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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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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寫情輸悃之言이라
臣近貢하야 乞還官政이러니 伏奉詔答 未賜允兪
退自省循 奚勝隕越이리오
臣聞神功而萬物得以曲成者 惟各從其欲이요
而一言可以感動者 在能致其誠이라하니
敢傾虔至之心하야 再黷高明之聽하노이다
伏念臣本以一介之賤으로 叨塵之聯하야하고 每師心而自信이라
然而旣乏捐軀之效하고 又無先覺之明이라 用之已過其分이어늘 而曾不自量하며 毁者不堪其辱이어늘 而莫知引去러니
幸賴乾坤之再造하야 得逃陷穽之危機하고 仍許避於要權하야 俾退安於晩節이어늘 今乃苦於衰病하야 莫自支持
顧難冒於寵榮하야 始欲收于骸骨 敢期聖念過軫이러니 天慈謂雖迫於 未忍棄於草莽이라
竊以古今之制 沿襲不同하니
蓋由兩漢而來 雖處之貴 每上還於 多自駕於車轅하야 朝去朝廷 暮歸田里하며 一辭高爵 遂列하니 豈如至治之朝 深篤愛賢之意하고 每示隆恩之典하야 以勸知止之人
故雖有還政之名이나 而仍享終身之祿하니 固已不類昔時之士하고 無殊居位之榮이라
然則在臣素心退休之志 迹臣所乞 尙虞僥倖之譏
伏望皇帝陛下 惻以深仁하고 矜其至懇하야 俾解方州之任하야 遂歸 固將優游垂盡之年하야 涵泳太平之樂이로되
惟辛勤白首하야 迄無一善之稱하고 孤負明時 莫報之德하니 此爲慙恨 何可勝陳이리오


10. 박주亳州에서 치사致仕를 청한 두 번째
진정을 드러내고 정성을 다한 말이다.
신은 근자에 소장을 올려 관직과 정사를 반납하겠다고 청하였는데, 삼가 비답批答을 받음에 윤허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물러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봄에 망연자실한 심정을 어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신은 듣건대 “신공神功은 다스림이 없어도 만물이 저마다 잘 이루어지는 것은 오직 각각의 바라는 바를 따라주었기 때문이고,
하늘이 굽어봄이 매우 밝은데 한마디 말로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정성을 다하는 데 달려 있다.”라고 하니,
감히 지극히 경건한 마음을 기울여 재차 고명高明의 귀를 더럽힙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본래 일개 미천한 사람으로, 외람되게 이부二府의 관직에 올라 곧은 로 임금을 섬길 줄만 알고 늘 자기 마음에 비추어 자신을 믿고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몸을 바치는 보답이 부족했고 게다가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지혜가 없는 터라, 임용된 관직이 이미 분수에 지나친데도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였고, 비방하는 모욕을 견딜 수 없는데도 벼슬을 버리고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건곤乾坤과 같은 성상聖上께서 재생再生의 은덕을 베풀어주신 덕분에 함정陷穽과 같은 위태한 화환禍患을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권요權要의 자리를 피하여 물러나 만년을 편안히 보낼 수 있게 해주셨거늘, 지금은 쇠병衰病에 시달려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겠습니다.
돌아보건대 영광스런 총애를 무턱대고 받기 어렵기에 비로소 늙은 몸을 거두어 물러나고자 하면서 성상께서 지나친 염려를 하시리라 생각했는데, 성상께서는 “비록 노년에 이르렀으나 차마 초야에 버려두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고금의 제도는 구례舊例를 이어받아온 것이 시대마다 같지 않습니다.
