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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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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而在庭이러니
竊顧無庸之品 仍躋異等之科하니 祗服寵靈 實增震悸
竊以 雅頌播於하고 間出之有異人 文章炳乎漢德이라
하고之一門 唐家有得賢之盛하니
皆所以招徠時彦하고 樂育人材하야 講求之原하고 潤色帝王之美하야 卓爲往範하야 垂照來今이니 丕哉文物之華
屬我神靈之運이라 國家右賢興治 若古敷猷하니 休聲塞乎淵泉하고 至德湧於烽火
彌文上化하니以環流하고 儲精하니而講道
爛乎
舜日之晏晏하고 煥乎
而且優游巖廊 夢想豪俊이라
而旁午 諭上意之丁寧하고 復詔策於 謹鄕能於歲擧
馳封一馬 使者在道而相望하고 翹首群英 天下嚮風而咸靡
首方貢以前陳하고 委密侍之鉅賢而覆較
氈筆署乎하야 奏可而後行하고 하야 親臨而明試
森陳奏牘之不勝하고 精閱 幾百斤而未止하니 自匪該明治具하고 佩服儒規하야 行實藹乎徽猷하고 識宇包乎賢業하야 之畢講 學際乎天人之交하고 至纖至悉而不遺 言達於國家之體 則何以上當하고 榮中甲科하야 聯俊乂以服官하고 陪英雄而리오
如某者 風猷靡立하고 操植素淪하니 하고 이라
하니 切愧하고以不知하니 終然이라
加以素鍾舛運하야 生遘百罹하니 自剪髮以交垂而茹歎이라
逐耕夫而衣襏 早去先疇하고 하니 流離末路 佁儗後塵이라
借譽群公之遊 本無題目이요 接足諸生之後 多見排根이라
嗟盛際之親逢 忍窮途而自竄
陪貢廉於百郡 每與計偕하고 호되 嘗從罷去
退慙踸踔 數此隻奇하니 撫骨嗟乎淪鋪하고 卷迹甘於藏密이라
然而 惜先芬而懼隳 母髮垂星 感親闈之思養이라
未及衰於 勉自奮於駑筋하야 하고 로되
하고 風塵有化俗之勞
仰攀於俊軌하고 橋門掎袂 獲覘於邦光이라
之求才어늘하니 本無이라
이러니 逮漢庭之籍奏 咸以名聞하얀
顧惟庸妄 首玷甄陞하야 獲召於公車之庭하고 給試乎이라
致狂言之誤擇하야 叨署第以開榮하니 若若飛華 交垂宛轉之綬하고 諄諄其誨 載聆郁穆之言이라
以芬流하고 沐天光之下燭하니 竊慙 嘗厠翰場이라
屢以下中之才 當乎第一之選하니 宜不失於舊物 期仰答於이라
嗟遠用以奚勝
誠以 百戟森庭하고 就列瞻天駭 威臨於咫尺이요 爭觀落筆 紛立若於堵墻이라
怳訝之夢遊하고 驟覺幹魂之驚去
僅成牽課 靡中科程이어늘 瀆睿覽之至精하니 宜報聞於獨罷어늘
尙賴之過聽하야 兼求之虛名이라
常先於群彦이러니 以薦藉之良厚 重違於大臣이라
猥自下流 參聯上列하니 省逢辰之至幸이요 實叨恩之有因이라
此蓋某官闡繹帝猷하야 雍容朝首하니 粉澤光華之治하고 表燭薦脩之倫하야 膺上心之柬求하야 하니 言皆有味以彌勤하고 先爲之容하야 俾朽株之見用이라
致玆孱瑣하야 及此抽揚하니 敢不愼服官箴하고 遵修士則이리오
鞭後策足하야 更希遠致之塗 鎔金鈞泥 尙依陶者之力이라
誓殫用拙之效하야 少酬再造之恩이요 過此以還 未知所措로소이다


22.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한 데 사례하는
화려한 대궐에 바야흐로 인도를 받아 들어가 뜰에 있노라니 고요하고 그윽한 운악雲幄에서 차례로 급제자를 호명하였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이 쓸모없는 몸이 높은 과거에 급제했으니, 삼가 성은에 감복하여 실로 두려워 가슴이 더욱 떨릴 뿐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훌륭한 선비가 많음을 노래함에 고아한 노래가 나라 조정에 울려 퍼졌고, 세상에 드문 이인異人이 출현함에 문장이 나라의 덕을 빛냈습니다.
하늘과 사람의 변화하는 심오한 이치를 묻느라 동도東都에서 조서詔書를 내렸고, 수재과秀才科라는 등용의 문을 열어 나라는 훌륭한 인재를 많이 얻었습니다.
