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시삼백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彼何人哉
中朝
不據山河據平地
長戈利矛
腰懸相印作
陰風慘澹天王旗
智且勇
十四萬衆猶虎貔
功無與讓
帝曰汝度功第一
愈拜稽首
金石刻畫臣能爲
古者世稱
此事不係於職司
公退齋戒坐小閣
濡染大筆何
塗改淸廟生民詩
書在紙
淸晨再拜鋪
表曰臣愈昧死上
詠神聖功書之碑
碑高三丈字如斗
句奇語重喩者少
長繩百尺拽碑倒
麤沙大石相磨治
公之斯文若元氣
先時已入人肝脾
今無其器存其辭
嗚呼聖皇及聖相
公之斯文不示後
曷與三五相
願書萬本誦萬
口角流沫右手胝
[集評] ○ 裴度平淮西 絶世之功也 韓愈平淮西碑 絶世之文也
裴度之功 不足以當愈之文 非愈之文 不足以發度之功
碑成 李愬之子乃謂沒父之功 訟之於朝 憲宗使段文昌別作 此與舍周鼎而寶康瓠何異哉
李義山詩云 碑高三丈字如斗 負以靈鼇蟠以螭
句奇語重喩者少 讒之天子言其私
長繩百尺拽碑倒 麤沙大石相磨治 公之斯文若元氣 先時已入人肝脾
愈書愬曰 十月壬申 愬用所得賊將 自文城 因天大雪 疾馳百二十里 到蔡 取元濟以獻
與文昌所謂 郊雲晦冥 寒可墮指
一夕捲旆 淩晨破關等語 豈不相萬萬哉
東坡先生謫官過舊驛 壁間見有人題一詩云
淮西功業冠吾唐 吏部文章日月光
千古斷碑人膾炙 世間誰數段文昌 坡喜而誦之 - 宋 葛立方, 《韻語陽秋》 卷3
○ 晩唐人古詩 穠鮮柔媚 近詩餘矣
卽義山七古 亦以辭勝
獨此篇 意則正正堂堂 辭則鷹揚風翽 在爾時 如景星慶雲 偶然一見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8
○ 生硬中饒有古意 甚似昌黎而淸新過之 - 淸 屈復, 《玉谿生詩意》 卷2
○ 韓碑詩 亦甚肖韓 - 淸 賀裳, 《戴酒園詩話》
○ 未定何年 雖力學韓體 變化未純 恐是少作 - 現代 張采田, 《玉谿生年譜會箋》


〈한비〉
이상은
元和天子의 神聖하고 씩씩한 자질
그는 어떤 사람인가, 軒轅氏와 伏羲氏라네
장차 先皇들이 받은 치욕을 씻고
法宮 안에 앉아 四夷 조회 받으리라 맹세하였네
淮西에 도적들 있은 지 오십 년이라
큰 이리가 貙를 낳고 貙는 큰곰을 낳은 꼴일세
山河에 있지 않고 평지를 차지한 채
길고 예리한 창들은 태양도 불러 세울 만했다
황제가 훌륭한 재상 얻으니 이름하여 裵度인데
도적들이 베었으나 죽지 않음은 神明의 도우심이었다
허리에 相印을 차고서 都統이 되어
음산한 바람 부는 참담함 속에 천자의 깃발 휘날렸다
李愬 韓公武 李道古 李文通이 용맹한 장수 되고
儀曹員外郞이 붓을 싣고 뒤따랐으며
行軍司馬는 지혜롭고도 용감하였고
십사만의 군사들 호랑이 큰곰과 같았다
蔡州에 들어간 후 도적놈 포박하여 태묘에 바치니
그 공훈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聖恩은 한량 없었다
황제께서 말씀하시길 “너 裵度의 공이 제일 크니
너의 從事官 韓愈가 마땅히 글을 지어야 할 것이다”
한유는 고개 숙여 절하고 춤추며
“金石에 글을 새기는 일은 신이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세칭 大手筆이라 했지만
이 일은 직책과 상관이 없습니다
仁을 당해서는 자고로 사양하지 않을 뿐입니다”
말을 마치자 천자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韓公이 물러나 재계하고 小閣에 앉아
큰 붓을 적셔 쓰는데 그 얼마나 생동한지
〈堯典〉과 〈舜典〉의 글자 고쳐 쓰고
〈淸廟〉와 〈生民〉의 시를 모방하였다
파격적인 문장 이루어 종이 위에 쓰고는
맑은 새벽에 두 번 절하고 붉은 계단에 펼쳐 놓았다
表에 이르길 “신 愈가 不敏하니 죽어 마땅합니다” 하였으니
神聖한 功勳 노래한 이 글 碑石에 새겨졌네
碑石의 높이는 세 길이요, 글자는 말[斗]만 한데
신령한 자라 그것을 등에 지고, 교룡이 비석 위에 서려 있다
句法은 기특하고 용어는 엄중해서 이해하는 이 적으니
누군가 天子에게 참소하여 그 公平하지 않음을 말하였다
백 자 되는 긴 밧줄로 비석 끌어 넘어뜨리고
