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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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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白(701~762)
자는 太白이며, 號는 靑蓮居士이다. 본적은 隴西省의 成紀(지금의 甘肅省 天水市 부근)이며, 부친은 隋나라 말엽, 지금의 키르키즈스탄 공화국의 토크마크 부근(唐代에는 安西 都護府에 속해 있었음)에 寓居하였는데, 이백은 그곳에서 출생하였다.5세에 아버지를 따라 蜀郡 綿州 彰明縣 靑蓮鄕(지금의 四川省 綿陽縣)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어려서는 蜀 땅에서 학문을 배우며 자유롭게 노닐었다. 25세에는 장대한 뜻을 품고 촉 땅을 떠나 安陸(지금의 胡北省 安陸縣), 任城(지금의 山東省 濟寧縣) 등을 중심으로 吳越‧齊魯‧幽燕을 유람하며 산천의 빼어난 風光을 두루 감상하고 당시의 사회적 情況들을 이해하고 체득하였다.
현종 天寶 초년에 吳筠을 따라 長安으로 들어갔다. 당시 賀知章은 그의 시를 읽고 마치 天上의 謫仙과 같다고 감탄하며 현종에게 그를 천거하였다. 이로 인해 이백은 翰林에 봉해졌다. 관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는 조정의 부패나 통치자들의 荒淫을 한층 더 절감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환관들의 중상모략으로 인해 장안을 떠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다시 새로운 漫遊를 시작하게 된다. 安史의 난이 일어나 永王 李璘이 군사들을 통솔하여 九江을 경유하자, 국가에 대한 충정을 품고 이린의 막부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이린과 그의 병사들이 패전하자, 그 또한 이로 인해 역적으로 몰려 하옥되고, 이듬해 夜郞으로 유배를 갔으나, 도중에 사면되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백이 생존했던 시기는 開元‧天寶 연간에 해당한다. 이 당시는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와 문화의 수준도 매우 번성하였으며 국력 또한 강한 때여서, 그는 이를 토대로 많은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현종과 위정자들의 부패와 모순을 경험하고, 안사의 난이 일어나면서 국가가 갑자기 쇠락하게 되는 국면을 직접 목도하게 된다. 그는 詩歌를 창작하면서 이러한 興亡盛衰의 세태를 작품 속에 반영하였다. 때문에 그의 작품 가운데는 唐代의 화려한 문물이 담겨져 있는 동시에, 그의 시대정신 또한 함께 담겨 있다.
저서로는 《李太白全集》이 있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月下獨酌〉, 〈春思〉, 〈關山月〉, 〈子夜四時歌 春‧夏‧秋‧冬〉, 〈長干行〉, 〈廬山謠寄盧侍御虛舟〉, 〈夢游天姥吟留別〉, 〈金陵酒肆留別〉, 〈宣州謝月兆樓餞別校書叔雲〉, 〈蜀道難〉, 〈長相思 一‧二〉, 〈行路難 一‧二‧三〉, 〈將進酒〉, 〈贈孟浩然〉, 〈渡荊門送別〉, 〈送友人〉, 〈聽蜀僧浚彈琴〉, 〈夜泊牛渚懷古〉, 〈夜思〉, 〈怨情〉, 〈玉階怨〉, 〈送孟浩然之廣陵〉, 〈下江陵〉, 〈淸平調 一‧二‧三〉 등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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