이는 모두 당시의 선비들을 불러오고 인재를 즐겨 길러서 음양陰陽 변화의 근원을 강구講求하고 제왕의 훌륭한 덕을 윤색하여 우뚝이 전대前代의 모범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빛을 드리우는 것이니, 위대하도다, 그 문물의 아름다움이여!
마침 우리는 신령한 운세를 만나 국가가 어진 이를 높이고 선치善治를 일으키는 것이 고대 성왕聖王이 훌륭한 정사를 펴는 것과 같으니, 아름다운 평판은 깊은 물속까지 가득하고 지극한 덕은 봉화처럼 높이 오릅니다.
성상의 교화를 더욱 문식文飾하니 벽수璧水를 틔워서 학궁學宮을 에워싸게 하고, 태령太寧에서 정신을 비축하니 검소한 궁궐에 앉아서 를 강론합니다.
찬란하여라!
임금의 해처럼 온화하며, 빛나도다!
임금의 문장처럼 높고 큽니다.
게다가 재상께서 묘당廟堂에서 한가로이 노닐면서 뛰어난 인재를 꿈속에서도 생각하셨습니다.
인재를 구하는 조서를 내려 사방에 보내면서 성상의 간곡한 뜻을 알렸고, 다시 향시鄕試를 연다는 조서를 내려 해마다 지방의 유능한 인재를 신중히 뽑았습니다.
이에 말을 달려 조서를 보내느라 사자使者들이 길에 줄을 이었고, 뛰어난 영재英才들이 고개를 드니 천하 사람들이 멀리서 보고 모두 고개를 숙였습니다.
계리計吏를 따라 함께 상경해서는 맨 먼저 지방의 공물을 앞에 진열하고, 측근의 대신大臣을 위임하여 먼저 예부禮部에서 시험을 보입니다.
부드러운 양털 붓으로 과장科場에서 합격자 명단을 써서 재가를 받은 뒤에 발표하고, 어전御殿에서 비단 안석에 기대앉아 성상께서 친히 시험을 보이십니다.
상주上奏하는 글을 많이 올려 양령兩令이 이루 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고 업무 문서를 정밀히 검토함에 그 무게가 거의 백 근이 되어도 그치지 않으니, 정치의 방도를 두루 통달하고 선비의 법도를 실천하여, 행실은 아름다운 에서 성대히 드러나고 식견識見기국器局은 훌륭한 사업事業을 크게 포괄하여, 나라가 융성하는 도리를 다 진강進講함에 그 학문이 이 서로 통하는 이치에 이르고, 지극히 섬세하고 주밀周密하여 작은 일도 빠뜨리지 않아 그 말이 국가의 체통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위로 성상의 눈에 들어서 영광스럽게도 갑과甲科에 급제하여 준걸들과 나란히 관복을 걸치고 영웅들과 함께 등용될 수 있겠습니까.
같은 자는 덕망이 서지 못했고 조행操行이 평소에 없으니, 가죽나무처럼 재목이 못 되고 대추기름처럼 우둔합니다.
관모官帽를 머리에 쓰자 산봉우리들이 비웃으니 관직에 임명된 선비임이 부끄럽고 천도天道를 물어도 알지 못하니 끝내 몽매한 학자일 뿐입니다.
게다가 본디 액운이 많아 태어난 뒤로 온갖 우환을 겪었으니, 겨우 머리를 묶을 어린 나이에 이미 부친을 여의고 슬피 탄식했습니다.
그래서 도롱이를 걸치고 농부들을 좇아서 일찍부터 선대先代의 농토에 갔으며, 국학國學명부名簿에 이름이 올랐기에 타향에 와서 살게 되었으니, 말로末路에 떠돌아다니며 멍청하게 늘 남들보다 뒤처졌습니다.
국학에 와 있는 선비들 틈에 끼어 명성을 얻었지만 본래 당치도 않은 것이었고 제생諸生들의 뒤를 따르면서 배척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 태평성대를 직접 만남에 곤궁한 삶을 참고서 스스로 초야에 묻혀 살았었습니다.
그러다가 열군列郡에서 인재를 천거할 때 매양 계리計吏와 함께 상경하였고, 시험장에서 먹물을 한 되나 마셨으나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물러나 좌절한 자신을 부끄러워함에 운수가 참으로 기구하니, 자신을 돌아보면서 침체한 상태를 탄식하고 자취를 거두어 초야에 묻혀 사는 것을 달갑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선대先代가업家業을 이음에 선조先祖명성名聲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것을 실추시킬까 두려워하였고, 모친이 연로한 터라 모친을 봉양하고픈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아직 많기 전에 스스로 분발해 노력하려고 하택거下澤車를 타고서 향리를 떠났고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리라 맹서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대한 거마車馬를 거느리고 고향에 돌아가진 못하고, 풍진風塵 속에서 시속時俗에 섞여 사는 노고만 있었습니다.
