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之卓然不惑而有力者莫不欲去之로되 已嘗去矣而復大集이라
攻之暫破而愈堅하고 撲之未滅而愈熾하야 遂至於無可奈何하니 是果不可去邪아
夫醫者之於疾也에 必推其病之所自來而治其受病之處하나니
病之中人이 乘乎氣虛而入焉이면 則善醫者不攻其疾하고 而務養其氣하니 氣實則病去가 此自然之效也라
故救天下之患者는 亦必推其患之所自來而治其受患之處라
堯舜三代之際에 王政修明하고 禮義之敎가 充於天下하니 於此之時에 雖有佛이라도 無由而入이러니
及三代衰하야 王政闕하고 禮義廢하니 後二百餘年에 而佛至乎中國이라
由是言之컨대 佛所以爲吾患者는 乘其闕廢之時而來니 此其受患之本也라
補其闕하고 修其廢하야 使王政明而禮義充하면 則雖有佛이라도 無所施於吾民矣니 此亦自然之勢也라
昔堯舜三代之爲政에 設爲井田之法하야 籍天下之人하야 計其口而皆授之田하니
凡人之力能勝耕者
는 莫不有田而耕之
하고 斂以什一
하되 하야 以督其不勤
하야 使天下之人
으로 力皆盡於
而不暇乎其他
라
於是
에 爲制牲牢酒醴以養其體
하고 하야 以悅其耳目
하고 於其不耕休力之時
에 而敎之以禮
라
故因其田獵而爲
하며 因其嫁娶而爲婚姻之禮
하며 因其死葬而爲喪祭之禮
하며 因其飮食群聚而爲
라
非徒以防其亂이요 又因而敎之하야 使知尊卑長幼하니 凡人之大倫也라
飾之物采而文焉이라 所以悅之하야 使其易趣也요 順其情性而節焉이라 所以防之하야 使其不過也라
故上自
로 下至
히 莫不有學
하야 擇民之聰明者而習焉
하야 使相告語而誘勸其愚惰
하니 嗚呼
라
蓋
三代之爲政
이 如此
하야 其慮民之意
가 甚精
하고 治民之具
가 甚備
하고 防民之術
이 甚周
하고 誘民之道
가 甚篤
하니 行之以勤而被於物者洽
하고 浸之以漸而入於人者深
이라
故民之生也
에 不用力乎南畝
면 則從事於禮樂之際
하고 不在其家
면 則在乎
之間
하니 耳聞目見
이 無非仁義
라
樂而趣之에 不知其倦하여 終身不見異物이어니 又奚暇에 夫外慕哉리오
及周之衰하야 秦幷天下에 盡去三代之法하야 而王道中絶하니 後之有天下者가 不能勉强하야 其爲治之具가 不備하고 防民之漸이 不周라
佛於
時
에 乘間而出
하야 千有餘歲之間
에 佛之來者日益衆
하고 吾之所爲者日益壞
라
井田最先廢而兼幷游惰之姦起하고 其後所謂蒐狩婚姻喪祭鄕射之禮凡所以敎民之具가 相次而盡廢라
然後에 民之姦者는 有暇而爲他하고 其良者는 泯然不見禮義之及己라
夫姦民有餘力이면 則思爲邪僻하고 良民不見禮義면 則莫知所趣라
佛於此時에 乘其隙하야 方鼓其雄誕之說而牽之하니 則民不得不從而歸矣어든
又況王公大人이 往往倡而敺之曰 佛是眞可歸依者라하니 然則吾民何疑而不歸焉이리오
吾將操戈而逐之라하고 又曰 吾將有說以排之라하니 夫千歲之患이 徧於天下하니
豈一人一日之可爲
리오마는 民之沈
入於骨髓
하니 非口舌之可勝
이라
昔戰國之時
에 交亂
이어늘 孟子患之
하야 而專言仁義
라
今八尺之夫가 被甲荷戟하야 勇蓋三軍이나 然而見佛則拜하고 聞佛之說則有畏慕之誠者는 何也오
一介之士
가 然柔懦
하야 進趨畏怯
이나 然而聞有道佛者
면 則義形於色
하야 非徒不爲之屈
이요 又欲驅而絶之者
는 何也
오
彼無他焉이라 學問明而禮義熟하야 中心有所守以勝之也라
今一介之士知禮義者도 尙能不爲之屈하니 使天下皆知禮義면 則勝之矣니 此自然之勢也라
佛之所以能入爲中國之
者
는 固由王道之衰
니 而歐陽公所謂修其本以勝之
가 是也
라
然達磨以下로 彼固有一片直見本性之超卓處라 故能驅天下聰明穎悟之士하야 而宗其敎어늘 歐陽公於佛氏之旨에 猶多糢糊하니
而所謂修其本以勝之는 恐非區區禮文之習而行之之所能勝也라
聖人在上而斯道大明乎天下하야 天下之士家喩而戶曉於聖人之敎然後에 佛之見解自息耳니
의론이 정대正大하고 대체大體의 핵심을 알았다.
