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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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鼓角橫吹曲〉
〈관산월〉
李白
이백
明月出
밝은 달 천산에서 떠올라
蒼茫雲海間
망망한 구름바다 가운데 있네
長風幾萬里
긴 바람은 몇 만 리 밖에서 일어
吹度
옥문관 넘어서 불어오누나
漢下
한나라 군사들이 내려오던 백등의 길
胡窺
오랑캐가 엿보는 청해만
예로부터 전쟁이 일어나던 곳에선
不見有人還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 보이지 않네
望邊色
수자리 병사는 변방의 풍경 바라보다
思歸多苦顔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자주 얼굴 찌푸린다
當此夜
高樓에서는 이 밤에
嘆息未應閑
탄식 응당 멈추지 않으리라
[通釋] 밝은 달은 천산 위에서 떠올라 창망한 하늘 구름이 층층이 낀 가운데 떠 있다. 긴 바람은 몇 만 리나 되는 먼 고향으로부터 옥문관으로 불어 넘어오고 있다. 옛날 한고조 유방이 오랑캐와 싸웠던 백등산, 오랑캐들이 침입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청해호 등 예로부터 전쟁이 일어났던 곳에서는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수자리를 살고 있는 병사들은 변방의 황량한 경치를 볼 때면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생각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수심이 차고 미간이 찡그려진다. 아마도 오늘 밤 집에 있는 아내는 높은 누각에 서서 내가 보고 있는 저 달빛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소리를 그치지 못할 것이다.
[解題] 이 시는 변새의 景色을 읊은 악부시이다. 〈關山月〉은 악부의 鼓角橫吹曲인데 그 가사가 이별의 아픔을 그려낸 것이 많다. 이백은 악부의 옛 제목을 빌려 변새의 풍경과 수자리 사는 병사들의 鄕愁를 표현하였다.
천산에서 밝은 달이 떠오르는 먼 거리의 장면부터 시작하여 장풍이 옥문관으로 불어오는 가까운 장면으로 이어지는 遠近의 표현기법이 뛰어난 시이다. 관문 주변의 달빛과 변새의 요활함을 묘사한 뒤 전쟁이 빈번했던 곳에서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몇 없었음을 회고하였는데, 이는 수자리 사는 병사의 근심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마지막 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병사와 그를 그리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相思의 애절함을 암시하고 있다.
[集評] ○ 吳氏語錄曰
[集評] 《吳氏語錄》에 다음과 같은 말이 보인다.
太白詩如明月出天山 蒼茫雲海間 長風幾萬里 吹度玉門關 皆氣蓋一世
“太白(李白)의 시 가운데 ‘明月出天山 蒼茫雲海間 長風幾萬里 吹度玉門關’과 같은 것은 모두 그 기운이 한 시대를 덮을 만하다.
學者皆熟味之 自不偏淺矣
배우는 자들이 모두 그것을 깊이 음미한다면 절로 편벽되거나 얕아지지 않을 것이다.
天山在唐西州交河郡天山縣
천산은 당의 서주 교하군 천산현에 있다.
天山至玉門關 不爲太遠 而曰幾萬里者 以月如出於天山耳 非以天山爲度也 - 宋 楊齊賢, 《分類補注李太白集》 卷4
천산에서 옥문관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데, ‘幾萬里’라 한 것은 달이 천산에서 떠오르는 것 같기 때문일 뿐이요, 천산과의 거리를 헤아린 것은 아니다.”
역주
역주1 關山月 : 鼓角橫吹曲[북과 호각으로 연주되는 樂府의 歌曲名이다. 횡취곡은 漢나라 張騫이 서역에서 《摩訶兜勒》 한 곡을 가져왔고, 李延年이 다시 新曲 二十八解를 만들어 군악으로 삼았다. 魏晉시대 이후 이십팔해는 이미 없어졌으므로, 현존하는 가사는 모두 그 이후 문인들의 작품이다.]에 속하며 《樂府解題》에 〈關山月〉은 이별을 아파하는 것이라 되어 있다.
역주2 天山 : 天山은 지금의 甘肅省 西北部의 祁連山이다. 《漢書》 〈武帝紀〉에, “天漢 2년에, 貳師將軍(李廣利)이 3만 騎兵으로써 酒泉에 나가서 右賢王과 天山에서 싸웠다.[天漢二年 貳師將軍 以三萬騎出酒泉 與右賢王 戰于天山]”라 하였는데, 注에, “天山은 西域 浦類國에 있는데 長安과의 거리가 8천 리로 곧 祁連山이다. 흉노들이 天을 일러 祁連으로 불렀다.[天山在西域蒲類國 去長安八千餘里 卽祁連山也 匈奴謂天爲祁連]”라고 하였다.
역주3 玉門關 : 중국 고대 서역으로 통하던 중요한 관문으로, 지금의 甘肅省 敦煌縣 서쪽에 있다.
역주4 白登 : 白登은 산 이름으로, 지금의 山西省 大同市의 동쪽에 있다. 《漢書》 〈匈奴傳〉에, “高帝가 먼저 平城에 도착하고 보병들이 아직 다 당도하지 않았을 때, 冒頓(묵특)이 정병 30여 만 기를 풀어 白登에서 高帝를 7일동안 포위하였다. 한나라 군대는 안팎으로 서로 구원하거나 군량을 대지 못했다. …… 이에 高皇帝는 사졸들에게 모두 활을 가득 당겨 잡고 활시위를 채워 밖으로 겨누게 하여 포위가 풀린 쪽을 통해 곧바로 빠져나가 大軍과 합류하니, 冒頓은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高帝先至平城 步兵未盡到 冒頓縱精兵三十餘萬騎 圍高帝於白登七日 漢兵中外不得相救餉……於是 高皇帝令士皆持滿傅矢外鄕 從解角直出 得與大軍合 而冒頓遂引兵去]” 라고 하였다.
역주5 靑海 : 호수의 이름으로 중국 최대의 담수호이다. 지금의 靑海省 동북부에 위치해 있다. 隋‧唐시기에 토번과 전쟁이 잦은 지역이었다.
역주6 由來征戰地 : 白登道와 靑海灣을 이른다. 이는 고금이래로 중원 세력과 서북의 이민족 사이에 분쟁이 잦았던 지역이다.
역주7 戍客 : 변방을 수비하는 병사이다.
역주8 高樓 : 높은 누대, 여기서는 戍客의 妻가 거처하는 곳을 의미한다.
동영상 재생
1 038 관산월고각횡취곡 384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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