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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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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墓〉
〈房太尉의 墓를 떠나며〉
杜甫
두보
타향에서 또 먼 길 떠나며
駐馬別孤墳
말을 멈추고 외로운 무덤에 작별을 하네
무덤 가까이는 눈물로 마른 흙이 없고
낮은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네
對棋
바둑을 둘 때면 謝太傅를 모신 것 같았고
칼을 잡고 徐國의 임금을 찾아온 듯
唯見林花落
오직 보이는 것이라곤 꽃잎이 떨어지고
鶯啼送客聞
꾀꼬리 울어 나그네를 전송하는 소리 들릴 뿐
[通釋] 이곳 閬州에서 타향살이하다 또 성도로 먼 길을 떠나면서 잠시 말을 세우고 외로운 방관의 무덤에 들러 조문을 한다. 안타까운 그대 생각에 무덤가에서 눈물을 흘리니 우는 자리 가까운 곳에는 마른 땅이 없고 낮게 깔린 하늘에는 조각구름만 떠 있다. 살아 있을 때 방태위는 내가 뫼시고 바둑을 둘 때면 마치 사안과 같은 인격이었다. 나를 알아주셨기에 옛날 계찰이 서군에게 들러 그의 무덤에 칼을 걸어두고 갔듯, 돌아가신 방태위를 잊지 못해 그의 무덤에 와 있다. 그의 무덤은 쓸쓸하게 아무도 없어 숲속에 지는 꽃만 보이고 나그네를 전송하는 꾀꼬리 울음소리만 들린다.
[解題] 이 시는 杜甫가 閬州에서 成都로 돌아갈 때 쓴 것이다. 嚴武의 도움으로 성도에 머물렀던 杜甫는 嚴武가 入朝하면서 잠시 성도를 떠났는데, 廣德 2년(764) 엄무가 다시 성도로 돌아오자 杜甫 역시 성도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閬州에 있었던 杜甫가 봄에 成都로 돌아오면서 이 시를 지었는데, 知己에 대한 우정이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 구절은 쓸쓸한 무덤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방관의 長子는 두 눈이 멀었고 첩 소생의 자식은 아직 어려, 방태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무덤이 적막했다고 한다. 마지막 구절은 그런 정황을 나타낸 것이다. ‘孤墳’이라는 표현이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서로 照應하면서 재상까지 지낸 인물의 쓸쓸한 무덤 분위기를 전해준다.
[集評]○ 對棋 平昔相與之情 把劍 死後不忘之誼
[集評]○ 마주해 바둑을 둔 일은 평소 서로 나누던 정이요, 칼을 잡은 것은 죽은 후에도 잊지 않는 友誼이다.
結聯以聞見二字 參錯成韻 本謂別時不見有送客之人 送客者唯有落花啼鳥耳 - 淸 顧宸, 《律說》 仇兆鰲 《杜詩詳註》에서 인용
마지막 연은 ‘聞, 見’ 두 글자를 서로 어긋나게 놓아 韻을 만들었는데, 본래는 이별할 때 나그네를 전송하는 사람은 볼 수 없고 나그네를 전송하는 것이라곤 떨어지는 꽃과 우는 새 뿐임을 말한 것이다.
○ 上四 直將臨墓哀泣心事 盡情寫過 下乃分疏出所以哭泣之故來 追宿昔 感身後 傷謁別 皆其故也 此爲逆局 - 淸 浦起龍, 《讀杜心解》
○ 위의 4구는 무덤에서 슬피 우는 심사로 감정을 다 묘사했으며, 아랫구절에 가서야 곡하며 우는 연유를 하소연하였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방태위가 죽은 후의 느낌을 말하고, 만나 뵙고 이별하는 슬픔을 토로하는 것은 다 그런 까닭에서이다. 이는 상황을 거꾸로 설명한 것이다.
○ 結以聞見二字 參錯成韻 謂墓間送別者絶無一人 惟有花落鶯啼 相爲送客而已
○ 마지막에 ‘聞, 見’ 두 글자를 서로 어긋나게 놓아 韻을 만들었는데, 무덤에 나그네를 전송하는 사람은 전혀 없고 꽃이 지고 새만 울며 나그네를 전송할 뿐임을 말하였다.
正與孤字相應 - 淸 范廷謀, 《直解》 蘇仲翔 《李杜詩選》에서 인용
정확하게 ‘孤’字와 상응한다.
역주
역주1 房太尉 : 房琯을 가리킨다. 《舊唐書》에 그에 관한 기록이 있다. 字는 次律로 河南人이다. 현종이 안녹산의 난으로 蜀으로 피난갈 때 재상이 되었다. 肅宗 乾元 元年 6월, 陳濤斜의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邠州刺史로 폄직되었다.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 寶應 2년 특진되어 刑部尙書가 되었는데, 객지에서 병이 들어 閬州(지금의 泗川省 閬州縣)의 절에서 廣德 元年(763) 8월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세로 사후 太尉로 追贈되었다. 《國史補》에 “재상 가운데 張曲江(張九齡) 이후 방태위와 李梁公이 덕이 두터웠다고 말한다.[宰相自張曲江以後 稱房太尉李梁公爲重德]”라고도 하였다. 명재상이었을 뿐 아니라 杜甫와 同鄕 知己로 布衣 때부터 우정을 나눈 사이이며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다. 杜甫는 방관의 추천으로 조정에 들어갈 수 있었고, 방관을 구하려다 숙종에게 죄를 얻어 華州로 貶職된 적도 있었다. 杜甫와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벗이 바로 李白과 방관으로 이 둘과 관계된 시가 杜甫 시에 자주 보인다.
역주2 他鄕復行役 : 이때 杜甫가 閬州에서 成都로 돌아갈 때였다.
역주3 近淚無乾土 : 시인이 눈물 흘리는 무덤가의 주변 가까운 곳은 눈물에 젖어 마른 땅이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다.
역주4 低空有斷雲 : ‘低空’은 낮게 깔린 하늘, ‘斷雲’은 조각구름을 말한다.
역주5 陪謝傅 : ‘謝傅’는 南朝의 謝安을 가리킨다. 살아 있을 때 사안처럼 도량이 넓고 침착했던 방태위의 인품을 드러내주는 말이다. 《晉書》 〈謝安傳〉에 보이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東晉이 前秦의 符堅과 淝水에서 大戰을 벌일 때 謝安은 나그네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동진군의 승전보가 전해졌는데도 사안은 전혀 희색을 띠지 않고 침착하게 있었다는 일화를 인용하였다. 謝安이 死後에 太傅로 追贈되었으므로 謝傅라 하였다.
역주6 把劍覓徐君 : 吳나라 季札의 고사인 季札掛劍을 인용한 것이다. 《史記》 〈吳太伯世家〉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계찰이 처음 사신을 갈 때 북으로 徐國 임금에게 들렀다. 徐君이 계찰의 칼을 좋아하면서도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계찰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으나 上國으로 사신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줄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徐國에 들렀을 때는 徐君이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이에 마침내 자신의 寶劍을 풀어 徐君 무덤가의 나무에 묶어두고 떠났다.[季札之初使 北過徐君 徐君好季札劍 口弗敢言 季札心知之 爲使上國未獻 還至徐 徐君已死 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冢樹而去]” 여기서는 季札을 자신에 비유하여 죽은 후에도 房太尉를 잊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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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2 별방태위묘 110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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