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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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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詠懷古跡 其二〉
〈옛 자취를 읊으며 심회를 적다 두 번째 시〉
杜甫
두보
떨어지고 시드는 모습 보니 송옥의 悲秋를 깊이 알겠고
그의 풍류와 儒雅함은 또한 나의 스승이 될 만하다
천년 후 서글피 눈물을 뿌리나니
신세가 처량한 것은 시대만 달리했을 뿐
강산의 고택에 부질없이 문장만 남았는데
陽臺의 사랑 얘기, 어찌 꿈에 그렸으랴
最是楚宮俱泯滅
바로 여기, 楚宮은 흔적 없이 사라졌으니
舟人指點到今疑
뱃사람이 가리킨 곳 지금까지 의심하네
[通釋] 가을이 되어 초목의 잎이 떨어지고 시드는 모습을 보노라니 송옥이 그토록 가을을 슬퍼했음을 나 역시 너무나 잘 알겠다. 그의 인품은 매우 맑고 고고했으며, 그가 지닌 文才는 매우 정밀하고 깊어서, 南朝의 庾信과 함께 내가 늘 스승으로 여겼던 인물이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갔지만 나는 그의 자취를 보며 깊은 슬픔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와 나는 비록 시대를 달리하여 살았지만 세상에서 得意하지 못했던 처량한 신세는 두 사람 모두 같다고 할 수 있다. 삼협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송옥의 고택에 주인은 이미 간데없고 그저 그가 남긴 문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러니 宋玉이 어찌 陽臺의 雲雨之事만 말했겠는가.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초나라의 궁전이 모두 없어져, 뱃사람이 지나가며 “여기가 예전의 그곳이오.”라 해도 과연 맞는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解題] 이 시는 송옥의 고택을 지나다가 추모하며 지은 시이다. 송옥의 〈九辯〉, 〈高唐賦〉와 같은 문장이 천고토록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음을 讚賞하였고, 그의 古宅과 文章은 남아 있지만, 그의 생은 짧았던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杜甫는 송옥을 庾信과 더불어 자신의 스승이라 칭하는 동시에 그에게서 懷才不遇의 처량한 신세를 지닌 자신의 모습을 본다. 杜甫 역시 촉 땅을 떠나 삼협을 배로 전전하다가 남은 생을 곤궁하게 마친 인물이므로 삼협 근처에 있는 송옥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송옥을 조문하다가 감정이 觸發되어 그와 비슷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것이다.
[集評]○ 詩多格律 有吳體 有虛實體 此尋常也
[集評]○ 시에는 격률이 많은데, 가 있고 虛實體가 있으니 이는 평범한 것들이다.
……又有變律體 蓋二聯起頭 沓用仄聲 如韋蘇州詩峽東蒼江路向東 東南山豁大河通 春水蒼茫遠天外 夕陽明滅亂流中
……또한 變律體가 있으니 대개 2聯의 처음에 측성을 사용하는데 韋蘇州(韋應物)의 시 가운데 ‘’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此乃律詩之第一第二韻也
이는 곧 율시의 제1‧2운이라 할 수 있다.
又杜詩曰 搖落深知宋玉悲 風流儒雅亦吾師
또한 두보의 시에 이르기를 “떨어지고 시드는 모습 보니 송옥의 비추를 깊이 알겠고, 그의 풍류와 儒雅함은 또한 나의 스승이 될 만하다.
悵望千秋一洒淚 蕭條異代不同時 此類甚多 - 朝鮮 梁慶遇, 《霽湖集》 卷9 〈詩話〉
천년 후 서글피 눈물을 뿌리나니, 신세가 처량한 것은 시대만 달리했을 뿐[搖落深知宋玉悲 風流儒雅亦吾師 悵望千秋一洒淚 蕭條異代不同時]”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류는 매우 많다.
○ 其二詠宋玉宅
○ 〈詠懷古跡〉의 제2수는 송옥의 고택을 읊은 것이다.
