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評]○ 宋嚴滄浪 取崔顥黃鶴樓詩爲唐人七言律第一 近日何仲黙薛君采 取沈佺期盧家少婦鬱金堂一首爲第一 二詩未易優劣
或以問予 予曰崔詩賦體多 沈詩比興多 - 明 楊愼, 《升庵詩話》 卷4
○ 何仲黙 取沈雲卿獨不見 嚴滄浪 取崔司勛黃鶴樓爲七言律壓卷
二詩固勝 百尺無枝 亭亭獨上 在厥體中 要不得爲第一也
沈末句是齊梁樂府語 - 明 王世貞, 《全唐詩說》
盧家少婦 體格豊神 良稱獨步 惜頷頗偏枯 結非本色
嚴氏因之 世遂附和 又不若近推沈作爲得也 - 明 胡應麟, 《詩藪》 〈內篇〉 卷5
○ 起語千古驪珠 結句幾成蛇足 此論吾不謂然 六朝樂府 行以唐律 環瑋精工 無可指摘 - 淸 邢昉, 《唐風定》
其所以如大辨才人說古今事理 未有豫立之機而鴻纖一致
○ 沈詹事古意 文苑英華與本集題下皆有贈補闕喬知之六字
因詹事仕則天朝 適喬知之作補闕 其妾爲武承嗣奪去 補闕劇思之
故張南士云詹事古意 卽三百遺制 內極其哀痛 外極其艶麗
前人如何仲黙楊用修輩皆稱此詩爲三唐第一 然俱不得其解
盲子觀物 稚兒讀論語 不知何以亦妄許如此 - 淸 毛奇齡, 《西河詩話》
○ 雲卿獨不見一章 骨高氣高 色澤情韻俱高 視中唐鶯啼燕語報新年詩 味薄語纖 床分上下 - 淸 沈德潛, 《說詩晬語》
○ 初唐諸君正以能變六朝爲佳 至盧家少婦一章 高振唐音 遠包古韻 此是神到之作 當取冠一朝矣 - 淸 姚鼐, 《五七言今體詩鈔》
首句言生小華貴 深居蘭室 在鬱金蘇合香中 次言于歸後倡隨 若棲梁之雙燕
三四用逆挽句法 征人遼海 荏苒十年 況木葉秋深 西風砧杵 寒衣待寄 益增離索之思
收句言獨處含愁 更堪明月凄淸 來照流黃機上 且有只容明月 照我幽居之意
與春風不相識 何事入羅帷 同其貞靜也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集評]○ 송나라의 嚴滄浪(嚴羽)은 崔顥의 〈黃鶴樓〉 詩를 당나라 사람들이 쓴 七言律詩 가운데 第一이라고 했고, 요즈음 仲黙(何景明)과 君采(薛蕙)는 沈佺期의 ‘盧家少婦鬱金堂’ 시 한 수가 第一이라고 했는데, 이 두 시는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 문제를 내게 묻기에 나는 “崔顥의 시는 賦體가 많고, 沈佺期의 시는 比‧興이 많다.”라고 대답하였다.
○ 何仲黙(何景明)은 沈雲卿(沈佺期)의 〈獨不見〉을, 嚴滄浪(嚴羽)은 崔司勛(崔顥)의 〈黃鶴樓〉를 七言律詩의 壓卷이라 했다.
두 시는 참으로 뛰어나 백척 높이에 잔가지 하나 없이 당당하게 우뚝 홀로 솟았으나 그 體制에 있어서는 第一이 될 수 없다.
심전기 시의 마지막 구는 齊나라와 梁나라의 樂府詩 어조이다.
그 당시에는 멀게는 六朝의 작풍을 따르고 가깝게는 初唐四傑(盧照隣‧楊炯‧王勃‧駱賓王)을 좇았다.
그러므로 體裁가 분명하고 치밀하며 聲調가 고상하고 화려했다.
하지만 그윽한 감정과 興趣는 얽매인 곳이 있어 아직 通達하지 못했다.
‘盧家少婦鬱金堂’ 시는 體格이 풍부하고 묘해 참으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데, 頷聯이 자못 한쪽으로 치우쳐 메마르고 結句가 本色이 아닌 것이 안타깝다.
李白은 평생 字句를 按配하고 對偶를 맞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崔顥의 시는 마침 按配와 對偶가 잘 맞았다.