번화한 도성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우러러 따르고, 학생들이 많은 국학國學에서 빛나는 문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인재를 얻으려 과거를 시행하기에 조서詔書에 응하여 숫자만 채웠으니, 의 추천을 받아서 응시하였으나 본래 아무런 재능이 없었습니다.
과장科場에서 자기 재주를 자랑하여 시권試卷을 올린 사람이 거의 천 명이 넘었는데, 대궐에서 급제자 명단을 올려 성명을 발표할 때에 이르러서는 확포矍圃에서 사람들이 다 떠나고 겨우 몇 명만 남았던 것과 같았습니다.
도리어 이 용렬한 사람이 일등으로 선발되어 과장科場에서 부름을 받았고 마침내 대궐의 전시殿試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제넘은 글이 그만 잘못 뽑혀서 외람되게도 급제하여 영화榮華의 길이 열렸으니, 조정 관원들은 화려한 관모官帽를 쓴 채 서로 인수印綬를 길게 드리웠고, 자상하게 일러주시는 황제의 온화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운몽택雲夢澤처럼 드넓은 성상의 은택에 젖어들고 아래로 비추시는 성상의 광휘를 입으니, 둔한 재주로 과장科場에 끼어든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누차 낮은 재주로 일등으로 뽑혔으니 응당 이 옛 신하를 잊지 않으신 덕택이라 알아주신 은혜에 기필코 우러러 보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누차 승리한 뒤에는 교만해지고, 군진軍陣에서 북이 세 번째 울리자 사기가 고갈되었습니다.
두레박줄은 짧고 전대는 작으니 큰일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한번 실수를 하면 안타깝게도 종전에 해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되는 법입니다.
진실로 깃발이 둘러쳐진 구중궁궐에 앉음에 의장儀仗병기兵器가 뜰에 삼엄하게 늘어섰고, 대열에 나아가 용안龍顔을 우러러봄에 그 위엄이 지척의 사이에 있고, 답안을 쓰는 모습을 다투어 보느라 많은 사람들이 담처럼 둘러 서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흡사 꿈속에서 옥황상제의 궁전에 노니는 것만 같아서 갑자기 넋이 놀라 몸에서 떠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답안을 썼으나 격식에 맞지 않거늘 지극히 정밀하신 성상聖上의 눈을 더럽혔으니 의당 홀로 낙방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성상께서 지나치게 좋게 보아주셔서 허명虛名만 있는 무능한 자까지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쭉정이가 앞에 있듯이 무능한 몸이 늘 훌륭한 분들 앞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좋은 말로 추천해주시니 대신의 그 뜻을 어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외람되게 낮은 자리에 있다가 높은 반열에 올랐으니, 좋은 때를 만난 게 지극한 행운임을 알겠고, 실로 이러한 성은을 입은 데는 원인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관某官께서 성상의 치도治道천명闡明하시며 조정의 수반首班으로 의젓이 앉아 계시면서 찬란한 치적治積을 꾸며서 빛내고 와 같은 자들을 드러내 밝혀서, 인재를 가려 뽑고자 하는 성상의 마음에 부응하여 문원文苑의 맹주를 맡으심에 말씀은 모두 의미가 있어 인재를 밀어주는 데 더욱 부지런하시고 미리 포용하여 무능한 몸이 등용될 수 있게 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이 하찮은 사람이 이렇게 선발되었으니, 감히 관원의 잠계箴戒를 삼가 지키고 조사朝士의 규칙을 잘 따르지 않겠습니까.
뒤처지는 무능한 몸을 채찍질하여 다시금 먼 길을 가고자 하지만, 이끌어 도야陶冶해주시는 것은 외려 도공陶公의 힘을 의지합니다.
졸렬한 힘을 다하여 재조再造해주신 크나큰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것을 맹세할 뿐이고, 그 밖의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역주
역주1 謝進士及第啓 : 이 글은 天聖 8년(1030)에 쓴 것이다. 이해 3월에 歐陽脩는 崇政殿의 御試에 참가하여 甲科 第14人으로 進士試에 급제하였기 때문에 이 글을 지어 사례한 것이다.
역주2 楓宸蠖(확)濩 : 楓宸은 대궐의 이칭이다. 漢나라 때 대궐에 단풍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蠖濩은 아름답게 조각한 궁궐의 형상, 또는 궁궐의 깊고 그윽함을 뜻한다. 漢나라 揚雄의 〈甘泉賦〉에서 대궐을 형용하면서 “蟺蜎蠖濩”이라 했는데, 이에 대해 李善의 注에서는 張晏의 설을 인용하여 “곱게 아로새긴 형상이다.[刻鏤之形也]”라고 하였고, 張銑의 注에서는 “궁궐이 깊고 그윽한 모습이다.[宮觀深邃之貌]”라고 하였다.
