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日去後에 復取前所貺古今雜文十數篇하야 反復讀之하니 若大節賦樂古太古曲等篇은 言尤高而志極大라
尋足下之意컨댄 豈非閔世病俗하야 究古明道하야 欲援今以復之古하야 而翦剔齊整凡今之紛殽駮冗者歟아
然而述
太古之道
하야 拾近取遠
하야 務高言而鮮事實
하니 此少過也
라
君子之於學也에 務爲道하고 爲道에 必求知古니 知古明道而後에 履之以身하며 施之於事하고 而又見於文章而發之하야 以信後世하니 其道는 周公孔子孟軻之徒가 常履而行之者가 是也요 其文章은 則六經所載至今而取信者가 是也라
其道는 易知而可法하고 其言은 易明而可行이어늘 及誕者言之하얀 乃以混蒙虛無爲道하고 洪荒廣略爲古하니 其道難法하고 其言難行이라
此履之於身하고 施之於事하야 而可得者也니 豈如誕者之言者耶아
凡此所謂古者는 其事乃君臣上下禮樂刑法之事니 又豈如誕者之言者耶아
孔子昔生周之世하야 去堯舜遠하니 孰與今去堯舜遠也아
孔子刪書
에 斷自堯典而弗道其前
하고 其所謂學則曰
이라하니 如孔子之聖且勤而弗道其前者
는 豈不能耶
아
今生於孔子之絶後하야 而反欲求堯舜之已前하니 世所謂務高言而鮮事實者也라
之道
가 爲百王首
어늘 라하니 謂高深閎大而不可名也
라
及夫
하얀 述之炳然
하야 使後世尊崇仰望
하되 不可及
하야 其嚴若天然
하니 則書之言
이 豈不高耶
아
然其事不過於
하며 하야 하며 과 하며 하고 하고 而已
라
夫二典之文이 豈不爲文이며 孟軻之言道가 豈不爲道리오마는
今學者不深本之하고 乃樂誕者之言하야 思混沌於古初하야 以無形爲至道者하야 無有高下遠近하며 使賢者能之하고 愚者可勉而至하야 無過不及而一本乎大中이라 故能亘萬世可行而不變也어늘
今以謂不足爲而務高遠之爲勝하야 以廣誕者無用之說하니 是非學者之所盡心也라
宜少下其高而近其遠하야 以及乎中하면 則庶乎至矣리라
凡僕之所論者가 皆陳言淺語니 如足下之多聞博學에 不宜爲足下道之也라
然某之所以云者는 本欲損足下高遠而俯就之니 則安敢務爲奇言以自高耶아
도道에 절충한다는 대목이 바로 구양공歐陽公의 실제 지위이다.
전일에 가신 뒤 다시 전에 주신 고문古文‧금문今文으로 지은 잡문雜文 10여 편을 가지고 반복해 읽어보니, 〈대절부大節賦〉‧〈악고樂古〉‧〈태고곡太古曲〉 등은 말이 더욱 높고 뜻이 극히 컸습니다.
족하의 뜻을 찾아보건대 어찌 세상을 근심하고 시속時俗을 걱정하여 옛것을 궁구하여 도를 밝혀서, 지금을 끌어다 옛날로 되돌려 오늘날의 분란하고 혼잡한 것들을 제거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뒤에야 족하가 학문을 좋아하여 매우 뜻이 있는 분임을 더욱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태곳적 삼황三皇의 도를 전술傳述하여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하여 말을 고원하게 하는 데 힘쓰고 현실성이 적으니, 이는 작은 잘못입니다.
군자君子가 학문에 있어서는 도道를 행하는 데 힘쓰고 도를 행하려면 반드시 옛것을 알고자 해야 하니, 옛것을 알고 도에 밝은 뒤에 몸으로 실천하고 실제 일에 적용하고 또 문장文章에 드러내 발휘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니, 그 도는 주공周公‧공자孔子‧맹가孟軻와 같은 분들이 늘 실천한 바로 그것이고, 그 문장은 육경六經에 실려 있어 지금까지 사람들이 믿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 도는 알기 쉽고 본받을 만하며, 그 말은 밝히기 쉽고 실행할 만하거늘, 허탄虛誕한 이들이 그 도와 말을 얘기함에 미쳐서는 혼몽混蒙하고 허무한 것을 도라 하고 애매하고 공허한 것을 옛것이라 하니, 그 말이 본받기 어렵고 그 말이 실행하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도道를 말씀하시기를 “도가 사람과 멀지 않다.”라고 하셨고,
《중용中庸》을 말한 이는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한다.”라고 하고,
또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춘추春秋》라는 책에서는 은공隱公이 양위讓位한 것을 미덕美德으로 이루어주되 바르다고 하지는 않았는데,
전傳을 쓴 사람은 “《춘추》는 도道를 신장하고 사邪를 신장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은공이 도를 실천하지 못했음을 이른 것이다.