玉悲搖落 而公之深知 則悲與之同也
송옥은 가을의 搖落함을 슬퍼하였는데, 공(杜甫)은 그러한 심정을 매우 잘 알았으니 슬픔이 그와 같았다.
故悵望千秋 爲之灑淚
그렇기 때문에 천년 후 슬픔에 잠겨 그를 위해 눈물을 뿌린 것이다.
謂玉蕭條于前代 公蕭條于今代 但不同時耳 不同時而同悲也
이는 송옥은 前代에 신세가 蕭條하였고 공은 당대에 蕭條하여 단지 시대가 달랐을 뿐이지, 시대는 다르지만 슬픔은 같았음을 말한 것이다.
今古宅無主 空存文藻 楚臺亦荒 誰爲夢思
지금 고택에 주인은 없고 그저 문장만이 남아 있으며, 楚臺 역시 황폐해졌으니 누가 巫山之夢을 꿀 것인가.
最是楚宮旣滅 而舟人過此 到今有行雲行雨之疑
또한 여기 초나라의 궁전은 사라졌으니, 뱃사람과 이곳을 지나갔으나, 지금까지도 구름이 되고 비가 되었던 곳인지 의심하였다.
知玉所存雖止文藻 而有一段靈氣行乎其間 其風流儒雅不曾死也 故吾願以爲師也 - 明 王嗣奭, 《杜臆》 卷8
송옥이 남긴 것은 비록 문장밖에 없지만, 그의 靈氣가 그 사이를 돌아다녀 그 風流와 儒雅는 일찍이 죽은 적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스승으로 삼고 싶다.
○ 前半懷宋玉 所以悼屈原 悼屈原者 所以自悼也
○ 전반부는 송옥을 생각하였으니 이는 屈原을 애도하는 것이요, 屈原을 애도하는 것은 스스로를 애도하는 것이다.
後半抑楚王 所以揚宋玉 揚宋玉者 亦所以自揚也
후반부는 초왕을 억누르고 송옥을 높였으니, 송옥을 높인 것은 또한 스스로를 높인 것이다.
是之謂詠懷古跡也 - 淸 黃生, 《杜少陵集詳注》 卷17
이것이 이른바 ‘詠懷古跡’이라는 것이다.
○ 此下四首 分詠峽口古跡也 俱就各人時事寄慨 益知因懷感古 因古抒懷之說 俱爲臆語 - 淸 浦起龍, 《讀杜心解》 卷4
○ 첫 번째 시 이하의 네 수는 삼협 어귀의 古跡을 읊은 것이다. 모두 각 인물들의 時事를 들어 감개함을 기탁한 것이니, 생각함으로써 고적을 느끼고, 고적을 통해 회포를 푼다는 말을 더욱더 알겠다. 모두 가슴으로 쓴 말들이다.
○ 因宅而詠宋玉 親風雅也
○ 고택을 통해 송옥을 읊었으니 風雅에 가깝다.
四人中 讀宋玉文章 與公相似 通古今爲氣類 故以搖落知悲起興 而以風雅吾師推之
네 사람 가운데 송옥의 문장을 읽어보면 공과 가장 흡사하여 고금을 통틀어 그 기운이 同類가 되는 까닭에 ‘搖落知悲’로 起興하였으며 ‘風雅吾師’로 그것을 옮겨갔다.
三四空寫申知悲 五六實拈申吾師
3‧4구는 상상으로 써서 ‘知悲’를 설명한 것이고, 5‧6구는 실제로 짚어내어 ‘吾師’를 설명한 것이다.
言宅已故而猶佳者 以文藻增華 對江山而感嘆也
집이 이미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아름답다고 한 것은 ‘文操’에 화려함을 더한 것이고, 강산에 대해서 감탄을 한 것이다.
豈徒以雲雨臺存 勞吾夢思已乎
어찌 다만 ‘운우대’가 남아 있다고 해서 나의 꿈을 수고롭게 하겠는가.
結以楚宮泯滅與古宅相形 神致呑吐 擡托愈高
‘楚宮泯滅’과 ‘古宅’을 대비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어 그 정신을 삼켜 雅致를 토했으니 擡托함이 더욱 높아졌다.
