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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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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以贄與文으로 稱秀才하고 而以禮與賦詩 次己之所以答處하니 議論甚曲而采
僕昨以吏事至漢東이러니 秀才見僕於하야 以啓事二篇으로先進하고拜起旋辟 甚有儀하고 坐而語諾 甚謹이라
讀其辭 溫密華富하야 甚可愛하고 視秀才待僕之意 甚勤而禮也
古人之相見 必有歡欣交接之誠而不能達일새 乃取之類하야 致其意하야 爲贄而先하고 旣致其意 又恥其無文하면 則以虎豹之皮 繢畫之布以飾之하니 然後 意達情接이라
客旣贄而主人必禮以答之하야 爲陳酒壺矢燕樂之具하야 將其意하고 又爲賦詩以陳其情이라
今秀才好學甚精하고 博記書史하야 務爲文辭하야 不以羔禽皮布爲飾하고 獨以言文其身이라
而其贄旣美하고 其意旣勤矣 宜秀才責僕之答厚也어늘
僕旣無主人之具以爲禮 獨爲秀才하야 賦詩女曰鷄鳴之卒章曰 知子之來之하야 雜佩以贈之라하노니
取其知客之來 豫儲之美以送客이어늘 雖無此物이나 猶言之以致其意厚也
僕誠無此物하니 可謂空言之爾
秀才年且少 貌厚色揚하며 志銳學敏일새
因進其業하고 修其辭하야 之不已하야 使其文采五色 潤澤炳鬱하니 若贄以見當世公卿大人이면 非惟若僕空言以贈也 必有分庭而禮하야實幣篚하야 延爲上賓者리니 惟勉之不已하라
不宣이라
曰 通篇情敍하니 此小文字之極工者也


12. 곽수재郭秀才에게 보낸 편지
예물禮物문장文章을 가지고 수재秀才를 칭찬하고, 와 《시경詩經》의 를 읊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답할 바를 서술하였으니, 의론이 매우 곡진曲盡하고 문채가 있다.
내가 작일昨日에 공무로 한동漢東에 갔었는데 수재秀才가 나의 숙부 집에서 나를 만날 때 계사啓事 두 편을 가지고 명함과 함께 먼저 전달하고, 빈계賓階에서 절하고 일어나 겸양을 보이는 모습이 매우 의젓하였고 앉아서 얘기하는 말투가 매우 근신勤愼하였다.
그 계사의 글을 읽어봄에 온화하고 정밀하며 화려하고 섬부贍富하여 매우 좋았으며, 수재가 나를 대하는 뜻을 보건대 매우 지성스럽고 예의가 있었습니다.
고인古人상견相見할 때 반드시 기쁘게 서로 접대接待하는 정성이 있는데도 그 정성을 표현할 수 없기에 검은 염소, 기러기, 꿩, 오리 등을 취하여 자기 뜻을 전달하면서 예물로 삼아 먼저 드리고, 이미 자기 뜻을 전달해놓고 또 문채가 없음이 부끄러우면 범이나 표범의 가죽, 또는 그림을 수놓은 베로 예물을 싸서 수식修飾하니, 그런 뒤에야 뜻이 제대로 전달되고 정이 서로 접하였습니다.
빈객이 예물을 드리면 주인은 반드시 를 갖추어 답하여 술과 안주, 폐백을 담은 대광주리, 투호投壺, 연회를 베풀어서 자기 뜻을 전하고, 또 《시경詩經》의 시를 읊어서 자기의 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지금 수재秀才는 학문을 좋아하고 학문에 매우 정심精深하며 서사書史에 박식하여 문장을 짓는 일에 힘써서 염소나 날짐승, 가죽이나 베로 예물의 수식을 삼지 않고, 유독 글로써 자신을 문식文飾하였습니다.
그 예물이 이미 아름답고 그 뜻이 이미 지성스러우니, 의당 수재가 나에게 답례를 요구하는 것이 클 터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주인으로서 예대禮待할 것들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단지 수재를 위해 《시경詩經》 〈여왈계명女曰鷄鳴〉의 마지막 을 읊어 “그대가 오심을 아니, 잡패雜佩를 풀어 선물합니다.”라고 하니,
손님이 오실 것임을 알면 미리 좋은 패옥들을 갖추어두었다가 이로써 손님을 전송해야 하는데, 비록 이러한 물품은 없으나 그래도 이 시구詩句를 말하여 뜻을 전달함이 후하다는 의미를 취한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이러한 물품이 없으니 빈말을 한 것일 뿐입니다.
