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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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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有畫意
眞爲州
故爲發運使之治所
龍圖閣直學士 侍御史之爲使也爲其判官이라
三人者樂其相得之歡하고 而因其暇日하야 得州之監軍廢營하야 以作東園하야 而日往遊焉이러라
歲秋八月 子春以其職事走京師하야 圖其所謂東園者하야 來以示予曰
園之百畝 而流水橫其前하며 淸池浸其右하며 高臺起其北이라
吾望以拂雲之亭하며 吾俯以澄虛之閣하며 吾泛以하고 敞其中하야 以爲淸讌之堂하며 闢其後하야 以爲射賓之圃
芙渠芰荷之的歷 幽蘭白芷之芬芳 與夫佳花美木 列植而交陰 此前日之蒼烟白露而荊棘也
高甍巨桷 水光日景動搖而下上하고 其寬閑深靚하야 可以答遠響而生淸風 此前日之頹垣斷塹而荒墟也
嘉時令節 州人士女 嘯歌而管絃 此前之晦冥風雨鼪鼯鳥獸之嘷音也 吾於是 信有力焉이라
凡圖之所載 蓋其一二之略也 若乃升于高하야 以望江山之遠近하고 嬉于水하야 而逐魚鳥之浮沈 其物象意趣登臨之樂 覽者各自得焉이라
凡工之所不能畫者 吾亦不能言也 其爲我書其大槪焉하라하고
又曰
天下之衝也
四方之賓客往來者 吾與之共樂于此하니 豈獨私吾三人者哉
然而池臺日益以新하며 草樹日益以茂하고 四方之士 無日而不來 而吾三人者 有時而皆去也 豈不眷眷於是哉리오
不爲之記 則後孰知其自吾三人者始也리오하다
予以謂三君子之材賢 足以相濟하고 而又協于其職하야 知所後先하야 하야之人 無辛苦愁怨之聲하고
然後休其餘閑하고 又與四方之賢士大夫 共樂于此하니 是皆可嘉也
乃爲之書하노라


08. 진주眞州 동원東園에 대한 기문記文
그림을 그린 듯한 뜻이 있다.
진주眞州라는 고을은 동남쪽 물이 모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회江淮, 양절兩浙, 형호荊湖발운사發運使의 치소로 삼았다.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시정신施正臣 시어사侍御史 허자춘許子春 발운사發運使가 되었을 때에 감찰어사監察御使이행裏行 마중도馬仲塗 진주眞州판관判官이 되었다.
세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음을 즐거워하여 한가한 날로 인하여 감군監軍의 폐기된 군영軍營터를 찾아 동원東園을 만들고서 날마다 가서 노닐었다.
이해 가을 8월에 자춘子春공무公務경사京師에 달려와 이른바 동원東園이라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며 말하였다.
동원東園의 넓이는 100 정도에 흐르는 물이 그 앞을 가로 지르고 맑은 못이 그 오른쪽에 고여 있고 높은 누대樓臺가 그 북쪽에 솟아 있다.
누대樓臺는 내가 불운정拂雲亭에서 바라보며 못은 내가 징허각澄虛閣에서 굽어보며 물에는 내가 화방주畫舫舟를 띄우고 그 가운데를 넓게 틔워 청연당淸讌堂을 만들고 그 후원의 땅을 일구어 빈객들이 쉴 수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선명하게 핀 연꽃과 마름, 향기로운 난초와 백지 및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나란히 심겨져 서로 그늘을 이룬 곳은 전일에 연무가 가득하고 이슬이 내려 가시나무만 가득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높은 용마루와 큰 서까래에 물빛과 해그림자가 일렁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고, 한가롭고 고요하여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답하고 맑은 바람이 일어나는 곳은 전일에 무너진 담과 끊어진 도랑이 있던 폐허였다.
좋은 날과 가절佳節에 고을의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풍악을 연주하는 곳은 전일에 음산하고 비바람이 불어 족제비나 날다람쥐 등 날짐승 들짐승이 우는 곳이었으니, 내가 이 일에 참으로 힘을 쓴 바가 있다.
