公卿大臣 및 천자의 시종신侍從臣이었고, 또 세상에 노니는 선비들이 찾아왔다.
그러므로 승경지勝景地를 점유하여 정각亭閣과 대사臺榭를 짓고서 함께 노닐며 바라보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선택에 따라 이것을 얻을 경우 반드시 저것을 버려야 하는데, 이른바 유미당有美堂만은 산을 오르고 물에 임하는 아름다움과 인물人物과 주택의 번화함을 한눈에 모두 볼 수 있다.
대개 전당錢塘이 천하의 아름다움을 겸유했고, 이 유미당有美堂은 게다가 전당錢塘의 아름다움까지 모두 얻었으니, 공이 몹시도 아껴 잊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매공梅公은 청렴하고 신중하며 학문을 좋아하는 군자인지라 그가 좋아하는 바를 봄에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9층 누대를 쌓을 때 한 층 한 층 높아지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뛰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