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之坐令身世忘 - 宋 惠洪, 〈次韻游南岳〉, 《石門文字禪》 卷7
○ 謁衡岳祠 惻怛之忱 正直之操 坡老所謂能開衡山之雲者也 - 宋 黃震, 《黃氏日鈔》 卷59
○ 橫空盤硬語 妥帖力排奡 公詩足當此語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7, 《韓昌黎詩系年集釋》에서 재인용
○ 謁衡岳廟遂宿岳寺題門樓 此以對句第五字用平 是阮亭先生所講七言平韻到底之正調也
此種句句三平正調之作 竟要算昌黎開之 - 淸 翁方綱, 《七言詩平仄擧隅》 丁福保, 《淸詩話》에서 재인용
○ 莊起陪起 此典重大題 首以議爲敍 中敍中夾寫 意境詞句俱奇創 以下收 凡分三段 - 淸 方東樹, 《昭昧詹言》 卷12, 〈韓公〉
○ 昌黎謁衡岳廟詩 讀去覺其宏肆中有肅穆之氣 細看去却是文從字順 未嘗矜奇好壞 如近人論詩所謂實話也
不似後人依樣葫蘆 - 淸 延君壽, 《老生常談》 郭紹虞, 《淸詩話續編》에서 재인용
○ 退之詩 我能屈曲自世間 安能隨汝巢神山 侯王將相望久絶 神縱欲福難爲功 高心勁氣 千古無兩
故終身推許不遺餘力 雖柳子厚之詩 尙不引爲知己 況東天夢得耶 - 淸 潘德輿, 《養一齋詩話》 郭紹虞, 《淸詩話續編》에서 재인용
潛心黙禱若有應 豈非正直能感通 曰 若有應 則不必眞有應也
末云 侯王將相望久絶 神縱欲福難爲功 我公富貴不能移 威武不能屈之節操 忽于嬉笑中無心現露
然前者托之開雲 後則以謝廟祝 皆跌宕游戱之詞 非正言也
假如作言志詩 示我之正直 可感天地 世之勳名 我所不屑 則膚闊而無味矣
讀韓詩與讀韓文逈別 試按之然否 - 淸 程不恂, 《韓詩臆說》 錢仲聯, 《韓昌黎詩文係年集釋》에서 재인용
廟令老人 目爲尋常游客 寧非淺視韓公 - 淸 汪佑南, 《山經草堂詩話》 錢仲聯, 《韓昌黎詩文係年集釋》에서 재인용
〈형악묘에 배알하고 드디어 형산의 절에서 묵으며 문루에 제하다〉
사방에 큰 산이 빙 둘러 있고 嵩山이 중앙에 있네
남쪽은 지역이 거칠고 멀어 妖怪가 많은 까닭에
하늘이 嶽神에게 권력을 주어 雄威를 떨치게 하였지
나 이곳에 와서 마침 가을비 내리는 계절을 만나
陰氣로 어둑한 가운데 맑은 바람 한 줄기 없구나
마음 가라앉히고 조용히 기도하매 응함이 있는 듯하니
잠시 후 구름은 조용히 쓸려 가고 뭇 봉우리 나왔는데
삼엄한 모습에 내 마음 움직여 말에서 내려 경배하니
神鬼의 그림들은 푸른 빛 붉은 빛으로 채워져 있구나
계단에 올라 허리를 굽히고 포와 술을 바치나니
손에는 盃珓를 들고서 나를 이끌어 던지게 하고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가장 길한 점이라 말한다
남방의 거친 땅으로 쫓겨 왔어도 다행히 죽지 않고
衣食도 그런대로 족하니 이대로 살다가 마치면 좋으리
神이 내게 복을 주려 해도 功을 이루긴 어려우리라
원숭이 울고 종소리 울려도 동트는 줄 몰랐는데
[集評] ○ 退之倔强遷揭陽 韓退之(韓愈)의 奇倔함은 태양도 옮겨 솟게 하니
道經衡山愛靑蒼 衡山을 지나는 길 그 푸른빛이 사랑스럽네
逸群駿氣不可御 무리에서 빼어난 기운 다스릴 수 없는데
頓塵初控靑絲繮 세상에 내려와 비로소 푸른 말고삐를 잡았네
朝雲偶開豈有意 아침 구름 우연히 걷힌 것 어찌 뜻이 있으랴만
妙意放浪高稱揚 방랑하는 깊은 뜻만은 높이 추어올리네
我生少小善詩律 나 어려서부터 詩律에 능하였는데
讀之坐令身世忘 이 시 읽고 있으니 몸과 세상 잊혀지네
○ 〈謁衡岳祠〉에서의 진심어린 정성, 정직한 마음가짐이 坡老(蘇軾)의 이른바 ‘衡山의 구름을 능히 개이게 하였다.’는 것이다.
○ ‘허공을 가로질러 굳센 언어 서려 있으니,
고 했는데 韓公의 시가 이 말에 족히 합당하다.
○ 〈謁衡岳廟遂宿岳寺題門樓〉 이 시는 對句의 다섯 번째 글자에 平聲을 썼으니, 이는 阮亭先生(王士禎)이 말한바 七言詩로서 平韻到底한 正調라는 것이다.