昔人題子陵臺云 嚴陵有釣臺 光武無寸吉 與此意同 - 淸 浦起龍, 《讀杜心解》 卷4
옛사람의 〈題子陵臺〉에 이르기를 ‘嚴子陵에게는 釣臺가 있지만 光武帝에게는 한 치의 길함도 없다.’는 것과 뜻이 같다.
○ 謂高唐之賦乃假托之詞 以諷淫惑 非眞有夢也
○ 〈고당부〉를 일러 ‘假托之詞’라 하니, 그것으로써 음란하고 미혹됨을 풍자한 것이지 실제로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다.
懷宋玉亦所以自傷
杜甫가 송옥을 생각했던 것 역시 스스로를 슬퍼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言斯人雖往 文藻猶存 不如楚宮同其泯滅 其寄慨深矣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14
그 사람은 비록 갔지만, 문조는 여전히 남아 있어 초궁이 다 사라진 것과는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니, 그 감개를 붙인 것이 깊다.
역주
역주1 搖落深知宋玉悲 : ‘搖落’은 가을이 되어 초목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宋玉悲’는 송옥의 悲秋를 의미한다. 송옥의 〈九辯〉에 “슬프구나, 가을의 기운이여. 소슬하구나, 초목의 요락함과 쇠약해짐이.[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구절이 있다. 송옥은 전국시대 楚나라의 시인이었으며, 屈原의 뒤를 이은 楚辭의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九辯〉은 그의 대표작품이다.
역주2 風流儒雅亦吾師 : ‘風流’는 인품이 淸高한 것을 말한다. ‘儒雅’는 문학이 깊고 정밀함을 뜻한다. ‘吾師’는 宋玉을 지칭한다.
역주3 悵望千秋一灑淚 : ‘悵望’은 깊은 슬픔에 빠진 것이다. ‘一灑淚’는 눈물을 뿌리는 것이다. 여기서는 杜甫가 송옥을 추모하다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뿌린다는 의미이다.
역주4 蕭條異代不同時 : 杜甫와 송옥이 각각 다른 시대에 살았으나, 그들 모두 懷才不遇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蕭條異代’라 표현한 것이다.
역주5 江山故宅空文藻 : 宋玉의 古宮은 歸州(지금의 湖北省 稊歸縣)와 江陵(지금의 호북성 강릉현)에 있다고 전하는데 여기서는 歸州古宅을 가리킨다. 三峽의 가운데 있으므로 여기서 ‘江山古宅’이라 이른 것이다. ‘空文藻’는 송옥이 일찍 세상을 떠나 부질없이 그의 辭賦만이 세상에 전한다는 뜻이다.
역주6 雲雨荒臺豈夢思 : 송옥의 〈高唐賦〉 序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楚나라 懷王이 高唐을 유람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한 부인이 나타나 스스로 칭하기를 ‘巫山神女’라 하였다. 회왕은 그녀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이별에 임해서 무산신녀가 “저는 무산의 남쪽 高丘山 험한 곳에 사는데, 아침엔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어 아침이면 아침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陽臺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妾在巫山之陽 高丘之阻 且爲朝雲 暮爲作雨 朝朝暮暮 陽臺之下]”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남녀간의 사랑의 행위를 ‘雲雨之情’이라 불렀다. ‘荒臺’는 陽臺를 말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 臺가 황폐해졌다는 뜻이다. 陽雲臺는 지금의 사천성 巫山縣의 陽臺山에 있다.
역주7 吳體 : 詩體의 하나로, 통속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친근한 비유를 써서 江南 지방 民歌의 風味가 있는 시를 말한다.
역주8 峽東蒼江路向東……夕陽明滅亂流中 : 위응물의 율시 〈自鞏洛舟入黃河卽事 寄府縣僚友〉의 첫 네 구절로 양경우가 인용한 구절과 약간 차이가 있다. 原詩는 다음과 같다. “夾水蒼山路向東 東南山豁大河通 寒樹依微遠天外 夕陽明滅亂流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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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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