역주3 贊趨 : 行禮하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대궐로 들어가는 것이다.
역주4 雲幄 : 구름처럼 가볍게 나부끼는 휘장으로 궁궐 안을 뜻한다. 《西京雜記》 권1에 “成帝가 雲帳, 雲幄, 雲幕을 甘泉紫殿에 설치하니 세상에서 三雲殿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5 : 정
역주6 臚(려)傳而唱第 : 과거 급제자를 발표할 때 殿上에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소리를 높여 차례로 이름을 전하여 부르는 의식이다. 이를 臚唱이라 한다.
역주7 思皇之詠多士 : 《詩經》 〈大雅 文王〉에 “훌륭한 많은 선비가, 이 왕국에 태어났다.[思皇多士 生此王國]”라 하였다.
역주8 姬庭 : 周나라를 가리킨다. 주나라 왕실이 姬姓이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역주9 選知言於九變 東都下深詔之辭 : 武帝가 詔書에서 逸詩를 인용하여 “九變復貫 知言之選”이라 한 것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는 황제가 심오한 뜻의 詩題를 낸 것을 가리킨다. 이는 前漢 무제의 고사인데, 歐陽脩가 東漢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라 생각된다. 本書 권9 〈謝石秀才啓〉의 註 ‘知言九變’ 참조.
역주10 孝秀 : 孝廉과 秀才의 준말로 모두 인재를 뽑는 과거 명칭이다. 漢나라 때에는 州에서 수재를 천거하고 郡에서 효렴을 천거했는데, 唐나라 때에는 수재만 남겨두고 효렴은 폐지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孝秀는 수재를 뜻한다.
역주11 精祲 : 陰陽이 변화하여 災害를 만드는 기운 또는 그 조짐이다. 《淮南子 泰族訓》
역주12 璧水 : 周나라 때 太學을 辟雍이라고도 하는데, 벽옹의 물이다. 태학에서 남쪽에 있는 것을 成均, 북쪽에 있는 것을 東序, 서쪽에 있는 것을 辟雍이라 하였다. 雍은 澤과 같은 뜻으로, 학교의 주위에 물을 빙 둘러 못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역주13 太寧 : 《鶡冠子》 권8 〈度萬〉에 성인의 덕을 말하면서 “위로는 太淸에 미치고 아래로는 太寧에 미치고 중간으로는 모든 生靈에 미친다.[上及太淸 下及太寧 中及萬靈]”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문맥으로 보아 제왕이 거처하는 대궐을 가리키는 듯하다.
역주14 蒿宮 : 周나라 때 쑥대[蒿]로 기둥을 삼았던 궁궐이다. 《大戴禮記》 〈明堂〉에 “周나라 때는 德澤이 가득 넘쳐 쑥이 크게 자랐기에 이로써 궁궐의 기둥을 삼았으니, 이를 蒿宮이라 한다. 이것이 天子의 路寢이었다.”라고 하였다.
역주15 爛乎舜日之晏晏 煥乎堯章之巍巍 : 태평성대를 비유한 것이다. 《論語》 〈泰伯〉에서 堯임금에 대해 “높고 크도다! 그 공을 이룸이여. 빛나도다! 그 문장이 있음이여.[巍巍乎其有成功也 煥乎其有文章]”라고 하였다. 南朝 梁나라 沈約의 〈四時白紵歌〉에 “舜임금의 날, 堯임금의 해에 기쁨이 끝없어라.[舜日堯年懽無極]”라고 하였다.
역주16 賢書 : 《周禮》 〈地官 鄕大夫〉에 “鄕老 및 鄕大夫, 관리들이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적은 名簿를 왕에게 바친다.[鄕老及鄕大夫群吏獻賢能之書於王]” 한 데서 온 말로 본래는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천거하는 名簿였는데, 후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榜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인재를 구하고자 하는 뜻을 표현한 詔書를 뜻한다.
역주17 廉科 : 漢나라 때에 郡에서 孝廉을 천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宋나라 때에는 郡에서 시행하는 鄕試를 뜻하였다. 여기서는 開封府에서 시행한 시험을 가리킨다.
역주18 計車之偕上 : 計吏의 수레를 따라 함께 도성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계리는 각 지방 관서에서 해마다 會計 帳簿를 조정에 올리는 벼슬아치인데, 漢나라 때 각 지방 郡縣의 수령들이 그 지방에서 뽑은 인재를 계리에게 딸려서 都城에 올려보내 應試하도록 했다. 《史記 권121 儒林列傳》
역주19 春闈 : 禮部에서 실시하는 과거이다. 《周禮》에 조정의 관직을 天官, 地官, 春官, 夏官, 秋官, 冬官의 六官으로 나누었는데, 祭禮를 맡는 곳이 춘관이다. 그래서 후세에 禮部 또는 禮曹를 춘관이라 불렀다. 宋나라 제도에 禮部에서 거행하는 과거에서 대신인 試官이 합격자를 정하고, 試卷을 밀봉해 보낸 것을 다시 검토하여 석차를 정하게 되어 있었다.
