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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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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施詠〉
王維
艶色天下重
寧久微
暮作吳宮妃
賤日豈殊衆
貴來方悟稀
不自著羅衣
君寵益嬌態
君憐無是非
當時浣紗伴
莫得同車歸
效顰安可希
[集評] ○ 寫盡炎凉人眼界 不爲題縛 乃臻斯旨 入後人手 徵引故實而已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1
○ 唐人詩意 不必在題中
如右丞息夫人怨云 莫以今時寵 能忘舊日恩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
使無稗說載其爲寧王敓餠師妻作 後人何從知之
可見西施篇之 賤日豈殊衆 貴來方悟稀 邀人傅香粉 不自著羅衣 君寵益嬌態 君憐無是非
當是爲李林甫楊國忠韋堅王鉷輩而作 - 淸 吳喬, 《圍爐詩話》 卷1


〈서시를 노래하다〉
왕유
미색을 천하가 중히 여기니
서시가 어찌 오랫동안 미천하리오
아침에는 越溪의 여인이더니
저녁에는 吳宮의 妃가 되었네
미천한 시절엔 뭇 여인과 달랐겠는가
귀하고 나서야 드문 미녀임을 알았구나
시녀를 불러 분단장 시키고
비단 옷도 혼자 입지 않네
임금이 총애하니 교태 더해지고
임금이 아껴주니 옳고 그름이 없구나
빨래하던 때의 동무들
함께 수레타고 들어온 이 없네
이웃 여인에게 권고하노니
찡그림 흉내 낸다고 어찌 총애 바랄 수 있나
[集評] 염량세태를 사람의 눈앞에 다 묘사하였으니 제목에 국한되지 않아야 이 뜻을 알 수 있는데, 후인의 손에 들어간 뒤에는 전고만 끌어다 댈 뿐이다.
당나라 사람의 詩意는 반드시 제목에 있는 것은 아니다.
右丞(왕유)의 〈息夫人〉은 원망하며 “지금의 총애로 이전의 은혜를 잊을 수 없네. 꽃을 보니 눈물 가득하여 [莫以今時寵 能忘舊日恩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라고 하였는데,
가령 稗說에 때문에 지은 시가 실려 있지 않았다면 후인들이 무엇으로 그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서시〉편의 “미천한 시절 뭇 여인과 달랐겠는가, 귀하고 나서야 드문 미녀임을 알았구나. 시녀를 불러 분단장 시키고, 비단 옷도 혼자 입지 않네. 임금이 총애하니 교태 더해지고, 임금이 아껴주니 옳고 그름이 없구나.[賤日豈殊衆 貴來方悟稀 邀人傅脂粉 不自著羅衣 君寵益嬌態 君憐無是非]”에서
당시 李林甫‧楊國忠‧韋堅‧王鉷의 무리들 때문에 지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西施 : 춘추시대 越나라 미녀로, 성은 施이고 이름은 夷光이다. 본래 苧蘿山 땔나무 장수의 딸이다. 越王 句踐이 吳王 夫差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절세미인인 서시를 范蠡로 하여금 오왕에게 바치게 하였다. 오왕은 서시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었고, 이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
역주2 朝爲越溪女 暮作吳宮妃 : 서시는 어렸을 때 越溪에서 연꽃을 따고 빨래하던 소녀였으나, 후에 오나라 궁에 들어가 오왕 부차의 寵妃가 되었다. 越溪는 若耶溪로 浙江省 紹興縣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서시가 연꽃을 따고 빨래하던 곳이다. 吳宮은 오왕이 서시를 위해 세운 궁궐인 館娃宮으로 香徑 響屧廊을 갖추고 있으며, 터는 江蘇省 吳縣 靈巖山 위에 있다.
역주3 邀人傅脂粉 不自著羅衣 : 서시가 오나라 궁에 들어간 뒤에는 존귀해졌으므로 궁녀들이 그녀가 화장하고 옷 갈아입는 것을 시중들었다.
역주4 持謝鄰家子 效顰安可希 : ‘謝’는 알려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녀 모두 ‘子’라고 하였다. ‘效顰’은 《莊子》 〈天運〉에, “서시는 가슴앓이 병이 있어 찡그렸는데, 마을의 추녀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돌아가서는 자신도 가슴을 잡으면서 찡그렸다.[西施病心而矉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歸亦捧心而矉]”라고 하였다. 후에 서시에 대비되는 추녀를 ‘東施’라 하여, 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거나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뜨는 것을 비유하여 ‘東施效顰’이라고 하였다. ‘希’는 총애를 얻기 바란다는 뜻이다.
역주5 초왕과……말하지 않네 : 息夫人은 息侯의 아내인 息嬀이다. 蔡哀侯가 息侯의 奸計로 莘의 전쟁에서 楚나라의 포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원한을 갚기 위해 楚子 앞에서 息嬀를 칭찬해 말하니, 楚子가 息國으로 가서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 息侯를 대접하다가 마침내 息國을 멸망시키고서 식규를 데리고 돌아왔다. 식규는 楚나라로 온 뒤에 堵敖와 成王을 낳았으나, 楚子와 말을 하지 않았다. 楚子가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한 여자로 두 남편을 섬겼으니 비록 죽지는 못할망정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春秋左傳 莊公 14年》
역주6 寧王이……빼앗은 것 : 寧王은 唐나라 睿宗의 맏아들 憲이다. 영왕의 집 근처에 떡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다. 영왕이 그녀의 남편에게 후한 값을 주고 그녀를 취하여 매우 총애하였다. 일년 남짓 만에 영왕이 “아직도 떡 팔던 전남편을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전 남편을 불러 만나보게 하니, 그녀가 남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정을 가누지 못하니, 그 자리에 있던 10여 명의 객들이 모두 처연해 하였다. 이에 영왕이 객들에게 시를 짓게 하니, 왕유가 자장 먼저 시를 완성하였는데, 그 시에, “지금의 총애로 이전의 은혜 잊을 수 없네. 꽃을 보니 눈물 가득하여 초왕과 더불어 말하지 않네.[莫以今朝寵 寧忘舊日恩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라고 하였다. 《詩話總龜 前集 卷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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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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