거친 모래와 큰 돌로 비석의 글자들을 문질렀지만
公의 이 문장 天地의 기운과 같아
앞서 이미 사람들의 폐부로 들어갔다
湯盤과 孔鼎에 새겨진 글귀
지금 그 器皿은 없지만 그 말은 남아 있도다
아아, 훌륭한 임금과 어진 신하여
서로 활활 타오르며 후세에 큰 빛을 드리우리라
公의 이 문장 후대에 보이지 못했다면
어찌 헌종을 三皇五帝에 비겼으리오
원컨대 이 문장 만 번을 쓰고 만 번을 읽어서
입가에는 거품이 나고 오른손에는 굳은살 생기고
七十 하고도 二代에 걸쳐 그것을 전하여
封禪의 玉檢과 明堂의 基石으로 삼았으면


역주
역주1 韓碑 : 韓愈가 撰한 平淮西碑를 가리킨다. 淮西節度使 吳元濟가 蔡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元和 12년(817)에 裴度가 총사령관이 되어 이를 토벌했다. 이때 韓愈는 行軍司馬로 종군했는데, 亂이 평정된 후 황제가 한유에게 명하여 〈平淮西碑〉를 撰하게 했다.
역주2 李商隱 : 812~858. 字는 義山, 호는 玉谿生이다. 저서에 《李義山詩集》 《樊南文集》 등이 있다.
역주3 元和天子神武姿 : 元和天子는 唐 憲宗 李純을 가리킨다. 元和는 헌종의 연호이다. 神武는 英明한 威武를 말하는데 주로 제왕이나 將相을 칭할 때 쓰는 말이다. 姿는 資質의 뜻이다.
역주4 軒與羲 : ‘軒’은 上古時代 전설상의 黃帝 軒轅氏를 말하고, ‘羲’는 太昊帝로 伏羲氏를 말한다. 헌원씨와 복희씨는 전설 속의 聖君인 三皇五帝를 대표하며, 여기서는 憲宗을 비유한다.
역주5 誓將上雪列聖恥 : 唐나라는 玄宗 때 安史의 난 이후 藩鎭들이 割據하여 李希烈, 朱滔, 田悅, 李納, 王武俊, 李錡, 吳元濟 같은 여러 節度使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헌종이 일찍이 여러 강한 번진들을 평정하였다. 列聖은 唐 肅宗, 代宗, 德宗, 順宗 네 황제를 가리킨다.
역주6 法宮 : 황제의 正殿으로 임금이 政務를 처리하는 곳이다.
역주7 四夷 : 원래는 중국 주변의 東夷, 西戎, 南蠻, 北狄 등의 소수 민족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四方의 먼 변방 지역을 범칭한다. 韓愈의 〈平淮西碑〉 銘文에, “이미 淮西의 蔡州 땅을 평정하고 나니 四夷가 모두 來朝했다. 마침내 明堂을 열어 앉아서 그들을 다스렸다.[旣定淮蔡 四夷畢來 遂開明堂 坐以治之]”라는 구절이 있다.
역주8 淮西有賊五十載 : 李希烈‧陳仙奇‧吳少誠‧吳少陽‧吳元濟 등이 淮西를 차지한 채, 唐朝의 命을 듣지 않은 것이 모두 50여 년이었다는 뜻이다.
역주9 封狼生貙貙生羆 : ‘封狼’은 큰 이리이다. ‘貙’는 삵과 비슷하지만 더 크다. ‘羆’는 곰과 비슷한데 몸집이 크다. 이들은 모두 猛獸인데, 여기서는 淮西의 여러 장수들이 사사로이 자리를 서로 이어가면서 조정의 명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음을 비유하였다.
역주10 日可麾 : 《淮南子》에, “魯 陽公이 楚나라 장수였는데, 韓나라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한창 전쟁하고 있을 때 해가 지려 하자 창을 쥐고서 해를 부르니, 해가 이 때문에 三舍의 거리를 되돌아왔다.[魯陽公 楚將也 與韓遘難 戰酣 日暮援戈而麾之 日爲之反三舍]”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그들이 跋扈하였음을 형용하였다. 1舍는 30리이다.
역주11 帝得聖相相曰度 : 聖相은 곧 賢相이고, 度는 裴度이다. 배도의 字는 中立이고, 河東 聞喜人이다. 《舊唐書》 〈裴度傳〉에, “元和 10년 6월에 詔書를 내려 裴度를 門下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로 삼았다.[元和十年六月 詔以度爲門下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고 하였다.