그림에 실려 있는 것은 대개 그중에 간략하게 그린 한두 가지일 뿐이니, 높은 곳에 올라 멀고 가까운 강산江山을 바라보고, 물에서 놀면서 물에 잠겼다 떴다 하는 물고기와 새를 쫒는 것과 같은 것은 물상物象, 의취意趣, 등림登臨의 즐거움을 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알 수 있을 것이다.
화공畵工이 그리지 못하는 것은 나 또한 말할 수 없으니, 나를 위하여 대강을 기록해달라.”
또 말하였다.
진주眞州는 천하 교통의 요충지이다.
사방에서 왕래하는 빈객들과 내가 이곳에서 함께 즐기려고 하니, 어찌 우리 세 사람만 즐기려고 만든 것이겠는가.
그러나 못과 누대樓臺는 날로 더욱 새로워지고 초목은 날로 더욱 무성해지고 사방의 선비는 찾아오지 않는 날이 없을 터이나 우리 세 사람은 때가 되면 모두 떠날 것이니, 어찌 이 정자를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기문記文을 써두지 않는다면 훗날 누가 우리 세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겠는가.”
나는 ‘세 군자의 재주와 어짊이 서로 일을 성사시키기에 충분하고, 또 그 직무를 협력하여 먼저 해야 할 일과 뒤에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풍족하게 하여 동남東南 육로六路의 사람들이 신음하고 고생하여 근심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없었다.
그런 뒤에 한가한 날 휴식을 취하고 또 사방의 어진 사대부들과 이곳에서 함께 즐겼으니, 이는 모두 기뻐할 만하다.’라고 생각한다.
이에 기문을 쓰노라.


역주
역주1 : 이 글은 작자가 南京留守가 된 皇祐 2년(1051)에 지은 것이다. 眞州는 宋나라 때에 淮南東路에 속해 있었고 治所는 江蘇 儀征市에 있었다.
역주2 當東南之水會 : 眞州는 長江의 하류 北岸에 있고 동쪽으로 運河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江淮兩浙荊湖 : 江淮는 江蘇 安徽 지역으로 長江과 淮河 유역이며, 兩浙은 浙東과 浙西를 가리키며, 荊湖는 湖北‧湖南 지역으로 洞庭湖의 남북쪽에 있는데 옛날 荊州 땅이었기 때문에 荊湖라 이름한 것이다.
역주4 施君正臣 : 이름은 昌言이고 通州 靜海 사람이다. 여러 번 江淮發運使, 龍圖閣直學士 등에 천거되었다.
역주5 許君子春 : 이름은 元이고 宣州 宣城 사람이다. 進士試로 출신하였고 侍御史로 천거되었다. 여러 번 江淮發運副使를 역임하고 天章閣待制에 발탁되었다. 越州, 泰州 등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역주6 監察御史裏行 : 御史臺의 官名으로 監察御史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직 정식 관원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裏行이라 한 것이다. 《新唐書》 〈百官志〉 3권에 “또 御史裏行使, 侍御史裏行使, 殿中裏行使, 監察裏行使를 두었는데 아직 正官이 못 되었기 때문에 員數가 없다.”라고 하였다.
역주7 馬君仲塗 : 馬遵(1011~1057)을 가리킨다. 仲塗는 그의 字이며 宋나라 饒州 樂平 사람이다. 仁宗 景祐 元年(1034) 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監察御史로서 江淮發運判官이 되었다. 입조하여 言事御史가 되었다가 일에 연좌되어 宣州知州로 쫓겨났다. 嘉祐 2년(1057) 吏部員外郞과 直龍圖閣을 역임하였다. 성격이 낙천적이었고 議論을 잘해 杜衍과 范仲淹이 모두 칭송하였다.
역주8 (來)[廣] : 저본에는 ‘來’로 되어 있으나 문맥이 통하지 않아 본집에 의거하여 ‘廣’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畫舫之舟 : 畫舫舟라는 말로, 그림을 그려 아름답게 꾸민 놀잇배이다.
역주10 使上下給足 : 세 사람이 發運使가 되어 米穀의 수송을 관장하여 직무를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하 모두 풍족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역주11 東南六路 : 江淮, 浙東, 浙西, 荊湖 등 發運使가 관할하는 구역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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