제후齊侯가 위衛나라의 수도를 옮겨주었는데, “초구楚丘에 성城을 쌓았다.”라고만 써서 그 인덕仁德은 허여許與해주고 천자도 아니면서 제 마음대로 제후를 봉해준 것은 허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傳을 쓴 사람은 “인仁은 도道를 이기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무릇 여기서 말한 도란 바로 성인의 도입니다.
이는 자신에게서 실천하고 실제 일에 시행하여 얻은 것이니, 어찌 허탄한 자들이 말한 것과 같겠습니까.
요堯‧순舜‧우禹의 사적을 기록한 책에 모두 ‘약계고若稽古’라 하였고,
부열傅說이 이르기를 “일에 있어서 옛것을 본받지 않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라 하였고,
중니仲尼는 이르기를 “나는 옛것을 좋아하여 민첩하게 찾은 자이다.”라고 하였으니,
무릇 여기서 말한 옛것이란 그 일이 바로 군신君臣 상하上下 사이의 예禮‧악樂과 형刑‧법法 같은 일이니, 또 어찌 허탄한 자들이 말한 것과 같겠습니까.
대저 앞에서 말한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자孔子가 옛날에 주周나라 세상에 태어나 요순堯舜의 세상과 시대가 멀었으니, 오늘날과 비교해 요순의 세상과 어느 쪽이 더 시대가 멀겠습니까.
공자가 《서경書經》을 산정刪定할 때 〈요전堯典〉부터 끊고 그 이전은 말하지 않았으며, 공자가 말한 학문은 “멀리 요순堯舜을 이어받았다.”라고 하였으니, 공자와 같이 성인이고 근면하신 분도 그 이전은 말하지 않은 것은 어찌 말할 수 없어서였겠습니까.
시대가 점점 더 멀어 사실을 밝히기 어려워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공자보다 훨씬 후대에 태어나 도리어 요순 이전의 것을 찾고자 하니, 세상에서 말하는 ‘말을 고원하게 하는 데 힘쓰고 현실성이 적은’ 것입니다.
요순堯舜의 도는 백왕百王의 으뜸이거늘 중니仲尼는 탄식하여 이르기를 “탕탕하도다!”라고 하였으니, 고심高深하고 굉대宏大하여 형언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二典에 이르러서는 그 서술이 분명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존숭尊崇하고 앙망仰望하되 미칠 수 없어 그 엄연하기가 마치 하늘과 같도록 하였으니, 《서경書經》의 말이 어찌 높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서경》에 기록된 사실은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고, 백성을 고루 다스리고, 홍수의 우환을 걱정하고, 신하들에게 적임자가 누군지 묻고, 딸을 순舜에게 시집보내는 것 및 산천에 제사하고, 제후를 접견하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고, 신하로 하여금 사흉四凶을 처벌하여 방출放黜하도록 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공자孔子 후에는 오직 맹가孟軻만이 도를 가장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람으로 하여금 뽕나무와 삼을 심고 닭과 돼지를 기르게 하면서, ‘산 사람을 기르고 죽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 왕도王道의 근본’이라 하는 데 불과하였습니다.
대저 이전二典의 글이 어찌 글이 아니겠으며, 맹가孟軻가 말한 도道가 어찌 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내용은 세상 사람들이 매우 알기 쉽고 비근한 것이라 대개 실제 사실에 가까울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학자들은 여기에 깊이 근본을 두지 않고 허탄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좋아하여 아득한 고대에서 혼돈混沌을 생각하여 형체가 없는 것을 지극한 도로 삼아서 도道에 고하高下와 원근遠近을 둠이 없으며, 현능한 사람은 능히 할 수 있고 우매한 사람도 노력하여 도달할 수 있어 과過‧불급不及이 없이 다 같이 대중大中한 경지에 근본을 둘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만세萬世토록 길이 변치 않도록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하여 고원高遠한 쪽이 낫다고 그쪽에 힘을 써서 허탄한 자들의 쓸데없는 주장을 확산시켜 주고 있으니, 이는 학자들이 마음을 다할 바가 아닙니다.
조금 그 높음을 낮추고 그 멂을 가깝게 하여 중도中道에 이르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거의 지극할 것입니다.
무릇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진부陳腐한 말이고 천근淺近한 말이니, 족하가 다문박학多聞博學한 분임을 감안할 때 의당 족하에게는 말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한 까닭은 본래 족하의 고원高遠한 면을 덜어내어 낮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 것이니, 어찌 감히 기이한 말을 하여 자신을 높이는 데 힘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