역주12 賊斫不死神扶持 : 王承宗‧李師道가 蔡 땅 정벌을 지연시키기로 모의하고, 자객을 시켜 京師의 大臣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는 宰相 武元衡을 죽인 후 裴度를 습격하여 머리를 상하게 하고 도랑 속에 버렸는데, 배도의 氈帽가 두꺼웠던 탓에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황제가 노하여 “배도가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天運이다.[度得全 天也]”라 하고, 곧 그에게 中書侍郞同平章事를 제수하였다. 이때가 원화 10년(815) 6월이었다.
역주13 都統 : 藩鎭토벌군의 총사령관이다. 《新唐書》 〈裴度傳〉에 의하면, 元和 12년(817)에 배도가 자신이 직접 가서 吳元濟를 토벌하기를 청하니, 황제가 기뻐하여 배도를 淮西宣慰招討處置使에 임명하였다.
역주14 愬武古通作牙爪 : ‘愬武古通’은 네 명의 武將을 가리키니, 곧 李愬‧韓公武‧李道古‧李文通이다. ‘牙爪’는 어금니와 발톱으로 본래는 새와 짐승의 공격과 방어수단을 말하지만 인신하여 勇士 또는 용맹함을 비유한다. 《漢書》 〈李廣傳〉에, “장군은 나라의 爪牙이다.[將軍者 國之爪牙也]”라고 하였다.
역주15 儀曹外郞載筆隨 : ‘儀曹外郞’은 곧 禮部員外郞으로 당시에 이들은 대부분 군대를 따라다니며 書記의 일을 맡았다. 여기서는 李宗閔을 가리킨다.
역주16 行軍司馬 : 韓愈를 가리키니, 그는 당시 太子右庶子兼御史中丞으로 彰義軍行軍司馬에 충원되었다.
역주17 入蔡縛賊獻太廟 : 元和 12년 10월 唐의 장수 李愬가 淮西의 叛將 吳元濟를 잡아 長安으로 移送하였다. 황제는 興安門에서 사로잡힌 오원제를 넘겨받아 廟社에 바치고, 그 후 저자에서 목 베었다.
역주18 恩不訾 : ‘不訾’는 ‘限量이 없다.’는 뜻이다. 王粲의 咏史詩에, “상투 틀고 明君을 섬기매, 받은 은혜 참으로 한량없도다.[結髮事明君 受恩良不訾]”라는 구절이 있다.
역주19 汝從事愈宜爲辭 : 《舊唐書》 〈韓愈傳〉에, “淮西 蔡州가 평정되고 12월에 裴度를 따라 조정으로 돌아오니, 그 功勳으로써 刑部侍郞을 제수하고 이에 詔書를 내려 〈平淮西碑〉를 짓도록 하였다.[淮蔡平 十二月 隨度還朝 以功授刑部侍郞 仍詔撰平淮西碑]”라고 하였다.
역주20 蹈且舞 : 蹈舞는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朝見하고 慶賀할 때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의 한 가지이다.
역주21 大手筆 : 문장을 잘 쓰는 사람 또는 大著作을 뜻한다. 《晉書》 〈王珣傳〉에, “꿈에 어떤 사람이 서까래와 같은 큰 붓을 주었다. 꿈에서 깨어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큰 붓으로 글 쓸 일이 있을 것이다.’라 하였는데, 이윽고 황제가 죽자 哀冊과 諡號를 모두 王珣이 기초했다.[夢人以大筆如椽與之 旣覺 語人曰 此當有大手筆事矣 俄而帝崩 哀冊諡號 皆珣所草]”는 기록이 있다.
역주22 當仁自古有不讓 : 《論語》 〈衛靈公〉에, “仁을 당해서는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다.[當仁 不讓於師]”라고 보이는데, 여기서는 직임을 맡는 데 있어서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23 言訖屢頷天子頤 : ‘頷’은 아래턱인데, 여기서는 동사로 쓰여 고개를 끄덕인다는 뜻이다. 頤는 뺨이다. 한유의 말이 끝나자 헌종 황제가 즉시 고개를 연달아 끄덕이며 칭찬과 허락을 표한 것이다.
역주24 淋漓 :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양이다. 여기서는 한유가 쓴 碑文 속에 담겨 있는 뜻이 막힘없이 자유롭고 지극히 상세함을 가리킨다.