불법佛法이 중국의 우환憂患이 된 지가 천여 년입니다.
세상에 우뚝이 서서 미혹되지 않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를 제거하고자 하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이미 제거되었다가도 다시 크게 모입니다.
잠시라도 공격을 그만두면 더욱 견고해지고 완전히 박멸하지 않으면 더욱 치성하여 마침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이 과연 제거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무릇 의원이 병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서 그 병통이 생기게 된 근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병이 사람에게 파고든 것이 기氣가 허한 틈을 타고 들어왔으면 치료를 잘하는 의원은 그 병을 공격하지 않고 그 기氣를 기르기를 힘쓰니, 기氣가 충실하면 병이 제거되는 것은 자연적인 공효입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우환을 구제하는 자 역시 반드시 우환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서 그 우환이 생기게 된 근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부처는 오랑캐라 그 나라는 중국과의 거리가 매우 멀고 부처가 있은 지도 진실로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요순堯舜과 삼대三代 시대에는 왕정王政이 환하게 닦이고 예의禮義의 가르침이 천하에 충만하였으니, 이때에는 비록 불교가 있다 하더라도 들어올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삼대三代가 쇠퇴해지자 왕정王政이 잘못되고 예의禮義가 무너졌는데, 그 뒤 200여 년 만에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말해보면, 불교가 우리의 우환이 되는 것이 잘못되고 무너진 때를 틈타 들어왔으니, 이것이 우환이 생기게 된 근원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수하고 무너진 것을 수리하여 왕정王政이 밝아지고 예의禮義가 충만하게 하면, 아무리 불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백성들에게 베풀 곳이 없을 것이니, 이 또한 자연적인 형세입니다.
옛날 요순堯舜과 삼대三代의 임금이 정사를 다스릴 때에는 정전법井田法을 설행設行하여 천하 사람을 등재하여 그 식구를 계산하여 모두 전지田地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경작할 힘이 있는 사람은 모두 전지가 있어 경작하지 않는 자가 없고, 10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두되 그 부세賦稅에 차등을 두어서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을 독책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남묘南畝에 온 힘을 쏟고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고생하다 보면 장차 태만해져서 삿된 데 빠질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에 희생犧牲과 술과 예주醴酒를 만들어 그 신체를 기르고, 악기樂器와 예기禮器를 만들어 그 이목耳目을 즐겁게 하고, 경작하지 않고 쉬는 농한기에는 예禮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냥으로 인하여 수수蒐狩의 예禮를 만들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로 인하여 혼인婚姻의 예禮를 만들고, 죽으면 장사 지내는 일로 인하여 상제喪祭의 예禮를 만들고,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일로 인하여 향사鄕射의 예禮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으로 그 어지러움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인하여 예禮를 가르쳐서 존비尊卑와 장유長幼의 차서를 알게 하였으니, 모두 인간의 대륜大倫입니다.
그러므로 산 자를 봉양하고 죽은 자를 장송葬送하는 법도를 모두 인간의 본능에 따라 제정하였습니다.
채색으로 장식하여 문채 나게 하였으므로 이를 좋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나아가도록 하였고, 본성에 맞게 조절하였으므로 이를 방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부족할까 두려워하여 또 학교를 세워서 이를 강구하고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위로 천자天子의 교郊로부터 아래로 향당鄕黨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없는 곳이 없어서, 백성들 가운데 총명한 이들을 뽑아 이를 강습시켜 서로서로 타이르고 얘기하여 어리석고 나태한 자들을 인도하고 권면하도록 하였으니, 아!
대개 요순堯舜과 삼대三代의 정사가 이와 같아서 그 백성을 염려하는 뜻이 몹시 정치精緻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도구가 몹시 구비되었으며, 백성을 방비하는 기술이 몹시 주밀周密하고 백성을 인도하는 방도가 몹시 독실篤實하였으니, 부지런하게 행하여 사물에 끼친 은택恩澤이 흡족하고, 점차적으로 적셔 사람에게 스민 은택이 깊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남묘南畝에 힘을 쓰지 않을 때에는 예악禮樂에 종사하고, 집에 있지 않을 때에는 상서庠序에 있었으니,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인의仁義가 아님이 없었습니다.
피곤한 줄도 모른 채 즐거이 나아가느라 종신토록 다른 일은 보지도 못하니, 또 어느 겨를에 저 외물外物을 사모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비록 불교佛敎가 있다 하더라도 들어올 길이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이러한 도구가 있었기 때문임을 이릅니다.
