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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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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甫
弓箭各在腰
耶娘妻子走相送
塵埃不見
牽衣頓足攔道哭
哭聲直上
問行人
行人但云
或從十五
便至四十
去時
歸來頭白還戍邊
君不聞
千村萬落
縱有健婦把鋤犂
禾生隴畝
況復秦兵耐苦戰
被驅不異犬與雞
雖有問
役夫
且如
縣官急索租
租稅從何出
信知生男惡
反是生女好
生女猶得嫁
生男埋沒隨百草
君不見
古來白骨無人收
新鬼煩冤舊鬼哭
天陰雨濕聲
[集評] ○ 以人哭始 鬼哭終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6
○ 聲調自古樂府來 筆法高峭 質而有文 - 淸 兪瑒, 《杜詩集評》
○ 杜老兵車行 長者雖有問 役夫敢申恨 尋常讀之 不過以爲漫語而已
更事之餘 始知此語之信
盖賦斂之苛 貧暴之苦 非無訪察之司 陳述之令 而言之未必見理 或反得害
不然 雖幸復伸 而異時疾怒報復之禍尤酷
此民之所以不敢言也
雖字敢字 曲盡事情 - 元 吳師道, 《吳札部詩話》


〈병거행〉
두보
수레는 삐걱삐걱, 말들은 히힝대고
출정하는 병사는 활과 화살 허리에 찼다
부모처자 총총대며 전송을 하느라
먼지 날려 함양교도 보이지 않네
옷 끌고 발 구르며 길 막고 통곡하니
통곡소리 솟아올라 하늘 구름 찌른다
길 가던 자가 병사에게 물으니
병사는 단지 말하길 “징병이 매우 잦다오
어떤 이는 열다섯에 북쪽 河水 방어하다
마흔에 서쪽으로 가 둔전 경영한다오
떠날 때 里長이 두건을 싸주었는데
돌아와 백발에도 다시 변방 수자리라
변방에서 흘린 피는 바다를 이루었는데
황제의 정벌의 뜻 아직 끝나지 않았구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한나라 산동 이백 고을
천촌만락에 잡초만 자라나
비록 건장한 아녀자가 호미 쟁기 잡는다해도
논 밭의 벼들은 東西가 없다오
더구나 秦 땅 병사 힘든 전투 견딘다고
내몰리는 것이 개와 닭이나 다를 바 없구려
어른께서 비록 물어본다 한들
병사가 감히 어찌 원한을 말하리오
또 금년과 같은 겨울에도
관서의 병사들 쉬지도 못했다오
고을 관리 급하게 조세 독촉하지만
조세는 어디로부터 나온단 말인가
진실로 알겠구나, 아들 낳기 싫어하고
도리어 딸 낳으면 좋아한다는 것을
딸 낳으면 오히려 이웃집에 시집이나 보내지만
아들 낳으면 百草에 묻히고 만다네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청해호 주변에
예로부터 백골을 거두는 사람 없어
새 귀신은 원통해하고 옛 귀신은 곡을 하니
날 흐리면 비에 젖어 흐느껴 운다오”
[集評] 사람이 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귀신이 우는 것으로 끝맺었다.
聲調는 고악부에서 비롯되었으며, 筆法은 高峭하고 質朴하면서도 文彩가 있다.
두보의 〈병거행〉에서 ‘長者雖有問 役夫敢申恨’이라는 구절을 심상하게 읽어보면 漫語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이 말의 진실됨을 알게 된다.
대개 賦斂의 가혹함과 지독한 빈궁의 괴로움은 그것을 방문하고 조사하는 관원과 진술하는 법령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를 말한다고 해도 반드시 바로 잡히는 것은 아니며 간혹 도리어 해를 입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행히 다시 말할 기회가 있다하더라도 다른 때에 (관원이) 진노하여 보복하는 禍가 더 심해진다.
이것이 백성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雖’자와 ‘敢’자는 그 사정을 곡진히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兵車行 : 〈兵車行〉은 〈麗人行〉과 더불어 두보가 창작한 新題 樂府詩이다.
역주2 轔轔 : 수레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이다.
역주3 蕭蕭 : 말이 히힝거리며 우는 소리이다.
역주4 行人 : 出征하러 나간 이를 지칭한다.
