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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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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郊〉
〈동교에서〉
韋應物
위응물
吏舍終年
평생토록 관아에 얽매이다
맑은 새벽 탁 트인 교외로 나가보니
楊柳散和風
버들은 부드러운 바람에 흩어지고
靑山澹吾慮
청산은 나의 근심 담담하게 해준다
依叢適自憩
숲에 기대 혼자 쉬기 알맞건만은
緣澗還復去
시내 따라 돌다가 다시 거니네
微雨芳原
가랑비 자욱한 꽃 핀 들판에
春鳩鳴何處
봄 비둘기는 어디에서 울고 있는가
屢止
은거를 즐기려던 마음 여러 번 막혔고
猶遽
공무를 따르는 삶은 여전히 분주하네
終罷
마침내 관직 그만두고 이곳에 집을 지으면
可庶
도연명 흠모하는 마음 진실로 이루겠지
[通釋] 내 평생 관아에 얽매어 있다가 맑은 첫 새벽에 넓은 교외로 나와 본다. 버들은 봄바람에 흔들리고 청산은 나의 근심을 담담하게 해준다. 숲 속 나무에 기대어 있자니 혼자 쉬기에 딱 좋건만, 시냇물 따라 또다시 돌면서 산책을 한다. 보슬보슬 내린 봄비에 꽃핀 들판은 촉촉하게 젖어 있는데, 어디에선가 봄 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좋은 곳을 찾아 은거하고픈 마음은 종종 세속의 업무 때문에 저지당하고, 설령 일정대로 공무를 본다 해도 그 생활은 더더욱 급해지고 번잡스러워진다. 그러나 내가 마침내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와 여기에 집을 짓는다면, 도연명처럼 살고자 하던 나의 평생 염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解題] 위응물은 大曆 14년(779) 43세 때, 長安의 京兆府 工曹의 신분으로 鄠縣令이 되고 같은 해 6월에 櫟陽縣令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는데 병을 핑계로 부임하지 않고 善福精舍로 들어갔다. 이 시는 鄠縣令으로 재직하던 779년 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위응물은 일생동안 도연명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도연명의 시풍을 자주 모방하였다고 한다. 그의 〈擬古詩〉 12수 가운데 〈效陶彭澤〉‧〈效陶體〉‧〈雜詩〉 5수 등에서 이러한 면을 볼 수 있다. 이 시의 결구 또한 관직을 그만 둔 후 도연명처럼 은거하고 싶다는 염원을 드러내었다.
역주
역주1 : 구속한다는 뜻이다.
역주2 : ‘郭’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3 淸曙 : 맑은 첫 새벽이라는 뜻으로 ‘淸晨’과 같다.
역주4 : 촉촉하고 윤기 있는 모양인데,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다.
역주5 樂幽心 : 은거하고 싶은 마음을 뜻한다.
역주6 遵事跡 : 公務를 따르는 삶을 뜻한다.
역주7 : ‘期’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8 結廬 : 집을 짓는다는 뜻으로, 陶淵明의 〈飮酒〉 가운데 “사람 사는 세상에 집을 지었지만, 車馬의 시끄러움이 없구나.[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역주9 : 陶淵明을 지칭한다.
역주10 : ‘直’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동영상 재생
1 032 동교 388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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