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學은 所係甚小로되 歐陽公立意는 恰好出脫自家門面이라
는 工於爲弓而不能射
하고 은 天下之善射者也
며 은 工於爲車而不能御
하고 는 天下之善御者也
라
然至其曲而暢之하야 以通天下之理하고 以究陰陽天地人鬼事物之變化와 君臣父子吉凶生死凡人之大倫하얀 則六經不能盡其說하고 而七十子與孟軻荀楊之徒가 各極其辯이라도 而莫能殫焉이라
夫以孔子之好學으로도 而其所道者는 自堯舜而後則詳之하고 其前蓋略而弗道하니 其亦有所不暇者歟인저
儒之學者는 信哉遠且大而用功多하니 則其有所不暇者宜也라
其爲精也
에 有聲形曲直毫釐之別
과 音響淸濁相生之類
와 五方言語風俗之殊
라 故儒者莫暇精之
하니 면 則往往不能乎其他
라
是以로 學者莫肯捨其所事而盡心乎此하니 所謂不兩能者也라
洛僧鑒聿이 爲韻總五篇하야 推子母輕重之法하야 以定四聲하야 考求前儒之失하며 辯正五方之訛하니 顧其用心之精이 可謂入於忽微라
若櫛者之於髮과 績者之於絲에 雖細且多而條理不亂하니 儒之學者가 莫能難也라
鑒聿通於易
하야 能知
하고 又學乎陰陽地理
하되 其尤盡心者
는 韻總也
라
少爲浮圖하야 入武當山하고 往來江漢之旁十餘年에 不妄與人交하고 有不可其意면 雖王公大人이라도 亦莫肯顧라
聞士有一藝
하면 雖千里必求之
하야 介然有古
하니 所謂用心專者也
니
其文字雜以夷夏하야 讀者罕得其眞일새 往往就而正焉하니 鑒聿之書는 非獨有取於吾儒라 亦欲傳於其徒也로다
문자학文字學은 관계된 바가 매우 작은 것인데, 구양공歐陽公의 입론은 참으로 자신의 입장을 잘 표현해내었다.
수倕는 활을 잘 만들었으나 활을 잘 쏘지는 못하였고 예羿와 봉몽逢蒙은 천하에서 활을 잘 쏘는 자였으며, 해중奚仲은 수레를 잘 만들었으나 수레를 잘 몰지는 못하였고 왕량王良과 조보造父는 천하에서 수레를 잘 모는 자였다.
이는 순경자荀卿子가 이른바 “기예의 지극한 경지는 양쪽 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니, 참으로 그러하도다.
유자儒者는 성인聖人을 배우니, 성인의 도는 곧고 간략하다.
그러나 굽히고 펼쳐서 천하의 이치를 통하고 음양陰陽‧천지天地‧인귀人鬼‧사물事物의 변화와 군신君臣‧부자父子‧길흉吉凶‧생사生死‧인간人間의 대륜大倫을 궁구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육경六經도 다 설명할 수 없고 공자孔子의 칠십 제자와 맹자孟子‧순자荀子‧양웅楊雄의 무리가 각기 그 변설을 다한다 하더라도 모두 드러낼 수 없다.
대저 배우기를 좋아하신 공자께서도 그 말씀이 요순堯舜으로부터 이후는 상세하셨고 그 전대前代는 대체로 생략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그 또한 언급할 겨를이 없으신 점이 있었던 것이로다.
유가儒家의 학자는 그 학문이 진실로 원대하여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하니 언급할 겨를이 없는 점이 있는 것이 마땅하다.
그 정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성음聲音 형태가 미세하게 굽고 평탄한 차이와 음향의 청탁淸濁이 상생相生하는 유형과 각 지방의 언어‧풍속의 차이점이 있으므로 유자儒者가 정밀하게 공부할 겨를이 없으니, 문자학에 정밀하게 되면 왕왕 다른 것을 잘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학자들이 기꺼이 자신이 일삼던 학문을 버려두고 여기에 마음을 다하려 하지 않으니, 이른바 양쪽 다 잘할 수 없는 경우이다.
반드시 전일하게 마음을 써야 이 문자학을 혹 잘할 수 있으니, 그런 뒤에야 유자儒者가 취하여 사용함이 있는 것이다.
낙양洛陽의 승려 감율鑒聿이 《운총韻總》 5편을 지어 자음과 모음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의 법도를 미루어 사성四聲을 확정하여 전유前儒들의 잘못을 고찰하여 찾으며 각 지방 성음의 착오를 변별하여 바로잡았으니, 생각건대 그 정밀한 마음 씀이 지극히 미세한 곳까지 들어갔다고 이를 만하다.
마치 빗이 머리털에 있어서와 방직紡織이 실에 있어서, 비록 〈머리털과 실이〉 가늘고도 많지만 조리條理가 있어 어지럽지 않은 것과 같으니, 유가儒家의 학자가 논난論難할 수 없다.
감율鑒聿은 《주역周易》에 능통하여 대연大演의 삭數를 잘 알고, 또 음양陰陽‧지리地理와 황제黃帝‧기백岐伯의 책을 배웠는데, 더욱 마음을 다한 것은 《운총韻總》이었다.
어려서 승려가 되어 무당산武當山에 들어갔으며 강수江水와 한수漢水 부근을 왕래한 지 10여 년 동안 함부로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뜻이 맞지 않으면 비록 왕공대인王公大人이라 하더라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비에게 한 가지 기예가 있다는 것을 들으면 비록 천 리나 멀리 떨어진 거리라도 반드시 가서 구하여 고결하게 옛날 독행獨行의 절조가 있으니 이른바 전일하게 마음을 쓴 자이다.
그러니 그 학문이 반드시 지극해짐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통행되는 불가佛家의 글이 수백만언數百萬言이다.
그 문자는 오랑캐와 중화의 문자가 뒤섞여 있어서 읽는 자들이 그 참뜻을 아는 경우가 드물므로 왕왕 나아가 질정하니, 감율鑒聿의 책은 비단 우리 유가에서 취하여 쓸 뿐만 아니라 또한 불가佛家의 무리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