주周나라가 쇠퇴해짐에 미쳐 진秦나라가 천하를 병합하면서 삼대三代의 법을 모두 제거하여 선왕先王의 도道가 끊어졌는데, 후세의 천하를 소유한 자가 힘을 쏟지 못하여 그 정치를 하는 도구가 구비되지 못하고 백성을 방비하는 점화漸化가 주밀하지 못하였습니다.
불교가 이때 틈을 타고 나와서 천여 년 동안 불법佛法이 들어오는 것은 날로 더욱 많아지고 우리가 하는 일은 날로 더욱 무너졌습니다.
정전법井田法이 가장 먼저 폐지되었는데 남의 땅을 겸병兼幷하고 방탕 나태한 간악함이 일어났으며, 그 뒤로 이른바 수수蒐狩ㆍ婚姻ㆍ喪祭ㆍ鄕射의 예禮인 백성을 가르치는 도구들이 줄줄이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그런 뒤에 백성들 가운데 간악한 자는 겨를이 생겨 딴짓을 하고, 선량한 자는 예의禮義가 자기에게 미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하였습니다.
무릇 간악한 백성에게 여력餘力이 있으면 삿된 짓 하기를 생각하고, 선량한 백성이 예의禮義를 보지 못하면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불교佛敎가 이때 그 빈틈을 타고 들어와 그 과장되고 허탄한 설법說法을 늘어놓으며 이들을 끌어들이니, 백성들이 따라가 귀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더구나 왕공王公 대인大人이 왕왕 앞장서서 내몰며 “부처님은 참으로 귀의할 만한 분이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우리 백성들이 무엇을 의심하여 귀의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조금도 미혹되지 않는 자가 있어 버럭 성을 내며 “부처가 뭐하는 자인가!
내 장차 창을 잡고 쫓아내리라.”라고 하고, 또 “내 장차 설파하여 물리치리라.”라고 하니, 천 년의 우환憂患이 온 천하에 퍼졌습니다.
어찌 한 개인이 할 수 있고 하루아침에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백성들이 골수에 파고들 정도로 깊이 취하였으니, 구설口舌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근본을 닦아서 이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옛날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함께 어지럽혔는데, 맹자孟子가 이를 근심하여 오로지 인의仁義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의仁義의 설이 우세하면 양주‧묵적의 학설이 사라집니다.
한漢나라 시대에 백가百家가 동시에 창성하였는데 동생董生이 이를 근심하여 물러나 공자孔子의 도道를 닦았습니다.
그러므로 공자의 도가 밝으면 백가가 종식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그 근본을 닦아서 이기는 공효입니다.
지금 8척 장부가 갑옷을 입고 창을 잡아 용맹이 삼군三軍을 압도하지만, 그런데도 불상佛像을 보면 절을 하고 불교佛敎의 설법을 들으면 경외하고 사모하는 정성이 있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저가 진실로 장대하고 훤칠하지만, 그 중심中心에 아무것도 지키는 바가 없어서 그러한 것입니다.
한낱 선비가 보잘것없이 나약하여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만, 그런데도 불법佛法을 말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들으면 의기義氣를 낯빛에 드러내며 굽히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게다가 몰아내어 끊어버리고자 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저것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이 밝고 예의禮義가 익숙하여 중심中心에 지키는 바가 있어서 이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의禮義는 불교를 이기는 근본입니다.
지금 예의禮義를 아는 한낱 선비조차도 오히려 굽히지 않는데, 가령 천하가 모두 예의禮義를 알면 불교를 이길 것이니, 이것은 자연스러운 형세입니다.
불교가 들어와 중국의 적치赤幟가 된 까닭은 진실로 왕도王道가 쇠퇴하였기 때문이니, 구양공歐陽公의 이른바 “그 근본을 닦아 이겨야 한다.[修其本以勝之]”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달마達磨 이하로 저들에게 진실로 본성本性을 직견直見한 하나의 뛰어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천하의 빼어나게 총명한 선비들을 몰아 불교를 높이도록 할 수 있었는데, 구양공歐陽公은 불씨佛氏의 뜻에 대해 오히려 모호한 점이 많다.
이른바 “그 근본을 닦아 이겨야 한다.”라고 한 것은 아마도 구구區區한 예문禮文을 익히고 행하는 것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성인聖人이 위에 있어 사도斯道가 크게 천하에 밝아져 천하의 선비들이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집집마다 깨우쳐준 뒤에야 불교의 견해가 절로 종식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자程子의 이른바 “음탕한 음악音樂과 아름다운 미색美色”에 빠지지 않을 자 드물 것이니, 그 어떻게 이를 멀리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