대개 七言古詩의 틀은 韓愈와 蘇軾에 이르러 그 극치를 이루었다.
少陵(杜甫)의 〈瘦馬行〉은 평성의 한 韻으로 끝까지 관철하였지만 오히려 꼭 그렇게 쓰고자 해서 된 것은 아니다.
이처럼 구절구절 三平을 쓴 正調의 작품은 결국 昌黎(韓愈)가 그것을 시작한 셈이다.
○ 장엄한 首句와 더불어 시작하였다. 이렇게 무겁고 큰 제목을 걸어놓고 첫머리에서 議論을 서술하고 중간에서 마음속 생각을 묘사하였으니, 意境과 詩句가 모두 奇倔하고 창의적이다. 그 이하로는 거두어들였다. 모두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 昌黎(韓愈)의 〈謁衡岳廟〉는 읽어가면서 크고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가운데 엄숙하고 경건한 기운이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자세히 보면 도리어 문맥과 措語가 순하여 일찍이 기이한 것을 자랑하고 남다른 것을 좋아한 적이 없으니, 근래 사람이 시를 논하면서 말한바 ‘實話’와 같은 것이다.
후대인들은 이 같은 큰 제목을 대하면 문득 난삽하고 껄끄러운 것을 능한 것으로 여기니, 古法과의 거리가 날마다 멀어지는 것이다.
‘侯王將相’ 두 句는 후배인 東坡(蘇軾)를 계발시켰으니 소식이 한유에서 비롯한 것은 이러한 류가 그렇다.
그러나 소식은 한유보다 더욱 깊이 깨달아 그를 능가하였으니, 이를 일러 學古를 잘한다고 하는 것이다.
후대인들이 그대로 모방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 退之(韓愈)의 시 ‘나는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 어찌 너를 따라 신선세계에 살 수 있으랴.[我能屈曲自世間 安能隨汝巢神山]’와 ‘侯王將相望久絶 神縱欲福難爲功’은 그 마음이 高遠하고 기운이 굳세어 천고에 둘도 없는 詩다.
시인의 마음과 소리는 참으로 속일 수가 없다.
동시대인으로는 오직 東野(孟郊)의 古骨이 그에 버금갈 만했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허여함에 餘力을 남기지 않았으니, 柳子厚(柳宗元)의 시도 오히려 知己라고 끌어들이지 않는데, 하물며 樂天(白居易)이나 夢得(劉禹錫)에 있어서랴.
後代人 가운데 오직 蘇子瞻(蘇軾)만이 이 시를 이해하였고, 그래서 그의 시 〈海市〉를 지을 수 있었다.
‘潛心黙禱若有應 豈非正直能感通’에서 ‘응함이 있는 듯하다.’라고 말하였으니, 반드시 실제로 응함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韓公은 지극히 크고 굳세어 浩然之氣가 홀연히 유희 중에 無心하게 드러났다.
‘廟令老人識神意’ 몇 마디는 순전히 諧謔으로 妙를 얻었다.
마지막에서 ‘侯王將相望久絶 神縱欲福難爲功’이라고 하였으니, 韓公은 富貴가 그를 변화시킬 수 없고 威武도 그의 節操를 꺾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홀연히 장난하며 웃는 가운데 無心하게 드러났다.
公의 뜻은 道를 전함에 있으니 위로는 孟子에 닿아 있다.
그래서 韓公은 〈原道〉와 〈原性〉 등의 글에서 모두 똑바로 말하여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시에서는 대부분 그것을 익살스럽게 말하여 情을 그려냈다.
즉 이 시와 같은 경우 어두운 구름이 잠시 걷히니, “이 어찌 정직함이 감응한 바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느낀 바가 겨우 이것뿐이라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것은 더 많을 것이다.
사당에서 축원하고 함부로 기도하면서는, “나는 이미 뜻이 없으니 神이 나를 어떻게 부귀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神 또한 억지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면, 그가 평소에 사람에 의해서 자신의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前者는 걷히는 구름에 의탁을 하였고 後者는 사당에서의 축원에 謝禮하면서 한 것이니, 모두 跌宕하게 遊戱하면서 한 말이지 똑바로 말한 것은 아니다.
만일 시를 쓰면서 자신의 정직함을 보여주려고 “천지를 감동시켜 세상의 공훈과 명예를 얻는 일을 나는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했다면 천박하고 거칠어서 맛이 없을 것이다.
한유의 詩를 읽는 것과 한유의 文을 읽는 것은 매우 다르니,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한 번 시험해 볼 일이다.
○ 처음 6句는 五岳으로부터 衡岳으로 내려갔으니 흐름이 여유가 있다.
이것은 詩題에 의거하여 大局面을 연 것으로써 첫머리에서 유람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我來正逢’ 12句는 형악에 올라 사당에 이르기까지 경치를 묘사하였다.
‘夜投佛寺’ 4句는 투숙하려는 뜻으로 결말을 지었다.
가장 중요한 警戒는 감회를 적은 네 句에 있다.
明哲保身은 聖賢의 학문으로 은연중에 鬼神을 공경하면서도 그를 멀리하는 뜻을 갖고 있다.
사당의 노인이 尋常한 游客으로 여겼다면 어찌 韓公을 얕본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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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 알형악묘수숙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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