역주20 重棘 : 科場을 뜻하는 말이다. 옛날 과장에 가시나무를 둘러쳤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棘院 또는 棘圍라고도 한다.
역주21 錦几坐乎中楹 : 황제가 御殿에 앉아 있음을 뜻한다. 楹은 兩楹의 준말로 황제의 御殿 앞에 세워진 두 기둥이다. 황제는 이 두 기둥 사이에 앉는다.
역주22 兩令 : 科場에서 答紙인 試卷을 거두는 收卷官을 가리킨다. 통상 수권관은 두 명을 두도록 되어 있다. 수권관이 시권을 거두어 100장씩 묶어서 한 軸씩 만들었다.
역주23 書衡 : 秦始皇은 모든 국사를 자신이 직접 처결하였는데, 문서가 너무 많아서 저울에 무게를 달아 하루에 처리할 분량을 미리 정해두었다고 하는 ‘衡石程書’의 고사를 차용하였다. 《史記 권6 秦始皇本紀》
역주24 寖明寖昌 : 나라를 점점 창성하게 하는 도리를 말한다. 漢 武帝가 董仲舒에게 “나라가 점차 쇠미하는 도리와 점차 창성하는 도리[寖微寖滅寖明寖昌之道]”를 물었던 데서 온 말이다. 이에 대해 동중서가 올린 것이 소위 天人策이다. 《漢書 권56 董仲舒傳》
역주25 乙覽 : 乙夜之覽의 준말로, 임금의 독서를 말한다. 임금이 정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독서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을야는 밤을 甲, 乙, 丙, 丁, 戊의 五夜로 나눈 데서 온 말로, 밤 10시경에 해당한다.
역주26 入彀(구) : 入我彀中의 준말로, 원래 《莊子》 〈德充符〉에 “羿의 사정권 안에서 노닌다.[遊於羿之彀中]” 한 데서 온 말인데, 唐 太宗이 “천하의 영웅이 나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天下英雄 入我彀中矣]”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여, 과거에 급제함 또는 인재로 등용됨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27 樹樗甚乎液樠 : 재능이 없음을 재목이 못 되는 나무에 비긴 것으로, 자신에 대한 겸사이다. 惠子가 “나에게 큰 나무가 있으니 사람들이 가죽나무[樗]라 한다. 그 큰 줄기는 옹종하여 먹줄이 맞지 않고 그 작은 가지는 굽어서 規矩에 맞지 않기에,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었規矩 立之塗 匠者不顧]”라고 하였다. 《莊子 逍遙遊》
匠石이라는 목수가 齊나라에 갔다가 매우 우람한 상수리나무[櫟]를 보았는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하기를 “쓸모없는 나무이다. 이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棺槨을 만들면 속히 썩고 器物을 만들면 속히 부서지고 門戶를 만들면 진액이 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 먹는다. 이는 재목이 못 되는 나무라 쓸모가 없다.[散木也 以爲舟則沈 以爲棺槨則速腐 以爲器則速毁 以爲門戶則液樠 以爲柱則蠹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라고 하였다. 《莊子 人間世》
역주28 膏棗嗟乎昏鈍 : 南朝 宋나라 范曄이 羊玄保를 두고 ‘棗膏昏鈍하다’ 하였는데, 이는 사람됨이 멍청하고 우둔하다는 말이다. 양현보는 바둑을 잘 두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宋書 권69 范曄傳》
膏棗는 棗膏와 같은 말로 대추를 볶아서 짠 기름이다. 즉 멍청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뻑뻑한 대추 기름에 비긴 듯하다.
역주29 戴枝冠而竦誚(송초) : 官帽를 쓰고 벼슬길에 오르니 초야에 묻혀 살았던 곳의 산봉우리들이 선비의 지조를 잃었다고 비웃는다는 뜻이다. 枝冠은 官帽이다. 宋나라 때 벼슬아치의 관모 후면에 대나무를 깎아 붉은 비단으로 싸고 황색 실로 털을 만들어 마치 붓과 같은 모양을 한 것을 세웠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南齊 때 周顒이 처음에는 北山에 은거하다가 詔書를 받고는 서둘러 나와 海鹽縣令이 되자 孔稚珪가 산신령의 뜻을 가탁하여 〈北山移文〉을 지었는데, 그 글에 “산골짜기들이 다투어 기롱하고 산봉우리들이 꾸짖는다.[列壑爭譏 攢峯竦誚]”라고 한 대목이 있는데, ‘竦誚’는 여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역주30 命儒 : 관직에 임명되어 封爵을 받은 선비이다. 여기서는 관직에 임명된 歐陽脩 자신을 가리킨다.
