旣重曾鞏文하고 不放口許曾鞏하니 正是名公送秀才文字法家로다
하니 有司斂群材
하고 操尺度
하야 槪以一法
하야 考其不中者而棄之
라
雖有魁壘拔出之材
라도 其一
不中尺度
면 則棄不敢取
라
幸而得良有司라도 不過反同衆人하야 歎嗟愛惜을 若取捨非己事者하고 諉曰 有司有法하니 奈不中何오하나니
有司固不自任其責
이어니와 而天下之人
이 亦不以責有司
하고 皆由其不中法也
라하니 不幸有司尺度一失
면 則往往失多而得少
라
況若曾生之業은 其大者固以魁壘요 其於小者亦可以中尺度어늘 而有司棄之하니 可怪也로다
然曾生不非同進하며 不罪有司하야 告予以歸하야 思廣其學而堅其守라
夫農不咎歲而菑播是勤이니 其水旱則已나 使一有穫이면 則豈不多邪아
曾生槖其文數十萬言來京師로되 京師之人이 無求曾生者라
이리오마는 而生辱以顧予
하니 是京師之人
이 旣不求之
하고 而有司又失之
어늘 而獨余得也
라
於其行也
에 遂見於文
하야 하고 而賀余之獨得也
하노라
증공曾鞏의 문장을 높이 인정하면서도 드러내놓고 말하여 증공을 허여하지는 않았으니 그야말로 명공名公이 수재秀才를 전송하는 글의 전범典範이다.
광문廣文 증생曾生이 남풍南豐에서 와서 태학太學에 들어가 여러 생도와 함께 시관試官에게 무리 지어 나아가니, 시관이 인재를 모으고 시권試券을 평가하는 기준을 가지고서 동일한 방법으로 가늠하여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살펴서 버렸다.
비록 뛰어나고 특출한 인재가 있더라도 그 문장이 조금이라도 기준에 맞지 않으면 버리고 취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좋은 시관을 만나더라도 도리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취급하여 인재를 취사取捨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탄식하고 애석해하면서 핑계대기를 “시관에게는 법도가 있으니 그 기준에 맞지 않음을 어이하겠는가.”라고 말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시관이 본래 스스로 책임지지 않거니와 천하 사람들 역시 시관을 책망하지 않고 다들 “법도에 맞지 않아서이다.”라고 하니, 불행하게 시관이 기준을 한번 잘못 적용하면 종종 인재를 잃음은 많고 인재를 얻음은 적게 된다.
아, 시관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과연 좋은 법도인가.
어찌 오래되었는데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가.
더구나 증생曾生의 학업學業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큰 것은 본래 뛰어나고 그 작은 것에 있어서도 기준에 맞을 만한데 시관이 그를 버렸으니 의아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증생曾生은 함께 진사에 급제한 이들을 비난하지도 않고 시관을 책망하지도 않고서, 나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그 학문學問을 넓히고 그 지조를 굳게 지킬 것을 다짐하였다.
내가 처음에 그 문장에 놀랐었는데 또 지금 그의 뜻을 장하게 여긴다.
농부는 그해의 날씨를 탓하지 않고 김매고 씨 뿌리는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니,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면 다 끝나버릴 뿐이지만 만약 한번 수확을 하게 되면 어찌 많이 거두지 않겠는가.
증생曾生이 자신이 지은 수십 만 자나 되는 글을 전대에 담아 경사京師에 왔는데 경사 사람들 중에 증생을 찾는 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증생 또한 사람들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증생을 찾을 수 있겠는가만 증생이 욕되이도 나를 찾아주니, 이는 경사 사람들이 이미 그를 찾지 않고 시관試官이 또 그를 잃은 것인데 홀로 나만 그를 얻은 것이다.
그가 떠나가는 길에 마침내 글로 드러내어 증생을 아는 자로 하여금 시관이 그를 잃은 것을 위로하게 하고 내가 홀로 그를 얻은 것을 축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