수재秀才는 나이가 아직 어린데, 용모는 온후溫厚하고 안색은 발양發揚하며 의지는 확고하고 학문은 민첩합니다.
그리하여 학업을 향상하고 문장을 연마하여 삶은 베를 말리고 천을 짜듯이 글을 지어 마지않음으로써 그 문채의 오색五色이 윤택하고 찬란하게 하였으니, 만약 수재의 글을 예물로 삼아서 당세의 공경대인公卿大人들을 만나면 나처럼 빈말로 답례할 뿐만이 아니라, 필시 주객主客의 정중한 상견相見하여 연회를 열고 폐백幣帛을 갖추어 맞이하여 상빈上賓으로 맞이할 이가 있을 터이니, 노력하여 마지않도록 하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당형천唐荊川이 이르기를 “전편全篇이 정감이 있게 서술되었으니, 이는 짧은 글로서 지극히 공교工巧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與郭秀才書 : 이 글은 明道 2년(1034)에 쓴 것이다.
역주2 叔父 : 歐陽曄을 가리킨다. 歐陽脩가 4세 때 부친 歐陽觀을 여의고 숙부인 歐陽曄이 推官으로 있는 隨州로 가서 생활하였다. 隨州는 지금의 湖北省 隨縣이다. 漢東이 바로 隨州를 가리킨다.
역주3 門刺 : 오늘날의 명함이다. 漢나라 때는 종이가 없어 대나무를 깎아서 명함을 만들었기 때문에 刺라 하였다.
역주4 賓階 : 고대에 집에 東階와 西階가 있었는데, 주인이 손님을 접견할 때 주인은 동계에 서고 손님은 서계에 섰다. 그래서 서계를 賓階라 한다. 《儀禮 鄕飮酒禮》
역주5 羔雁雉鶩 : 고대에 相見할 때의 贄, 즉 禮物로 卿은 검은 염소[羔]를 쓰고 大夫는 기러기[雁]를 쓰고, 士는 꿩[雉]을 쓰고, 庶人은 오리[鶩]를 썼다. 《周禮 大宗伯》
역주6 : 효
역주7 : 예물을 담는 대바구니이다.
역주8 珩璜琚瑀 : 좌우에 차는 佩玉이다. 《詩經》 〈鄭風 女曰鷄鳴〉의 “雜佩以贈之”에 대해, 朱子의 《詩集傳》에 “雜佩는 좌우에 차는 佩玉이다. 위에 가로 댄 것을 珩이라 한다. 아래에서 세 개의 끈을 매달고 진주조개를 꿰며, 가운데 끈의 중간에 하나의 큰 구슬을 꿴 것을 瑀라 한다. 끝에 하나의 옥을 매다는데 두 끝이 모두 뾰족한 것을 衝牙라 한다. 양 곁의 끈 중간에 각기 하나씩 옥을 매다는데, 길쭉하고 넓적하며 네모진 것을 琚라 한다. 그 끝에 각각 한 옥을 매다는데 半璧과 같으며 안으로 향한 것을 璜이라 한다. 또 두 개의 끈으로 구슬을 꿰어 위로 珩에 매달고, 양 끝은 아래로 교차시켜 瑀를 꿰고 아래로 두 璜에 매달아서 사람이 걸어가면 衝牙가 璜에 부딪쳐 소리가 난다.”라고 하였다.
역주9 暴(폭)練緝織 : 문장 짓는 것을 옷감 짜는 일로 비유한 것이다. 暴練은 生絲를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周禮》 〈天官 染人〉에 “무릇 옷감을 물들이는 일은, 봄에는 생사를 말리고 여름에는 분홍색과 검은색 물을 들인다.[凡染 春暴練 夏纁玄]”라고 하였다.
역주10 籩豆 : 籩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그릇이고, 豆는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인데, 모두 제사에 음식을 담는 祭器 또는 연회에 음식을 담는 器物로 쓰인다.
역주11 唐荊川 : 荊川은 明나라 학자 唐順之의 호이다. 그의 자는 應德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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