역주31 天咫 : 天道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國語》 〈楚語 上〉에 “是知天咫 安知民則”이라 하였는데, 韋昭의 注에 “咫는 적음을 말하니, 이는 ‘天道를 앎이 적으니, 어찌 백성 다스리는 법을 알겠는가.’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2 : 몽
역주33 不髦 : 부모를 여의었다는 말이다. 髦는 아이가 나면 머리카락을 잘라서 머리 위에 끼워두는 것으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하는 머리 장식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빈소를 차린 뒤에는 髦를 떼어냈는데, 아버지가 죽으면 왼쪽을, 어머니가 죽으면 오른쪽을 떼었다. 《禮記》 〈玉藻〉에 “부모가 죽으면 髦를 하지 않는다.[親沒不髦]”라고 하였다.
역주34 署生版以占名 轉隨僑籍 : 天聖 6년(1028), 당시의 名士인 胥偃을 찾아가 자신이 지은 글을 보여주었다. 서언은 歐陽脩의 문장에 감탄하여 구양수를 자신의 문하에 받아들였다. 그해 겨울 구양수는 서언과 함께 宋나라의 수도인 開封으로 갔고, 天聖 7년(1029) 봄에 國子監에서 거행한 考試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가을에는 國學의 解試에서 또 수석으로 합격하여 타향인 개봉에 살았다. 生版은 諸生의 名簿이다.
역주35 飮試墨之一升 : 과거장에서 글을 구상하느라 붓을 입으로 빨아 먹물을 많이 먹었다는 말로,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했음을 뜻한다. 구양수가 仁宗 天聖 원년(1023) 17세 때 처음으로 隨州의 鄕試를 보았지만 그의 用韻이 官韻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낙방하였고, 天聖 5년(1027)에는 禮部試에 낙방하였다.
역주36 良裘學冶 : 父祖의 家學을 이어받음을 뜻한다. 《禮記》 〈學記〉에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 만드는 것을 배우고, 훌륭한 활 만드는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키 만드는 것을 배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 하였다.
역주37 駒齒 : 아동의 乳齒로 어린 나이를 뜻한다. 집안의 부형인 楊昱이 楊愔을 귀여워하면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구치가 아직 빠지기도 전에 이미 우리 집안의 龍文이니, 10년만 더 지나면 응당 천리 밖을 달릴 것이다.[此兒駒齒未落 已是我家龍文 更十歲後 當求之千里外]”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北齊書 권34 楊愔傳》
역주38 乘下澤以去鄕 : 고향을 떠났음을 뜻한다. 본서 권9 〈謝石秀才啓〉의 註 ‘自慕幅巾於衡巷 乘下澤於鄕閭’ 참조.
역주39 棄裂繻而爲誓 : 출세할 것을 맹세한다는 뜻이다. 繻는 關門을 통과할 때 보이는 符信, 즉 증명서로 사용하는 명주 조각이다. 漢나라 終軍이 미천할 때 걸어서 관문을 지나는데 관문을 지키는 관리가 그에게 繻를 주었다. 종군이 이게 무엇이냐고 묻자, 관리가 “돌아올 때 되돌려주는 通符이다.”라고 하니, 종군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서쪽으로 가는 터에 끝내 통부를 되돌려주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繻를 버리고 떠났다가, 그 후에 謁者가 되어 郡國을 순행하던 길에 符節을 갖고 다시 동쪽으로 관문을 나가려 하자, 관리가 종군을 알아보고 말하기를 “이 使者가 바로 지난날 繻를 버린 사람이다.[此使者乃前棄繻生也]”라고 하였다. 《漢書 권64下 終軍傳》
역주40 車騎乏甚都之雅 : 행차가 보잘것없었음을 뜻한다. 都는 閒雅하다는 뜻이다. 《詩經》 〈鄭風 有女同車〉에 “저 아름다운 孟姜이여 진실로 아름답고 또 한아하도다.[彼美孟姜 洵美且都]”라고 하였으며, 《史記》 권117 〈司馬相如列傳〉에 “司馬相如가 고향 臨邛으로 갈 때 따르는 수레와 기마의 모습이 조용하고 閒雅하여 매우 아름다웠다.[相如之臨邛 從車騎 雍容閒雅甚都]”라고 하였다.
