秀才生於衡山之陽하야 而秀麗之精英者를 得之尤多라
遂遊公卿間하니 所至에 無不虛館設席하야 爭以禮下之러라
初其鎭
也
에 請君與俱行
하야 하니 則西方士君子得以承望乎風采矣
라
予嘗以
로 客都中
하야 하야 辱之以友益
하고 에 獲餞於國門
이러니
及夫斯來에 又相見於洛하야 道語故舊하고 數日乃行하니라
09. 형산衡山으로 돌아가는 요의廖倚를 보내는 서문
원기元氣가 모여 맺힌 것이 산천山川이 되고 산천 가운데 수려한 것으로는 형산衡山과 상수湘水를 일컫는다.
거기서 피어올라 구름과 무지개가 되고 거기서 자라나서 기재杞梓가 되며 사람은 그 속에 살면서 이를 얻어 준걸이 된다.
요수재廖秀才는 형산衡山의 남쪽에서 태어나 수려한 정기精氣를 받은 것이 더욱 많았다.
그래서 그 문장은 구름과 무지개 같고 그 재주는 기재杞梓 같았다.
처음에 향진사鄕進士로 유사有司에게 천거되어 〈과거 시험을 치렀는데〉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공경公卿들과 종유하니 이르는 곳마다 모두 머물 곳을 비워두고 자리를 마련하고서 다투어 그를 예우하였다.
지금 영흥永興의 태원공太原公은 고아한 식견에 진중하고 정직한데 요군廖君을 매우 깊이 인정하였다.
당초에 그가 진주秦州를 맡아 다스리게 되었을 적에 요군廖君에게 함께 가자고 청하여 마침내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경사京師를 유람하니 서쪽 지방의 사군자士君子들이 그의 풍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진주秦州에 거주한 지 몇 해 지나 동쪽으로 가면서 경사京師에 들렀다가 돌아가려고 하였다.
내가 일찍이 상계上計의 임무를 띠고 경사에서 잠시 머물면서 교규交逵에서 요군廖君을 알게 되어 그를 벗으로 사귀었고 요군廖君이 서쪽으로 돌아가게 되자 국문國門에서 전별餞別을 하였다.
그랬는데 지금 이렇게 그가 오게 되어, 또 낙양에서 만나 옛 정을 이야기하고 며칠을 보낸 뒤 떠나갔다.
산천山川이 본디 기이한 사물을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품고 있을 수 없는 것은 참으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점이 있어서이다.
지금 요군廖君이 〈형산衡山으로〉 떠나가는데 나는 그가 형산의 기슭에 오래도록 품겨 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