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시삼백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遊子吟〉
〈나그네 노래〉
孟郊
맹교
慈母手中
인자하신 어머니 손끝의 바느질로
遊子身上衣
길 떠난 아들의 옷을 지었네
臨行密密縫
떠날 때 촘촘히 꿰매어 주심은
意恐遲遲歸
더디 돌아올까 염려해서이겠지
누가 말하랴 한 치 풀의 마음으로
報得三春暉
봄날 햇볕에 보답할 수 있다고
[通釋] 어머님이 손에 잡고 있던 실은 지금은 이 나그네가 입고 있는 옷에 있다. 길을 떠날 때 밤새워 촘촘히 꿰매어 주신 것은 행여 내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하셨기 때문이겠지. 한 치 정도 자란 여린 풀과 같은 자식의 마음으로 봄날 햇볕 같은 어머니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리오.
[解題] 《孟東野詩集》 권1에 있다. 孟郊는 50세가 다 되어 진사에 급제하여 54세에 溧陽縣尉로 부임하였다. 이때 韓愈는 불우한 처지에 있던 맹교를 위해 〈送孟東野序〉를 써주었는데, 여기에 ‘不得其平則鳴’이라는 유명한 文論이 담겨있다. 이 시 또한 이 즈음에 지은 작품으로, 맹교의 自註에, “어머니를 맞이하며 율양에서 지었다.[迎母溧上作]”라고 하였다. 고악부에 의거하여 지은 작품으로 宋代 郭茂倩이 편집한 《樂府詩集》의 〈雜曲歌辭〉 중 〈遊子吟〉條에 顧況, 李益의 작품과 함께 실려 있다. 평범한 일상사를 통하여 크고도 깊은 부모의 은혜를 읊은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集評] ○ 故郊自念不能報其親 而作爲遊子吟之詩
[集評] 맹교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유자음〉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有曰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 其意 蓋以天地之恩 喩父母之恩 而歎其難報
시에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대개 천지의 은혜로 부모의 은혜를 비유하여 보답하기 어려움을 한탄한 것이다.
此非知孝於親者其能發此乎
이것은 부모에 대한 효를 아는 자가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然郊之詩 以厄於羈旅窮困 不得養其親而作 固宜其形於言者如是 - 明 王叔英, 《靜學文集》 卷1, 〈草心堂詩序〉
맹교의 시는 나그네의 곤궁한 신세를 당하여 부모를 봉양할 수 없는 처지에서 지은 것이니, 그 말에 이와 같이 나타낸 것이 진실로 마땅하다 하겠다.
역주
역주1 : 針線, 즉 바느질을 뜻한다.
역주2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 ‘寸草心’은 한 치 정도 자란 어린 풀의 마음으로 자녀의 마음을 비유하였고, ‘三春暉’는 봄날 햇볕으로 부모의 은혜를 비유하였다. 한 줄기 풀과 같은 미미한 자식의 효심으로 천지를 비추는 봄볕과 같은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우리나라 문인들도 부모의 은혜를 표현할 때 ‘유자음’을 전고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김종직金宗直은 〈교우흥인문내영훤화僑寓興仁門內詠萱花〉(《佔畢齋集》 5)에서, “북당이 아득히 남쪽 끝에 있는지라, 강개하여 다시 유자음遊子吟을 읊노라.[北堂渺渺天南極 慷慨還爲遊子吟]”라고 하였다. 이식李植은 〈생일유감生日有感〉(《澤堂先生續集》 2)에서, “겨울 찬바람 손수 지어 주신 옷에 부니, 꿈결 속 그저 소식만 묻고 돌아오네.[冬風吹手線 消息夢徒回]”라고 하였는데, ‘수선手線’은 〈유자음〉의 첫구 ‘慈母手中線’에서 취한 것이다. 또한 변중량卞仲良, 강백년姜栢年, 신경준申景濬, 성현成俔 등은 〈유자음〉이란 제목으로 작품을 짓기도 하였다.
동영상 재생
1 045 유자음 180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