역주41 上國連衡 : 상국은 京城이다. 衡은 수레 앞에 가로로 걸친 나무로, 수레를 뜻한다. 즉, 도성은 번화하여 수레가 서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역주42 泛駕 : 수레를 엎어버리는 것으로, 말이 부리는 사람의 조종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뛰어난 인재를 비유한 것이다. 《漢書》 권6 〈武帝本紀〉에 “수레를 엎어버리는 말이나 예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잘 부리면 될 뿐이다.[夫泛駕之馬 跅弛之士 亦在御之而已]”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43 應書而充賦 : 인재를 천거하라는 詔書에 응하여 숫자만 채운다는 뜻으로 자신이 國學에 들어간 것을 겸사로 말한 것이다. 《漢書》 권56 〈董仲舒傳〉에 “선비를 양성하는 기관은 태학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니, 태학은 어진 선비들이 거치는 곳이요 교화의 본원이다. 그런데 지금 한 郡이나 한 나라의 보통 수준의 선비들로서 숫자만 채워 인재를 천거하라는 詔書에 응하는 것이 王道가 왕왕 끊어지게 되는 까닭이다.[國養士之大者 莫大乎太學 太學者 賢士之所關也 敎化之本原也 今以一郡一國之衆對亡應書者 是王道往往而絶也]”라 하였다. 顔師古의 注에 “書는 賢良, 文學의 선비를 천거하라는 詔書이다.”라고 하였다. 《漢書》 권49 〈鼂錯傳〉에 “신 錯로써 숫자만 채우니, 어진 인재를 구하는 밝은 조서의 뜻에 매우 맞지 않습니다.[以臣錯充賦 甚不稱明詔求賢之意]”라고 하였다. 如淳의 注에 “充賦는 備數란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역주44 以孝廉而射策 : 孝廉은 본래 漢나라 때에 郡에서 孝廉을 천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宋나라 때는 郡에서 시행하는 鄕試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開封府에서 시행한 시험을 가리킨다.
射策은 經書의 疑義와 時務에 대한 문제를 竹札에 써놓고 수험자로 하여금 그 죽찰을 뽑아 해답을 쓰게 하여 우열을 결정하던 漢나라 때의 시험 제도인데, 후대에는 과거시험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역주45 百六之能 : 매우 보잘것없는 능력을 뜻한다. 南朝 梁나라 張綰은 字가 孝卿인데 젊을 때 형 張纘과 함께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湘東王 繹이 백 가지 일[百事]로 문제를 내었는데, 장관이 답안에서 그중 여섯 가지를 빠뜨렸기 때문에 그를 놀려 百六公이라 불렀다. 《南史 권56 張綰傳》
역주46 自衒鬻(육)之上書 蓋逾千數之衆 : 衒과 鬻은 모두 판다는 뜻이다. 자기 재능을 판다는 말은 자기 재능을 자랑하여 벼슬을 구함을 뜻한다. 《漢書》 권65 〈東方朔傳〉에 “사방의 선비들이 많이 글을 올려 득실을 말하여 자신을 파는 자가 천으로 헤아릴 정도였다.[四方士多 上書言得失自衒鬻者 以千數]”라고 하였다.
역주47 矍(확)圃之去賓 僅有存者 : 矍圃는 矍相圃의 준말로 中國의 山東省 曲阜縣 闕里 서쪽에 있는 지명으로 孔子가 大射禮를 거행했던 곳이다. 공자가 이곳에서 대사례를 거행할 때 子路를 시켜, 활과 화살을 가지고 가서 활 쏠 자를 맞이하게 하며 “패전한 장수와 망국의 대부, 남의 후계자로 들어간 자는 들어오지 말고 나머지는 모두 들어오라.”라고 하니, 떠난 사람이 반이고 남은 사람이 반이었다. 또 公罔裘와 序點을 시켜 술잔을 들고 말하게 했다. 공망구가 술잔을 들고 말하기를 “어린이와 장년으로서 孝悌하는 자와 노인으로서 禮를 좋아하여 流俗을 따르지 않고 몸을 닦아 죽을 때까지 도리를 지키는 자만이 이 자리에 있어라.”라고 하자, 떠난 사람이 반이었고 남은 사람이 반이었다. 서점이 또 술잔을 들고 말하기를 “게으름 부리지 않고 학문을 좋아하며, 변함없이 예를 좋아하는 자와 노인으로서 말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자만 이 자리에 있으라.”라고 하니, 겨우 몇 명만이 남아 있었다.[蓋僅有存者] 《禮記 射儀》
역주48 尙方之札 : 황제가 내린 試題를 말한다. 尙方은 하늘로, 황제를 가리킨다.
‘尙’은 ‘上’자와 통용된다. 四庫全書本 《文忠集》과 《唐宋八大家文抄》에는 모두 ‘上’자로 되어 있다.
역주49 雲澤 : 雲夢澤의 준말로, 중국 남방의 큰 호수이다. 여기서는 황제의 은택이 매우 큼을 비유하였다. 漢나라 司馬相如의 〈上林賦〉에 “楚나라에는 일곱 호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운몽택으로 사방이 900리이다.[楚有七澤 其一曰雲夢 方九百里]”라고 하였다.