대개 양한兩漢 이래로 비록 삼공三公의 귀한 자리에 있더라도 위로 인수印綬를 반납하면 대개 손수 수레를 몰고서 아침에 조정을 떠나 저녁에 향리鄕里로 돌아가며, 한 번 높은 관작官爵을 사임하면 마침내 일반 백성이 되었으니, 어찌 지금 지치至治의 조정에서 어진 이를 아끼는 뜻이 매우 돈독하여 매양 융숭한 은전을 보여서 그칠 줄 아는 사람을 권면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비록 정사政事를 반납했다는 이름은 있으나 그대로 종신의 녹을 누리니, 진실로 이미 옛날의 선비들과 같지 않고 지위에 있는 영광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한즉 신의 평소 마음은 비록 은퇴하려는 뜻이 간절했지만, 신이 그동안 청했던 바를 살펴보면 오히려 요행을 바랐다는 기롱譏弄을 받을까 우려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깊은 인덕仁德으로 신을 측은히 여기시고 신의 지극한 간청을 불쌍히 여기시어, 주군州郡의 직임을 해면解免하여 누추한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진실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으로 태평시대의 즐거움을 한가로이 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백발이 되도록 신고辛苦를 겪으며 일해도 끝내 한 가지도 잘했다고 일컬을 만한 것이 없고 밝은 시대를 저버려 세 조정의 은덕을 갚지 못하니, 이 부끄럽고 한스러운 마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亳州乞致仕第二表 : 이 글은 熙寧 원년(1068) 봄에 쓴 것이다. 이때 歐陽脩는 亳州 수령을 맡고 있으면서 연이어 다섯 차례 表를 올려 致仕를 청하였으나, 神宗이 윤허하지 않았다. 亳州는 지금의 安徽省 亳州市 지역이다.
역주2 封章 : 밀봉한 奏章이다. 疏章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3 不宰 : 《老子》 10장에서 하늘의 조화를 말하면서 “만물의 長이 되어도 宰制하지 않는다.[長而不宰]” 한 데서 온 말이다. 唐나라 杜審言의 〈和李大夫嗣眞奉使存撫河東〉에 “재제하지 않은 神功의 운행이다.[不宰神功運]”라고 하였다. 이는 하늘의 조화가 아무런 조작이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니, 제왕이 천하를 다스림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역주4 天鑑孔昭 : 天鑑은 하늘이 세상을 굽어보는 것으로, 임금이 세상을 살펴봄을 뜻한다. 《詩經》 〈大雅 大明〉에 “하늘의 굽어보심이 아래에 있어 천명이 이미 모였다.[天監在下 有命旣集]”라고 하였고, 漢나라 張衡의 〈思玄賦〉에 “저 하늘의 굽어봄이 크게 밝다.[彼天監之孔明兮]”라고 하였다.
역주5 二府 : 본서 권9 〈辭樞密副使表〉의 주 ‘二府’ 참조.
역주6 直道以事君 : 춘추시대 魯나라 대부 柳下惠가 禁令과 刑獄을 담당하는 관리인 士師로 있다가 세 번 축출되었는데도 떠나지 않고서 말하기를 “도를 곧게 하여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가더라도 세 번 내침을 당하지 않겠으며, 도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어찌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나겠는가.[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역주7 桑楡 : 馬援이 “처음에는 비록 回谿에서 날개를 드리웠지만 마침내 黽池에서 날개를 떨칠 수 있었으니, 東隅에서는 잃었다가 桑楡에서 거두었다 할 만하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黽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楡]”라고 하였다. 《後漢書 24권 馬援列傳》
東隅는 해가 뜨는 곳이고, 桑楡는 해가 지는 곳이라 한다. 그래서 동우는 인생의 初年을, 상유는 인생의 晩年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8 三公 : 조정에서 국정을 맡은 가장 높은 관원 세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西漢 때에는 大司馬, 大司徒, 大司空이 삼공이었고, 東漢 때에는 太尉, 司徒, 司空이 삼공이었다.
역주9 印綬 : 벼슬 자리에 임명될 때 임금에게서 받는 신분이나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官印이다.
역주10 編民 : 호적에 편입된 평민이다.
역주11 : 四庫全書本 《文忠集》에는 ‘切’자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切’자가 맞는다고 생각된다.
역주12 環堵之居 : 담장만 둘러친 집이란 말로, 작고 貧寒한 집을 형용한 것인데, 선비의 집을 뜻한다. 《禮記》 〈儒行〉에 “선비는 1묘의 집이 있는데, 담장만 둘러친 집에 대나무로 엮은 사립에 홀만 한 출입구를 내고, 쑥으로 엮은 거적문에 항아리 구멍으로 들창을 낸다.[儒有一畝之宮 環堵之室 篳門圭窬 蓬戶甕牖]”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13 三朝 : 仁宗, 英宗, 神宗의 三代를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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