역주25 點竄堯典舜典字 塗改淸廟生民詩 : 〈堯典〉과 〈舜典〉은 모두 《書經》의 편명이다. 文字를 고치거나 바꾸어 글을 짓는 방식을 ‘點竄’이라 한다. 〈淸廟〉와 〈生民〉은 모두 《詩經》의 편명이다. 塗改 역시 點竄과 유사한 방식의 문장 작성법을 뜻한다. 〈堯典〉, 〈舜典〉, 〈淸廟〉, 〈生民〉은 모두 古代 帝王의 功業을 칭송한 문장과 시이다. 이 두 句는 한유가 쓴 〈평회서비〉의 序文과 명문이 《서경》과 《시경》의 문체를 운용한 것임을 말한다.
역주26 文成破體 : 별도의 한 체재를 갖추었음을 지칭한다. ‘破體’는 行書의 變體이다. 唐나라 張懷瓘의 《書斷》에, “王獻之가 王羲之의 行書를 변용하였는데, 그것을 破體書라고 부른다.[王獻之變右軍行書 號曰破體書]”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서법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라, 한유의 비문이 舊體를 잘 변화시켜 創新하였음을 가리킨다.
역주27 丹墀 : 궁궐 안의 붉게 칠한 계단을 말한다.
역주28 負以靈鼇蟠以螭 : ‘靈鼇’는 石碑를 등에 지고 있는 靈龜를 가리킨다. ‘螭’는 석비 양쪽에 새겨진 龍이다.
역주29 讒之天子言其私 : 《全唐詩》 注에, “비문의 내용은 대부분 裴度의 일을 서술하였다. 당시 蔡州에 들어가 吳元濟를 잡는 데 李愬의 功이 첫 번째였으므로 이소는 그에 대해 마음이 불편했다. 이소의 아내는 唐安公主의 딸이었으므로 궁중에 출입하면서 비문의 내용이 不實함을 호소하니, 이에 황제는 詔書를 내려 한유의 문장을 갈아 없애고 翰林學士 段文昌으로 하여금 글을 다시 지어 돌에 새기게 하였다.[碑辭多敘裴度事 時入蔡擒吳元濟 李愬功第一 愬不平之 愬妻 唐安公主女也 出入禁中 因訴碑辭不實 詔令磨去愈文 命翰林學士段文昌重撰文勒石]”고 하였다.
역주30 湯盤孔鼎有述作 今無其器存其辭 : 成湯의 대야와 孔氏 正考父의 솥은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그곳에 새겨진 글귀는 여전히 世間에 傳誦된다. ‘湯盤’은 商나라의 湯임금이 사용했다는 세숫대야인데 그 위에 自警의 뜻을 담은 銘文이 새겨져 있다. 《禮記》 〈大學〉에, “湯王의 盤銘에 이르기를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하였다.”고 적혀 있다. ‘孔鼎’은 孔子의 선조인 孔父嘉가 그의 父親 正考父를 위하여 만든 鼎인데, 그 위에 부친이 지은 銘文을 새겼다.
역주31 相與烜赫流淳熙 : ‘烜赫’은 불이 盛한 모양이고, ‘淳熙’는 크게 빛나는 모양이다. 憲宗과 裴度가 藩鎭을 평정한 빛나는 공훈과 업적이 장차 세대를 거치며 전해내려 오리라는 것을 말한다.
역주32 攀追 : 헌종이 三皇五帝를 뒤따라 그 위업을 이어 본받는다는 뜻이다.
역주33 : ‘週’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역주34 七十有二代 : 《史記》 〈封禪書〉에서 太史公은 《管子》를 인용하여, “옛날에 泰山에서 제사를 행하고 梁父山에서 제사를 행한 자가 72家였다.[古者封泰山 禪梁父者七十二家]”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만세토록 後代에 전해진다는 뜻이다.
역주35 以爲封禪玉檢明堂基 : ‘封禪’은 帝王이 天地에 제사지내는 큰 의식을 말한다. 封은 泰山 위에 제단을 쌓고 제사지내어 하늘의 功에 보답하는 것이고, 禪은 태산 아래의 梁父山에 터를 닦고 제사지내어 땅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뜻한다. ‘玉檢’은 祭文이 적힌 玉牒을 넣는 書函의 뚜껑이다. ‘明堂’은 天子가 政令을 반포하고 제후들을 조회하며 제사를 거행하는 곳이다.
역주36 周鼎을……여기는 것 : 賈誼의 〈弔屈原賦〉에, “周나라의 솥을 버리고, 큰 표주박을 보배로 간직하네.[斡棄周鼎 寶康瓠兮]”라는 구절이 있다.
역주37 景星과 慶雲 : 景星은 큰 별로 德星 또는 瑞星이라고도 하는데 천자가 封禪을 잘하면 그 보답으로 나타난다 하며, 慶雲은 상서로운 구름으로 景雲 또는 卿雲이라고도 하는데 태평성대의 징조로서 오색구름이 끼는 것을 말한다.
동영상 재생
1 073 한비 628
동영상 재생
2 073 한비 752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9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