역주50 鉛鈍 : 鉛은 납으로 만든 칼인 鉛刀이다. 즉, 연도와 같이 둔한 재주란 뜻이다. 본서 권9 〈謝校勘啓〉의 註 ‘鉛刀之堪一割’ 참조.
역주51 知人 : 인재를 알아봄을 뜻한다. 禹임금이 皐陶에게 “인재를 알면 지혜가 밝은 것이니 능히 사람을 관직에 맡길 수 있다.[知人則哲 能官人]”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虞書 皐陶謨》
역주52 戰屢勝而後驕 : 歐陽脩가 天聖 7년(1029) 봄에 國子監에서 거행한 考試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가을에는 國學의 解試에서 또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천성 8년(1030) 정월에 禮部에서 실시한 進士試에서 또 수석으로 합격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3 鼓至三而乃竭 : 춘추시대 魯 莊公 때 齊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하였다. 접전할 때 장공이 북을 울려 進軍시키려 하자, 曹劌가 말렸다. 제나라 군사 쪽에서 세 차례 북이 울린 다음에야 조귀가 진군하게 하여 제나라 군사를 패배시켰다. 장공이 조귀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조귀가 대답하기를 “전쟁이란 용기로 하는 것인데, 적이 한 번 북을 쳤을 때는 적의 용기가 났는데 우리가 應戰하지 않았고, 두 번째 북을 쳤을 때는 적의 용기가 쇠해졌지만 우리가 응전하지 않았고, 세 번째 북을 쳤을 때는 적의 용기가 다 없어집니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莊公 10년》
역주54 綆短褚小 : 《莊子》 〈至樂〉에 “전대가 작으면 큰 물건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褚小者不可以懷大 綆短者不可以汲深]”라 한 데서 온 말로, 재능과 식견이 부족하여 큰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科場에서 학식과 글재주가 부족함에 비유하였다.
역주55 弓撥矢鉤 惜前功之皆廢 : 《戰國策》 권2 〈西周〉에 “활을 잘못 당겨서 한 번 적중하지 못하면 앞에 잘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된다.[弓撥矢鉤 一發不中 前功盡矣]” 한 데서 온 말이다. 天聖 8년(1030) 3월에 구양수가 24세의 나이로 崇政殿 御試를 볼 때를 비유한 것이다. 즉, 이 御試에서 낙방하면 종전에 여러 시험에서 합격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된다는 말이다. 이 御試에서 구양수는 甲科 14等으로 합격하였다.
역주56 九閽坐狄 : 崇政殿에서 御試를 보는 자리를 말한다. 狄은 翟과 같은 말로 꿩의 깃으로 만든 깃발이다. 《禮記》 〈樂記〉에 종묘의 祭禮를 말하면서 “干戚과 旄狄을 잡고 춤을 춘다.[干戚旄狄以舞之]”라고 하였는데, 孔穎達의 疏에 “적은 새의 깃이다.[狄 羽也]”라고 하였다.
역주57 鈞庭 : 옥황상제의 궁전을 말한다. 옥황상제가 사는 곳을 鈞天이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呂氏春秋》 〈有始〉에 “하늘의 중앙을 鈞天이라 한다.[中央曰鈞天]”라고 하였다.
역주58 黈(주)旒 : 제왕의 들음을 뜻한다. 黈는 黈纊으로, 冕旒冠 양쪽으로 귀에 닿도록 늘어뜨린 누런 솜방울인데, 제왕은 무익한 말은 듣지 않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역주59 箕斗 : 실제 내용은 없고 이름만 지닌 것을 말한다. 《詩經》 〈小雅 大東〉의 “남쪽 하늘에 箕星이 떠 있어도 곡식을 까불릴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역주60 簸(파)揚之在前 : 무능한 사람이 남보다 먼저 앞서 감을 뜻한다. 晉나라 孫綽이 習鑿齒와 함께 길을 가는데 손작이 앞서 가다가 습착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곡식을 일면 자갈이 뒤에 남는다.[沙之汰之 瓦石在後]”라고 하니, 습착치가 “곡식을 키로 까불면 쭉정이가 앞에 있게 된다.[簸之颺之 粃糠在前]”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권56 孫綽傳》
역주61 主斯文之盟會 : 문단의 맹주가 되었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문학에 뛰어난 인재를 뽑는 과거의 試官을 맡았음을 뜻한다.
역주62 推轂(퇴곡) : 원래 바퀴를 밀어주는 것인데, 사람을 薦擧하여 이끌어줌을 뜻한다. 《史記》 권107 〈魏其武安侯列傳〉에 “魏其와 武安이 모두 儒學을 좋아하여 趙綰을 밀어주어 御史大夫가 되게 하였다.[魏其武安俱好儒術 推轂趙綰爲御史大夫]”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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