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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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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白
鳳凰臺上鳳凰遊
鳳去臺空江自流
花草埋幽徑
成古丘
半落靑天外
長安不見使人愁
[集評]○ 金陵鳳凰臺在城之東南 四顧江山 下窺井邑 古題詠惟謫仙爲絶唱 - 宋 張表臣, 《珊瑚鈎詩話》 卷1
○ 古人服善
太白過黃鶴樓 有眼前有景道不得 崔顥題詩在上頭之句 至金陵 遂爲鳳凰臺詩以拟之 今觀二詩 眞敵手棋也
若他人 必次顥韻 或于詩板之傍別着語矣 - 宋 劉克莊, 《後村詩话》
○ 太白此詩與崔顥黃鶴樓相似 格律氣勢未易甲乙
此詩以鳳凰臺爲名 而詠鳳凰臺不過起語兩句已盡之矣
下六句乃登臺而觀望之景也
三四懷古人之不見也 五六七八詠今日之景 而慨帝都之不可見也 登臺而望 所感深矣
金陵建都自吳始 三山二水白鷺洲 皆金陵山水名
金陵可以北望中原 唐都長安 故太白以浮雲蔽日不見長安爲愁焉 - 元 方回, 《瀛奎律髓》 卷一登覽類
○ 崔顥黃鶴樓 便肆意爲之 白於金陵鳳凰臺效之 最劣 - 淸 毛奇齡, 《唐七律選》
○ 從心所造 偶然相似 必謂摹仿司勛 恐屬未然 - 淸 沈德潜, 《唐詩別裁》 卷13
○ 浮雲蔽日 長安不見 借晉明帝語
影出浮雲 以悲江左無人 中原淪陷
使人愁三字 總結幽徑古丘之感 與崔顥黃鶴樓落句 語同意別
宋人不解此 乃以疵其不及顥作 覿面不識 而强加长短 何有哉
太白詩是通首混收 顥詩是扣尾掉收
太白詩自十九首來 顥詩則純爲唐音矣 - 淸 王夫之, 《唐詩評選》


〈金陵의 鳳凰臺에 올라〉
이백
봉황대 위에 봉황이 노닐더니
봉황은 가고 대는 비고 강물만이 흐르네
오나라 궁궐의 화초는 후미진 길가로 묻혀지고
진대의 衣冠들은 古塚을 이루었네
三山은 푸른 하늘 밖에 아득하고
두 강줄기는 백로주로 나뉘었다
온통 뜬구름이 밝은 해를 가렸으니
장안이 보이지 않아 시름겹게 하는구나


역주
역주1 金陵 : 지금의 江蘇省 南京市이다. 六朝時代의 晉‧宋‧齊‧梁‧陳 등이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역주2 鳳凰臺 : 臺의 이름이다. 《宋書》 〈符瑞志〉와 《太平寰宇記》의 기록에 의거하면, 南朝 宋나라 元嘉 年間에 공작과 비슷하고 오색 빛이 나며 음성이 부드러운 기이한 새들이 날아와 모여들었는데, 사람들이 이 새를 봉황이라고 여겨 산 위에 대를 쌓고 ‘봉황대’로 불렀다고 한다. 옛터는 지금의 남경시 봉황산에 있다
역주3 吳宮 : 삼국시대 孫權이 금릉에 도읍하고 지은 宮室이다.
역주4 晉代衣冠 : 東晉의 권문세족을 의미한다.
역주5 三山 : 산 이름이다. 지금의 남경시 서남쪽 長江 가에 세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三山’이라 불린다.
역주6 二水中分白鷺洲 : ‘二水中分’은 秦淮江이 금릉의 동남쪽에서 성 안으로 흘러들어가 금릉을 관통한 뒤, 서쪽에서 장강으로 유입된다. 백로주는 그 사이에 있고, 그곳에서 강물이 두 줄기로 나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白鷺洲’는 백로가 많이 모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역주7 總爲浮雲能蔽日 : ‘總爲’는 모두 말미암는다는 뜻이다. ‘浮雲能蔽日’은 임금이 소인배들에게 가려졌음을 의미하는데, ‘浮雲’은 조정의 권신과 간신을, ‘해’는 당 현종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8 江左 : 六朝時代의 晉‧宋‧齊‧梁‧陳은 모두 江左에 도읍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 통치 지역을 ‘강좌’라고 불었다. 이 지역은 양자강 하류에 위치하기에 ‘江左’라 부른 것이다.
역주9 十九首 : 《文選》 권29 〈雜詩部〉에 수록된 작자미상의 五言古詩 19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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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5 등금릉봉황대 152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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