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人者樂其相得之歡하고 而因其暇日하야 得州之監軍廢營하야 以作東園하야 而日往遊焉이러라
歲秋八月에 子春以其職事走京師하야 圖其所謂東園者하야 來以示予曰
園之
百畝
에 而流水橫其前
하며 淸池浸其右
하며 高臺起其北
이라
臺
는 吾望以拂雲之亭
하며 池
는 吾俯以澄虛之閣
하며 水
는 吾泛以
하고 敞其中
하야 以爲淸讌之堂
하며 闢其後
하야 以爲射賓之圃
라
芙渠芰荷之的歷과 幽蘭白芷之芬芳과 與夫佳花美木이 列植而交陰은 此前日之蒼烟白露而荊棘也요
高甍巨桷에 水光日景動搖而下上하고 其寬閑深靚하야 可以答遠響而生淸風은 此前日之頹垣斷塹而荒墟也요
嘉時令節에 州人士女가 嘯歌而管絃은 此前之晦冥風雨鼪鼯鳥獸之嘷音也니 吾於是에 信有力焉이라
凡圖之所載는 蓋其一二之略也니 若乃升于高하야 以望江山之遠近하고 嬉于水하야 而逐魚鳥之浮沈은 其物象意趣登臨之樂을 覽者各自得焉이라
凡工之所不能畫者는 吾亦不能言也니 其爲我書其大槪焉하라하고
四方之賓客往來者를 吾與之共樂于此하니 豈獨私吾三人者哉아
然而池臺日益以新하며 草樹日益以茂하고 四方之士가 無日而不來나 而吾三人者는 有時而皆去也니 豈不眷眷於是哉리오
予以謂三君子之材賢
이 足以相濟
하고 而又協于其職
하야 知所後先
하야 하야 而
之人
이 無辛苦愁怨之聲
하고
然後休其餘閑하고 又與四方之賢士大夫로 共樂于此하니 是皆可嘉也라
진주眞州라는 고을은 동남쪽 물이 모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회江淮, 양절兩浙, 형호荊湖의 발운사發運使의 치소로 삼았다.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시정신施正臣 군君과 시어사侍御史 허자춘許子春 군君이 발운사發運使가 되었을 때에 감찰어사監察御使의 이행裏行 마중도馬仲塗 군君이 진주眞州의 판관判官이 되었다.
세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음을 즐거워하여 한가한 날로 인하여 주州의 감군監軍의 폐기된 군영軍營터를 찾아 동원東園을 만들고서 날마다 가서 노닐었다.
이해 가을 8월에 자춘子春이 공무公務로 경사京師에 달려와 이른바 동원東園이라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며 말하였다.
“동원東園의 넓이는 100묘畝 정도에 흐르는 물이 그 앞을 가로 지르고 맑은 못이 그 오른쪽에 고여 있고 높은 누대樓臺가 그 북쪽에 솟아 있다.
누대樓臺는 내가 불운정拂雲亭에서 바라보며 못은 내가 징허각澄虛閣에서 굽어보며 물에는 내가 화방주畫舫舟를 띄우고 그 가운데를 넓게 틔워 청연당淸讌堂을 만들고 그 후원의 땅을 일구어 빈객들이 쉴 수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선명하게 핀 연꽃과 마름, 향기로운 난초와 백지 및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나란히 심겨져 서로 그늘을 이룬 곳은 전일에 연무가 가득하고 이슬이 내려 가시나무만 가득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높은 용마루와 큰 서까래에 물빛과 해그림자가 일렁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고, 한가롭고 고요하여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답하고 맑은 바람이 일어나는 곳은 전일에 무너진 담과 끊어진 도랑이 있던 폐허였다.
좋은 날과 가절佳節에 고을의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풍악을 연주하는 곳은 전일에 음산하고 비바람이 불어 족제비나 날다람쥐 등 날짐승 들짐승이 우는 곳이었으니, 내가 이 일에 참으로 힘을 쓴 바가 있다.
그림에 실려 있는 것은 대개 그중에 간략하게 그린 한두 가지일 뿐이니, 높은 곳에 올라 멀고 가까운 강산江山을 바라보고, 물에서 놀면서 물에 잠겼다 떴다 하는 물고기와 새를 쫒는 것과 같은 것은 물상物象, 의취意趣, 등림登臨의 즐거움을 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알 수 있을 것이다.
화공畵工이 그리지 못하는 것은 나 또한 말할 수 없으니, 나를 위하여 대강을 기록해달라.”
사방에서 왕래하는 빈객들과 내가 이곳에서 함께 즐기려고 하니, 어찌 우리 세 사람만 즐기려고 만든 것이겠는가.
그러나 못과 누대樓臺는 날로 더욱 새로워지고 초목은 날로 더욱 무성해지고 사방의 선비는 찾아오지 않는 날이 없을 터이나 우리 세 사람은 때가 되면 모두 떠날 것이니, 어찌 이 정자를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기문記文을 써두지 않는다면 훗날 누가 우리 세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겠는가.”
나는 ‘세 군자의 재주와 어짊이 서로 일을 성사시키기에 충분하고, 또 그 직무를 협력하여 먼저 해야 할 일과 뒤에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풍족하게 하여 동남東南 육로六路의 사람들이 신음하고 고생하여 근심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없었다.
그런 뒤에 한가한 날 휴식을 취하고 또 사방의 어진 사대부들과 이곳에서 함께 즐겼으니, 이는 모두 기뻐할 만하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