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近貢
하야 乞還官政
이러니 伏奉詔答
에 未賜允兪
라
伏念臣本以一介之賤
으로 叨塵
之聯
하야 知
하고 每師心而自信
이라
然而旣乏捐軀之效하고 又無先覺之明이라 用之已過其分이어늘 而曾不自量하며 毁者不堪其辱이어늘 而莫知引去러니
幸賴乾坤之再造하야 得逃陷穽之危機하고 仍許避於要權하야 俾退安於晩節이어늘 今乃苦於衰病하야 莫自支持라
顧難冒於寵榮
하야 始欲收于骸骨
에 敢期聖念過軫
이러니 天慈謂雖迫於
나 未忍棄於草莽
이라
蓋由兩漢而來
로 雖處
之貴
나 每上還於
에 多自駕於車轅
하야 朝去朝廷
에 暮歸田里
하며 一辭高爵
에 遂列
하니 豈如至治之朝
에 深篤愛賢之意
하고 每示隆恩之典
하야 以勸知止之人
가
故雖有還政之名이나 而仍享終身之祿하니 固已不類昔時之士하고 無殊居位之榮이라
然則在臣素心
은 雖
退休之志
나 迹臣所乞
에 尙虞僥倖之譏
라
伏望皇帝陛下 惻以深仁
하고 矜其至懇
하야 俾解方州之任
하야 遂歸
면 固將優游垂盡之年
하야 涵泳太平之樂
이로되
惟辛勤白首
하야 迄無一善之稱
하고 孤負明時
에 莫報
之德
하니 此爲慙恨
을 何可勝陳
이리오
10. 박주亳州에서 치사致仕를 청한 두 번째 표表
신은 근자에 소장을 올려 관직과 정사를 반납하겠다고 청하였는데, 삼가 비답批答을 받음에 윤허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물러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봄에 망연자실한 심정을 어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신은 듣건대 “신공神功은 다스림이 없어도 만물이 저마다 잘 이루어지는 것은 오직 각각의 바라는 바를 따라주었기 때문이고,
하늘이 굽어봄이 매우 밝은데 한마디 말로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정성을 다하는 데 달려 있다.”라고 하니,
감히 지극히 경건한 마음을 기울여 재차 고명高明의 귀를 더럽힙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본래 일개 미천한 사람으로, 외람되게 이부二府의 관직에 올라 곧은 도道로 임금을 섬길 줄만 알고 늘 자기 마음에 비추어 자신을 믿고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몸을 바치는 보답이 부족했고 게다가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지혜가 없는 터라, 임용된 관직이 이미 분수에 지나친데도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였고, 비방하는 모욕을 견딜 수 없는데도 벼슬을 버리고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건곤乾坤과 같은 성상聖上께서 재생再生의 은덕을 베풀어주신 덕분에 함정陷穽과 같은 위태한 화환禍患을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권요權要의 자리를 피하여 물러나 만년을 편안히 보낼 수 있게 해주셨거늘, 지금은 쇠병衰病에 시달려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겠습니다.
돌아보건대 영광스런 총애를 무턱대고 받기 어렵기에 비로소 늙은 몸을 거두어 물러나고자 하면서 성상께서 지나친 염려를 하시리라 생각했는데, 성상께서는 “비록 노년에 이르렀으나 차마 초야에 버려두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고금의 제도는 구례舊例를 이어받아온 것이 시대마다 같지 않습니다.
대개 양한兩漢 이래로 비록 삼공三公의 귀한 자리에 있더라도 위로 인수印綬를 반납하면 대개 손수 수레를 몰고서 아침에 조정을 떠나 저녁에 향리鄕里로 돌아가며, 한 번 높은 관작官爵을 사임하면 마침내 일반 백성이 되었으니, 어찌 지금 지치至治의 조정에서 어진 이를 아끼는 뜻이 매우 돈독하여 매양 융숭한 은전을 보여서 그칠 줄 아는 사람을 권면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비록 정사政事를 반납했다는 이름은 있으나 그대로 종신의 녹을 누리니, 진실로 이미 옛날의 선비들과 같지 않고 지위에 있는 영광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한즉 신의 평소 마음은 비록 은퇴하려는 뜻이 간절했지만, 신이 그동안 청했던 바를 살펴보면 오히려 요행을 바랐다는 기롱譏弄을 받을까 우려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깊은 인덕仁德으로 신을 측은히 여기시고 신의 지극한 간청을 불쌍히 여기시어, 주군州郡의 직임을 해면解免하여 누추한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진실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으로 태평시대의 즐거움을 한가로이 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백발이 되도록 신고辛苦를 겪으며 일해도 끝내 한 가지도 잘했다고 일컬을 만한 것이 없고 밝은 시대를 저버려 세 조정의 은덕을 갚지 못하니, 이 부끄럽고 한스러운 마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