嚴氏(嚴羽)가 이를 그대로 따르자 세상이 마침내 이 의견에 附和하니, 이는 또 근래 沈佺期의 작품을 추앙해 得意作이라 하느니만 못하다.
○ 첫 구절은 천고의 여의주이지만 마지막 구절은 거의 사족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의 논의에 대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六朝의 樂府를 당나라의 율시로 쓴 것인데도 環玉처럼 정교하게 다듬어 흠 잡을 곳이 전혀 없다.
○ 起句에서 頷聯으로 들어가는 곳은 羚羊이 뿔을 걸어놓은 듯 흔적이 없으며, 頷聯에서 頸聯으로 들어가는 곳은 누에 한 마리가 실을 뽑는 듯하다.
제7구는 雪山에서 사자가 포효하는 것 같고, 용이 가을 물을 머금은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그 고운 빛이 사람을 놀라게 하니, 古今에 절창이라 추앙함은 당연히 거짓이 아니다.
이 시가 口辯 좋은 사람이 고금의 事理를 해설하는 것과 같은 이유는, 미리 틀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거대함과 세밀함이 一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만 그 珠玉같은 작품에 감동할 뿐이다.
○ 沈詹事(심전기)의 〈古意〉는 《文苑英華》와 그의 시집의 제목 아래에 모두 ‘贈補闕喬知之’ 여섯 글자가 있다.
沈詹事가 則天武后 조정에 벼슬할 때 마침 喬知之가 補闕이 되었는데, 그의 첩을 武承嗣에게 빼앗겨 喬補闕이 몹시 그리워하였다.
그리하여 이 시를 지어 영원한 이별의 뜻을 위로해, 遠征 간 지아비와 戍卒의 아내에 비유해 어찌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때문에 結句에서 ‘誰謂’라고 하여 이렇게까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후에 喬補闕은 끝내 이 일로 죽게 되는데 이 글이 크게 관련된 것이었다.
選本에 제목 아래 여섯 글자를 지우면서부터 마침내 이러한 뜻이 가려진 지 오래되었다.
이 때문에 張南士가 이르기를 “沈詹事의 〈古意〉는 《詩經》 삼백 편이 남긴 전통을 간직해, 안으로는 哀痛함을 극진하게 표현했고 밖으로는 艶麗함을 극진하게 표현했다.”라고 하였다.
何仲黙(何景明)‧楊用修(楊愼) 무리 같은 이전 사람들은 모두 이 시를 三唐詩 가운데 第一이라 하였지만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장님이 물건을 보듯 어린애가 《論語》를 읽듯,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한 멋대로 한 평가가 이와 같다.
○ 沈雲卿(심전기)의 〈獨不見〉 시는 氣骨이 우뚝하고 색채와 감정, 운율이 모두 고상하다. 中唐의 ‘
’ 시의 얕은 맛과 가냘픈 시어와 견주어보면 床 아래와 위로 확연히 구분된다.
○ 初唐의 여러 시인들은 六朝의 전통을 능숙하게 변형시킨 것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盧家少婦’ 시에 와서야 당나라의 시를 드높이 떨쳐 멀리 古韻까지 포괄하였다. 이는 神이 내린 솜씨이니 당연히 한 시대의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첫 구는 귀한 집안의 어린 여자가 蘭室에 깊이 들어앉아 鬱金香과 蘇合香 속에 사는 것을 말하였고, 다음 구는 시집온 뒤 夫唱婦隨하며 대들보의 두 마리 제비처럼 살았음을 말하였다.
3‧4구는 도치법을 사용해, 수자리 살러 간 사람이 遼海에 있은 지 10년이 지났는데, 하물며 낙엽 지는 깊은 가을, 서풍에 다듬이 소리 들리고 추위 막아줄 옷을 부쳐주길 기다릴 것이라고 하여 이별의 쓸쓸한 느낌을 더하였다.
5구는 소식을 바라지만 편지가 닿지 못하니 위의 수자리 살러 간 것을 이어서 말하였다.
6구는
이 긴 것을 느끼니 위의 九月을 이어 말했다.
마지막 구는 홀로 지내며 수심을 머금었는데 처량하도록 밝은 달이 비단 짜는 베틀에 비친다는 말이고, 또한 ‘단지 밝은 달이 들어와, 깊이 숨어 사는 나를 비추네.[只容明月 照我幽居]’라는 뜻이 있다.
[春風不相識 何事入羅帷]’와 맑은 고요함이 똑같다.
1
223 고의 정보궐교 …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