역주5 咸陽橋 : 咸陽의 서남쪽 渭水가에 있던 다리인데, 長安에서 서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다리를 지나야 한다.
역주6 干雲霄 : ‘干’은 犯이나 ‘沖’의 의미이다.
역주7 道旁過者 :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으로, 여기서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역주8 點行頻 : ‘點行’은 호적이나 名簿에 기재된 사람들을 강제로 징집하는 것이고, ‘點行頻’은 그러기를 빈번하게 했다는 뜻이다.
역주9 北防河 : 당시 吐藩이 황하 서쪽 지역을 자주 침범하여 唐왕조는 隴右, 關中, 朔方 지역의 군사들을 河西일대(黃河 서쪽지역으로 지금의 甘肅, 寧夏일대)에 주둔시켜 防禦를 좀 더 견고히 하였다. 이 지역이 長安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北防河’라 일컬은 것이다.
역주10 西營田 : 서쪽 변두리 지역의 屯田을 경영하는 것이다. 漢代에는 屯田制가 있어,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전쟁시에는 작전을 수행하도록 하였는데 唐代에도 이 제도가 있었다. 당시 屯田은 서북쪽 일대에 두었으니, 이는 吐藩의 침범을 막기 위한 방비였기 때문에 ‘西營田’이라 칭한 것이다.
역주11 里正 : 里長이다. 唐制에 百戶를 一里라고 하였으며 里마다 里正을 두었다.
역주12 裹頭 : 옛날에 出征하는 남자에게 둘러주던 黑色 羅紗로 만든 두건이다. 출정하는 이의 나이가 年少할 경우, 어리게 보이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 里正이 머리에 두건을 둘러주었다고 한다.
역주13 流血成海水 : 변방에 수자리 사는 병사들이 전쟁에 희생되어 흘린 피가 바다를 이룰 만큼 많다는 의미이다. 天寶 8年 6월에 哥舒翰이 병사 6만 3천명을 이끌고 토번의 石堡城을 공격하였는데, 唐의 군졸들이 수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역주14 武皇開邊意未已 : ‘武皇’은 본래 武功으로 저명하였던 漢 武帝인데, 여기서는 唐 玄宗을 지칭한다.
역주15 漢家山東二百州 : 여기서 ‘漢家’는 唐家이며, ‘山東’은 華山 동쪽을 지칭하는데 여기서는 관동과 같다. 《十道四藩志》에는 關東 七道가 대략 二百十七州라 되어 있는데, ‘二百州’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16 生荊杞 : ‘荊’은 荊棘이며, ‘杞’는 杞柳인데 잡초를 말한다.
역주17 無東西 : 밭의 남북을 ‘阡’이라 하고 동서를 ‘陌’이라 한다. ‘無東西’는 즉 阡陌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논밭의 벼싹이 어지럽게 자라 있어 東西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역주18 長者 : 노인에 대한 존칭인데, 여기서는 행인이 두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19 敢申恨 : 어찌 감히 마음속의 한을 펼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은 반어적 의미로, 가슴속에 쌓인 비분강개가 많다는 뜻이다.
역주20 今年冬 : 당 현종 天寶 10년(751) 겨울을 가리킨다.
역주21 未休關西卒 : ‘關西卒’은 函谷關 서쪽의 병사들을 말한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천보 9년(750) 12월에 병사를 징발하여 吐藩을 공격했다고 한다. 이처럼 천보 9년에도 병사를 징발하였는데, 천보 10년 겨울에도 병사를 징발하였기 때문에 ‘未休關西卒’이라 한 것이다.
역주22 比鄰 : 가까운 이웃이다. 唐制에 四家를 ‘鄰’으로 하고, 五家를 ‘保’로 하였다. ‘比’ 또한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이다.
역주23 靑海頭 : 靑海湖의 주변으로, 지금의 靑海 西寧시 부근이다. 唐 高宗 儀風년간을 기점으로 하여 唐과 吐藩은 자주 이 지역에서 교전하였는데, 이로 인해 당나라 兵力의 손실이 상당했다.
역주24 啾啾 : 보통은 동물들이 작게 우는 소리를 지칭하지만, 여기서는 鬼神이 우는 소리를 형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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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6 병거행 574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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